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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움을 극복합시다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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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극복합시다 (시 23:1-6)


사람들은 누구나 여러 가지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합니다.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합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거나 재난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합니다. 병에 걸려 고통을 당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합니다. 모두가 내 곁을 떠나고 나만 홀로 남게 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합니다. 이렇게 하다 죽으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제일 두려워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잘 되던가요?

일전에 미국의 시사잡지 [타임]이 사람들의 두려움에 대해 심층보도한 일이 있습니다. 면접조사 방법으로 사람들의 두려움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려 276가지나 되더랍니다. 그리고 보도를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사람들이 겪는 두려움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단언했습니다.

이 보도가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최첨단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과거 원시시대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지식을 가져도, 더 많은 힘을 가져도, 더 많은 재산을 가져도 두려움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1. 두려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두려움이란 어떤 대상에 대해 무서워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두려워하는 대상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지금 겪고 있는 것입니다. 높은 곳에 올라갑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합니다. 무서워 벌벌 떱니다. 수술을 받으려고 수술실로 들어갑니다. 겁이 나서 벌벌 떱니다. 늦은 밤 홀로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릅니다. 

둘은 마음속에만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마음속에 담겨있는 과거의 기억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예를 들어 어려서 엄마를 잃고 미아가 돼서 길거리를 헤매던 기억이 떠올라 밤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마음속으로 걱정하며 두려워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 일이 잘못되면 어떻게 하나?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나? 늙어서 혼자되면 어떻게 하나? 지금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만의 하나 가능성을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장차 다가올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셋은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어려서 시골에서 한 밤중에 혼자서 공동묘지 근처를 지나간 일이 있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뒤에서 무엇인가가 좇아오고 있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볼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저 앞쪽에서 소복 입은 여인이 나타날 것만 같습니다. 사실은 아무런 실체가 없는데 상상하며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공포 영화를 보면서 두려워 떱니다. 사람의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해 무서운 장면을 연출해 놓았습니다. 마치 자기가 그 영화 속의 상황 속에 있는 것처럼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왜 이런 것들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창 3:10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아담이 대답한 말입니다. 아담이 원래 두려움을 모르고 살았으나 자기들의 잘못으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말씀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처음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두려움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범죄하면서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됐습니다. 죄에 대한 형벌을 두려워하게 됐습니다. 범죄한 이후부터 늙기 시작하고 죽게 된 것처럼 이 때부터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딤후 1:7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워하도록 만들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더더욱 우리를 두렵게 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두렵게 만들지도 않으십니다. 나아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원치도 않으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두려움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요?

욥 3:25-26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 있구나” 

욥이 사탄의 시험으로 큰 환란을 당한 뒤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에게 한 말입니다. 사실 자기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재산을 잃은 것도 아니고, 자녀를 잃은 것도 아니고, 질병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말 자기가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군대 생활하던 30년 전만해도 군대에서 구타가 심했습니다. 그것도 ‘줄빠따’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내무반 최고참이 내무반 청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전원 집합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엎드리게 했습니다. 바로 자기 밑의 병사를 몽둥이로 한 대 쳤습니다. 이 병사가 다음 병사를 두 대 쳤습니다. 이것이 점점 불어서 세대, 네 대, 다섯 대로 내려옵니다. 그 때 제가 제일 졸병이어서 40번째였습니다.

점점 밑으로 내려옵니다. 앞쪽에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집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견디기 힘든 두려움에 빠져 들어갑니다. 그 순간 제가 뼈저리게 느꼈던 것은 매 맞는 것보다 매 맺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정말 크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제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제발 먼저 맞았으면 좋겠다.”

그렇습니다. 고통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고통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리고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욥이 두려움을 느끼게 된 이유는 사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욥을 시험하기 위해 두려움을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탄이 욥을 공격할 때 바로 이 두려움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독사가 먹이를 사냥하는 방법은 아주 독특합니다. 먹이를 발견하면, 순식간에 덤벼들어 뭅니다. 날카로운 이빨로 먹이에게 독을 주입합니다. 그리고 나면 먹이의 온 몸에 독이 퍼집니다. 먹이가 꼼짝하지를 못합니다. 도망도 못치고, 저항도 하지 못합니다. 그 때 다가가 서서히 먹이를 삼킵니다.

