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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선택 (롬 9:6-13)

첨부 1


하나님의 선택

(롬9:6-13)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 B.C.975년경 다윗 왕 통치 말엽에 나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국강병을 이룩하여 그야말로 태평성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 다윗 왕은 자만심에 빠져 더욱 부국강병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 세금 징수와 징병자료를 파악하고자 인구조사를 실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충신 요압이 왕에게 이렇게 만류합니다. ‘왕이 섬기시는 하나님께 지금보다 백배나 더 부국강병을 이룩하기를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그렇게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왕께서, 어찌하여 감히 이런 일을 하시고자 하십니까?’ 여기 ‘어찌하여 감히 이런 일을 하시고자 하십니까?’라는 말은 ‘어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군사력을 의지하려고 하십니까?’라는 뜻입니다. 당시 군사력은 ‘말’(馬)의 숫자로 평가되었습니다. 말(馬)을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곧 강한 군사력을 뜻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된 자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신명기17:16입니다.

(신17:16)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당시 애굽은 전투에 사용될 우량마(優良馬)의 원산지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그와 같은 말을 수입하기 위해 자연히 애굽과 잦은 교역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다보면 자연히 애굽의 각종 타락한 문화와 우상 숭배 풍속도 함께 스며들게 될 것이 틀림없고, 그렇게 하다보면 이방 국가들처럼 군사력을 더욱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레18:3) 

따라서 하나님은 이에 대한 사전 예방책으로 미리 말을 많이 두지 못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점령국으로부터 수많은 말을 전리품으로 얻게 되었을지라도 그 말들의 발 힘줄을 끊어버리도록 했습니다. 군사력 증강을 막고자 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소년시절에 골리앗을 대했을 때, 골리앗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무엘상17:46-49입니다.

(삼상17:46-49)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그리고 나아가 돌을 취해 물매로 던지자 블레셋 장수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박혀 쓸어뜨렸습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굳게 믿고, 그 믿음으로 왕이 되어서도 승승장구하여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항상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지없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여 말 발의 힘줄을 모두 끊어버렸습니다. 사무엘 하8:4-6입니다. 

(삼하8:4-6) 그 마병 일천 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다메섹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의 아람 사람 이만 이천을 죽이고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이와 같이 믿음으로 나라를 통치하여 부국강병을 이룩한 다윗 왕이 교만에 빠져 인구조사를 명령한 것입니다. 신하의 충심어린 권고도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그렇게 다윗 왕이 인구조사를 실시한 후, 다윗은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님께 자백합니다. ‘내가 이러한 일을 해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이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으로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선지자 갓이 왕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합니다. 사무엘하24:12-13입니다.

(삼하24:12-13) 너는 다윗에게 가서,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에게 세 가지를 내놓겠으니, 너는 그 가운데서 하나를 택하여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그대로 처리하겠다. 왕의 나라에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왕께서 왕의 목숨을 노리고 쫓아다니는 원수들을 피하여 석 달 동안 도망을 다니시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왕의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제 왕께서는, 저를 왕께 보내신 분에게, 제가 무엇이라고 보고하면 좋을지, 잘 생각하여 보시고, 결정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라에 7년 동안 흉년이 드는 징계’, ‘왕의 원수들을 피해 석달 동안 도망다니는 징계’, 그리고 ‘나라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도는 징계’ 이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이 ‘괴롭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자비가 많으신 분이니, 차라리 우리가 주님의 손에 벌을 받겠습니다. 사람의 손에 벌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라며 ‘사흘 동안 전염병이 퍼지는’ 징계를 선택합니다. 과거 사울 왕 통치시절 7년동안 도망다니던 때를 돌아보니 너무나 끔찍했던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선택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날 아침부터 이스라엘 전역(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에 걸쳐 전염병을 내리셨습니다. 이로 인해 백성 가운데서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칠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백성을 쳐죽이는 천사를 보고,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바로 내가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바로 내가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백성은 양 떼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이러한 다윗의 참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예배를 지시하셨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예배를 드리자, 다윗이 선택한 재앙을 거두시었습니다.(삼하25:1-25) 

만약에 다윗이 전염병을 택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석 달 동안 도망다니는 것을 택했더라면 자신은 비록 피곤할지라도 무죄한 백성들이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 앞에 ‘선택’은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가축 목자와 조카 롯의 가축 목자가 서로 다투게 되자 롯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13:8-9)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이 점점 소유가 많아지자 조카 롯과 함께 동거하는데 친족끼리 재산 때문에 서로 다투기보다는 서로 헤어지자며 롯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롯은 물이 넉넉하고 마치 에덴 동산과 같으며 애굽 땅과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창세기13:10입니다.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이 볼 때 소돔과 고모라가 ‘애굽 땅과 같았더라.’는 말은 롯이 본래 애굽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삼촌 아브라함이 선택의 우선권을 줄 때 롯은 마음에 두었던 ‘애굽 땅과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롯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유황과 불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은혜로 롯은 겨우 자신과 두 딸들만 구원받았습니다.

(창 19: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참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선택’은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항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개명(改名)하신 이름입니다.(창32:23-28, 호12:3-4) 야곱이 얍복강 나루에서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간구했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겠다는 강한 의지로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나서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개명되었습니다. 창세기32:26-29입니다. 

(창32:26-29)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이 야곱을 하나님께서 일찍이 그 모친의 태중에서부터 선택하셨습니다. 야곱의 모친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자 남편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으시고 리브가가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이 쌍둥이가 태중에서부터 서로 싸우자 리브가가 “내가 어찌할꼬?”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25:23입니다.

