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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만 바라봅시다 (미 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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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 바라봅시다 (미 7:7-13)


본문은 미가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선포한 예언의 메시지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며 깊은 좌절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좌절을 탄식의 시로 읊조렸습니다. 바로 그 시가 7:1-6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탄식 시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텅 빈 과수원 같다는 것입니다.(2) 

과일을 따기 위해 과수원에 들어갔는데, 누군가가 이미 다 따버렸고, 그래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예루살렘 성의 상황을 비유로 묘사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을 살펴보았답니다. 그런데 공의의 열매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온통 불의만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다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2-4)

당시 예루살렘 성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 하나하나를 자세하게 살펴보았답니다. 그런데 경건한 사람, 정직한 사람, 그리고 선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온통 악한 사람들만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집 안에도 원수가 있다는 것입니다.(5-6)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을 살펴보았답니다. 그런데 이웃, 친구, 심지어 아내마저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조차도 원수가 되어 서로를 괴롭히더랍니다.
사실 오늘도 우리는 미가의 탄식과 비슷한 탄식을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세상을 바라보며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시대가 너무 악하고 구조적인 문제투성이어서, 뭐하나 희망을 둘 것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에워싸고 있는 상황이 너무 나빠서, 내 힘으로 도저히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배반당하여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 잘 믿는다는 사람들 때문에 크게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을 바라보며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가까운 이웃들에게, 가까운 교우들이게, 심지어 가족들에게 실망하고 상처받고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좌절하고 절망하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할 까요? 
오늘 미가 선지자가 길을 제시해 줍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라

본문 7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새로운 희망의 길을 찾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특히 "오직"이라는 표현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원어 ‘와우’(waw)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문법적으로 '반어접속사'로 쓰이는 말입니다. 즉 앞에 나타난 내용을 강하게 부정하는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더 정확하게 번역해 보면 "그러나 나는..."이라는 뜻입니다.

미가는 지금까지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다 좌절했습니다. 사람들을 바라보다 또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을 바라보다 깊은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마지막 소망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모든 바라봄의 시선을 중단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나 나는”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사람 바라보지 않고 주만 바라보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누구를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명한 스펄전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이분도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마음속에 큰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도저히 그 꿈을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깊은 좌절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다니던 교회를 갈 수가 없어서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런데 교통 사정 때문에 목사님이 오시지를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교인들끼리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서로 의논하다가 한 집사님이 등 떠밀려 강단으로 올라갔습니다. 찬송 부르고 기도한 뒤 설교 시간이 됐습니다. 이 집사님이 성경을 뒤척이다가 사 45:22를 읽었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그리고는 10분 정도 쩔쩔매며 설교를 했습니다. 전혀 준비 없이 설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 집사님이 설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 중에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결국은 절망하게 됩니다. 특히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치고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은 결코 힘 드는 일이 아닙니다. 학력도 필요 없습니다. 돈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그분 앞으로 나아가 그분을 바라보기만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분이 만나주시고 그리고 길을 안내해 주십니다.“

스펄전이 그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최선을 다해서 주만 바라보았습니다. 말씀대로 주께서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기의 그 힘겨운 방황을 이길 수 있었고, 주의 종이 되어 놀라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미가 선지자가 하는 말이 바로 이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면 처음에는 거기에 희망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또 아무개를 바라보면, 그 사람에게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아무개를 바라보면,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쩔 때는 거기에서 큰 좌절을 맛보게 됩니다. 큰 상처를 받기도 하고, 배신을 경험하기도 하고,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바라보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사람 바라보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신앙이란 우리의 시선을 주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안을 열고 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직 주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라본다’는 말의 뜻입니다. 이 말은 원어 ‘야할’(Yahal)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야할’이라는 말은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말은 그 어원에는 ‘쇠약해지다’, ‘지치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라본다는 것은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인데, 그 기다림이 오래 지속되고, 그래서 기다리다 지치고 쇠약해지기까지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라보는 일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저 한 번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기다리되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할 정도로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일입니다. 기다리다 몸이 쇠약해져 더 기다리고 싶어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바라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바라보지 말고 주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 바라보지 말고 주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때에도 주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빛을 찾게 됩니다.

본문 8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두운 데에 앉을 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그리고 9절에는 또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미가 선지자는 지금 이스라엘에 짙은 어둠이 깔려있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영적인 어둠입니다. 영혼들이 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고 절망 가운데 있습니다.

