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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맛있는 말 (렘 18:19-20, 골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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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말 (렘 18:19-20, 골 4:5-6)


청소년의 욕설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73.4%가 매일 욕설을 한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은 하루에 100번 이상 욕설을 하고 비속어를 남용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런 청소년의 욕설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욕설이 청소년의 놀이문화가 되었고, 욕 애플리케이션이 인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왜 욕설을 이렇게 많이 하는가 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친근감의 표시로 하고, 습관이 되어 한다고 합니다. 청소년의 요걸은 친구나 대중매체를 통해 가장 많이 배운다고 합니다. 청소년들의 언어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매체는 온라인게임이나, 인터넷, 휴대전화, TV 등이라고 합니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 영화 속의 욕설은 정말 위험수위를 넘은 듯합니다. 
  
실제로 요즘 아이들의 말이 점점 맛과 멋이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지난여름 저의 모친께서 밖에서 댁에 들어가시는 길에 좁은 골목을 지나게 되었는데 중학교 3학년쯤 되는 학생들이 골목에서 우산을 쓰고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랍니다. 저의 모친은 좋은 말로 “얘들아, 담배 피우면 몸에 해롭다”라고 한 마디 하셨는데 어떤 아이가 “우리가 할머니 손자예요”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너희들 건강에 안 좋으니까 하는 말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듣고 다른 아이가 “아가리 닥쳐” 그러더랍니다. 그 때 모친이 놀라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둘러 골목을 빠져 나오셨답니다. 일전 신문에는 중학교 학생이 담배 피운다고 꾸중한다고 교감선생님을 폭행했다고 하네요. 요즘에는 어른도 없고, 선생님도 없고 아무에게나 막말을 하는 험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맛에 관한 말이 참 많습니다. ‘살 맛 난다’는 말도 있고, ‘일할 맛 난다’는 말도 있고, ‘감칠맛 난다’는 말도 있고, ‘공부할 맛이 난다’는 말도 있고,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모든 맛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말이 얼마나 맛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일할 맛 난다’는 말을 영어로 번역한 것을 보니 ‘I love my job’라고 합니다. 맛이 난다는 말을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할 수 있는 우리나라만의 맛이 있습니다. 우리 일상에 말에 맛이 있어야 합니다. 말맛이 없으면 세상이 삭막해 질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비속어를 많이 사용하고 욕설이 많다고 욕할 게 아닙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TV 드라마의 대사를 보세요. 형편없는 대사 장면들이 많습니다. 눈감고 드라마의 대화를 들으면 싸우는 것 같고, 사람을 무시하는 것 같고, 말이 너무 강하고 참 매력이 없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정중한 말, 공손한 말, 예의 바른 말, 친절한 말, 사려 깊은 말, 우아한 말, 그리고 점잖은 말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듣기 싫어하는 말은 무례한 말, 버릇없는 말, 거친 말, 상스러운 말, 불결한 말, 성난 말, 비열한 말이라고 합니다. 서로가 듣기 좋고 마음에 힘이 되고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언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혀는 우리의 영적 온도를 조절하는 온도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혀는 우리의 영적 바로메타입니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영적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26에는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고 합니다. 경건한 사람은 맛있는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입을 단속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진실한 말은 사람을 움직입니다. 수다스러움은 손버릇 나쁜 것보다 더 곤란할 때가 많습니다. 
  
달리기 하면서 선수에게 “결승점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는 식의 심리전과 같은 말을 트레시 토크(trash talk)라고 합니다. 실제로 이런 말을 들으면 힘을 내서 달릴 수가 있다고 합니다. 어릴 때 부모가 자녀에게 “너는 유치장에나 갈꺼다”라고 말을 하면 이런 아이들이 진짜 훗날에 유치장에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람은 말대로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는 말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맛있는 말, 말에 소금으로 맛을 내는 말을 하므로 맛있는 가정, 맛있는 교회, 맛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우리가 됩시다. 

  
첫째, 우리의 말은 항상 맛을 내야 합니다. 

골로새서 4:6 상반절에는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말에 소금을 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신자들이 불신자를 대할 때에 말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우선 교회 안에서 신자들끼리 아름다운 말을 해야 한다고 권합니다. 
  
“소금으로 맛을 냄”이 무슨 뜻일까요? 부패하고 더러운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의미입니다. 소금이란 방부제를 의미하는데 더럽고 옳지 않은 것들을 다 제거하라는 의미입니다. “소금을 치라”는 말은 성경에 익숙한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제물인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번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합니다. 향을 만들 때 소금을 쳐 성결케 하라고 합니다. 엘리사가 여리고에 갔을 때 여리고의 제자들이 여리고는 모든 것이 다 좋은데 물이 좋지 못하여 열매가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와서 물 근원에 뿌리라”고 합니다. 여리고의 샘에 소금을 뿌려 깨끗하고 열매를 맺는 물이 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맛을 내는 소금이란 청결하게 될 때에 절로 맛이 난다는 의미입니다. 
  
