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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의 문 (시 100:1-4, 요 11: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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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문 (시 100:1-4, 요 11:40-42)

요즘 한참 인기 있는 ‘개그 콘서트’에 ‘감사합니다’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아들녀석이 유학간대서 돈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마누라도 같이 간대 감사합니다. 박사까지 하고 온대 감사합니다” 등의 재미있게 세태를 풍자한 코미디입니다. 저도 즐겨보고 한바탕 웃습니다. 그러나 웃고나면 뭔지 씁쓸한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사회에 진정성 있는 감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의구심도 가집니다. 입으로만 감사하는 일도 우리 주변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리처드 백스터는 ‘입술로 감사하면 마음에서 감사가 일어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감사가 입술로 나타납니다. 동시에 입술의 감사가 마음의 감사로 변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감사는 감사할 조건이 아닐 때 하는 감사가 참 감사입니다. 감사가 조건적일 때 감사하는 것이 참 감사가 아닌 것은 그런 감사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관원은 “옷을 벗기고 매로 치라”고 하여 바울과 실라를 옥에 던졌습니다. 한밤에 바울과 실라가 찬송하였을 때 옥문이 흔들리고 문이 열렸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탈옥할 줄 알고 자살하려고 하였고 바울은 자신이 도망가지 않았으니 자살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 일로 바울은 간수를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할 조건이 아닌데 감사하며 찬송하였을 때 기적이 일어났고, 전도의 문이 열렸습니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감사는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하박국 3:17-18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이런 감사가 진정성의 감사입니다. 이런 기쁨이 참 기쁨입니다. 
  
감사는 내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출 때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는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초점을 맞출 때 감사가 우러나게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맞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믿고 말씀에 초점을 맞출 때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는 현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미래에 초점을 맞출 때 진정한 감사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를 ‘더(more)의 시대’라고 합니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집, 더 많은 지식, 더 좋은 차, 더 큰 행복을 좇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더, 더, 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더더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음주측정하는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듣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느니라”(눅 12:15)고 하셨습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욕심을 버리고 감사하는 생활은 그것 자체가 벌써 축복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전에는 걷지 않고 버스만 타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가용을 가져도 불만이 가득합니다. 이전에는 쌀밥만 먹을 수 있어도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근사한 곳에서 스테이크를 먹어도 불만이 쌓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더더더’를 해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오늘 성경에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고 합니다. 성전 문은 감사하는 자가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성전 문에 들어가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문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감사할 조건이 충분합니다. 오늘은 우리교회가 감사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올해 한 해 동안도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감사할 일을 헤아려 보면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잊고 살던 감사의 이유들을 특별히 찾아서 하는 날, 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은 일입니다. 감사의 계절을 맞이하여 오늘 특별히 찾아서 감사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성전 문에 감사하면서 들어갑니다. 

시편 100:4에는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라고 합니다. 성전 문에 들어가는 자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성전 문에 들어가는 출입증입니다.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증입니다. 불평하는 자, 험담하는 자, 이런 자는 성전 문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성전 문에 들어가기를 거절할 것입니다. 
  
출입증이란 것을 보세요. 안에 비밀이 많을수록 출입이 까다롭습니다. 출입증을 목에 걸고 다닙니다. 열쇄를 가진 자만이 물을 열고 들어갑니다. 비밀번호를 알아야 들어가는 곳이 많습니다. 어떤 곳은 지문으로 인식하여 문이 열리고 들어갑니다. 요즘은 눈동자의 홍채로 자격자를 인식하여 문이 열립니다. 어떤 곳은 얼굴을 인식하여 문이 열리기도 하고, 사람의 냄새로 문이 열리게 하기도 한답니다. 비밀이 많은 곳에 들어가기 어려운 법인데 하나님의 집에는 큰 비밀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비밀을 알기를 바라서 누구나 다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은 바로 감사입니다. 
  
