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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 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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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리로다 (시 108:1-7)


국민일보에 연재된 문흥수(文興洙) 변호사의 간증입니다. “새벽에 엎드려 기도하면 성령이 폭포수처럼 나의 마음속에 임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드린 날은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창공을 날아오르듯 상승기류 가운데 하루 종일 살 수가 있었습니다. 밤에 3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새벽기도를 한 뒤 1시간 공부하는 것이 서너 배 더 공부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공부한 덕택에 가장 어려운 시험 중의 하나라는 사법연수원 수료시험에서 수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도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달디 단 잠을 깨우고, 포근한 잠자리를 뒤로 한 채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의 은혜가 마른 땅 위에 내리는 단비처럼 촉촉이 내리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없이 세상에 나가는 것은 무기 없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날은 세상의 가시에 찔리고 돌에 채이며 상처투성이 패배의 삶을 살게 되곤 하였습니다. 나는 새벽기도를 한 날과 새벽기도를 하지 않은 날의 차이를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역시 새벽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이 된 후 생활이 안정되자 새벽기도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0년 전부터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 날은 아침과 저녁을 굶기로 작정했습니다. 현기증이 났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새벽기도를 안 할 바에는 그게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 후 거의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의 고백입니다. “세계를 순방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는 나라가 있었는데 한결같이 아침의 나라였습니다. 캐나다에 갔을 때 아름다운 새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캐나다는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일본입니다. 출근하는 발자국 소리와 아침 공장의 요란한 기계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요 발전하는 나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나는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에 갔었습니다. 고요한 새벽 기도회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 교회 가는 성도들의 발자국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함성이 시작되는 한국은 주님이 지키는 나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벽이라는 말은 시간을 지칭하는 명사입니다. 사전에 보니 ‘밤이 거의 새고 날이 밝을 녁’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성경은 새벽에 많은 사건이 일어났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홍해를 가른 기적도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여리고성 정복 사건도 새벽에 이루어졌으며 부활사건도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를 새벽으로 시작해서 저녁까지로 보지 않고 해가 지는 저녁으로부터 하루가 시작된다고 생각하였기에 시편기자는 하루를 정리하는 의미가 담겨있는 새벽을 깨우리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새벽은 ‘오르’ 로서 ‘빛나다’라는 뜻입니다. 새벽은 햇빛이 빛나고 이슬이 빛나고 영적인 각성이 빛을 발하는 시간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2절을 통해 시편 기자 다윗은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새벽에 무엇을 통해 영혼을 깨워야 합니까? 
 
첫째로 내가 노래하며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웜스에서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전할 수 있을까 두려움으로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상복을 입고 들어왔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 묻습니다. “아니 누가 죽기래도 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누가 돌아가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경거망동하게” 그러자 부인이 말합니다. 

“당신은 왜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는데 그렇게 불안해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두려워 떠는 모습을 보니 필시 하나님께서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루터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찬송하며 나아갔습니다. 교황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입니다. 신령한 노래와 찬양은 어두움을 물리칩니다. 닫힌 감옥의 문도 열게 합니다. 막힌 문제를 뚫어 버립니다. 새벽을 깨우는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 1절입니다.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여기에서 흔들림과 방황 끝에 결단을 내리고 믿음으로 일어나 찬양하려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랜 방황과 갈등 끝에 얻은 것은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다윗은 새벽을 깨웠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수금과 비파를 연주하며 노래했습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무엇에 쓰는가에 의해 영성의 질이 결정됩니다. 다윗은 목동시절부터 하루 첫 시간을 찬양함으로 영성을 키웠습니다. 첫 시간을 여호와께 드림이 주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노래로 새벽을 시작하는 다윗에게 어찌 하나님께서 시온의 대로를 열어 주시지 아니하겠습니까?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며 찬양해야 합니다. 잠든 영혼을 깨우며, 새날의 시작을 알리며, 하나님께 찬양함이 마땅한 본분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내가 감사하며

농촌사회학자 류태영(柳泰永) 박사는 전라북도 임실군 산골마을에서 머슴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논 한평, 밭 한평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학교는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품팔이하며 살다가 어른들의 권유로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발이 없어 맨발로 학교를 다니고, 13살까지 팬티를 입어본 적이 없으며, 방학 때 노트를 못 사서 여기저기서 종이를 모아 노트를 만들어 숙제를 해갔습니다. 

