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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세의 3가지 표적 (출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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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3가지 표적'. com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출4;1-9절 말씀으로 ‘모세의 3가지 표적’ 이러한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모세의 이 3가지 표적은 출애굽을 증명하는 표적입니다. 그리고 출애굽은 그때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이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출애굽의 신호를 깨닫게 되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성경본문 말씀이 기록된 출애굽기는 말 그대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노예취급 받으며 살다가 430년 만에 애급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40년도 아니고 400이 넘는 오랜 세월을 어딘가에 강제로 속해 있다가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이 역사적인 출애굽에서 지도자로, 책임자로, 사명자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모세는 한 가지 요구를 여호와께 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모세는 표적(標的)을 요구합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1절)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않을 것이다.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서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할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되겠습니까? 

이러한 모세의 고민이자 요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항상 그렇습니다. 혼자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Move with Mover' 움직이는 사람과 함께 움직이라.  큰일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는 것입니다.  작은 일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일이 커지면 내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내 뜻과 뜻이 같은 사람, 코드가 통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사(人事)가 만사(萬事)’ 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에 있을 때 대대장실에 걸려있던 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보필지도(輔弼之道)’  ‘실무자(實務者)는 그 생각하는 바가 그들의 장(長)의 생각하는바 이어야 하며, 또 그들의 이해(利害)가 그들의 장(長)의 이해(利害)와 일치(一致) 할 때에만 그가 몸담고 있는 조직체에 대해 정직(正直)한 보좌(補佐)가 되는 것이다.’ 그때는 이 말이  굉장히 이기적인 말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군대이니까 통하는 것이지 사회 나가면 해당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좋은 말, 참고 할 말 같아서 전역앨범에다가 기록을 해 두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나이가 들면, 또 일을 해보면 압니다. 선이든지 악이든지 집단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고자 할 때에는 이 말이 반드시 필요한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輔弼之道가 아니면 그 집단은 반드시 깨어지고 조각이 납니다. 실제로 어떤 단체나, 국가가 외침으로 무너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외침으로 무너지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다 내부분열이 먼저입니다. 내부분열이 없이 꽁꽁 한 마음으로 뭉치면 외부의 적이 아무리 강해도 반드시 살아남습니다. 한 마음 한 뜻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금산에 있는 ‘칠백의총(七百義塚)’이 그 좋은 예 아닙니까?  불과 칠백 명입니다. 임진왜란 때 죽은 사람만 칠만 명, 칠십만 명이 아닙니다. 민간인 사망자만 100만이 넘은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왜 ‘칠백의총’이 지금까지 유명합니까?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10명이라도 도망을 갔거나, 2~3명이라도 항복을 했다면 칠백의총은 그냥 전투중의 하나로 끝날 것인데 한 명도 남김없이, 한 사람도 도망하지 아니하고 똘똘 뭉쳐서 끝까지 싸우다가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몇 명은 도망칠 수 있었고, 항복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에, 700명이 다 한마음 한 뜻으로, 죽음으로 나라를 輔弼하였습니다. 그래서 50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그 뜻을 기리는 것입니다.     

본문의 모세의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과 다를 것입니다. 자기를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지 않았다고 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어떡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뜻밖입니다.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가 기대하고 있던 바와는 너무나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아마도 모세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것 같은 아주 엄청난 어떤 역사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성경에는 없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지는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입니다. "됐다!  그것이면 됐다."  지팡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어떤 다른 것으로 표적을 주시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나에게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는 말씀입니다. 나의 손에 있는 것으로,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 표적을 행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나에게 있는 이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인생을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실패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실패하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 지팡이가 모세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소유(所有)의 의미(意味)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쓰십니다.  

우리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내게 없는 것으로 나를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매사에 불평인 여성도가 있었습니다. 불신 남편, 술 좋아하는 남편이 불만입니다. 아들 하나 있는 것이 너무 속을 썩입니다. 하나님에게 기도를 하는데 원망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왜 이러세요! 내가 무슨 잘못을 했어요?’ 

그런데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해주셨는데... 너무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고맙고, 아들도 너무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성령께서 ‘감사하는 마음’ 을 그 여성도의 마음에 부어주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소유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해주신 것’ 이지요.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런 체험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정말 사랑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제 3가지 기적의 의미를 하나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3가지의 기적이 그냥 기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표징입니다. 표적입니다.  일반 자연 법칙을 초월해서 일어나는 일을 기적이라고 한다면, 기적이 메시지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표징, 표적이라고 합니다. 

