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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이 유익입니다 (시 119:6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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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유익입니다 (시 119:65-72)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유익이 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한다면 아마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척들 혹은 친구들을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나 학교, 병원과 같은 기관이나 혹은 생활에 편리를 주는 전화기나 컴퓨터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원하지 않고 피해가고 싶은 고난이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은 사실 거의 없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이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것으로 가능하면 모두가 피해가고 싶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시간 시편 기자를 통해 고난이 유익이 된다는 말씀은 그것이 분명한 진리이며 그로인해 고난 당하는 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기 때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원하기는 오늘 이곳에 함께하신 분들 가운데 과거에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경험하였거나 지금도 계속 하여 그 고난 가운데 있거나 앞으로 큰 고난을 앞두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위로와 소망을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주변에서 간혹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나름 열심히 말씀대로 살려하고 헌신하고 기도 생활을 함에도 저에게 왜 이런 고난이 있습니까?” 

그러면서 너무나 힘이 들어 때로는 하나님의 사랑도 의심스럽고 모든 것이 고통스러워서 빨리 이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실 그런 모습을 보면 목자의 마음도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여러분 아무도 고난 당하는 것을 즐겨하고 스스로 고난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인생에는 고난이 따른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대개 많은 분들이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고 그저 행복한 삶만 보장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근심이 떠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복이 있음을 알려주고 받도록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며 그 가운데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이 당하는 고난의 시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에 대해 말씀하기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부터라고 합니다.

창3:16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이 말씀처럼 여인이 범죄 함으로 받는 고통은 먼저 자녀들 때문에 당하는 고통입니다. 

잉태하고 열달 동안 잉태의 고통을 받고 그러다가 아기를 낳을 때에는 산고의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가 하면 여인들은 종속상태에 놓이는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사모하며’ 라는 말은 원뜻은 ‘기대어 의지한다’ 는 뜻으로 남편에게 의존하며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도록 만드시고 그의 다스림을 받고 지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남자도 예외일 수 없어서 창3:17-19 말씀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를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컹 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남자가 받는 고통은 먼저 땅으로부터 받는 고통입니다. 
땅도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 엉컹퀴를 내게 되었기에 땅 위에 사는 날 동안 고난이 따릅니다. 

마치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때 잡초나 해충이 없이 씨앗만 뿌려 놓아도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범죄함으로 인해 잡초가 생기고 해충이나 다른 것들이 생김으로 남자들은 그것들과 싸우면서 식물을 얻어야 하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자들은 땀 흘려야 살 수 있는 고통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말해 수고하지 않으면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필경 흙으로 돌아가리니‘ 라고 한 말씀처럼 본래 인간은 흙으로 만들었지만 생명나무 과일을 먹으면 죽지 않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함으로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없게 되어 이제는 흙과 같은 연약한 존재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되고만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 인생은 어쩔 수 없이 고난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욥5:7 말씀에 욥은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같으니라’ 고 하였는가 하면 솔로몬은 전2:22-2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그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모습으로 사는 날 동안 싫든 좋든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에 피할 수 없는 고난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맞이해야 하겠습니까?

마치 때가 되면 찬바람이 불고 겨울이 오듯 고난이 찾아온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에게 닥친 고난으로 자신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겨울은 당연히 춥습니다. 그런데 춥다고 움츠리고 불평만 한다면 오히려 그 추위는 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의 고난도 이와 같아서 이것으로 인해 자신을 저주하고 원망할수록 고난의 아픔은 배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오히려 더 활동적으로 일하면서 추위를 이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추운 날씨에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추위와 맞서며 활동적으로 일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겨울이 지나가더라는 것입니다.

참 신기한 것은 우리에게 닥친 고난도 이와 같아서 고난이 다가 올 때에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면 고난의 크기는 의외로 작아지면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우리가 고난을 대할 때에 어떠한 자세를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피하려고 할 때에는 골리앗처럼 거대해 보이지만 다윗처럼 고난을 믿음으로 담대히 맞서고자 할 때에 하나님의 능하심과 도우심을 발견하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닥쳐오는 고난을 외면하고 피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남편이 힘들게 한다고 고난을 피해 가정을 떠나고, 직장이 힘들다고 쉽게 회사를 그만두고 자녀는 부모에 대한 불만으로 집을 나가는가 하면 작은 교회가 부담스러워서 큰 교회로 가서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요나를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무시하고 배 밑창에 들어가 잠을 청합니다.

처음에는 편안한 것 같았지만 큰 폭풍에 휘말리고 결국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 완전히 소망을 잃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신에게 닥친 환란과 고난의 자리에서 회개하고 그 마음을 돌이키고 담대히 나갈 때 니느웨 성에서는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내 인생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고 풍파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결코 피하려 하거나 원망하지 마시고 그 가운데 함께하시는 능력의 손을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사실 우리가 고난을 극복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주안에서의 고난은 반드시 유익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71절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고난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첫째로는 고난 가운데 귀한 열매를 맺는 유익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귀한 것일수록 그 만들어지는 과정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귀한 것일수록 거의 고난 끝에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말에도 ‘고진감래’ 라는 말처럼 모든 귀한 열매는 고난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고 합니다.
똑같은 국가고시라고 운전면허와 사법고시는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운전면허를 위해 누가 몇 년 동안 놀지도 않고 하고 싶은 일도 하지 않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합니까? 그러나 사법고시는 그렇게 몇 번을 낙방하고 어렵게 합격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과 고생의 크기만큼 기쁨도 비례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님들이 자식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크지만 그렇다고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 어머님들이 자기 자식을 보면 그냥 가슴이 벅차오고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충만해집니까? 바로 오랜 세월동안 뱃속에서 잉태하고 죽음의 진통 속에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남자들도 땀 흘려야 먹고 사는 고통을 받지만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땀 흘린 후에 얻는 성취와 열매를 얻을 때의 기쁨은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일전에 한 집사님과 대화 가운데 한번은 이 집사님이 오른손이 부러져 깁스를 한적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 말씀이 깁스를 하는 동안 그렇게 재미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왼손으로 글씨쓰기, 왼손으로 음식먹기, 왼손으로 머리감기 등 평소에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면서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체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것은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하며 가치를 얻게 됩니다.