(창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큰 자’로 태어난 쌍둥이 형은 ‘에서’였고, ‘어린 자’로 태어난 동생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족속’은 ‘야곱’의 후손을 말하고 ‘저 족속’은 ‘에서’의 후손을 말하는데 ‘야곱’의 후손들이 ‘에서’의 후손들보다 더 강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비록 형일지라도 동생 ‘야곱’을 섬기게 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이 에서의 후손들보다 강합니다.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야곱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 즉 이스라엘을 사랑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고 물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1:2-3입니다. 

(말1:2-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리브라가의 태중에서부터 ‘야곱’을 선택하시고 야곱을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야곱이 이삭의 쌍둥이 아들들 중 하나 동생입니다. 그러면 이삭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하신 아브라함의 독생자입니다. 이삭에게도 형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인 하갈이 아브라함과 동침하여 낳은 이스마엘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12:1-4)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는 말씀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큰 민족을 이루어 복의 근원이 되도록 아들을 낳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100세가 다 되도록 자식 소식이 없자 사라가 자기 몸종 하갈을 아브라함과 동침하여 자식을 낳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낳은 아들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는 비록 여종의 몸을 통해 태어난 자식이지만 엄연히 아브라함의 장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100세가 다 되어 자식을 낳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이었습니다. 바로 ‘이삭’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과 ‘이삭’ 두 아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스마엘’을 ‘육신의 자녀’로, 그리고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구분했습니다. 실제 ‘이스마엘’은 인간 사라의 생각과 판단으로, 사라의 뜻에 따라 몸종 하갈에게서 낳은, 그야말로 ‘육신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태어난 ‘약속의 자녀’입니다. 또한 ‘이스마엘’은 그 어미가 종이기 때문에 ‘종의 자식’이라 하고, ‘이삭’은 ‘자유하는 여자 사라가 낳은 아들입니다. 갈라디아서4:22-31을 보겠습니다.

(갈4:22-31)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 약속의 자손은 이삭이었고 그 이삭의 자손들만이 유업, 곧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상속자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선택”의 계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삭, 그리고 이삭에서 야곱, 즉 이스라엘로 계승됩니다. 


3.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씨”는 자연적, 혹은 육체적인 후손을 말하고, “자녀”는 약속에 의해 난 참된 이스라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말합니다. 이스마엘과 이삭 둘 다 “아브라함의 씨”였지만 진정한 ‘자녀’는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은 육신적인 혈연에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를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에서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면서 그 계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29에서 “(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씀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는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아무리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진정한 “이스라엘”, 즉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3:8입니다.

(눅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에 대한 증거를 보겠습니다. 마태복음1장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보면 혈통적으로 유대인, 즉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라합’과 ‘룻’ 등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 라합과 룻 등, 그리고 이 시대에 예수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성도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룻은 모압, 이방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 시어머니 나오미가 모압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면서 룻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좋은데 시집가서 잘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렇게 말합니다. 룻기1:10-17입니다.

(룻1:10-17)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먼저 자기 친정으로 돌아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고 했지만, 룻은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면서 시어머니의 나라에 돌아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자신도 믿고 살겠노라며 고향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룻은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나오미의 친척 보아스를 만나 오벳을 낳았는데 바로 다윗 왕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선택한 룻은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약속 밖의 사람,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선택되어 룻은 다윗의 계보에 드는 진정한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이삭은 영(靈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성령으로써 잉태되었다는 뜻이 아니고, 성령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 기적을 이루어 그를 낳게 했다는 뜻입니다.

(갈4:21-31). 이스마엘은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방법과 욕망으로 낳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인간적인 입장에서 볼 때 아들을 낳는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때에 낳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아들이었습니다.(창18:10-44). 진정한 후계권이 주어진 것은 약속의 아들에게서였습니다. 바로 여기에 모든 아브라함의 육적인 후손이 다 이스라엘 자손, 즉 하나님의 선택된 자로 인정될 수 없다는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약속의 자녀인 이삭과 같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과 성령으로 하나님의 선택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1:11-13입니다.

(요1:11-13)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비록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자손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지아니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혈통적으로나 육정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이방인일지라도 ‘그 이름을 믿는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처럼 하나님의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4.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로마서4:16을 보겠습니다. 

(롬 4:16) 그러므로 그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 약속이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들, 곧 율법을 지키는 사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 되기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된 것은 그가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나, 그럴만한 자격요건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전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12:1-3입니다.

(창12: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다시 말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되었고, 믿음의 조상답게 믿음을 가지게 되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 되기 위해, 믿는 사람 모두에게 아브라함의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내가 먼저 믿어서 구원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믿도록 내게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 은혜라고 합니다. 에베소서2:8입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내가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예수 믿음으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내 뜻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 먼저 있었습니다. 내 행위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행위가 먼저 주도적으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먼저 주어졌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갖추어서 아들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된 후에 하나님의 아들답게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 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의 성장은 성령의 열매들로써 나타납니다(갈5:16-2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부르시고 선택하시는 사랑은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은혜로우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선하십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사랑의 예수를 예비하셨습니다(창1:15). 내 존재 이전에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신 십자가의 예수를 통해서 나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 선택의 사랑을 느끼고 그 오묘한 하나님의 경륜과 비밀에 깊은 감사와 찬미의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성도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선택하신 목적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다시 말해 아무런 값도 치루지 아니하고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게 하시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엡1:3-14, 벧전2:9)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선택되신 성도 여러분, 이제 하나님의 자녀들로 성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에 이르도록 항상 성령 충만하시고 성령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로마서11:29에,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믿음의 은사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받은 성도 여러분이 결코 후회함이 없는 복된 삶이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성도 여러분, 이제 그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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