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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진정한 감사 (시 3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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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감사 (시 34:9-10)

드라마 -『가인과 아벨』, - 어떻게 보셨습니까?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패러디해서 감사한 마음이 없는 가인과 모든 것에 감사하는 아벨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난 1년의 삶을 돌이켜보며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말씀 속에서 감사의 신앙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34편은 그 표제에 이 시가 쓰여진 배경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이 시편이 기록된 배경이 되는 사건은 사무엘상 21:10~15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서 이웃 나라 불레셋의 가드라는 곳으로 피신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곳 가드 왕 ‘아비멜렉’(이 이름은 ‘바로’와 같이 어떤 왕조의 이름이거나 왕가의 칭호임)은 본명이 ‘아기스’였습니다.

그 아기스 왕 앞에 다윗이 갔을 때, 그 왕의 신하들이 다윗을 가리켜서 장차 이스라엘 땅의 왕으로 다윗을 소개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을 높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눈치가 빠른 다윗은 그 상황에서 죽을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척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렸습니다. 그러자 아기스가 ‘봐라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하면서 내어 쫓았습니다. 

그렇게 위기를 벗어난 다윗, 그러한 상황에서 어찌보면 비참하고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상황을 맞이했었는데도 다윗은 고백합니다. (9~10절)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진정한 감사의 자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정말 회복해야 하고, 우리의 마음에 가득 채워야 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1년 중, 귀한 절기인 추수감사절을 다시 맞이해서 진정한 감사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1.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중국 위(魏)나라 때에 뛰어난 의술로 이름을 떨친 ‘편작’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두 형들도 의사였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루는 위나라 왕이 편작에게 물었습니다. “삼 형제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난 의사인가?”, “큰 형님의 의술이 가장 뛰어나고, 다음이 둘째 형님이며, 제가 마지막입니다.”, 왕은 편작의 뛰어난 의술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의 대답은 형들을 높여 주려는 겸손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편작은 대답했습니다. “큰 형님은 환자가 아프기 전에 혈색을 보고 어디가 안 좋은지를 알아내지요. 그래서 사람이 병이 나기 전에 미리 병의 원인을 제거해 줍니다. 그러니 아프지도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는 형님이 병을 미리 고쳐 주었다는 사실도 잘 모릅니다. 또, 둘째 형님은 병세가 미미한 상태에서 병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더 악화되기 전에 치료해 줍니다. 그래서 이 환자도 형님 때문에 큰 병을 고쳤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 거지요. 그런데 저는 환자의 병이 커지고 고통으로 신음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병을 알아봅니다. 그런 상태에서 치료도 하고 수술도 하니까, 환자는 자신의 중한 병을 고쳐 주었다고 고마워 합니다. 사실 이것이 제가 명의로 소문난 이유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제서야 편작이 자신보다 형님들의 의술이 더 뛰어나다고 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나는 일들만을 기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편작의 형제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의사이신 하나님께서는 매일, 매순간마다 기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 한 예로, 우리 몸 속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들을 들 수 있습니다. 하루 동안 성인의 심장은 평균 103,689번을 뜁니다. 피는 10만 킬로미터가 넘는 혈관을 1천 회 이상 순환합니다. 23,040번의 숨을 쉬고, 750개의 근육이 빠르게 혹은 천천히 움직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작업들이 매일,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의 몸을 작은 우주로 창조하시고, 정교하고 쉼 없는 활동들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살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행하시는 일에 감사하는 것, 그것은 우리의 몸과 생활이 병들지 않도록 막아 주는 예방제이며, 병들었을 때 회복하게 해주는 치료제입니다. 때로는 내가 처한 삶의 환경에서 감사할 제목을 도무지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신지,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낙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여러분, 다윗을 생각해 봅니다. 정말 비굴하고, 비참하게 목숨을 건지려고 수염에다가 침을 질질 흘리며 혼신의 연기를 다해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도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어찌해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도대체 무엇을 믿었습니까? 그것은 이 상황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상황을 주셨다면 그 뜻이 있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반드시 유익함을 주시리라는 믿음이 그런 감사의 고백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2. 진정한 감사는 환경과 여건에 좌우되지 않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청교도들, 메이플라워호, 플리머스 해변, 첫 추수, 등의 단어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었던 미국 첫 이민 청교도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첫 농사를 짓고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 추수감사주일의 유래가 되었는데 그 감사예배를 드릴 때의 분위기를 한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당시 청교도들의 환경, 여건을 보면 좋은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수확을 올린 것은 20에이커 정도에 심은 옥수수뿐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국에서 가져온 완두콩 씨앗은 겨우 싹이 돋기는 했으나 가을이 되기 이전에 벌써 여름에 다 타버렸고 보리 농사도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더구나 맨주먹 하나로 계속해서 건너오는 이민 인구 때문에 식량난에 허덕였고, 견디기 어려운 유행병까지 치러야 했습니다. 감사를 드릴 당시 그들의 눈앞에는 굶주린 겨울이 선명히 보이는 듯했습니다. 걱정과 두려움이 앞을 가리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추수감사절이 의미심장한 절기로 확산된 것입니다. 대 풍작이어서, 앞으로 미래가 보장되어서 감사를 드린 것이 아니라, 질병과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악전고투하면서 감사를 드렸다는데 뜻이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눈물과 탄식과 원망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정황 속에서 감사를 드렸기에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힘겨웠던 항해와 수많은 역경과 자식 또는 부모를 잃고 이제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그 초라한 수확을 앞에 놓고 꿇어 엎드렸을 때, 엄밀히 생각해보면 그들은 아무 것도 감사할 것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삶을 돌이켜 볼 때 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처음에 교회 사택이 마련되지 않아서 어머니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어머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1995년도에 3박 4일의 뜨레스 디아스 영성훈련을 참석해서 은혜를 체험하고, 얼마 있다가 제 아내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에 첫 아이를 낳고, 기르고, 그리고 못 다한 공부를 하는 과정으로 바쁘게 보내었는데,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조금씩 힘들어하는 것 같고... 그래서 사실 휴가차 보낸 것이었습니다. 다녀오더니 눈물 펑펑 쏟으며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다음 주에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반신불수가 되셨는데, 병원에 입원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제 아내가 시어머니 간병을 정성껏 하는 것입니다. 대소변을 다 직접 받아내고, 목욕시켜 드리고 ... 그런 것을 지켜보며 너무 놀랐습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는데 저런 일들을 젊은 나이에 감당하다니... 그때 제 아내는 아직 나이 30이 안되었을 때였습니다. 당시에 싫어하거나 힘든 내색 한 번 안 하더라고요. 

