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미 1:2-7)

첨부 1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미 1:2-7)
 
미가 선지자는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고 미가 선지자는 웃시야를 제외한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때에 활동했습니다. 선지자로는 이사야가 선배고 미가가 후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의 별명이 작은 이사야입니다. 선지자를 다른 말로 하면 예언자인데 예언자라고 해서 모두 미래의 일만 예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언자에 쓰이는 “예”가 한자말로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 무엇인가를 맡긴다는 뜻의 맡길 예(預)와 둘째, 미리 무엇인가를 한다는 뜻의 미리 예(預)가 있습니다. 선지자의 경우도 하나님께서 메시지를 주셔서 현재의 일에 관해 증거할 때는 맡길 예를 쓰고 미래의 일을 증거할 때는 미리 예를 쓰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현재의 일도 예언하고 미래의 일도 예언하는데 그 메시지가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가서는 미가 선지자의 세 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2장이 첫 번째 설교, 3-5장이 두 번째 설교, 6-7장이 셋째 설교입니다. 미가의 설교는 미가가 온 종일 연구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주시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의 설교를 신탁(oracle)이라고 합니다. 

미가서 세 편의 신탁은 시작하는 메시지가 “들을지어다”로 다 동일합니다.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미 1:2). “청컨대 들으라” (미 3:1).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미 6:1). 그러므로 “들을지어다”가 나오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설교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세 편의 설교는 내용구성이 동일합니다. 전반부는 죄에 대한 심판의 내용이고 후반부는 구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각각 심판과 구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왜 세 번씩이나 반복하느냐? 왜냐하면 설교마다 다른 관점에서 심판과 구원을 증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미가 1-2장에 나오는 첫 번째 설교는 무슨 내용이냐? 미가 1-2장은 북왕국 수도인 사마리아의 멸망과 남왕국 수도인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멸망 가운데서도 야곱의 남은 자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는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설교 가운데 특별히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미가 1장 2-7절까지는 북왕국 수도인 사마리아의 멸망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2절 전반) 

미가의 첫 번째 설교도 역시 “들을지어다”로 시작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들을지어다”가 뒷부분에 있지만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샤마”(들으라)가 가장 먼저 나와 있습니다.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미 1:2). 

이 명령은 지나가는 단순한 명령 같지만 우리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의무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지를 지으시고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허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고 말씀을 듣다가 먹고 살만하면 하나님을 버리고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인간의 타락된 본성이고 허물인 것입니다. 
 
히브리어 동사로 “듣다”는 “샤마”입니다. “샤마”라는 단어는 귀로만 듣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귀로는 듣지만 마음으로는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집회하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으라고 했더니 한 사람이 계속 싫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자기 아내를 따라 교회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제가 하는 설교를 듣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계속 부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샤마”가 아닙니다. “샤마”는 귀로도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그 말씀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왜 옛날 사마리아가 멸망한 이야기를 들어야 되느냐?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와 같은 이야기는 모두 거울과 경계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고전 10:11).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우상 숭배하고 음행하다가 망하지 말라는 경계로 기록된 것입니다. 죄짓고 음행하는 사람들은 사마리아의 심판이 자기가 당할 심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둘째, 말씀을 들으라는 명령의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닙니다. 미가 1장 2절에 보면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아”라고 나와 있습니다. 세계 모든 사람뿐만이 아니라 짐승들까지도 다 들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가 죄짓다가 망한 것을 왜 우리가 들어야 되느냐? 사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최후 심판하실 때를 대비하여 견본으로 심판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형사모의재판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법과대학생들이 모여 학생들 중에서 변호사, 검사, 피고인을 뽑아 모의로 재판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사마리아를 심판하시는 것은 온 인류를 최후의 심판하실 때 이런 방식으로 한다는 견본으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Ⅱ. 증인이자 재판장이자 검사이신 하나님(2-4절) 

“들으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들으라는 말씀일까요? 재판장에서 증언을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고 판결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판결문을 들으라는 것이고 검사로써 고소하시는 하나님의 송사를 들으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증인도 되시고 재판장도 되시고 검사도 되시며 일인삼역으로 재판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미가 1장 2절 후반부에 보면 하나님께서 증인으로 나오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거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미 1:2). 하나님께서 증인으로 서시는데 유리한 증언을 하시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고 음행했던 것을 불리한 입장에서 증언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증언하시는 것은 거짓된 증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전에서 증언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이라는 것은 솔로몬이 지은 지상성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있는 성전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시 11:4). 하나님께서는 성전에서 사람의 모든 행위를 보시고 관찰하며 검토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증언을 반박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재판을 받을 때 자신이 피고로 있는데 누군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하지만 반대로 굉장한 사람이 나와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준다면 정말 신이 날 것입니다. 우리는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다 안다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 예수님께서 증인으로 나오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 사람은 죄인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받아야 될 형벌을 내가 십자가에서 다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이 사람은 형벌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면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미가 1장 3-4절에서의 하나님은 재판장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그 아래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미 1:3-4). 

밀이라는 것은 양초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불 앞의 양초처럼 녹아버린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판사들은 뇌물을 먹기도 하고 판결을 왜곡할 수도 있습니다. 형제끼리 재산을 가지고 싸움이 났는데 한 사람이 변호사를 사서 재판을 하자 다른 사람이 그 변호사에게 돈을 더 줘서 중요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판에 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처럼 변호사도 다 믿을 수 없습니다. 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재판장입니다. 뇌물도 받지 않으시고 편견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시 7:11). 

