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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라 (시 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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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라 (시 103:1-5)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해마다 11월 셋째 주일은 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우리 삶의 추수를 감사하며 주님 앞에 몸과 마음을 드려 감사하는 교우 여러분께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가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유럽의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미국에 도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거나 병들어 죽었습니다. 게다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엄청난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들 앞에는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전국적으로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기도를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어떤 농부가 이렇게 제의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비록 흉년이 들고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자유와 정치적인 자유가 있고 광대한 대지가 있습니다. 금식 대신에 감사 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말은 깊은 감화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감사 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 주일의 기본 동기였습니다.

우리가 극한 상황 속에 놓여있을 때 기도와 금식은 하기 쉽지만 감사를 드리기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흉년과 같은 어려움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할지라도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는 자세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본 시편은 감사 예배시 스물아홉 편 중 다윗이 남긴 아홉 편의 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 전면에 흐르는 시적 율동감과 내용의 풍부함, 그리고 문학적 감흥 면에서 빼어난 시입니다. 깊은 영성을 가진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의 노래요 기도입니다. 

다윗은 그의 생애에 수많은 시련과 체험들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입니다. 그는 높은 하늘의 공기를 호흡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항상 서서 신령한 교제를 계속하는 사람의 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했던 ‘찬양의 사람’ 입니다. 

2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인은 하나님의 은택(恩澤)을 잊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성도는 자기 내면을 향하여 끝없이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독려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택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합니다.

은택이란 말의 본래적 의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하신 일’ 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영혼이나 육체에 모두 관련되는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거나 영원한 것 모두에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택은 우리의 의식주의 삶에 관련된 것들을 포함하고, 우리의 영적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포함합니다. 가장 위대한 선물인 독생자의 선물,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보혜사 성령 --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택입니다.

이 선물은 ‘하나님’ 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고 했습니다.  

이 은택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풍성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행사를 누가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인자의 손길은 언제나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애 3:22-23=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택에 싸여 살고 있음을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다윗이 노래하는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택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1. 나의 모든 죄악을 사하심 

3절=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 

우리가 송축해야 할 여호와의 은택 중에서 가장 먼저 제시되고 있는 것은 ‘죄사함’ 입니다. 이를 가장 먼저 진술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 큰 죄를 범한 후 깊은 회개를 통하여 죄사함의 은총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런 체험을 한 당사자 다윗은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바로 본절과 같은 표현으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사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자들입니까? 우리 모두는 죄 가운데 빠져 죄로 물들어 있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의 입, 손, 발을 살펴보십시오. 우리의 모든 지체들이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고 그릇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죄악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함 받아야 할 죄악의 종류와 수량은 결코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이 죄가 얼마나 많은가는 오직 하나님 만이 말하실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시 40:12= “···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이 모든 죄악과 허물들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십니다. 주님의 용서는 조건 없이,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주어집니다. 주님은 기록된 책에서 죄의 기록 자체를 깨끗이 지워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기억지도 않으십니다.

이 용서는 우리의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우리 개인에게 적용되어 집니다. 죄사함의 은택 --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하겠고, 놀라운 은혜를 인하여 주님을 송축해야 하겠습니다.  


2. 나의 모든 병을 고치심 

3절=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

우리가 송축해야 할 하나님의 은택 두 번째는 병 고침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치십니다. 

여기 ‘병(타할루)’ 은 단순히 육체적·정신적 질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한 심판으로서의 질병’ 이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독특한 단어로서, 구약에서 모두 5회 밖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신 29:21, 대하 21:19 등). 

한편 ‘고치시며(하로페)’ 의 일차적 의미는 찢어진 곳을 꿰매어 수선한다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의 치료의 은총은 모든 망가진 것을 온전케 회복시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못고치는 질병이 전혀 없는 ‘치료의 하나님’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 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병을 고쳐주시는 은택의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여기 용서와 치유의 관계는 분명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질병을 고쳐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육체의 병을 고치십니다. 죄는 우리 몸에 온갖 질병의 씨를 뿌렸습니다. 수많은 병들이 우리를 고통가운데로 몰아넣고, 마침내 죽음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은 때로 이 병들을 직접 고치십니다. 주의 종의 기도를 통하여 병을 고쳐주시기도 하고, 구역원들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고쳐주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종 약과 의료 기술을 발전케 하셔서 질병에서 고침받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택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적 질병을 고치십니다. 죄는 우리 영혼에 심각한 피해를 입힙니다. 영혼을 뒤틀리게 하고, 약하게 하며, 영원한 죽음에로 몰아갑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 그리고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영혼의 질병을 치유하십니다. 치유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온 마음으로 찬양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나의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심 

4절=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여기 ‘파멸(솨하트)’ 은 죽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속량하다(까알)’ 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역을 나타내는 단어(뤼트로마이)와 동일합니다(눅 24:21, 롬 3:24). 

그런 점에서 본문에는 죄인들을 피로 값주고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암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생명을 죽음에서 구속하시는 데에는 자신의 희생이 있었으며, 그러한 희생은 갈보리 언덕에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신 구속주(Redeemer)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구체화되고 절정에 달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을 죽음에서 속량하시는 은총을 베푸십니다. 본절은 분명 오실 메시야의 구원 사역에 대한 예언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모두 파멸에 해당하는 저주받은 인생들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예정된 죽음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 인생의 숙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 모든 인생을 죽음과 파멸에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신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임박한 위험으로부터도 우리를 건져내시는 분이십니다. 

