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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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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6-18) 
 
 
성도에게는 모든 날이 거룩하게 보내야 할 날입니다. 특별한 날을 구별하여 지키다보면 나머지 날은 거룩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생각할 수 있음에 대해서는 늘 주의해야 합니다. 추수감사예배 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면서 감사의 제목들을 찾아보곤 합니다만 이 날 하루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버린다면 참 이상한 태도가 될 것입니다. 추수감사예배를 꼭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에 구별한 날이니 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은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 3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그 중에 특히 ‘감사’를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지 못해서 많은 번민과 갈등의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보다 명확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비추어 그 뜻을 실천해 나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명확한 뜻조차 순종하고 있지 않는 상태라면, 불명확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기란 더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아주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16-18).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 설립된 교회입니다. 바울을 시기한 유대인들이 시장 건달들을 동원하여 소동을 일으켰기 때문에 사도는 그곳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아직 분명한 리더가 없는 어린 교회인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박해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야만 견딜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오해로 이 땅의 삶에 대해 소홀히 하고 게으르게 사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아직 성경 진리에 견고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그들은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교훈에 유혹받기 쉬웠고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기 쉬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형편에서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오늘날의 성도의 형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실물경기가 힘들어지는 반면 일은 점점 고됩니다. 힘에 겨운 일과 더불어 상사로부터 질책을 당하기고, 인정받고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동료와 경쟁해야 하기도 합니다. 생존 전쟁의 현장에는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갈등과 상처가 발생합니다. 오해와 곡해로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하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관대하게 용서하지 못하고 날카롭게 항의하거나 쉽게 잘못을 시인하지 못하고 일단 책임을 회피하기도 합니다. 자녀들에 대한 책임감과 불안한 노후 생활에 대한 무게는 날로 무거워집니다. 모두가 피해의식 속에 날카로워지고 사나워져서 이기적이 되기 쉬운 현실들입니다.

지난 한해 우리 교회의 삶을 돌아볼 때도 실상 즐거운 일들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원했던 일들이 성취되지 않은 경우도 많고, 오랫동안 기도해왔지만 응답받지 못한 기도들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돌봐야 할 가족친지들의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 마음고생하기도 하고, 건강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나빠진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염려하고 근심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했으므로, 성취된 일들과 응답받은 기도와 좋아진 환경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감사하는 것도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아닙니다.

성경의 교훈은 단지 품위 있는 삶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강령으로 생각하면 당장 문제가 생깁니다. 삶에 대한 진지함이나 심각한 고민 없이 늘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 형식주의도 문제고, 속에는 슬픔과 원망이 가득한데 겉으로만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위선도 문제니까요. 형식주의자나 위선자의 모습은 결코 성경이 성도에게 요구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성도는 성경의 교훈을 접할 때 세상의 교훈들 중 하나처럼 혹은 지난 일은 모두 훌훌 털어버리거나 잊어버리고 새출발의 계기로 삼으라는 처세술의 하나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구별됨이 전혀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는 성경의 교훈 앞에서 도대체 우리가 어떤 존재이기에 이런 모습으로 살도록 명령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어떤 실패를 할지라도 그 실패가 도무지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을 만큼 기뻐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며 살던 데살로니가 사람들 중에 그들은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죄악 중에 있던 그들이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길과 진리와 생명을 모르고 헛된 것을 위해 시간과 정열을 허비하는 동안 그들은 참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 죄 가운데 살던 존재의 변화를 생각하면 성도는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구원하신 후에 알아서 살도록 방치해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목자가 양을 이끌듯 인도하시며 공급하시며 보호하십니다. 때로는 인생길이 굽어 도는 수가 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비록 성도에게 고난이 닥칠지라도 오직 감당할 수 있을 만큼으로 적절히 제어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롬 8:28). 아무리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목자 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성도는 안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또한 아무리 절망적인 환경일지라도 깊이 감사할 수 있는 궁극적인 결과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성도 역시 부족함이 많습니다. 허물진 인격으로 인해 성도 역시 타인에게 상처를 줍니다. 하나님 백성답지 못하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보다 못한 것 같은 자책감을 가지게 될 때도 있습니다. 타른 성도에 대해 실망하고 자신에 대해서도 실망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성도는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견고히 설 것입니다(고전 1:8). 수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날에는 극치에 이른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장차 성도가 어떤 존재로 변할지를 생각하면 무한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었으며, 어떤 존재로 살고 있으며,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생각할수록 성도는 기뻐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히 만족하게 되며,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이 신분으로 인해 감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믿지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겨서 아옹다옹하고 울고불고 하는 일들이 성도에게는 하찮은 것들에 불과하여 비교하자면 배설물 같이 여기게 되지요(빌 3:8). 이렇게 해서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다 보면 외적인 삶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모습이 자연스레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항상” “쉬지 말고” “범사”라는 단어들은 서로 바꿔도 의미상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쉬지 말고 기뻐하라 범사에 기도하라 항상 감사하라, 혹은 범사에 기뻐하라 항상 기도하라 쉬지 말고 감사하라고 명령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의 삶의 태도는 상황과 형편에 따라 들쭉날쭉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지속적으로, 모든 일에 변함없는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형통할 때뿐만 아니라 힘겨울 때도, 희망이 넘칠 때뿐만 아니라 절망뿐일 때도, 살맛 날 때뿐만 아니라 죽고 싶을 때도,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모습과 범사에 감사하는 모습은 기도하는 모습의 양 날개처럼 위치해 있습니다. 만일 성도의 삶에 기도를 제거한다면 기쁨과 감사도 제거될 것입니다. 심각한 현실 문제에 직면할 때, 문제 되는 그 상황을 바라보거나 해결해 낼 수 없는 무능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은 슬픔과 괴로움이 커질 것입니다. 반면 똑같은 상황에서도 시선을 하나님께 향하는 사람은 삶의 모습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중단 없는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점점 돈독하게 만듭니다. 끝임 없이 그분을 생각하게 하고 그분의 관점에서 모든 일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또한 그분과 나와의 관계를 상기시켜 주어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지 않게 하지요.

교회는 이 땅의 어떤 단체와도 구별되는 특성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봉사도 하고 구제도 하지만 교회의 모든 활동은 하나님의 나라를 증명하여 내보일 때만 존재할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그 나라의 왕이신 하나님의 뜻에 충실히 순종하여서 그분의 백성다운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구별된 삶의 모습들을 통해서 진실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그분의 백성이 여기 이 땅에 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뻐할 만한 상황에서 기뻐하고, 감사할 만한 상황에서 감사하는 일은 세상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기뻐할만하지 않고 도무지 감사할 수 없을만한 상황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일은 성도만이 가능합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기도가 응답된 일과 보호하심과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체험을 기억하여 감사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한 감사들은 우리의 신앙이 관념적이지 않게 합니다. 구체적인 감사가 쌓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인 신뢰가 약해지지 않게 합니다. 구체적으로 감사제목을 찾되 이 땅의 가치관을 기준으로 찾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감사한 일들을 찾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정답을 나열하는 이론적인 감사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될 수 있어야겠지요. 마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중에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점검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교회를 세워나가게 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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