미가 1장 3절에 보니까 이 의로우신 하나님이 처소에서 나오십니다.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시 68:5). 하나님께서 당신의 처소에 계실 때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지만 처소에서 나오시면 그때부터는 재판하시고 진노를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진노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한 것입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사 26:21).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나오시면 인간은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나오셔서 무엇을 하십니까?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밟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누르고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높은 곳은 무엇이냐? 높은 곳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지리적으로 높은 곳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우산처럼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비해 가운데 지역이 높은데 이스라엘의 수도들도 모두 이런 높은 지역에 있습니다. 예루살렘도 그렇고 사마리아도 높은 곳에 있어 적들이 공격하기 힘든 난공불락의 요새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밑에서 올라오시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와 밟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든 사마리아든 하나님께서 밟으시면 녹아버린다는 것입니다. 

둘째,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을 착취하고 등쳐 먹는 통치계급을 의미합니다. 카다피가 리비아에서 수십 년 동안 백성을 누르고 착취하다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통치계급도 하나님께서 밟으시면 녹아버리는 것입니다. 

셋째, 영적으로 높은 곳을 성경에서는 산당이라고 번역합니다.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임시로 산당에서 제사를 받아주셨습니다. 솔로몬도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솔로몬에게 지혜와 부와 권력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7년에 걸쳐 성전을 완공한 이후에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사람들이 계속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 같은 거짓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높은 곳인 산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것과 우상 숭배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겨도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야 되고 하나님을 찬양해도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나오셔서 높은 곳을 밟으시는데 하나님의 발은 불과 같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히 12:29). 하나님의 불 같은 발이 닿으니까 산이 녹아버리고 골짜기가 갈라져 버리는데 마치 불 앞에 양초가 녹아버리듯이 비탈로 물이 쏟아지는 것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물난리가 났을 때 우면산에 산사태가 난 것처럼 산이 녹고 골짜기가 갈라지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이 구절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언어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생생한 상징이다." 여러분, 하나님 발에 밟히는 인생이 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높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한번 밟으시면 양초가 녹듯이 녹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발에 밟히지 마시고 은혜를 받는 존재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가 1장 5절에서 판결을 내리시는데 이제는 검사가 되어서 왜 그런 판결을 내려야 되는지 공소를 하십니다. “이는 다 야곱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를 인함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뇨 사마리아가 아니뇨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뇨 예루살렘이 아니뇨” (미 1:5). 하나님께서 왜 처소에서 나와 발로 밟으실 수밖에 없으시냐? 허물과 죄 때문입니다. 허물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향해 반항했다는 것이고 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을 의도적으로 어겼다는 것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십계명을 지키겠다고 언약을 맺었는데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사람에 대해서 반드시 벌주시는 것입니다. 


Ⅲ. 판결의 집행(6-7절) 

세상에서는 판사가 판결을 내려도 집행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판결은 정확히 집행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우상 숭배자를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둘째, 우상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로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고 그 지대를 드러내며 그 새긴 우상을 다 파쇄하고 그 음행의 값을 다 불사르며 그 목상을 다 훼파하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미 1:6-7). 

B.C. 721년 앗수르 왕 살만에셀과 사르곤이 쳐들어와서 결국 사마리아는 폐허더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열 지파는 폐허가 되어서 온 세계로 흩어지고 사마리아는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우상도 다 파괴되었습니다. 바알 신전에는 창기가 있었습니다. 남자들이 바알신을 섬기고 오겠다는 것은 바람을 피우고 오겠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바알 신전이 창기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바알 신전에 왜 이런 창기들이 있느냐? 땅에서 사람들이 음행을 하면 바알과 아세라가 성적인 자극을 받아 비가 온다고 믿는 이상한 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상도 다 파쇄하고 우상 숭배자들은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포로가 되어 그렇게 좋아하던 우상을 마음껏 섬겨보라는 것입니다. 


결론 

사마리아의 모든 심판 과정을 묵시로 본 미가 선지자는 너무 마음이 슬퍼 들개같이 애곡하고 타조같이 애통한다고 했습니다. 미가가 사마리아를 견본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목적은 무엇이겠습니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라고 주신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심판을 받으면 우리 가운데 아무도 천국에 갈 만큼 의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은 피해야 됩니다. 미가 선지자는 우리에게 심판을 피할 길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첫째, 변화산에서 베드로, 요한, 야보고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마 17:5).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니까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발에 밟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심판을 피해야 합니다. 여러분, 제가 말하는 것이 제 말이면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말이 하나님 말씀과 동일하다면 들으셔야 됩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둘째, 죄인들은 변호사를 잘 만나야 됩니다. 변호사를 잘못 만나면 없는 죄도 뒤집어씁니다. 요즘은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변호사 된 사람도 있어서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족제비가 닭을 훔쳐 먹은 사건이 발생했는데 곰이 판사였습니다. 여우가 닭 훔쳐 먹으려다가 족제비가 훔쳐 먹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곰 판사에게 족제비가 훔쳐 먹은 것을 봤다고 하자 족제비의 변호사인 원숭이가 말하는 것입니다. “곰 판사님, 족제비가 닭 훔쳐 먹은 것을 본 증인은 여우 하나이지만 족제비가 닭 훔쳐 먹은 것을 보지 못한 증인은 억만이 넘습니다. 한 명의 말을 듣겠습니까? 억만 명의 말을 듣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니까 곰이 헷갈려서 무죄라고 선고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변호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증인도 되시고 변호사도 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히 7:25). 예수님을 변호사로 삼는 사람들은 100% 승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변호사입니다. 우리가 착하고 죄 없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변호사를 잘 만나서 천국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18). 우리는 심판에서 면제되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우리는 심판에 이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죄가 많아도 지옥 가긴 다 틀렸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 받아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마음대로 죄짓자고 하면 됩니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갈 사람은 이 땅에서도 의와 선을 행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