에베소서 4:29에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말은 항상 깨끗해야 하고, 덕을 세우는 말이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은혜가 되는 말이어야 합니다. 한 마디를 하더라도 천량 빚을 갚는 한 마디를 해야 합니다. 
  
사토 도미오의 ‘잠의 즐거움’이란 책에 보면 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인생이 바뀐다고 합니다. 맛있는 말을 하는 비결의 첫째는 고운 말의 싹을 틔우는 것입니다. 배설하는 언어에서 배려하는 언어로 바꿔야 합니다. 말을 던져놓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둘째는 토론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깊이 읽고, 생각하고, 말하게 하는 훈련으로 상대를 포용하고 설득하는 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셋째는 리더의 한 마디 말은 중요하므로 항상 최상의 언어를 구사해야 합니다. 처칠은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 의회에 지각을 자주 해서 ‘게으르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처칠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예쁜 아내와 살다보니 일찍 못 일어나서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답니다. 
  
냉면을 먹을 때 계란을 먼저 먹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입에 냄새를 제거하여 냉면의 맛을 돋구어준다고 합니다. 나쁜 맛을 제거해야 좋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맛을 제거해야 하나님의 맛이 납니다. 세상과 하나님이 섞여 있으면 맛이 없어집니다. 먼저 세상을 제거해야 맛있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과는 언제 따 먹는 것이 가장 맛있을까요? 정답은 주인 없을 때입니다. 말을 맛있게 먹는 법을 익혀야 지혜 있는 삶이고, 조화로운 삶이고, 공존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흔히 밥은 물리적 화학적 맛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맛은 사회적 맛이라고 합니다. 누구하고 밥을 먹느냐가 가장 맛있게 먹는 비결입니다. 이것을 사회적 맛이라고 합니다. 가장 즐겁게 여행하는 비결은 누구하고 함께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장 즐겁고 맛있는 대화는 누구하고 얘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참기름 한 방울이 비빔밥의 맛을 내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참기름 한 방울 같은 짧고 간결하여도 맛있는 말은 모두를 즐겁게 합니다. 어떤 이의 말은 참기름 같이 한 마디를 해도 모두를 즐겁게 하지만 어떤 이의 말은 한 마디로 여러 사람을 찡그리게 하는 수도 있습니다. 
  
눈물의 의미를 한국사람 만큼 깊이 있게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에는 시집살이 하면 눈물을 떠올리지 않습니까? “눈물 서 말 흘리지 않고서는 음식 맛을 못 낸다”고 하는 말도 있었습니다. 옛날 어머니들은 음식 간을 맞출 때 눈물 맛에 간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음식의 맛을 체내의 염분과 같게 해야 맛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체는 간이 맞아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손으로 부엌일을 하면 음식이 맛이 난다고 했습니다. 장맛은 손맛이라고 했습니다. 김치 맛은 집집마다 다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의 말도 우리의 몸에 알맞은 맛이어야 합니다. 말을 잘 못하면 그 말 때문에 사람의 육체가 병들고 상처가 납니다. 말을 잘 하면 그 말로 사람의 육체의 병도 고치고 용기와 힘도 줍니다. 
  
할 어반은 ‘긍정적인 말’에서 말에 영향을 미치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목소리 톤입니다. 둘째는 신체 언어입니다. 셋째는 스킨십입니다. 우리가 한 말의 내용보다는 우리의 말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보다는 그 말을 전달하는 톤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맛이 있기도 하고, 맛이 없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청하고 있다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하나님은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큰 소리도 호통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소리로 호소력 있게, 동정심 있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엘라야에게 뿐만 아니라 언제나 우리 모두에게 맛깔스런 말씀입니다. 

  
둘째, 말에 맛을 내면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골로새서 4:6 하반절에는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고 합니다. 맛을 매는 말은 마땅한 대답을 알게 합니다. 바른 대답은 소통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말을 할 때에 상대방에게 바른 대답, 기분을 좋게 하는 대답을 하는 것만으로도 대화가 원활하고 소통이 가능할 것입니다. 
  