실제로 대적들이 공격해 와서 이스라엘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그 승리로 기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조롱당하고 짓밟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짙은 영적 어둠이 하나님의 백성을 뒤 덮었던 것입니다.

사실 오늘도 이와 같은 상황이 도처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정황 속에서 믿는다는 이유로 때로는 보이지 않게, 또 때로는 노골적으로 박해를 받거나 손해를 볼 때가 있습니다. 때론 직장에서 믿지 않는 상사들에 의해 압박을 받기도 합니다. 때론 학교에서 믿지 않는 교수나 교사들에 의해 눌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때론 권력에 의해 박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때론 매스컴이나 문화 매체에서 조롱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영적 어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이런 영적 어둠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영적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게 되고 또 절망하게 됩니다. 자칫 믿음을 잃어버릴 위기를 겪기까지 합니다.
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적 어둠을 바라보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주를 바라볼 때 빛을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희망의 빛을 찾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둠에서 광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책에서 어떤 의사 선생님의 간증 이야기를 읽은 일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자, 이제 우리 가정을 해체하자. 아무리 둘러봐도 더 이상 소망이 없지 않느냐, 각각 제 갈 길을 찾아가자’라고요. 우리 가정은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습니다. 큰아들은 우리 부부의 기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망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서로 마음의 문을 닫은 지 오래됐습니다. 의사인 아내 역시 저와 아이에 대해서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가족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 남은 것은 돈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정 해체를 선언한 후 ‘결코 이대로는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고, 한 가닥 희망을 붙잡는 심정으로 아버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불교 집안에서 자라난 이 의사에게 기독교는 아내가 믿는 종교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학교를 통해 무언가를 깨달은 그는 집 근처의 한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병원 일을 마치고 밤마다 교회에 들어가서 한참 동안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밤마다 주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러던 그에게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의사의 영적 어둠을 물리쳐 주셨고, 그 심령을 새롭게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이 의사의 삶은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됐습니다. 골프와 술 등 세상에 대한 미련이 저절로 끊어졌습니다. 가정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던 큰아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대화가 끊어진 지 오래된 아내와 함께 교회당으로 가는 발걸음은 경쾌했습니다. 이 가정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빛으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 삶을 뒤덮고 있는 어둠을 몰아내 주십니다. 그래서 새로운 희망을 찾게 해 주십니다. 그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만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이 빛을 찾게 될 것입니다. 희망의 빛, 새 삶의 빛을 찾게 될 것입니다.

지경을 넓히게 됩니다.

본문 11-12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성벽을 겅축하는 날 곧 그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미가 선지자는 주를 바라보는 이들이 장차 누리게 될 회복의 비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적들에게 짓밟히고 있지만 장차 회복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벽을 재건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미가 선지자는 각처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는 비전을 보고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갔거나 가나안 땅에서 살 수 없어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처에서 돌아오는 회복의 비전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스라엘 땅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앗수르, 애굽, 더 나아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더 넓은 지경을 마음 속에 품고 비전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비전을 가지게 됩니다. 현재 어려운 처지에 좌절하여 주저앉지 않습니다. 잔뜩 위축되어 눈앞에 보이는 곳만 마음에 담지 않습니다. 폭 넓게 미래를 마음에 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지경을 넓혀 더 넓은 곳을 마음에 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은 지경을 넓히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으로 나아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을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온 유다,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지경을 넓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지금 그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라는 말씀입니다. 미래를 향해 희망을 가지고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를 바라보는 사람들 저들이 삶 속에 누리게 되는 영적 축복의 핵심입니다.

저는 기도시간에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지난 추수감사절에 교우들이 적어 내 주신 기도제목을 묶어서 만든 중보기도 철을 읽어가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중보기도 철을 읽으며 기도하다가 큰 감동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하신 김병찬 집사님의 기도제목이었습니다. 집사님께서 이 기도제목을 적어내신 뒤 얼마 안 돼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것입니다.

집사님께서 쓰신 기도 제목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어떠한 역경에 처해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그리고 “꿈과 희망을 잃지 않게 하시고 그 꿈과 희망을 이루게 하소서”

집사님은 이미 나이가 74세나 되신 분입니다. 건강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닙니다. 자칫 좌절하고 그 모습 그대로 주저앉을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전을 가지고 앞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꿈과 희망을 향해 달려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늘 지경을 넓히는 꿈을 꾸며 삽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도전 정신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새로운 지경을 향해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만 바라보십시오. 빛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지경을 넓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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