슈베르트는 31살까지 자신의 피아노가 없었다고 합니다.

외국 사람들이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나라는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 가운데 많은 가정이 피아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치원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피아노를 사준다고 뛰어난 음악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슈베르트 같이 자신의 피아노가 없어도 다른 곳에 가서 피아노를 배우는 환경이었지만 그 역경을 넘어설 때에 훗날 뛰어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고난은 이를 통해 믿음이 자라는 유익을 얻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믿음이 성숙해진 것처럼 우리 성도들의 믿음도 고난의 연단 속에서 정금과도 같은 믿음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이나 모세, 다윗, 다니엘등과 같이 믿음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모두 믿음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불같은 연단 속에서 더욱 그 믿음이 강하여졌습니다.

그래서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는 욥의 고백처럼 욥은 누구보다도 의로운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도 바르게 살고자 하였으며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으로 자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욥에게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은 자신도 모르게 인간적인 마음과 불순물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욥을 환란과 고난 속에 연단 하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욥은 당시에 고난은 너무나 괴로운 것이지만 그 연단 속에서 정금과도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됨은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자라게 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고난은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유익이 있습니다.

67절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71절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할렐루야!

고난은 누구나 피하고 싶고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너무나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새끼가 자라면 둥지에 깔았던 깃털을 다 밖으로 물어 던져 버린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푹신한 둥지에 안주하려는 새끼들을 강제로 나오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새끼들이 둥지에서 기어 나오면 강제로 공중으로 끌고 올라가서 사정없이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이런 잔인한 어미가 어디 있습니까? 새끼가 날개를 퍼득 거리다가 땅에 떨어지려고 하면 다시 발로 낚아서 공중으로 올라가 또 떨어뜨리기를 반복합니다. 언제까지요? 자기 혼자 날개짓을 할 때까지입니다. 

바로 그런 연단 속에서 하늘의 지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정없이 광야로 몰아 넣으시고 연단을 시키시는데 마치 죽일 것처럼 만드시므로 ‘하나님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오기 직전까지 몰아 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독수리의 어미와 같이 우리를 고난 가운데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세계적 거부였던 ‘록펠러’ 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심으로 고아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남긴 유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①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②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③주일예배는 본교회에서 드려라 ④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⑤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⑥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⑦잠자리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⑧아침에는 꼭 성경을 읽어라 ⑨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⑩예배시간에는 항상 앞에 앉아라’ 였습니다. 그리고 록펠러가 어머니 유언대로 산 결과 53세에 세계 최고의 재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점점 바빠지면서 십일조 생활은 열심히 했지만 신앙생활이 점점 게을러졌고 그러다가 심각한 병에 걸렸는데 머리와 눈썹이 나병환자처럼 다 빠지고 근육이 굳어 가면서 나중에는 음식도 먹지 못해 겨우 비스켓 몇 조각과 물만 마실 수 있게 되었고 병원에서는 일년 이상 못 산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신문에서 자신이 일년 밖에 살지 못할 것이며 그가 죽으면 그 재산이 누구에게 갈 것인가에 대한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내가 한 주에 몇 백만 불을 벌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는 허무한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긴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어 회개하면서 이제부터는 열심히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나누어주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뉴욕의 리버 사이드 교회당을 크게 건축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자신의 땅에 유엔회관을 세웠으며 시카고대학과 세계의학연구소를 설립하고 많은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록펠러는 일년 뒤에 죽을 각오를 했는데 십년이 되어도 죽지 않았고 사십년을 더 살아 93세까지 건강하게 살았으며 지금도 록펠러 재단은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찾아온 고난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에는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고난을 피하지 말고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바로 주님이 맡겨주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고난을 그냥 팔자로 여기고 숙명적으로 받아 드리는 것은 소극적인 방법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극복하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말씀하시는데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을 가벼움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먼저 우리 수고의 무거운 짐, 고난의 지친 짐은 다 주께 안고 와서 맡겨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 우리는 주님이 맡기시는 멍에, 주님이 맡기시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는데 내가 주님이 맡기시는 짐을 질 때에 주님은 내 수고의 짐, 내 무거운 고난의 짐을 대신 져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가 지면 질수록 점점 무겁고 지치게 하지만 주님의 멍에, 주님이 주시는 십자가는 지면 질수록 영혼에 쉼이 있고 기쁨과 감사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극복하는 비결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사울왕의 시기로 큰 환란과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사람의 방법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사람의 방법대로 한다면, 모든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힘과 군대로 사울왕을 물러나게 하고 왕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다윗을 탓할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왕을 통하여 자신이 당하는 고난마저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고 사울왕을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으로 인정하고 끝까지 해하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더욱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다윗을 존귀한 자리에까지 높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나에게 고난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항료는 꽃이나 열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병든 고래의 기름에서 나오는 물질이 가장 향기로운 향료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은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수목한계선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겨우 웅크리고 있던 나무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고난으로만 보지 마시고 그 속에 감취어진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오늘의 고난이 내일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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