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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풍성한 수확을 위하여 (신 11: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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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수확을 위하여 (신 11:13-17)


우리가 잘 아는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지을 때 손수 일을 하면서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흑인 청년 하나가 우두커니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슈바이처 박사가 청년에게 “여보시오. 그렇게 서 있을 게 아니라 나와 같이 일을 하면 어떻겠어요?”라고 하자 이 흑인 청년이 “나는 공부한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합니까? 일은 공부 안한 사람이나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슈바이처 박사가 “청년, 나도 학생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공부를 많이 한 다음에는 아무 일이나 다 해요”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어떤 여자는 대학 출신이기 때문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는데도 청소하기도 싫어하고 그릇 닦는 것도 싫어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대학 출신이기 때문에 취직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학 출신이 아무 일이나 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슨 일이나 다 할 수 있을 만큼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공부를 정말 많이 하면 겸손해집니다. 어느 정도 한 사람은 교만해서 공부한 티를 내려고 합니다. 

열매 맺는 가라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서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은 벼이삭은 고개를 숙입니다. 고개가 숙여질 만큼 공부해야 합니다. 겸손해질 만큼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잠 9:10은 말씀하며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한다”고 전 1:18은 말씀합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하신 잠 11:2의 말씀을 따라 참 지식과 지혜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다음 주일 우리는 추수감사주일로 하나님 앞에 감사를 돌릴 것입니다. 이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풍성한 수확을 위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는 풍성한 수확을 위해서는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이에 겨울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푸르던 들판도 이제는 휑하니 비어있습니다. 단지 목축 농가를 위해 말아놓은 하얀 볏짚 더미만이 논에 널려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멀리서 보면 마치 하얀 새알처럼 보여서 저는 공룡 알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합니다만 이는 목축을 위한 또 다른 겨우살이 준비가 되겠습니다. 요즘이야 사시사철이 없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모든 것이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봄에 거두는 작물이 있고 여름에 거두는 작물이 있으며 가을에 거두는 작물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경우는 그 거두는 시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만 어찌 됐든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편 126:5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먼저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심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심기 위한 밭과 심을 씨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밭에는 모두 네 종류가 있는데 먼저는 길가와 같은 밭이 있고 돌짝밭이 있으며 가시 떨기로 가득한 밭이 있는 반면 옥토와 같은 밭이 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농부라면 옥토와 같은 밭에 씨를 뿌리기를 원할 것입니다. 길가와 같이 딱딱해서 씨를 심기는커녕 그냥 맨땅 위에 씨를 흩뿌려놓은 것과 같이 되어서야 거기서 싹이 나서 자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니 싹이 나기는커녕 금세 새에게 먹혀버리고 말 것입니다. 

돌짝밭, 알기 쉽게 자갈밭에 씨를 뿌릴 사람 또한 누가 있겠습니까? 자갈 때문에 무언들 제대로 자랄 수가 있겠습니까? 가시 떨기로 가득한 밭, 잡초로 가득한 밭에서 온전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당연히 농부는 씨를 뿌리기 전에 밭부터 정리를 할 것입니다. 쟁기로 갈고 써레질을 하고 모든 자갈들은 골라내고 잡초는 다 뽑아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미리부터 퇴비를 해서 그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놓을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밭이라야 뿌려지고 심겨진 것들이 아름답게 싹이 나서 잘 자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가 꿈꾸는 행복한 삶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어쩌다가 우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또한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준비된 자만이 누리는 것입니다. 물론 자질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자질이라고 하는 것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갖추기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기 때문에 땅이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쉽게 얻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생바가지가 되어야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땅을 복된 땅으로 바꾸어주시면 됩니다. 

거기에 더하여 좋은 씨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좋은 씨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 지혜를 따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순종의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항상 순종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세상 풍습은 쉽게 따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그러니까 우리들은 세상 풍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에 청종해야 합니다. 청종이 무엇입니까? 귀담아 듣는 것입니다. 그것도 따르고자 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저 듣기만 할 뿐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하나도 없는 그런 마음이 아닌 들은 대로 반드시 따르겠다고 하는 순종의 자세로 듣는 것이 청종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결단하고 순종하는 것이요 이 순종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귀한 열매 맺는 옥토가 되게 해주십니다. 우리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시고 평안이 넘치게 하시고 감사가 넘치게 해주십니다. 

아울러 이 믿음은 또한 아름다운 결실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그 마음속에 이미 풍성한 열매를 바라봅니다. “너희가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받은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될 일을 오늘로 가져다 놓고 미리 감사하고 미리 기뻐하고 평안을 누리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밭을 준비하는 그 마음에 이미 풍성한 열매로 가득합니다. 그것을 노래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그것이 바로 옥토입니다. 
우리 마음이 이런 은혜로 가득한 옥토와 같은 마음들, 항상 순종하면서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풍성한 수확을 위해서는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가 더해져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밭과 좋은 씨앗이 준비되었어도 이를 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씨앗을 뿌리고 그것이 싹이 났다고 해서 곧바로 열매 맺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씨만 뿌려놓고 나 몰라라 해서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고가 따르고 아픔이 따릅니다. 

