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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해답은 믿음입니다 (히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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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은 믿음입니다 (히 11:6)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자그마한 마을에 술집이 하나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조용하던 마을에 술꾼들이 모이고, 밤늦도록 어찌나 떠들어대는지 마을이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특별이 그 마을 교회에서는 주일 저녁만 되면 시끄러워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교인들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술집을 다른데로 옮겨주시든지 아니면 불태워주시던지 해 주십시오, 시끄러워서 못살겠습니다.’ 그러던 중 비가 많이 오는 어느 수요일 저녁, 그날도 교인들은 ‘그 술집을 다른 데로 옮겨주시든지 불태워주시던지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교인들이 한창 기도하고 있는데 벼락이 치더니 그 술집이 벼락에 맞아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술집은 다 불타버렸습니다. 
  
그러자 술집 주인이 교회를 고소했습니다 ‘우리 술집이 벼락에 맞아 불이 난 것은 저 교회 교인들이 기도해서 그렇게 된 것이니 교회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교인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벼락이 그 술집에 떨어져 불이 날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술집 주인은 교인들이 기도해서 우리 술집에 불이 났으니 교회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교인들은 우리가 기도했다고 술집에 불이 날 리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누가 더 믿음이 있습니까? 기도했으니까 기도한대로 불이 난 것이라고 주장한 술집 주인입니까? 아니면 기도했으면서도 기도했다고 불이 날 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교인들입니까? 

우리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신자(信者)라고 부릅니다.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신자인 우리에게 진짜 믿음이 있습니까? 불이 나서 술집이 없어지도록 기도했으면서도 기도했다고 술집이 불 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정말 우리가 믿음으로 여기에 와 있고,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가?
  
우리는 지난 두 주 동안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둠 가운데 있던 우리를 빛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빛의 자녀가 된 우리는 다시는 어둠의 속한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빛의 자녀가 되었기에 빛의 자녀답게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빛의 자녀인 우리가 맺어야 할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답게 빛의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로 빛의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빛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나 우리의 인격으로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 우리 주님으로부터 매일같이 은혜를 덧입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 아니면 빛의 열매를 맺을 수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기쁨을 받으십니다.

그러면 어떤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두 가지 믿음의 모습을 가르쳐줍니다. 그 첫 번째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계심을 확실하게 믿으십니까? 세상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만져지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증명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의 이성이나 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그렇습니다.
  
공기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느낄 수는 있습니다. 바람이 불 때 그것은 공기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우리가 느끼며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가장 먼 별은 ‘GRB 090429B’라는 별이라고 합니다.<사진>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있는 스위프트 우주망원경으로 지난 2009년에 발견해서 분석한 결과를 올해 5월에 발표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별은 지구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131억 4천만 광년(光年) 떨어져 있는 별입니다. 빛의 속도로 간다 하더라도 131억 4천만년 걸려야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이 말은 그 별이 131억 4천만 년 전에 내뿜은 빛을 오늘에서야 우리 인간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31억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그 별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게 지구에서 가장 먼 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그 별을 보셨습니까? 저도 직접 보진 못했습니다. 망원경으로 찍었다는 사진만 보았습니다. 우리가 그 별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또 볼 수도 없지만 우리는 과학의 힘으로 그 별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별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지만, 131억 년 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그 어떤 과학적인 방법으로도 존재하심을 증명해낼 수 없습니다. 철학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논증들이 제시되었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믿을 뿐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히 하나님이 계시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계심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눈으로 확인하고 믿겠다거나, 과학적으로 증명되면 믿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주장입니다. 

믿음의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굳이 우리가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아닐지라도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신앙을 갖지 않음에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말하는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인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다는 것은 그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모시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사실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일 뿐입니다. 

