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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옷을 찢고 (민 1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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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옷을 찢고 (민 14:1-38)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앞세워 애굽에서 자기 백성들을 인도해 내실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를 먹었고 반석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한 선민의 기업지를 향하여 가는 그들의 행군은 실로 이 땅에 새 역사를 창조하는 장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행군이 바란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켜 그들의 도착지가 될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하셨습니다. 
각 지파에서 뽑힌 12명의 정탐꾼들이 가서 살펴야 될 임무는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첫째는 그 땅의 거민의 강약이었습니다. 
둘째는 그 땅 인구 밀도를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셋째는 땅의 호불호(好不好),즉 땅의 지형과 기후조건이 살기에 적합한지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넷째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 조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진영은 군사적 방어물이 없는 마을이고 산성은 군사적 방어물이 있는 곳인데 과연 원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다섯째는 토지의 후박, 즉 농사짓기에 적당한 토지의 비옥한 정도였습니다.
여섯째는 수목의 유무였습니다.
마지막 일곱째는 그 땅 실과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12명의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저들 나름대로 상세히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12명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비극적인 일을 직면하게 됩니다. 
10명의 족장들의 보고는 가나안 땅과 그 거민의 강성함으로 인해 결코 그 곳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파송한 12명의 정탐군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의 의견은 같았습니다. 이들은 증거품으로 실과를 보이면서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 올라가서 취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그 자리에서 무시되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한 10명의 정탐군들의 보고를 듣고 그 자리에서 방성대곡(放聲大哭)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까지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한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역행하는 죄악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열 정탐군의 부정적인 보고는 가나안 행군에 찬물을 끼얹는 치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들의 옷을 찢으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현실 앞에 분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전염병으로 불평하는 백성들을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구체적이고도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아니하셨습니다(민 14:13-20).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고 거역한 백성은 모두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옷을 찢으면서 분노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 에 대한 분노입니다.

본문 14장 4절에 『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라고 했습니다. 
열 정탐꾼들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방성대곡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민 14:1-3).

1) 모세의 명령은 곧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민수기 13장 1절에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라고 했습니다. 

2)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민수기 13장 2절에 『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이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습니다.
민수기 13장 2절에 『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그 종족의 각 지파 중에서 족장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명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간과(看過)해서는 안됩니다.
신명기 1장 21절에 『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신명기 1장 22절에 『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 하기에 』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12지파의 족장들로 하여금 정탐하도록 하는 것은 본래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정탐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선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1장 23절에 『 내가 그 말을 선히 여겨 너희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둘을 택하매 』라고 했습니다. 
『 선히 여겨 』라는 야타브( )는 "올바르게 취급하다"는 의미입니다. 백성들의 정탐꾼 파송 제의가 비록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신다고 했습니다(삼상 15:11).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후회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보지 아니한 것은 여호와께서 사울로 이스라엘 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신 것 때문입니다(삼상 15:35).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을 왕으로 기름부어 세웠을 때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함으로 예언을 했습니다(삼상 10:10). 이 때 그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라고 했던 말이 이스라엘 가운데 속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 본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하여 사무엘상 10장 19절에 『 너희가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 『 너희 하나님을 오늘날 버리고』라는 말이 중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해서는 허용적입니다. 하나님은 강팍한 바로를 묵인하셨습니다(출 13: - 14:). 하나님은 잘못된 길을 가는 발람선지자를 허용했습니다(민 22:1-41). 즉 지나쳐서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시편 106편 15절에 『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6절에 『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라고 했습니다. 

여기 묵인했다는 말은 지극히 오래 참으셨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7장 30절에 『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창 45:7-8, 50:20; 엡 1:11; 롬 9:20).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것이 대단히 과학적이고 대중들의 민의를 수렴하는 이른바 민주적이고 인륜적인 것 같지만 이 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실패한 역사를 만들었습니까?(민 14:36-38)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아닌데 한 것은 처음에는 좋아 보이나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Ⅱ 하나님의 약속 앞에 긍정적이지 못하고 부정적인 데 대한 분노입니다.