시 91:2-3=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일찍이 타락한 도성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에 의인 롯을 구원해 내시던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임박한 위험으로부터 반드시 구원해 내십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영원한 형벌에서 건지십니다.  

요 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믿는 자의 생명을 죽음에서 영원한 삶으로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총을 마음껏 찬양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4. 나에게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심 

4절=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하나님의 은택은 그가 베푸시는 인자와 긍휼 속에 잘 나타납니다. 여기 ‘인자(仁慈)’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세드’ 는 여호와와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는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여호와는 그의 백성을 삼기 위해 택하신 자에 대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없고 신실한 사랑으로 대하시는데, 바로 이러한 사실을 강조하는 단어가 ‘헤세드’입니다. 

‘긍휼(矜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합’ 은 본래 여성의 자궁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어머니가 자신의 자궁에서 자라나는 태아에 대해 지니는 본능적 사랑과 같은 뜨거운 사랑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자궁에 품고 모든 양분을 제공해 주듯이, 또한 출생 후에도 온갖 사랑으로 정성을 다해 키우듯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향해 뜨거운 사랑으로 돌보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언약의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다윗이 노래하고 있는 하나님은 가장 부드럽고 온유하신 하나님, 사랑과 연민으로 충만하신 하나님,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인자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서를 보십시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 66:13=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주님의 인자와 긍휼은 우리의 영혼을 감싸며, 모든 방면에 우리를 둘러 진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면류관을 씌우십니다.

신약의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관을 쓰고 왕 노릇 할 것을 미리 보았습니다. 

엡 2:6-7=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시편기자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인자와 자비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며 노래합니다. 우리 또한 다윗을 따라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택을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노래하고 또 노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로스엔젤레스에서 토레이 목사님이 설교를 하던 중 얼마 전에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던 미담을 예화로 들었습니다. 미시간 호수에서 큰 배가 파선이 되어 많은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그 중에 헤엄 잘 치는 한 사람이 혼자서 열일곱 명이나 생명을 구해 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참 이렇게 용감한 정신을 우리가 배워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회중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제가 바로 그 사람이올시다.” 토레이 목사님은 너무 감사해서 그를 강단 위에 올려 세워 놓고 소개하면서 극구 칭찬한 후에 이와 같은 좋은 일을 했는데 무슨 느낀 바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사람은 조금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뭐 특별히 느낀 바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내가 그때 열일곱 사람을 구해 주기는 했는데 그중 한 사람도 나한테 와서 고맙다고 말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보통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커서 이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느 성도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이시여, 모든 은혜를 내게 풍성히 주셨으니 이제 한 가지를 더 주시되, 감사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택을 계속하여 풍성히 누리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교회에는 극한 어려움 속에서도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영혼이 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송명희 시인은 1963년 서울에서 출생한 날부터 뇌성마비 장애를 가졌습니다. 11세에 독학으로 한글을 배우고 17세에 하나님을 만나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약 4년간 하루 5시간씩 기도하며 성경 30여 번 통독으로 주님의 지도하심을 받아 시를 쓰게 되었고, 1985년 5월 시집 2권과 1권의 간증 수기를 출간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수십 권의 저서와 작사 찬양 100여곡을 발표하였고, 교회, 학교, 방송출연 등 1,500여회 집회 활동과 기독신문 칼럼을 11년간 연재 집필하였습니다. 

다음의 글은 송명희 시인이 쓴 “나는 황제보다 하인이 부럽습니다” 라는 책에 있는 글입니다.

이십대가 될 무렵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되어 자신의 꿈을 펼쳐가는 동갑내기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나는 늘 방안에서 기도생활만 하는 초라하고 비참하기까지 한 내 자신을 한탄하며 절규했다. 

“나는 아무 것도 없어요! 자유롭지 못한 몸,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고···

난 정말 밥만 축내는 사람인가요? 땅만 버리는 무화가 나무처럼 무익한 종인가요?”

그런 나에게 주님은 기름을 부으시며 나를 쓰겠다고 하셨지만 현실은 절망적이었고 주님을 시를 불러주셨다. “말하는 대로 써라!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는 왼손에 토막 연필을 쥐고 엎드려져서 울면서 써 내려갔다.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나 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네!”

너무나 엉뚱하신 말씀에 기가 막혀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폭발하는 울음을 발산하며 소리쳤다.
“아니요! 난 못 쓰겠어요! 하나도 공평해 보이지 않아요! 뭐가 공평해요? 

내겐 아무것도 없잖아요! 하나님은 공평하지 않아요!”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써라!”

치열한 공방전이 반복되고 결국 하나님의 고집이 승리하셨다. 그런 형태로 시를 썼다. 단어 하나라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었고 내 마음대로 하더라도 다시 지우고 불러 주시는 대로 모은 것이 몇 권의 노트가 되어갔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송명희 시인은 1997년 말부터 무리한 활동으로 목 디스크를 얻어 전신 마비가 되었고 지금도 온 몸의 통증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여전히 ‘공평하신 하나님’ 입니다.

여러분도 송명희 시인처럼 ‘공평하신 하나님’ 이라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수감사절기를 맞아 특히 우리의 감사생활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읍시다. 주님이 베푸신 은택을 하나하나 손꼽아보며, 주님 앞에 마음으로 감사하며 물질로 감사하고 매일의 삶으로 감사하는 진정한 감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죄사함의 은총, 치유의 은총, 구원의 은총, 그리고 인자와 긍휼의 은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을 깊이 깨닫는 자는 다윗처럼 노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러므로 이런 은택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일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시인을 따라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노래하며 감사합시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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