야고보서 2:19절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로 믿고 떠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인정한다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께 내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그랬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았던 믿음입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히브리서 11:4절에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나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가인 역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4절의 해석에 의하면 아벨만이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믿음으로 드렸기에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가인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긴 했지만, 믿음으로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거절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의 그런 믿음 없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사가 거부당하자 가인은 마음에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의 원인이 동생 아벨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가인을 직접 찾아가셔서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네가 왜 분노하느냐? 죄가 너를 넘어뜨리려 하니 죄에 넘어가지 말고 네가 죄를 이겨야 한다.’ 그렇게 말씀해 주셨음에도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맙니다. 가인은 자신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일어나는 감정 그대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만약 가인에게 믿음이 있었다면, 그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분노하는 마음을 이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신대로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을 이겨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알았지만, 하나님을 자신의 삶 중심의 자리에 모시는 것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믿음 없는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지 않으면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지라도 사실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또 다른 모습은 하나님께서 상주시는 이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좀 더 쉽게 풀어 말한다면, 내가 내 삶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하나님께서 내 삶을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설계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길을 따라 살 때 우리의 삶이 더 복되고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내 삶의 결정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계획한 것과 다를지라도,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를지라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삶에 주인으로 모셨다면,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내 삶에 모시긴 모셨는데, 저 구석진 자리에 내팽개쳐 놓고 내 마음대로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선하게 인도해 가십니다. 그건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는 방법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방법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때론 우리를 힘든 길로 이끄실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제자리에 머물게 하시거나 먼길을 돌아가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라하신 곳으로 가고,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대로 하면 우리에게 손해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앞날을 위해서 노력하여 성취한 것보다 하나님께서는 더 복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더 좋은 것들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로마서 8장에서 말씀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걸 믿는다면 오늘의 삶이 좀 힘들어도 참을 수 있습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순간이 올지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선한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 때 잘 나가는 신문 기자가 있었습니다. 실력을 인정받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기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취재한 사건이 잘못되면서 그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도 단지 그 사건을 취재해서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 때 그의 나이 33살이었고, 만삭의 아내와 홀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는 분하고 억울했지만,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자기에게는 힘도 없었고, 어느 누구도 자기편이 되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신문사에서조차도 나 몰라라 했습니다. 
  
구치소에 갇히게 된 그는 폭력배 방으로 배정 되었습니다. 온 몸에 문신이 새겨 있는 폭력배들을 보면서 그는 무서워서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할 정도로 겁이 났습니다. 더구나 그 방에는 조폭 두목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방을 쓰고 있던 그 조폭 두목이 그를 부르더니 이렇게 물었습니다. “야, 너 교회 다녀” “안 다닙니다.” “찬송 아는 것 있어?” “잘 모릅니다.” “그럼, 성경은 읽어 봤어?” “예, 성경은 다 읽지는 않았고, 대학 다닐 때 서양 문화사 시간에 관심이 있어서 신약 성경만 읽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조폭 두목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됐어. 오늘부터 네가 이 방에서 예배 인도하고, 설교도 해.” 교회에 다녀보지도 않았는데 그 방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고, 성경을 조금 읽어보았다는 것만으로, 그에게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조폭 두목이 하라고 하는데, 무서워서 못 한다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절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몰라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찬송도 부르고, 성경 아무 곳이나 펴놓고 엉터리이지만 설교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조폭 두목이 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듣다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엉터리로 찬송하고 엉터리로 설교하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조폭 두목이 쑈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매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그 조폭 두목은 은혜를 받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독방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독방에서 그는 처음으로 성경을 진지하게 읽었습니다. 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조폭 두목처럼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해 달라는 마음으로,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게 된 것입니다. 그 동안은 자신의 지적 교만으로 성경을 무시하고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믿었지만, 이번에는 철저하게 성경을 믿기로 작정하고 읽었습니다. 성경 말씀 그 어떤 것도 의심하지 않고 일단 무조건 믿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의 눈으로 성경을 읽어나가자 성경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고,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가 연루되었던 사건이 해결되고 그는 석방되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감옥에서 나온 후 그의 가족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활은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아내의 만류로 기자로 다시 취직하지 않고 전업 작가로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7년 동안을 백수로 지내면서도 그는 글 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의 지적 교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게 되었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다다를 때는 성경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쓴 소설이 10만부가 팔릴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가 쓴 소설은 무려 200만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쓴 조창인 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십니다. 오늘도 내 삶의 주인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믿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에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때론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아 보일 때도 있고, 험난한 가시밭길로 이끄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교회당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당에만 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그 질문의 해답은 믿음입니다. 내 삶을 가장 잘 사는 방법은 뭘까? 그 질문의 해답도 믿음입니다. 내가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도, 내가 가장 멋있게 사는 비결도, 그 해답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해답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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