3가지 기적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 신기하다. 야, 놀랍다. 한 번 더 해봐라’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과연 모세에게 나타나셨구나. 하나님께서 과연 출애굽을 하라고 하시는구나’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 하나님의 음성을 여기서 보는 것입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1절)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않을 것이다. 자기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너에게서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이 3가지 표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어떤 기적을 보여줘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나아가 애굽의 바로까지 ‘이것은 하나님의 메시지구나. 하나님께서 출애굽하라고 하신 것이 맞구나’ 하고 납득을 하겠습니까? 이 3가지 표징은 모세 혼자의 확신을 모든 사람의 확신으로 바꾸는 표징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3가지 표징을 깊이 묵상하여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에게도 제2, 제3의 출애굽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출애급,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출애굽이 아니라 나의 출애굽, 나를 억누르고, 나를 노예로 만드는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한 나의 출애굽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분노입니까? 욕망입니까? 패배감입니까?  그렇다면 이 표징은 오늘날 나에게 보여주시는 표징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출애굽이 있어야 합니까? 없어도 됩니까?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모세의 3가지 표징을 통해 나의 출애굽의 메시지를 받으시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5절)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믿게 하려고 이 표징을 주십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또 그것을 다시 잡으라고 해서 잡으니까 도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둘째로, "네 손을 품에 넣어라", 또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손이 나병이 들려서 눈같이 희게 되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온전해 집니다.  셋째로,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물이 땅에서 피가 되는 것입니다. 

일단 이 3가지 표적의 공통점은 ‘변화(變化)’입니다. 지팡이가 뱀으로, 건강한 손이 나병 걸린 손으로, 물이 피로 변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변하는 기적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기적입니다.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바꾸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이렇게 되면 좋겠다가 아니라 반드시 이렇게 될 것이다’ 하시는 변화에 대한 하나님의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출애굽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변화는 점점 심해집니다.  처음에는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손이 나병이 들리고, 물이 피로 변합니다.  성도여러분, 당시의 지팡이는 지금의 지팡이와는 용도가 많이 다릅니다. 모세가 애굽의 바로 앞에 섰을 때 그 자리에 애굽의 술객들도 같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당연히 지팡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아마 모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만났을 때에도 장로들도 다 지팡이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팡이는 양을 치는 데 꼭 필요한 필수품입니다. 지금의 자동차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차가 없이 어디 갈수가 없는 것처럼 당시 지팡이는 생활의 필수품입니다. 그리고 곰이나 이리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무기도 됩니다. 심지어 존귀와 권위의 상징입니다. 

시23편 4절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예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키신다고 합니다.  
(에5;2)“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금홀, 금규가 왕의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이 지팡이가 뱀이 되어버립니다. 뱀은 독(毒)입니다. 나에게 꼭 필요한 것, 매우 유익한 것이 나에게 독이 되는 것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여러분의 집에 금반지, 보석이 있는데 그것을 바닥에 툭 던지니 눈앞에서 독사로 변해버립니다.  한 주에 70,000원하는 기아자동차 주식을 바닥에 던지니 눈앞에서 집을 압류 하겠다는 빨간 딱지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일이 눈앞에서 일어난다면 마음이 어떨 까요? 가슴이 철렁하지 않겠습니까? 생활의 필수품, 없어서는 안 되는 것, 내가 의지하던 것이 나를 무는 독을 가진 뱀으로 변한 것입니다.
 
