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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혼 추수를 서두르자 (요 4: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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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추수를 서두르자 (요 4:35-38)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추수’ 하면 말할 것도 없이 벼를 거두는 것을 연상하게 됩니다. 초록의 푸른 들판이 따가운 가을의 햇볕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어느 새 금년의 추수도 거의 끝난 것 같습니다. 금년 여름에는 유례없이 많은 비가 내려서, 일조량의 부족으로 수확이 크게 감소되지 않을까 염려하였는데, 농사하는 몇 분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금년에도 평년작은 되는 모양이어서, 우리민족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자연의 추수는 끝났지만, 우리 교회는 11월 27일 ‘영혼 추수 주일’을 앞두고, 지금부터 온 교회와 성도들이 영혼 추수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영혼 추수를 서두르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는 중에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사마리아 여인의 구원과 관련한 예수님의 영혼 구원 사역의 기쁨 및 영혼 추수에 대한 교훈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방의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한 여인에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과 ‘참된 예배’에 관하여 말씀을 전하실 때에, 제자들은 동네로 먹을 것을 사러 갔습니다. 돌아온 제자들이 예수님께 음식 잡수실 것을 권하자, 주님께서는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말하기를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의아해 하는데,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는데, 그것은 곧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며 그분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있어서 이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훨씬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자신의 사역의 초점을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시는 것에 맞추셨습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 곧 영혼을 구원하는 일임을 가르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도 영혼 구원 사역에 진력해야 할 것을 교훈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5절에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수가성 주위의 들판에는 아직 곡식들이 푸른빛을 띠며 넘실대고 있었지만, 지금 막 수가 성을 떠나서 예수님께 나아오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미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비유적으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눈을 들어 밭을 보라”는 말씀은 시각적인 지각이 아니라, 영적인 지각 능력을 의미합니다. 영적 이해력이 없이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깨달아 알 수도 없고, 그분이 지시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보라고 하신 ‘밭’은 보리나 밀, 기타 곡물을 재배하는 일반적인 농토가 아니라, ‘이 세상’ 즉 ‘세계 전체’를 가리킵니다. 즉 인간 영혼들의 밭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밭을 들여다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는 말씀 역시, 사마리아 지역이 영혼의 추수기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는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영혼을, 잘 익은 곡식처럼 시급하게 추수해야 할 영혼으로 보신 것입니다. 매일 매순간 성도인 우리와 교회가 관심을 집중해야 할 대상도 바로 이들, 곧 추수기가 되어 전도자들을 기다리는 아직 구원 얻지 못한 영혼들이어야 할 것입니다. 

36절에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거두는 자란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거두는 자는 뿌리는 자와 필연적으로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뿌린 것이 없으면 거둘 것도 없게 되듯이, 전도의 결과 또한 뿌려진 것에 기초합니다. 누군가가 뿌렸기 때문에 제자들은 추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불변하는 법칙 가운데 하나가 ‘보상의 원리’인데 그분은 무엇이든지 심은 것을 거두게 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에 언급되는 ‘추수하는 자’가 거두게 되는 것은, 자기가 심은 것이 아니라 ‘뿌리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으신 것입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할 때 특히 유념할 것은, 우리는 주님께서 심으신 것을 단지 거두어들이는 것뿐이므로 스스로 자랑하거나 높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척박한 토지를 갈고 좋은 씨앗을 뿌려서 잘 자라게 하기가 어려운 일이지, 충분히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것은 쉽습니다. 따라서 얼마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든지 이것을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결과라고 자만하는 것은 금물인 것입니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을 받았다는 말씀은, 거두는 자들인 제자들이 이미 삯 즉 보상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제들이 받은 삯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영혼의 구원’으로 볼 수 있으며, 나아가 영혼 구원을 확신함에서 오는 영적 기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성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구원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하나님에게서 받았으며, 이것은 이 세상의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는 값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에 직면하게 되는데, 구원을 얻은 성도는 그가 누구든지 영혼들을 거두어들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고용된 주님의 일꾼들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자신이 구원 얻은 주님의 백성임을 확신한다면 ‘거두는 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기억하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37절에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고 했습니다. 심은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심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이 말이 유대인들에게는 낯설지가 않은 말입니다. 그들의 선조가 약속의 땅에 들어와서 거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건축하지 않은 성읍을 얻게 되었고, 자기들이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제제들이나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기껏해야 예수님께서 심으시고 희어져 추수하게 된 것을 거두어들이는 자들임을 알아서, 결코 스스로 자랑하지 말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38절에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노력하지 아니한 사람들’이란 제자들과 우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노력한 자’란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과 세례 요한까지 포함하여 복음전파를 위해 준비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불변하는 보상 원리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심은 그것을 거두게 되어 있는데, 생명에 이르는 열매를 거두도록 보냄 받은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이 거둘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이미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모든 작업을 해두셨으므로, 그들은 거두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예수님을 통해서 성도들이 누리게 되는 특권은 실로 대단합니다. 우리는 마치 올림픽 성화의 마지막 주자와도 같이,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으면서 이 영광스런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일에 다소의 어려움이 따른다 하여 불평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에게는 거두는 사역 즉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하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서 제자들의 역할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 거두는 일입니다. 그들이 세상에 나가서 힘써 해야 할 일은 이미 준비된 많은 영혼들을 거두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명은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단번에 회심한 이들이 자그마치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오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회심하기도 하였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한 일은 심고 가꾼 것이 아니라 거두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영혼을 추수할 준비를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 해 두셨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구약의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포함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신 목적은 이와 같이 거두게 하시는 것임을 명심하고, 성도들도 ‘거두는 자’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추수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애쓰고 헌신했는데, 그 열매를 거둘 책임을 부여받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을 소홀히 함으로 영혼들을 잃게 된다면 그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추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기입니다. 추수에는 적기가 있고, 그래서 추수에는 시급성이 있습니다. 추수는 일 년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추수 때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추수 때가 되면 서둘러서 추수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들을 보면, 그 농작지가 얼마나 광활한지 모릅니다. 그 광활한 농작지에서 익은 곡식을 거두어들일 때, 한꺼번에 거두어들이지 못하고 때를 놓치면, 그 곡식은 영원히 썩어 버리고 맙니다. 

