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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려면 (요 16: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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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을 기쁨으로 바꾸려면 (요 16:20-24)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벗어나기 어려운 것은 근심이라는 마귀다"고 말했습니다.  사단은 집요하게 우리들의 기쁨을 빼앗아 가려고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잊고 사소한 사건에 휘말려 쉽게 큰 기쁨을 잃어버리고 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큰 은혜를 깨닫고는 감사하며 기뻐하던 사람이 어느날 기쁨을 잃어버리고는 근심에 눌려 있습니다. 어떤 이는 기쁨대신에 분노에 가득차 있고, 어떤 이는 기쁨대신에 미움에 가득차 있습니다.  사단에 속아서 기쁨이라는 귀한 보배를 내어주고 쓰레기같은 미움이나 분노, 근심과 섭섭함을 보물처럼 끌어 안고 사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너무 많습니다.   
  
죄수를 고문할 때 머리위에 물통을 달아 놓고 물방울을 계속 머리에 떨어지게 하면 나중에는 물방울이 망치로 때리는 것같은 충격을 주어 사람을 미치게 한답니다. 근심이란 마치 계속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아서 마침내 인간을 미치거나 자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근심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잊고 불행한 삶을 살게 만들며 질병과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도 근심에 대해 말슴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믿음으로 근심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많은 사람들이 근심에 눌려 있습니다.  자녀문제로 근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시험을 앞두고 근심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질병으로 인해 근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사업상 닥친 위기로 인해 직장에서 맡겨진 어려운 일로 인해 근심하기도 합니다.  빚을 지거나 적자 가계부때문에 근심하기도 합니다.  
  
이런 근심을 모두 떨쳐 버리고 살 수는 없는 것일까요?  근심이라는 물방울이 우리 머리위에서 똑 똑 떨어지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마귀가 가져다 준 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십니다.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마치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날이 다가오면 근심이 커집니다.  어쩔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나면 근심이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오히려 사랑스런 아이를 보면 큰 기쁨이 충만합니다. 고생한 것, 근심한 것 다 잊어버립니다.  이처럼 근심이 도리어 기쁨으로 바뀌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어질 수 있습니까?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1.  말씀을 믿으면 근심이 기쁨으로 바뀝니다. (22)
  
요16장의 상황은 예수님께서 반복하여 제자들에게 '조금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난당하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에 대한 말씀을 듣는 제자들의 마음은 불안과 근심에 휩쌓였습니다. 제자들의 근심은 죽음에 대한 근심이요 선생님이 떠나가고 자신들만 남게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에서 오는 근심입니다. 제자들의 근심은 환란이 다가왔는데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데서 오는 두려움입니다. 
  
여러분도 같은 상황에 처하면 근심하지 않을 수 잇겠습니까?  제자들의 근심은 예수님이 체포되고 고문을 통한 심문을 당하며 십자가에 달리시는 과정속에서 점점 더 커졌습니다.  예수님이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근심이 두려움으로 바뀌고 다시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흩어졌습니다.  숨기에 바빴습니다.  도시를 떠나는 이들도 있었고 문들을 닫아 걸고 숨을 죽이고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맘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6장 말씀에는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이 일곱번에 걸쳐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길 원하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체포되어 묶인채 끌려가고 고문을 당하며 죽음에 직면한다는 것은 대단히 큰 고통이고 슬픔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이별한다는 것은 근심을 뛰어 넘어 절망을 안겨줍니다. 

이렇게 큰 근심이 밀려오고 두렵고 불안하며 좌절이 되는 상황이라도 낙심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조금있으면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다시 제자들을 만나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모습을 보면 근심에 눌려 숨도 못 쉴 정도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면 마음에 기쁨으로 가득찰 것이요 그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조금 후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조금 기다리면 다시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잠시동안 십자가의 고통이 있었으나 잠시 후면 영광스런 부활의 아침을 맞게 됩니다. 슬픔이 기쁨으로, 절망이 희망으로 눈물이 환희로 변하는 새로운 삶이 잠시후면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이요, 인생의 방식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슬픈 일이 찾아 옵니다. 두려운 일도 있고 불안한 상황도 있습니다. 질병의 고통을 만나고 이별의 슬픔을 직면합니다.  실패도 있고 쓰라린 패배도 있습니다. 배신도 당합니다. 그러나 그 슬픔과 근심속에서 자포자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면 잠시 후에는 영원한 기쁨이 찾아옵니다.  잠깐 동안의 질병의 고통, 이별의 슬픔, 실패와 배신등의 고통을 만나 당시에는 한없이 괴로우나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예수님이 다가오십니다. 영광의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죽음 앞에서 절망하는 인생을 향해 절망이 희망으로, 슬픔이 영원한 기쁨으로 변하는 것이 부활의 의미입니다.
   
