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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성중에 내 백성 (행 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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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중에 내 백성 (행 18:1-11) 
 
 
고린도 사역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바울은 에덴에서 서남쪽 80km 정도 떨어진 “고린도”에 도착했습니다(1). 고린도는 북쪽 그리스와 남쪽 펠로폰네소스(Peloponnesus) 반도를 연결하고 있는 좁은 통로 지역에 있습니다. 주전 27년에 아가야의 수도가 되었는데, 동쪽 에게해(Aegean Sea)에는 겐그레아(Genchrea) 항구가 있고 서쪽 아드리아해(Adriatic Sea)에는 레케움(Lechaeum) 항구가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들 때문에 고린도는 정치와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의 유명한 4대 경기 중 하나도 격년마다 이곳에서 열렸고, 헬라 도시 중 로마의 검투경기를 최초로 시행한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고린도는 자유인 20만 명과 노예 40만 명이 살아가는 대도시였지요.

고린도의 외형적 화려한 번영 이면에는 윤리적 타락이 심각했습니다. ‘고린도 사람이 되다’라는 뜻을 가진 ‘고린디아제스다이’라는 단어는 ‘음탕한 사람이 되다’는 대명사 쓰일 정도였지요. 해발 575m의 아크로 고린도 바위 언덕의 정상에는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 로마 신화의 Venus) 신전이 있었는데 신전에 속한 여자 노예들은 신전 행사 뒤풀이로 매춘을 하는 창기들이었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 후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썼는데, 그가 사용한 이방인들의 우상숭배와 성적인 난잡성과 각종 부도덕한 모습들은 고린도인의 삶을 반영했겠지요(롬 1:22-31).

바울은 그곳에서 본도 출신의 유대인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를 만납니다(2). 로마제국의 4대 황제인 “글라우디오” 재위 9년에 로마에서 ‘크레스투스’(Chrestus)라는 사람의 선동을 받은 유대인 폭동이 있었습니다(Suetonius, Life of Claudius, 25:4). 이 일로 황제는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고(49년 1월 25일부터 50년 1월 24일까지), 이때 아굴라 부부도 “이달리야”(Rome)를 떠나 고린도로 왔습니다. 그들은 장막 제조업자였는데 바울 역시 장막을 만들어 생활비를 충당했으므로 함께 거주합니다(3). 바울은 평일에는 장막을 만들다가 안식일이 되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했지요.