저의 농사 경험입니다. 아버지가 공무원으로서 농사일을 잘 못하는시는데다, 우리 형제들은 어리고 해서, 어느 해 늦게 벤 보리가 장마에 다 썩어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추수에는 적기가 있고, 반드시 제 때에 거두어 들여야 하는 시급성이 있습니다. 인간 영혼의 추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 세대에 살고 있는 사람을 우리가 건지지 못하면, 그들은 영원히 잃어버린 영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책임져야만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이 세상에 출생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영어로 출생을 Birth라고 합니다. 그리고 인생은 죽음으로 삶을 이 땅에서 마무리하게 됩니다. 죽음을 영어로는 Death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출생과 죽음사이에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 질문을 이렇게 바꾸어 보겠습니다. 영어 알파벳 B와 D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 대답은 쉽습니다. C입니다. 그러면 B가 Birth 출생을 의미하고 D가 Death 곧 죽음을 의미한다면 C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시 말하면 출생과 죽음사이에는 무엇이 기다라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 대답을 영어권에서는 선택 곧 Choice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끊임없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인생은 곧 선택이라는 말입니다. 선택이 곧 삶을 만드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직업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결혼보다도 직업보다도 더 중요한 선택이 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앙의 선택입니다. 신앙의 선택은 이 땅에서의 삶의 모습은 물론,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우리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거기서 신앙의 선택은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는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계속해서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선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전도입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들이라 해서 다 전도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하지만, 어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아니 전도하려는 노력도 안하고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 교회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에서 지난 2005년 <한국 교회 미래 리포트>라는 프로젝트로 한미준과 한국 갤럽이 공동으로 한국 교회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실태를 조사한 일이 있습니다. 

그 조사에 의하면 “나는 지난 1년간 누군가를 전도하여 교회에 출석하게 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설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개신교인이 26.4%였고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한 교인들이 무려 73.6%에 달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가운데 전도하는 이들은 4사람 중 1사람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4분의 3의 교인들은 소위 전도의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보고서가 한국 교회의 실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면, 금번 우리 교회의 영혼 추수 주일에도 출석 성도 중 전도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리라 기대되는 성도들은 4분의 1정도라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전도 안하는 성도의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전도자의 삶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여러 해 전에 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지존파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전도를 받아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사형을 당하기 전에 남긴 편지가 있는데 그 편지가 참 감동적입니다. “이 세상은 참 아름답습니다. 저는 이 세상이 이제껏 잡스럽고 더럽고 악한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진정 세상은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저는 회심하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그것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늦게라도 깨달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입니다만, 봉사할 시간이 없습니다. 세상은 아름답다는 이 귀중한 간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서 많은 젊은이들이 바른길로 가도록 해야겠는데 시간이 없습니다. 봉사할 시간을 얻지 못한 것 거기에 유감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사형당하기 전에 이렇게 글을 남겼습니다. 봉사할 시간, 전도할 시간, 선을 베풀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늘 물질이 있고, 늘 건강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어쩌면 여러분의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뭐가 제일 부끄럽겠습니까?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한 것, 한 번도 내 입술로 전도하지 못한 것, 침묵 지키고 살아간 것, 그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입을 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십시오. 기간이 많지 않습니다. 기회가 늘 있는 게 아닙니다. 언제까지 침묵하시겠습니까?

1904년 영국 왕 에드워드 7세가 구세군의 지도자인 윌리엄 부스를 버킹엄 궁으로 초대했습니다.30년간이나 박해받았던 윌리엄 부스는 왕으로부터 칭송을 들었습니다. “부스 장군, 당신은 정말 훌륭한 일을 했소. 위대하오. 수 십 년의 박해와 고난을 극복한 장군께 경의를 표하오.” 왕은 부스에게 방명록을 쓰게 했습니다. 그러자 75세 된 노인은 펜을 들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폐하, 어떤 이의 야망은 예술, 어떤 이의 야망은 명성, 어떤 이의 야망은 돈, 저의 야망은 인간의 영혼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야망은 무엇입니까?

마르틴 루터의 설교 한 토막입니다. 사탄이 부하들에게 인간을 파멸시킨 성공사례를 발표토록 했습니다. 한 부하는 “나는 야수를 풀어 기독교인 수백 명을 죽였다.”고 했고, 두 번째 부하는 “태풍을 일으켜 신자들을 몰살시켰다.”고 했습니다. 사탄은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았는데....” 라며 화를 냈습니다. 세 번째 부하만이 칭찬받았습니다. “나는 10년 동안 한 기독교인을 영혼문제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지금 완전히 우리 편이 됐다.” 영혼에 대한 무관심은 자신을 파멸시키고 사탄을 기쁘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영혼을 구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이면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독생자까지 내어 주셨겠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추수하기 위해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시되 거저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삯을 먼저 주셨습니다. 언제 우리가 삯을 받았냐고요? 우리가 얻은 구원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삯입니다. 천국 기업, 영생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삯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영혼 구원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결코 이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삯을 받았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업무상 배임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책망과 진노를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 받고 삯도 이미 받은 자들임을 깨달아서 영혼 추수를 서두르시기 바라고, 그리하여 영혼 추수 주일에 한 영혼이라도 꼭 추수하여 거두어들이는 충성된 주님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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