물론 준비하는 과정이 어디 쉬울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하루아침에 성숙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자마자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 성숙한 어른이 되기까지 20년 30년 40년의 세월이 필요하듯이 믿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은 큰 은혜를 받은 것 같아도 여전히 미숙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원리를 배우고 깨달았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내가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숙달되기까지 많이 애쓰고 수고하여야 합니다. 한 마디로 땀을 흘려야 합니다.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올해 시작하는 첫머리부터 구제역으로 인해서 많은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계속해서 내리는 장맛비 속에 그리고 차가운 날씨 속에 물난리도 겪고 냉해도 겪으면서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런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지 않습니까? 한 해 농사를 망쳤다고 해서 그냥 손만 놓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어찌 됐든 구제역을 이겨내려고 목축업자들이 얼마나 애를 썼으며 망쳐진 농사 대신 다른 것으로 보상을 얻기 위해 또 얼마나 땀을 흘렸습니까? 

우리 모두가 다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거니와 아픔 없는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건강하게 바르게 다 자라기를 원하지만 어찌 그것이 마음처럼 됩디까? 이런 저런 병으로 아이가 아파서 힘들어할 때 자지러지는 아이를 안고 어머니의 마음은 시꺼멓게 타들어가지 않습니까? 그나마 바르게 잘 자라주면 고맙겠는데 고집불통에 빗나가기만 할 때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떻습니까? 그런다고 해서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날마다 한 숨이요 눈물로 지새울 때가 또 얼마나 많은지요? 

멀리 남편 따라 북유럽에 나가 있는 조카딸이 페이스 북에 올려놓은 글입니다. 
“아이 셋을 낳으면 부모마음을 알게 된다고 하셨더랬죠. 전앤 그 말이 와 닿지 않았어요. 그저 내가 힘든 것만 생각했죠. 근데 점점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요. 아이들이 아파 돌보고 있자니 제가 어렸을 적에 아파서 아버지가 병원에 데려가셨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생각해보면 저도 많이 허약해서 병원을 참 자주 다녔더랬죠. 통조림 캔을 아플 때마다 마트에서 사주시고 그랬는데. 다섯 살 때 선교원 다닐 때 엄마와 함께했던 사진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때 엄마 나이가 아마 서른두 살 지금 제 나이와 비슷한... 엄마도 나처럼 이십대가 있었고 삼십대가 있었다는 게 엄마의 인생이 나와 겹쳐지면서 엄마도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을 엄마도 했겠구나 생각이 드네요. 이렇게 어린 자녀들은 하나님보다 엄마 아빠가 더 절대적 존재인거 같아요. 언젠가 자라서 또 떠나보낼 날이 오겠죠?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엄마!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절 낳으시고 키워주시고 지금도 한결같이 사랑해주시고 부모님의 사랑은 정말 생각할수록 감동이 되네요.”
그런데 이 글을 아버지 어머니는 보지 못하셨는지 아무런 답들이 없네요. 아니 보았다고 해도 거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부모로서의 당연한 사랑인걸요.

그렇습니다. 문득 섭섭하기만 했던 시간들, 힘들게만 여겨졌던 시간들, 도무지 헤어날 길이 없을 것만 같았던 수렁들, 이런 저런 사건 사고 속에 아파하던 시간들,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잠 못 이루던 날들, 아픈 몸을 부둥켜안고 뒹굴던 시간들, 근심 걱정에 입술만 바짝 타들어가던 날들이 주마등같이 흘러갔습니다. 문득 지금에 와서 보면 별 것도 아닌 것들도 있고 그 아픔의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고 이길 수 있었을까 싶은 일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잘 나간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에 삐딱했던 일들, 마치 동방의 박사들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별을 보고 가나안 땅까지 잘 와놓고는 그만 왕으로 오시는 이라면 당연히 왕궁에서 태어났겠지 하는 자기 생각에 빠져 예루살렘으로 가버렸던 그런 어리석음이 우리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없이 방황하며 헤매던 날들, 너무도 힘이 들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던 일들까지, 하지만 그런 아픔의 날이 있기에 오늘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고 그건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됐든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래 참음, 끈기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벼가 다 익어 고개를 숙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밥이 뜸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인생은 더욱 그렇습니다. 애 늙은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아이가 어른처럼 성숙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어른스럽다고 해도 어느 모습으로는 여전히 아이일 뿐입니다. 그가 성숙한 인격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많은 교양과 훈련을 쌓아야 하고 아픔의 시간들도 겪어야 합니다. 아픔이 싫다고 도망쳐 버린다면 그는 결코 성숙된 인격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건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생각에 아닌 것 같아도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우리 지혜로운 것보다 더 지혜롭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한다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도록 나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성숙해지기 위해서 더욱 필요한 것이 말씀이요 말씀이 능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라고 할 때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쉬지 못하시도록 날마다 깨어 기도하여야만 합니다. 