두 번 째는 더 심합니다. 손이 나병 걸려 눈처럼 희게 되어 버립니다.  400년이 넘는 노예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몸뚱어리 하나입니다. 건강이 없으면 노예생활도 못하고, 밥도 못 먹고 가족들도 돌보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노예는 몸이 재산입니다. 그런데 손이 나병에 걸려버립니다. 나병은 저주(詛呪)입니다. 먹고 사는 유일한 방법이 몸인데 그 몸이 저주받은 몸이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아예 절망입니다. 지팡이가 없어도 일을 할 수는 있습니다. 손이 나병 걸려도 남이 먹여주는 것으로 살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피가 되면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피는 심판(審判)입니다. 첫 번 째와 두 번째는 ‘회복(回復)’이 있습니다. 뱀의 꼬리를 잡으니 다시 지팡이가 되고, 나병 걸린 손을 다시 품에 넣으니 원래의 손으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하지만 피로 변한 물은 다시 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심판은 돌이켜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회복이 없는 심판이 눈앞에 다가온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하는 것은 애급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몸으로 봉사하는 곳이 애급입니다.  애급의 물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독을 품은 뱀이 되고 저주받은 나병이 됩니다. 그리고 그 애급의 물이 피가 됩니다.  이것이 출애굽을 보여주는 3가지 표징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삶에도 이런 표징이 있었습니까?  성도여러분, 은혜를 받으면 세상 것이, 나를 기쁘게 하고, 내가 의지하던 것이 사실은 나에게 독이 되고, 저주가 되고, 심판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이 깨달아 질 때... 여러분의 출애굽이 다가온 것입니다. 애급에서, 세상에서 벗어날 시간이 된 것입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겠습니다. 모세가 뱀을 보고 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하니까 무섭지만 그 꼬리를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뱀은 머리를 잡아야 하는 것이지 꼬리를 잡으면 물립니다. 그러나 꼬리를 잡으라고 하실 때에는 잡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잡으면 나를 돕는 지팡이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라도 잡으라고 하실 때에 그 꼬리를 잡으면 은인이 되며,  나를 이롭게 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역경이라고 하더라도 잡으라고 할 때에 잡으면 그 역경도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머리가 아닌 꼬리를 잡으라는 것은 머리를 잡아서 뱀을 정복할 분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입니다. 뱀의 머리를 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실 일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꼬리만 잡으면 된다. 머리를 치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다.’ 하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설득해서 애급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핵심적인 일은 모두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도 분명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감화시켜서 세상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치고 알게 할뿐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실 문제입니다.  우리는 단지 꼬리를 잡을 뿐입니다. 머리는 하나님께서 치실 것입니다.
 
‘나병 발한 손’ 의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지금까지 손으로 일상생활은 물론 양떼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출애굽이라는 전무후무한 일을 손으로 해야 합니다.  지금 모세는 하나님의 손(手)입니다.  그런데 그 손이 나병에 걸리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그 모세의 손이... 나병이 들기도 하고 온전해 지기도 합니다. 이 표징은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는 표징입니다. 손이 아니라 주인이 일을 하신다는 표징입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무능한 존재가 인간입니다.
  
또 나병은 더러움의 표시이고, 저주받은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모세의 손이 나병이 걸렸다는 것은 모세와 이스라엘이 나병환자와 같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애급사람과 뭔가 달라서 출애굽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이 땅의 사람과 뭔가 달라서가 아닙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동일하게, 저주 아래 있고 멸망 받아야 할 인간입니다. 그런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용서함 받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 표징은 하나님이 문둥병자로 보시는 세상에서 우리만이 깨끗하게 된다.  우리만을 깨끗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마지막 표징입니다.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9절). 물이 피가 되었다는 것은 심판입니다. 애급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표징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 세상은 심판 받을 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굽을 심판 받을 땅으로 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반드시 애굽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 세상 자체를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면 노아 홍수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받을 땅으로 보신다면 우리 또한 심판받을 땅으로 보고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애급에 그대로 있으면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것, 손이 나병 들리는 것, 물이 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반드시 출애굽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모세의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이 많습니다만 요점만을 추스르면 이렇습니다.  “던지라, 잡으라, 넣으라, 내어라, 취하라, 부으라”  아주 간단한 문장들입니다. 또 의논이나 토론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던지라고 하시면 나는 던지는 것입니다.  왜 던져야 하느냐고 물을 것이 없습니다.  잡으라면 잡고,   부으라면 붓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내가 가진 것을 통하여 역사하실 때에 내 순종만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선 우리는  "하나님이여, 종에게 말씀하옵소서.  내가 듣겠나이다." 해야 합니다. 그것 밖에 없습니다. 출애굽은 모세의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순종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순종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단지 순종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게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십니다.  그것을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다 하십니다.  주님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 시몬을 불러서 사람 낚는 어부 베드로로 만드셨습니다.  핍박자인 청년 사울을 불러서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던지라고 할 때에 던지십시오.  잡으라고 할 때에 잡으십시오.  가라고 할 때 가십시오.  그리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나를 통해서 새로운 출애굽이 또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이러한 출애굽의 역사가 많이 간증으로 일어나기를 바라고, 저와 여러분들이 그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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