본문 14장 8-9절에 『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입성은 여호와의 기쁘신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가나안 입성은 그 어떤 환경에도 양보되거나 타협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이 사실을 긍정적 사고로 수용하라는 말입니다.

출애굽기 3장 8절에 『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만족하게 성취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성취되는 일체의 과정이 바로 역사입니다. 
그들은 우리 밥이라는 말은 너무도 확신에 찬 백성들을 향한 격려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사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신앙의 확신 때문입니다(수 1:5-6).

이런 신앙이 있을 때 주어진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아니합니다(롬 8:31-39).
다니엘도 이런 신앙을 가지고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타협하지 아니하고 승리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단 3:13-30).
여호수아와 갈렙은 백성들 앞에서 그들의 보호자가 떠났다고 역설했습니다.
여기 보호는 "그늘"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일상생활 가운데 있는 보호의 기능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 『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보호자는 일반은총 가운데 있는 인간의 생존수단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들 원주민, 즉 가나안 족속들에게는 이런 혜택마저도 고갈된 상태라는 말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가나안 족속들의 심판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차원 높은 권면입니다.
창세기 15장 16절에 『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라고 했습니다.

Ⅲ.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때 오는 피할 수 없는 징벌에 대한 분노입니다.

본문 14장 22-23절에 『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 열 번은 여자적인 수가 아니고 계속되는 거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불평하고 거역한 것은 홍해 사건부터 시작해서 가데스 바네아 사건까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원망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민 14:27). 그래서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민 14:28).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하면서 『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한 말대로 광야에서 죽이기로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절에 『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함부로 지껄인 말에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이 말한 대로 되는 것입니다(잠 18:20-21; 약 3:5-8). 
하나님은 인간이 지은 죄에 대해서만 심판하십니다(마 25:40-46, 고후 5:10). 하나님을 원망한 이십 세 이상된 자는 전부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29절에 『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아들, 즉 이십 세 미만된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재앙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민수기 14장 31절에 『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벌로 내린 뼈아픈 40년 광야생활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14장 33절에 『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악평하고 모세를 원망케 한 자는 재앙으로 죽이겠다고 하셨습니다.
민수기 14장 36-37절에 『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탐지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으로 모세를 원망케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유다지파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 여호수아를 제외한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여기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는 말은 은밀하게 죽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백성들 앞에서 초자연적인 징벌을 받아서 공개적으로 죽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무리가 작당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를 음해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죄가 얼마나 치명적인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0절에 『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 신앙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거나 인간의 이성으로 가감하지 마십시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다른 방법을 찾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하나님이 부흥케 하시고 성공하게 하신다고 해서 그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이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안된다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된다고 하면 그 어떤 환경에서도 반드시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옷을 찢은 것은 하나님의 뜻에 도전하는 참혹한 현실을 개탄하는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여기 우리는 오늘의 가나안 행군을 주님의 몸된 교회운동이라는데 아니라고 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아합은 멸망의 경고를 듣고 그 옷을 찢었습니다(왕상 21:27). 모르드개는 유다인의 진멸 소식에 그 옷을 찢었습니다(에 4:1). 욥은 거친 들에서 태풍이 와서 지붕이 무너지고 자식들이 다 죽었다는 소식에 겉옷을 찢었다고 했습니다(욥 1:20). 욥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그의 친구들이 자기 겉옷을 찢었습니다(욥 2:12). 
랍사게가 유다백성의 분열을 선동할 때 궁내 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사관 요아가 그 옷을 찢었습니다(사 36:22). 바나바와 바울 앞에 성 밖 쓰스 산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을 들고 와서 제사하고자 할 때 이 소리를 들은 바나바와 바울은 옷을 찢었습니다(행 14:14). 

요엘 2장 13절에 『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골육들을 위해 우리의 옷 대신 우리의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신앙의 유형무형의 작태 앞에 우리의 옷 대신 우리의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들이 받을 이 땅에서의 저주와 지옥형벌을 생각하고 우리의 옷 대신 우리의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는 전혀 다른 현실 앞에 하나님의 약속을 감사합시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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