사 62:6~7은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파수꾼으로 세워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하기를 쉬지 말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세워 찬송 받게 하시기까지 쉬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수고를 다하고 있습니까?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그렇습니다. 먼저는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라고 합니다. 그건 우리의 할 수 있는 모든 수고를 다하라는 뜻입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고자 하고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기를 원하며 먹고 배부르기를 원한다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겨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왜 안 되느냐 하면 마음을 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뜻을 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게임에 집중하고 연속극에 집중하고 내가 흥미를 갖는 일에 집중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온통 나의 관심을 하나님께 두십시오. 온통 나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비록 온전치 못해도 하나님은 그런 나의 마음을 받으십니다. 

나의 수고를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도 그 과정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언제든지 양이 아닌 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진정성을 주님이 보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참된 마음을 기뻐하신단 말입니다. 주님만으로 감사하고 어떻게 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그 마음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니까 내가 뜻한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실망할 일이 아닙니다. 

보십시오. 농부는 추수할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 많은 땀과 눈물이 있기에 열매를 거두는 기쁨은 더욱 큰 것입니다. 비록 거둔 것이 기대만큼 못 미쳐도 좋습니다. 그러면 자신을 돌아보면서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살펴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더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이만해도 감사합니다, 하나도 거둘 수 없을 수도 있는데 이것만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야말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는 출발점이요 종착점입니다. 기도도 감사함으로 하고 씨를 뿌림도 감사함으로 하고 모든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일에도 감사함으로 할 때 거기에 더 큰 감사와 감격과 기쁨이 있게 됩니다. 비록 바라는 것만큼 거두지 못했다고 해도 내가 지금까지 땀을 흘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될 때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쉬지 않고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며 땀 흘려 수고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풍성한 수확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돌보아주셔야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이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먼저는 내 수고가 우상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나는 그저 마땅한 수고를 했을 뿐이요 영광은 하나님께서 받으셔야지 내가 이런 수고를 했으니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자가 없을 것입니다. 지난 초여름에 우리가 겪었듯이 계속해서 비가 폭포수같이 쏟아지니 어떻게 됩디까? 다 물에 잠기고 떠내려가고 무너져 내리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저 자기만 잘난 줄 알고 우쭐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욱 가관인 것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니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감사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들이 어떻게 되느냐 하니 속히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무엇입니까? 그저 수고는 하지 않고 거저먹으려고만 한 결과 나라가 다 거덜 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심기는 조금 심고 많이 거두려고 하니 뭐가 남아나겠느냔 말입니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리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더군다나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면 강도요 절도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바로 그런 강도요 절도는 아닌지요? 아니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고 심기는 손바닥만큼 심고, 거두기는 많이 하려고 하는 도적과 같은 심보를 가지고 무엇을 거둘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런 자는 거둔다고 한들 쭉정이밖에 더 있겠으며 항상 주리고 목마를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우리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수고하여도 거두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뿐입니다. 비가 와도 와야 할 때 와야지 엉뚱한 때 온다면 그건 오히려 안 오는 것만 못할 뿐입니다. 오늘 말씀은 분명히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른 비 늦은 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적당한 때에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여호와의 도우심을 바라야 합니다. 사 61:3은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귀한 은총이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섬기는 모든 성도들 위해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신 16:10은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계속해서 신 16:16~17은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없는 데서 드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것도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풍성한 수확을 위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 대로 우리 힘을 헤아려 자원함으로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십시오. 창 26:12~13은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되어야 하겠습니다. 

얼마 전 김연아 선수와 함께 아이스 쇼에 참석한 피겨스케이팅 세계 챔피언 미셸 콴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훈련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누가 우승할 것인지 안다고 했습니다. 재능이 뛰어나 넘어지지 않는 아이보다 가장 많이 넘어지면서도 계속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아이가 장차 우승한다는 것입니다. 넘어짐은 실패가 아닙니다. 포기하는 마음이 실패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 속에서 실패가 우리를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도약의 계기로 삼아 더 완벽하게 일어섭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를 독약 삼아 늘 아픈 기억만 떠올리면서 상황을 최악으로 몰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인생의 성공 방정식은 자신의 꿈을 향해 오뚝이처럼 칠전팔기하는 믿음으로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도전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십니다. 하지만 사단은 낙심하는 사람의 마음에 파고들어 영혼까지 파멸시킵니다.

그러므로 사단에게 속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자원하는 예물을 드려 먼저 감사함으로 심으십시오. 그래서 신 16:15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 모든 소출과 우리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을 받아 누리며 온전히 즐거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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