그러던 중에 간절히 기다렸던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 지역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5a; 17:14-15). 이때 디모데에게 교회의 상황을 듣고 쓴 편지들이 데살로니가전후서입니다. 실라는 때마침 빌립보 교회의 연보를 가져와서 바울의 부족한 것을 보충케 했습니다(고후 11:9; 빌 4:15).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의 좋은 소식과 빌립보 교회의 헌금은 바울을 어린 교회들에 대한 염려와 현실 생활에 붙잡힌 상태로부터 풀려나게 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했습니다. 안식일 외에도 모든 시간을 온전히 말씀 사역에 전념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말은 다른 성도들의 도움 없이도 홀로 설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고전 12:27), 몸은 여러 지체들이 서로 협력해야만 제대로 기능을 행사할 수 있지요. 바울 사도 역시 몸 된 교회의 한 지체였고, 그 또한 다른 지체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죄악 된 도시에서 만난 아굴라 부부, 동역자들과의 재회, 교회들로부터 온 소식과 후원은 바울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보다 더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풍조는 신앙도 개인주의화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허물과 부족함이 많아서 원치 않을지라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그런 일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보면 사람 만나는 것이 싫고 혼자 지내는 것이 편하게 느껴집니다. 모든 관계를 끊고 조용히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평안을 누리고 싶지요. 하지만 성도가 다른 성도와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많은 성도들 속에 익명으로 숨어 있는 것을 편하게 느낀다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고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성도는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몸의 한 지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회당에서 강론하고 권면할 때는 별일이 없었는데, 말씀에 전념하게 되자 “대적하여 훼방”하는 역사도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사단의 시샘도 따르는 것이지요. 바울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옷을 떨어”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하고 선언했습니다(6). 에스겔서의 파수꾼 말씀처럼 생명의 말씀을 최선을 다해 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의 영적 생명에 대한 책임은 그들에게 있음을 분명히 말해준 것이지요(겔 33:1-7). 최선을 다해 말씀을 전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조금도 얽매이지 않은 사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말씀을 맡은 자는 바르게 전하며 성실하게 전하려고 애써야 하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결과에 얽매이면 청중들이 좋아 하는 말을 하려는 유혹에 빠지거나 낙심하기 쉽습니다. 6절의 사도의 말은 결코 듣기 좋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화가 나서 악담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아주 불쾌한 선언이지요. 하지만 복음 자체가 구원과 심판이라는 영면적인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의 복된 측면뿐만 아니라 심판까지도 말해야 온전한 복음이 됩니다. 하나님 백성다운 성품은 우상숭배의 현장에서는 분노를 느낄 줄도 알고(17:16), 말씀을 거부할 때 심판을 선언하며 단호히 돌아설 수도 있는 태도이지 좋게만 말하는 유약한 태도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대적과 훼방에도 바울은 낙심치 않고 회당 중심의 사역을 가정 중심 사역으로 전환했습니다. 회당 옆집에 있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의 집을 거점으로 삼았지요(7). 그러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습니다(8). 대적과 훼방 속에서도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본래 “스데바나의 집”이 아가야의 첫 열매지만(고전 16:15), “그리스보”를 대표로 언급한 것은 그의 신분이 회당장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회당을 대표하는 회당장의 회심은 유대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고, 고린도 교회는 회당의 유대인들과 몹시도 불편한 관계에 놓여 핍박을 예상해야할 상황이 된 것이지요.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9). 바울은 약하여져서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습니다(고전 2:3). 이제 이곳에서는 잠잠하고 핍박이 일어나기 전에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어린 교인들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고민했겠지요. 그동안 계속 쌓여온 핍박의 경험들이 사도의 마음을 위축시켰던 모양입니다. 바울은 두려움이라고는 모르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때로는 두려움에 빠지는 연약한 인간이었고 격려가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10).

아덴이 우상 도시라면 고린도는 음란 도시였습니다. 그곳은 거룩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나마 그 도시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유대인들은 대적하고 훼방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몇몇이 회심했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 “내 백성”이 아직 많다고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말씀 맡은 자로 잠잠히 있을 수 없게 합니다. 아직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자가 많다면 부지런히 말씀을 전해야 할 이유가 생기지요. 겉모습을 보고서, 주변 환경만 보고서 저 사람은 아닐 것이라며 포기할 수 없게 합니다. 알미니안은 구원이 예정되었다는 가르침이 전도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사실로서 바울이 계속 전도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나중에 고린도에 보낸 사도의 편지를 보면 고린도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었습니다(고전 2:2). 고린도가 윤리적으로 심각하게 부패했다고 해서 바울은 윤리를 강조하는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심하고 복음의 핵심을 더욱 붙잡았습니다. 성도의 윤리적 삶은 윤리를 실천하도록 촉구하는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삶이 중요하지만 윤리 자체만 강조하면 율법적인 바리새인만 양산됩니다. 오히려 복음의 핵심을 분명히 알고 복음에 대한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하나님 백성다운 성품이 열매로 열립니다. 삶이 부패한 곳일수록 복음의 핵심은 분명하고도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아덴과 고린도처럼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과 타락한 본성대로 사는 것을 자유로운 삶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마음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께서 버려두셨다는 증거로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버려두시면 사람은 부끄러운 욕심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롬 1:24, 26). 놀라운 것은 복음은 아덴의 모든 사상과 고린도의 모든 부패에도 불구하고 역사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이 선포되면 하나님의 백성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대적과 훼방 속에서도 계속 전파되어야 합니다(딤후 4:2).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에 힘입어 두려워하던 그곳에서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11). 두려움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큰 힘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낙심하고 좌절한 마음에 하나님 말씀보다 더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는 것도 없습니다. 지치고 힘들어 입술 열기조차 힘들 때도 하나님이 성도의 힘이 되십니다(사 12:2). 우리의 시선이 주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자들과 세상 끝날 까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신 이 주님을 늘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마 28:20).

주님 재림 전까지 이 땅에는 아직 하나님의 백성이 많습니다. 잠잠하지 않고 부지런히 말씀을 전파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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