성전 문은 누구나 다 환영합니다. 단지 감사하는 자에게만 열립니다. 옛날 수도원의 어느 수도사의 방 입구에는 “불평하는 자는 이 집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글을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불평하는 자는 그 집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감사가 얼마나 큰 자격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1절에는 “온 땅이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민족, 자기 백성이란 개념이 아주 강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러난 자기 민족, 백성의 제한을 넘어 이방인들과 온 이방나라가 감사하고 기뻐해야 한다고 합니다. 감사는 특정한 사람, 특정한 민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해야 할 덕목입니다.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감사할 이유가 많겠지만 성경은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우리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가장 아름답게, 가장 보시기에 좋게, 최상의 상태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감사할 일이 무엇입니까? 부모님께서 먹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입혀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결혼할 수 있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가장 감사할 이유는 내 부모가 되신 것 때문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것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고, 무엇을 하시고, 무엇을 내리신 것 때문이 아닙니다. 여호와가 내 하나님이심이 감사의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으신 분인 것이 감사의 이유입니다. 내가 그분의 소유인 것이 감사의 이유입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감사의 이유입니까?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그의 양이며, 성전이 우리를 지으신 그분의 집인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이신데 그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그분의 양입니다. 그분의 사랑을 받고 상속자가 된 그분의 백성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감사의 요건입니다. 
  
토마스 머턴은 ‘고독 속의 명상’에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감사에 의해 완전해진다고 하였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참 지식도 없습니다. 감사할 줄 알면 지식이 충만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네 가지 죄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상숭배입니다. 둘째는 음행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을 시험한 일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 것입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 약속과 축복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마음에 불만과 원망이 쌓일 때 가장 효과적인 치료약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천국은 감사하는 사람이 가는 나라이고, 지옥은 불평하는 사람이 가는 나라이다. 마귀의 세계만이 감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감사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갑니다. 감사대신 불평하는 사람이 갈 곳은 딱 한 곳, 지옥밖에 없습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간다면 손바닥만 한 천국 땅도 아깝습니다.  
  
감사는 더하기(+)와 같답니다.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 더해져서 소복이 쌓이고, 감사하면 플러스 축복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까지도 몽땅 빼앗아 간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더하기를 좋아하지만 더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여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는 기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먼저 무덤 문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게 하십니다. 그리고 11:41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예수님께 감사를 배우세요. 예수님께 배우는 감사는 과거를 통하여 감사하십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미래에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감사합니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말씀을 들으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감사하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게 들어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는 감동을 줍니다. 감사는 그 자체가 감동입니다. 
  
감사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입니다. 감사는 우리에게 열쇠요 특권입니다. 감사하므로 자녀로서의 특권을 누리기 바랍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올 때마다 감사함으로 교회 문을 들어오세요. 집에 들어갈 때마다 감사함으로 집 문에 들어갑시다. 감사함으로 직장 문을 들어갑시다. 여호와가 하나님이며 내가 양인 것만 알면 감사치 않을 일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둘째, 성전 뜰에 찬송하면서 들어갑니다. 
  
시편 100:4에는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자는 찬송하는 자입니다. 감사하면서 성전 문에 들어가는 자는 찬송하며 성전 뜰에 들어가는 자입니다. 온 땅이여, 온 나라여, 모든 백성들아 찬송하면서 성전에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감사의 열매는 찬송입니다. 
  
어느 가정, 어느 교회이든 찬송소리 크고, 찬송에 힘이 있는 곳은 마귀가 얼씬도 못합니다.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 가정 이런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가정이나 교회가 감사가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감사로 하지 않는 것이 절대로 결과가 좋지 못합니다. 감사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캐나다 밴쿠버의 리전트 신학교의 영성학 교수인 마르바 던교수는 육신의 병고로 늘 고통을 당하는 분입니다. 한쪽 눈은 보이지 않고, 얼마 전에는 다른 한쪽 눈 마저 실명할 뻔했습니다. 다리를 심하게 절어 혼자서는 잘 걷지 못합니다. 45년 동안 당뇨를 앓고 있고, 극심한 저혈압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신장 이식을 받은 후 하루에 11번 약을 먹어ㅏ야 합니다. 이만 하면 감사하지 않을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지요? 

그런데 그 분은 ‘의미 없는 고난은 없다’라는 책에서 자신의 약함과 고통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선물들 안에서 더 푹 쉴 수 있게 해주는 두 가지 영적 연습은 찬양과 감사이다. 찬양은 감사보다 크다. 찬양은 순전히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그 자체 때문에 드리는 것이다”. 감사는 찬양으로 드러납니다. 찬양은 구원받은 감사의 표현입니다. 감사하는 자는 찬양합니다. 찬양하는 자는 이미 감사한 자입니다. 
  