가난에 지쳐 머슴살이하는 부모 밑에서 어찌 장래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예수를 영접한 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13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어렵게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서 전쟁직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 신문팔이, 아이스께끼 장사, 비누 장사를 하며 야간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배고픔과 영양실조로 쓰러졌을지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원망이나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현재 겪는 고통은 하나님께서 장차 나를 쓰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며 도리어 감사의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면서 유학을 보내주신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으로 담대하게 덴마크 국왕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나 덴마크 왕실로부터 회신이 왔으며 결국 덴마크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히브리대학을 수석 졸업하였으며 동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사로 어둠을 물리치고 새벽을 열었던 기도 인생을 보여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시인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살겠노라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가 큰 것을 발견해야 새벽을 깨울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감사로 새벽을 깨우며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만이 하루하루를 그리고 한 평생을 귀하고 복된 날로 살게 됩니다. 다윗은 한평생 감사하며 살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감사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기쁨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감사’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으로, 나를 도우심으로 기쁨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바로 감사로 새벽을 깨우는 사람입니다. 
 
셋째로 내가 기도하며 

펜실베니아주 포지계곡 국립 역사공원(Valley Forge National Historical Park) 에 가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바로 조지 워싱톤 (George Washington)의 모습입니다. 1775년 12월 독립전쟁 당시 영국군 주둔지 트렌톤을 공격할 때에 워싱톤이 이끄는 독립군은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있었습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병사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령관 워싱톤은 병사들이 잠든 이른 새벽 숲속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당신의 사랑과 공의를 위하여 이 전쟁에서 승리를 우리에게 안겨 주셔야 되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병사들은 이슬에 젖은 워싱턴의 얼굴에서 자신만만하게 흐르는 승리의 확신을 역력히 볼 수 있었습니다. 패배감에 젖어있던 병사들은 사기가 진작되었습니다.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훗날 워싱톤의 기도와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포즈 계곡에 동상이 세워졌으며 미국인들은 오늘까지 저들의 나라가 기도로 세워진 나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기도는 응답 받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시험도 위기도 실패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새벽은 성령이 역사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로 깨워야 합니다. 영적 체질로 바꾸어야 합니다. 삶의 패턴을 기도하는 삶으로 고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가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루의 시작인 새벽을 기도로 깨울 수 있어야 합니다. 새벽을 깨우는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을 일치시키는 시간이기에 소중합니다.

노예해방 운동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가 새벽기도의 중요성에 관해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네게 원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결코 아침기도를 무시하거나 짧게 해버리거나 성급하게 마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골방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하지 않도록 주의했으면 한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보다 치명적인 것은 달리 없다. 만약 네가 아침부터 하나님과 친근한 교제를 하게 된다면, 너는 지금보다 더 훌륭하게 하나님께 쓰일 수 있을 것이다.” 노예해방을 지지하는 강력한 행동을 보여 주는 배후에 새벽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or)의 고백입니다. “헌신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에 악기를 조율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나님의 뜻과 맞추는 일부터 해야 보람된 인생이 시작됩니다.” 하루의 첫 시간을 어떻게 시작하는가에 따라서 하루의 결과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새벽을 여는 사람은 밤의 고통과 기다림을 알기에 하나님과 함께 새벽을 깨우고자 하는 열망으로 아침햇살만큼이나 찬란한 은혜가 임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모름지기 성도들은 새벽을 깨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절과 수험생을 위한 세이레 특별새벽기도회가 진행 되고 있습니다. 부디 하나님을 향한 노래와 찬양으로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새벽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간구를 통해 새벽을 깨우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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