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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요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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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삶을 살기 (요 9:1-7)

동영상 -『조혜련의 스타 특강』, - 어떻게 보셨습니까?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완전 연소를 꿈꾼다는 말이 인상 깊지 않습니까? 자신의 마지막을 마치 미리 보듯이 말하는데,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런 미래를 내다보면 산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여러분, 비전이란 무엇입니까? 비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감추어진 것을 보는 것, 그것이 바로 비전이고, 그것을 보는 사람이 바로 비전의 사람입니다. 작은 씨앗에서 수 만 개의 열매를 볼 수 있는 것이 비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이 없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비전이 없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구대로, 바람부는 대로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신앙이란 시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지평선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지평선 너머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불신앙은 세상만을 보게 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가 주는 사고방식만으로 보는 사람이 불행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방법으로만 사는 인생, 이 시대 정신에만 붙잡혀 사는 인생이 불행한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하늘을 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늘을 나는 사람은 사건을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고 태도가 다릅니다. 자세가 다릅니다. 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하늘을 나는 사람이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여러분,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인 것입니다. 걸작품은 걸레가 아니라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작품은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다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누가 만드셨습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최고의 예술가이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작품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 작품들이 이렇게 모여있으니 여기는 하나님의 작품 전시장입니다. 

한 번 작품 감상 해 볼까요? 옆 사람을 보면서... 그리고 옆 사람에게 작품을 보여주실래요? 멋진 웃음으로 ... “나나 당신이나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주변 사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변화되고, 세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가 제대로 예수 믿어서 가정이 더 행복해지고, 내 주변이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걸작품답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멋있는 생을 살다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후회 없는 삶을 살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후회 없는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다 원합니다. 엉망진창인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후회 없는 인생을 살도록 성경이 주시는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건강한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내 자신을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세상과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느냐 아니냐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고, 형편없는 사람이고,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결코 건강한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너무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존재라고 하는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건강한 자아상을 갖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힘이 듭니다. 건강한 자아상을 갖지 못한 부모를 통해 어떻게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자녀가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인생, 후회 없는 인생의 1차적인 내용은 건강한 자아상에 있습니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피해의식과 비교의식이 강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리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공격적인 성향을 나타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다가 날 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2절)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이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그 사람이 날 때부터 맹인이 된 것이 자신의 죄가 많아서 저렇게 되었습니까? 아니면 그 부모가 죄가 많아서 저렇게 되었습니까? 이 질문을 하는 제자들의 시각이 무엇입니까?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생각으로는 그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은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눈을 뜨고 보니까 의인이고, 맹인인 너는 죄인이다’라는 것입니다. 정죄하고 판단하고 공격하며 고통받는 사람을 핍박하는 태도입니다. 

여러분, 육신의 장애보다 더 큰 장애는 마음의 장애, 성격, 정신의 장애입니다. 나는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는 것입니다. - 왜 나와 다른 사람을 수용하지 못합니까? 자기 자신이 못마땅해서, 자기 자아에 대해 불평과 열등감과 수치심이 많아서입니다. 그래서 공격합니다. 잘 사는 사람은 불의한 사람이라고 공격하고, 못사는 사람은 못나고 게을러서 그렇다고 공격합니다.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공격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은 부자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자아가 건강하지 않으니까 비교의식에 빠져서 열등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사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비교하면서 열등감이 생기고, 자책감이 생기고, 공격성이 생기니까 문제지, 자아가 건강한 사람은 비교를 통해서 상대방의 장점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로 삼습니다. 이것이 바로 건강한 자아상을 가진 사람의 삶의 방식입니다. 

여러분, 건강하십니까? 스스로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건강한가?’,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을 수용하고 용납하고, 그리고 격려하며 소망을 주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의 질문은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맹인이 되었습니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볼 때 그 원인은 과거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그 맹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 된 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면, 태어나기 전에 엄마의 뱃속에 있었는데, 엄마 뱃속에서 죄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엄마 뱃속에서 손가락으로 엄마 아프라고 막 찌르고, 일부러 발길질하고, 못된 짓하고... 그래서 평생 앞 못 보는 맹인으로 태어났다? 어이가 없습니다. 아니면 지금 고통받는 것이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죄를 지어서, 약을 잘못 먹어서... 또는 아버지가 못된 짓을 해서 그랬다?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부모에 대해 원망감을 가질 일입니까?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3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 사람의 죄도, 그 부모의 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은 현재의 불행을 과거의 죄나 잘못된 선택 때문이라고 생각함. 그러나 예수님은 현제의 불행을 미래의 행복을 위한 거름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해석하지 않고, 과거는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한 출발선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통해 현재를 보는 것’입니다. 고통의 문제를 과거의 죄로, 과거의 원인으로 풀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정죄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냄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통의 원인이 과거지향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미래지향적인 것입니다. 