흔히 ‘동문서답’이란 마을 합니다. 물음과 관계없는 엉뚱한 대답을 말합니다. ‘우문현답’이란 말을 합니다.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대답을 말합니다. 이런 일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바른 대답, 물음에 대하여 질문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대답은 참 즐거운 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성경에는 동문서답, 우문현답이 많습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물으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담은 “내가 벌거벗었으므로 숨었나이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다음에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는데 가인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악의적인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처인 하갈에게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라고 물으셨는데 하갈은 “내가 사라의 눈을 피하여 도망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모든 대답이 하나님의 마음에 빗나간 대답들이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물음에 대한 엉뚱한 대답이 많습니다. 질문에 빗나간 답을 한 것입니다. 죄라는 말의 원래 뜻은 화살이 과녁에 빗나감을 의미합니다. 대답이 빗나가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대답이 빗나간 그 자체가 죄입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대하여 바른 대답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소통의 문제 때문에 얼마나 혼란한지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소통이 사회적 안정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말에 맛을 내고, 소통이 이루어지려면 항상 하나님을 상대하듯 하나님 마음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예수님 첫 기적은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신 기적입니다. 모두가 즐거워야 할 잔치에 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연회를 책임지고 있던 연회장의 실수입니다. 예수님은 결례에 사용하던 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게 하셨습니다. 항아리 하나는 20갤런 즉 35리터가 들어가는 항아리였으니까 여섯 항아리의 포도주는 제법 많은 포도주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들어 주시므로 잔치의 즐거움을 제공하셨습니다. 혼인잔치의 기쁨이 회복되었습니다. 맛없는 물이 맛있는 포도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맛없는 것이 맛있는 것으로 변하는 거기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즐거움이 있고 다시 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맛없는 세상을 맛있게 하십니다. 맛없는 말을 맛있게 하십니다. 맛없는 관계를 맛있는 관계로 바꾸십니다. 맛없는 삶을 맛있게 하여 삶에 의미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말에 기름을 부어주시면 말이 맛있어지고, 관계가 회복되고, 소통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세대간, 계층 간의 소통의 단절입니다. 소통만 되면 문제가 사라질 텐데 소통이 안 되어 정치도 꼬이고, 세대차도 벌어지고, 크고 작은 갈등들이 일어나고, 사회가 분열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 예수님은 대화에 맛을 내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입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으로 명령하십니다. 말씀으로 치유하십니다. 말씀으로 화해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치유가 가능하고, 회복이 가능하고, 화해가 가능하고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이 가능합니다. 
  
서로 다투다가 “저 사람 도무지 말이 안 통하네”라는 말을 합니다. 말에 소금으로 맛을 내어 말이 통하게 하세요. 은혜로운 말을 하세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말을 하세요. 다른 사람의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세요. 다른 사람의 마음에 힘을 주는 말을 하세요.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라고 한 그 말은 끝까지 하지 마세요. 실컷 다른 사람에게 할 말 다 해놓고 “나는 뒤는 없다”고 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마세요. 남에게 실컷 상처를 주고 자기만 뒤가 없으면 뭘 합니까? 다른 사람은 이미 그 말 때문에 죽었는데요. 인신공격형 발언은 인간관계를 망치는 독입니다. 의견을 비판하는 말이 아닌 사람을 비판하는 말은 화나게 하고 비열한 말입니다. 이런 말은 정말 맛없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서로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3:11에는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무슨 말 할까 염려하지 마세요. 성령께서 그 때마다 맛있는 말을 주십니다. 너무 화가 났을 때 무슨 말을 할까 걱정하지 마세요. 성경께서 맛있는 말을 주십니다. 꼭 해야 할 말 있을 때 무슨 말을 할까 성령님께 물으세요. 가장 맛있는 대답을 성령님께서 필요한 그 때에 주실 것입니다. 
  
시편 119:103에서 시편의 기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고 합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달기에 주의 말씀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의 말은 답니다. 주님의 마음에 품고 사는 사람의 말은 답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맛있는 말을 합니다. 
  
악명 높은 네 가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욕이나 불쾌한 말입니다. 둘째는 불평이나 투덜거림입니다. 셋째는 잔인하고 고통을 주는 말입니다. 넷째는 무례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말입니다. 이런 말은 모두 맛이 없는 말입니다. 이런 말만 골라서 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맛있게 해야 합니다. 맛이 있는 말을 하면 남에게 유익할 뿐만 아니라 우선 자기 자신에게 엄청난 유익이 있습니다. 맛있는 말은 바른 대답을 하게 하고 바른 소통이 가능하게 합니다. 맛있는 말을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맛있고 유익하게 합니다. 말에 맛을 내어 바른 소통의 말을 합시다. 
  
  
결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갔지만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마라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물을 발견했지만 그 곳의 물은 써서 마시지 못할 물이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만난 물이 쓰다니 그들이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은 나무 가지 하나를 물에 던지게 하셨고 물은 달게 변하였습니다. 인생에서 쓴 맛을 경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쓴 뿌리 때문입니다. 인생의 쓴 경험은 자신의 쓴 뿌리 때문에 만나는 것입니다. 쓴 물은 하나님의 손으로 단물로 바뀌게 됩니다. 쓴 뿌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단 뿌리로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 내면의 쓴 뿌리는 쓴 말을 냅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쓴 말을 내뱉습니다. 맛없는 말을 마구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에 바르게 대답하지 못하고 소통이 막힙니다. 우리의 내면을 소금으로 맛을 냅시다. 맛있는 말을 합시다. 맛있는 말로 내가 남에게 칭찬을 듣게 합시다. 그리고 나의 맛있는 말로 남을 즐겁게 합시다. 맛있는 말로 우리 모두를 유익하게 합시다. 
  
시편 19:14에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맛있는 말이 주님께 열납됩니다. 우리의 말이 주님을 드러내고 우리의 말로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알게 하는 맛있는 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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