요즘 근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것을 잃고 낙담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쩌면 근심하다못해 살기 싫은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할 것입니다.  요즘 자살하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습니다.  예수님이 조금 있으면 이라고 하신 말씀을 알았더라면 자살하지 않아도 될텐데 참 안타깝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됩니다.  제자들이 사흘만 기다리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일주일만 기다리면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씀을 믿지 못하고 근심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조금을 기다리지 못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조금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조금 기다리지 못하고 사단에게 항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금 기다리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잇습니다. 조금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조금 있으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찾아 오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고 기다리면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2.  기도하면 응답받아 근심이 기쁨으로 바뀝니다.(24)
  
구 소련 우주 비행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환영하는 만찬이 모스크바에서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공산당 간부들이 참석했고 그가 러시아 정교회 교인인 것을 감안하여 교회 지도자 일부가 초청되었습니다.  한창 파티가 무르익어 가는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가가린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이보게 우주에 가보니 예수쟁이들이 말하던 하나님이 계시든가? 그가 사람들의 기도를 듣고 계시던가?"  "예, 분명히 하나님이 계시고 제가 우주에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쉿, 절대로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되네. 그때는 우리 공산당도 자네도 망하게 될걸세. 나도 늘 그분이 계실거라고 생각했네."  
  
잠시 후에는 정교회 주교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조용히 묻습니다. "가가린선생, 우주에서 하나님을 만나 보았소? 그분이 과연 계시든가 말이오?"  "아니오. 그분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쉿, 절대로 그 말을 해서는 안되오. 그때는 우리 교회도 우리 성도들도 망하게 될 것이오. 나도 그분이 안계실거라고 생각했소. 그러니 우리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소."  시사하는바가 큰 유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이는 하나님을 믿고, 정작 기도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와 기도를 들으심을 믿지 못한다면 기도 응답은 요원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고 기도 응답을 약속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받지 못한 것은 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 이제부터는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라고 기쁨의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기도의 폭은 제한 받지 않는다는 말슴입니다.  영적인 것에 한해서만 기도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지 다시 말해 지금 안고 잇는 마음의 고민도, 사업의 어려움도, 질병의 문제도, 친구관계의 어려움도 다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미리 스스로 기도의 폭을 제한하여 정작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을 구하지 못하고 잇지는 않습니까?  무엇이든지 구하세요.  큰 것 뿐 아니라 작은 것도 구하세요. 쉬운 것 뿐 아니라 어려운 것도 구하세요.  고상한 것 뿐 아니라 시시한 것도 구하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아버지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구하려다가 응답받는 것에 실패합니다. 하나님, 내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잘 하지 않앗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해주세요.  백발 백중 응답받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은 하나님께 도움과 은혜를 요청할만한 자격이 없어서 기도를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격미달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를 내세우며 기도하면 응답이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나아가면 백발 백중 응답받습니다.  예수님의 얼굴보고 응답하십니다.  그렇게 기도가 상달되고 응답받으면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에 기쁨이 넘칩니다. 
  
사실 당시는 제자들이 큰 근심에 둘러 쌓일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 근심을 물리치는 방법은 기도밖에는 없습니다. 순종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네, 불순종. 맞았습니다.  그럼 염려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근심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성경엔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참 많습니다. 어떤 분은 그럽니다.  목사님, 누군들 염려하고 싶어서합니까? 그냥 염려가 되는걸 어떻게 합니까. 네 맞습니다. 아무리 염려를 하지 않으려고 해도 염려가 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아무리 근심을 떨쳐버리려해도 근심이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도 성경은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은 근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염려와 근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가?  성경을 같이 보지요.
   
"아무 것도 염려하지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라라.(빌4:6-7)"
   
말씀에 비추어 보아 염려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염려의 반대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둘 중 하나는 해야합니다. 염려를 하든지 기도를 하든지. 기도하면 염려가 사라집니다. 기도 안하면 염려가 찾아옵니다.  근심에 사로잡힐때 기도에 힘스면 근심은 도망가고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오고 기쁨이 충만하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어려운 시대입니다. 근심거리가 얼마나 많이 도사리고 잇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위험한 시대입니다.  사단이 우리를 삼키려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발을 잘못 디디면 천 길 낭떨어지로 떨어집니다.  그런 세상에 우리 자녀들을 내보내고 기도 없이 잘 키울 수 있다고 보십니까?  우리 남편들이 아내들이 기도없이 승리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상처받을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잘 성장하다가도 자칫 시험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시대를 살면서 어찌 기도없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까?  기도하지 않고 여기까지 평안하게 왔다면 기적입니다.  

여러분을 대신해서 누군가가 눈물어린 간절한 간구해준 덕분에 평안하게 나아온 것입니다.  근심을 물리치고 승리하고 평안할 수 있는 길은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로 근심을 기쁨으로 바꾸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기도할 수 잇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잇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주님앞에 무릎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잇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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