모세는 궁중에서 40년간 왕자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모든 문물과 학문을 배우고, 그리고 많은 혜택을 누리며 자랐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고생하게 되었습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원인은 ‘살인죄’였죠? 자신이 동족을 괴롭히는 관리에게 화가 나서 순간 쳤는데, 재수가 없으려니까 뒤로 자빠지더니 그냥 머리가 돌에 떨어져서, 죽어버렸네? 그래서 그것을 감추려고 모래사막에 그 시체를 파묻었는데 퍼지는 소문은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의 생각에 ‘그때 내가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탁 쳤더니 그만 죽어버려서... 그때 내가 철이 없어서... 재수가 없어서... ’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원인이 아닙니다. 그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한 진정한 이유는 앞으로 4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와 인도해야 하는 지도자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미래를 위한 훈련이요, 고난이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지향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형통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돈을 벌었다는 것은 내가 땀 흘리고, 고생하고, 노력해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다, 맞습니다. 형통의 원인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과거적인 해석입니다. 미래적인 해석을 하면 무엇을 위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번영을 허락하셨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 할 때 내가 축복의 통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고난이든 형통이든 그 원인을 미래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3. 성실하게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4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아직 낮이니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낮에는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밤에는 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동안에는 주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생명을 주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오늘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 아버지는 50대 중반에 병을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공무원 생활을 더 못하시고 퇴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투병생활을 하시게 되었는데, 병으로 힘들게 되시면서 예수를 잘 믿으셨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유행가 가요를 멋들어지게 부르시던 아버지가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날마다 기도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일하셨습니다. 조그만 아파트의 경비를 나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불과 몇 주 전까지 아픈 몸을 이끌고, 숨을 몰아쉬시면서 일하셨습니다. 교회 봉사도 하기 원하셨는데, 하실 수가 있어야죠? 시간 될 때 교회에 가서 교회 일부분을 청소를 하셨습니다. 외갓집의 저의 어머니 고향 교회인 대월감리교회에 십자가 종탑을 세우고 싶다고 하셔서, 그 교회의 십자가 종탑을 세우셨습니다. 제 아버지의 마지막 남기신 모습입니다. 여러분, 오늘 내가 그 무엇인가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일할 때 그 모습이 아름다운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이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 맹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7절 말씀에 보면 그 실로암의 뜻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맹인은 순종했습니다. 보냄 받은 그 곳, 실로암으로 갔습니다. 주님이 하라고 한 일을 했습니다. 거기서 눈이 뜨여 밝은 눈이 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마다 자신의 실로암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깝건, 멀건 간에 내가 보냄 받은 곳, 삶의 현장이 있습니다. ‘나의 현장이 어디인가?’, ‘나의 실로암은 어디인가?’, ‘오늘 나에게 맡겨진 일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냄 받은 곳이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면 안 갑니다.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안 갑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됩니까?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 발라주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까? 낫게 해 주려면 그냥 낫게 해 주지, 그리고 이왕 낫게 해주시려면 그냥 여기서 씻게 하지 저 멀리 떨어진 곳, 실로암까지 가라고 합니까? 내가 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보냄을 받은 곳에 가서 하라는 일을 했더니 새로운 지평이 열렸습니다. 눈이 떠졌습니다.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봅니다. 이 맹인은 그동안 어떻게 살았습니까? 8절에 보면 이 사람은 전에 ‘걸인’이었다는 것입니다. 맹인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남에게 구걸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을 섬기는 삶을 살지 못하고, 섬김 받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구걸 안 해도 됩니다. 섬김 받지 않고 오히려 남을 섬겨주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맹인이 이렇게 된 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들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인생이 변화됩니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어둠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 스스로 빛 속에서 못 삽니다. 어두움 속에서 앞 못 보는 맹인으로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나의 삶이 어두움이 아니라 빛 속에서의 삶으로 바뀝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분들이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단풍이 아름답죠? 금주와 내주 초, 내장산 단풍이 절정이래요. 이럴 때 단풍구경들 다녀오세요. 좋습니다. 단풍구경은 인생을 배우러 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단풍잎들을 보세요. 봄에 파릇하게 나와서, 한 여름 짙은 녹색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더니 가을에는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 입습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곧 단풍잎은 빛이 바래면서 낙엽이 되어 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썩어질 것입니다. 그 썩어진 나뭇잎은 나무를 곧게 자라게 하는데 거름이 될 것입니다. 나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죠? 그래서 단풍은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 생애 마지막 한 달’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계속해서 우리의 남은 인생을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서 리모델링 해 갈 때, 우리의 인생이 더욱 값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광명을 얻고,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미래지향적으로 살며, 내게 주어진 시간에서 성실한 삶을 살아서 남은 인생이 더욱 아름답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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