저의 결혼생활 20년 동안 제 아내가 가장 아름다워 보였던 때였습니다. 그때 제 아내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서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때였던 것입니다. 얼마 후 저의 어머니가 점차로 회복되어서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서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둘째 아이를 갖게 된 것입니다. 둘째 아이를 갖고 있는 동안에도 사택을 두 번이나 이사를 하는 힘든 과정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을 거의 아내가 주관해서 감당했습니다. 드디어 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에는 신생아때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날 밤에 교회로 와서 기도를 하는데,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다가 제 입에서 감사기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깨달음이 있었고 나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감사기도만 하였습니다. 아이는 한 달여 만에 정상으로 돌아와서 퇴원을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잘 자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감사는 환경과 여건에 좌우되지 않는 감사입니다. 


3. 진정한 감사는 우리의 삷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화장실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환경에 따라서 마음이 다르고 감사와 원망이 교차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삶이란 언제나 한가지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쁠 때가 있으면 슬플 때가 있고, 행복의 시간과 괴로움의 때가 있고, 날 때와 죽을 때가 있으며, 감사의 때와 원망의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를 드리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제가 저의 삶을 돌이켜 보면, 감사의 기도가 많아질수록 하나님은 나와 내 가정을 더욱 평안하게 하시고, 기쁨과 보람이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신앙이 더욱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니까 걱정과 근심이 줄어들고, 소망이 생기고 그로 인한 평안이 오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시편을 쓴 다윗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그가 환난 중에서도 감사하니까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와 함께 하셨고, 그를 높이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강력한 이스라엘을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첫 번 추수감사를 어려운 가운데 감사하며 보내게 되었던 미국의 청교도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세운 나라가 지금 세계의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 가운데 ‘올해는 아무 것도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환란과 역경으로 인하여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지 못하여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 힘든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2011년 올해도 변함없이 다가온 이 추수감사주일에 진정한 감사를 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환경과 여건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오늘은 축제의 날입니다. 그래서 떡도 해서 나누어 먹고, 점심식사도 다른 때보다 더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특별한 음악으로도 축제를 여는데, 이 날이 더욱 감사가 넘치는 축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다윗이 부른 찬송처럼 진리의 편에 있기에 어떤 상황 속에 있어도 승리가를 부를 수 있는 참된 인생의 승리자, 어떤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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