사탄의 공격 방법이 이렇습니다. 일단 우리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우리는 무력해 집니다. 믿음이 흔들립니다. 기도도 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의지하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인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서서히 죽어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려움 뒤에는 사탄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두려움으로 우리의 평안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해야 합니다.

두려움이 사탄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해야 합니다.

본문 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목자가 양을 사랑하듯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인도네시아 선교 여행 도중 신학교 강의 차 지방 도시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스마랑이라는 도시 한 복판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윤재남 선교사로부터 웃지 못 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도시 한 복판에 네덜란드 식민시대부터 있었던 빌딩이 있습니다. 창문이 무려 천개나 되는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입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몇 년째 비어있다는 것입니다. 이유인 즉 귀신이 나온다고 사람들이 이 건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도시의 90% 이상의 주민이 다 이슬람교 신자들입니다. 그런데도 귀신 나온다고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 빌딩이 텅 비어있는 것입니다. 도시 전체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도시 사람들이 사탄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심령에 하나님이 없으니 사탄이 주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두려움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모르니 두려움을 이겨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에 사로잡혀 버리게 되고 결국 사탄에게 완전히 지배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 1서 4:18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는 말씀입니다.

엄마 품에 안겨 고이 자는 아이는 정말 평안해 보입니다. 그 어떤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이 아이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면 평안하게 됩니다. 그 어떤 두려움도 다가 올 수 없습니다. 비록 사탄이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공격해 온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면 다 막아낼 수 있습니다.

찬송 405장 3절 가사는 이렇습니다.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결코 두려움이 다가올 수 없는 것입니다.

3. 주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를 믿어야 합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저를 안위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함께 하심을 믿는다면 그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위르겐 휠러가 쓴 [성공의 비법]을 보면, “두려움의 상대성”에 관한 설명이 나옵니다.

혼자 숲 속을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100미터 앞에 굶주린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립니다. 만약 이때 느낀 두려움의 정도를 1부터 10까지 중에서 책정하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10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손에 칼이나 창이 있다면 9정도로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옆에 동행자가 있다면 두려움의 정도는 5나 6정도로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여섯 명이 똑같이 무장하고 있다면? 혹은 손에 창 대신에 총이 들려 있다면? 바로 옆에 나를 이런 위험에서 탈출하게 도와줄 오토바이나 자동차가 있다면? 뭔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 많다면 두려움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은 상대적입니다. 우리가 가진 방어수단에 따라 두려움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방어수단으로 가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방어수단 가운데 하나님만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주만물을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믿으십시오. 그 믿음이 그 어떤 두려움이라도 지켜줄 것입니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는 저 유명한 [금문교](Golden Gate Bridge) 있습니다. 이 다리는 샌프란시스코만(灣)과 태평양을 잇는 골든게이트해협에 설치되어 있는 길이 2,825m, 너비는 27m의 현수교입니다.

이 다리는 미국 토목학회에서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습니다. 지형과 일기의 악조건 때문에 건설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 됐지만 1933년 착공하여 1937년 불과 4년 만에 완공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공사 초기에 사고가 많았습니다. 공사 도중에 높이 70미터 아래 바다를 내려 보다가 두려움에 온몸이 마비되어 35명이나 바다에 떨어져 희생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설계도 잘 되었고, 자금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두려움 때문에 공사가 진척되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지휘본부에서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방법을 연구하다가 다리 공사 아래에 그물을 치기로 했습니다. 공사하다 떨어지더라도 그물 때문에 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때부터 인부들은 그 그물 때문에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말끔하게 걷어내려면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기에게는 그런 안전장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믿어야 합니다. 목자가 강도나 맹수들로부터 양들을 지키기 위해 지팡이와 막대기를 준비하듯 우리 주님께서 모든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를 준비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려움을 완전히 걷어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은 바로 사탄이 사람들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무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힘으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 그리고 주를 믿는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면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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