찬양은 감사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로 인하여 감사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더 귀한 일입니다. 감사의 영역을 넘어서서 찬양의 지경으로 들어와야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찬양에는 불평이 없습니다. 찬양에는 원망이 없습니다. 찬양에는 거절이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지 모든 상황에 대해 감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상황이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전문은 감사하는 이가 들어오는 문입니다. 성전 뜰은 찬송하는 이가 밟는 뜰임을 꼭 명심합시다. 
  
범사에 감사하면, 범사에 찬송하게 됩니다. 찬송은 끊임없는 감사의 샘입니다. 찬송하면 고통도 사라지고, 걱정도 사라지고, 미움도 사라지고, 원망도 사라지고, 아픔도 사라지지고 감사만 남습니다. 그래서 찬송은 우리 영혼의 가장 좋은 양약입니다. 
  
어느 부흥사 목사님이 지방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기 위해서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하필 냄새가 나고 못생긴 여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목사님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났습니다. 순간 불평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옆에 있는 이 냄새나고 못 생긴 여자가 내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는 있습니다. 
  
조니 에릭슨이란 미국 여성이 있습니다. 이 여성은 다이빙을 하다가 척추에 부상을 입어전신불수가 되었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가 되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있을 때 어느 전도자가 방문하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녀는 화가 벌컥 치밀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고작 이것 것입니까? 제발 날 사랑하지 말고 내버려 달라고 해 줘요”. 그러나 전도자는 끊임없이 내일도 그 다음날도 전도하러 왔습니다. 

조니는 마침내 마음이 열렸습니다. 전도자는 “만일 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하나님께 아주 놀랍게 쓰임을 받을 것입니다”. 조니는 당장은 내키지 않았지만 “좋다, 한번 이를 악물고 감사해 보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는 정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저주가 사라지고 평안이 생기고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온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펜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가 그린 그림에는 꼭 “PTL”이라고 사인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Praise the Lord”(주님을 찬양하라)라는 말입니다. 

조니가 사용하던 펜은 질렛트하는 회사의 제품이었는데 사장이 소문을 듣고 조니를 평생 직원으로 채용하였습니다. 그리고 회사 광고를 할 때에 입에 펜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조니를 광고의 모델로 썼습니다. 이 광고 덕분에 질렛트의 제품이 날개돋친 듯이 팔렸습니다. 그리고 광고마다 “PTL”이라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이 회사는 크리스천회사도 아닌데 이 글을 넣은 광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회사도 판매가 엄청나게 신장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감사한 결과, 회사는 대박이 났고, 소녀는 평생 부요하게 살 수 있었고 평안하였습니다. 한 소녀의 의지적 감사가 놀라운 결과를 가지고 오게 된 것입니다. 
  
PTL은 주님을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감사하는 자는 찬송할 수 있고, 찬송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찬송은 하나님이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50:23에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감사로 예배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므로 하나님이 가장 기쁘게 받으십니다. 

  
결론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은 ‘습관들의 묶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공한 사람은 성공을 부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고, 실패한 사람은 실패를 부르는 습관들로 뭉친 결과라고 합니다. 감사하는 습관을 가진 집사님이 차에 치어 공중에서 떨어지면서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 분이 병원에 있을 때 그분을 친 운전기사분이 “세상에 이런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더랍니다. 

미국에서는 서로 만나면 “How are you?”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습관적으로 “I'm fine”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교통사고가 나서 쓰러져 있을 때 경찰이나 사고 차의 운전자가 “How are you?” 하면 절대 “I'm fine” 그러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은 한 발 더 나가서 “감사합니다” 그랬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런데 그 집사님은 그렇게 공중에서 떨어졌어도 하나님께서 무사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자신이 감사했더니 하나님이 보호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감사하는 습관은 건강과 행복을 낳습니다. 우리 교회, 우리 집, 우리 직장, 우리 학교의 문이 감사의 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들어갈 때마다 감사하면서 들어가십시오. 우리의 문들이 찬송의 문이 되게 하십시오. 그래서 매일 감사와 찬송이 끊이지 않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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