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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위기를 만났습니까 (삼상 3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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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위기를 만났습니까 (삼상 30:1-8)

사람들을 가득 실은 배 한 척이 폭풍을 만나 바다 한가운데서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쌓였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가고 바람은 거세집니다. 그때 누군가가 더 어두워지기 전에 등불을 켜자고 소리를 질렀고 비상등을 찾아 불을 밝혔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넘쳤고 노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가야 육지인지 방향을 알 수 없어 우왕좌왕하면서 다시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나서서 등불을 끄자고 합니다.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등불을 끄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용기를 가지고 등불을 꺼버렸습니다. 배 안에는 고요가 넘쳤고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불빛이 보인다! 육지의 불빛이 보인다! 우리는 살았다!” 등불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육지의 반딧불 같은 희미한 불빛이 주위가 어두워지자 확실하게 보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위기를 만났을 때 그 위기를 우리는 어떻게 넘기는지를 생각해봐야하겠습니다. 잠시 등불을 꺼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내 고집이라는 등불, 내 욕심이라는 등불, 내 지식이라는 등불을 잠시 꺼 보면 그 해결점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삶의 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남 다른 지혜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할 즈음에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꿈을 가진 자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꿈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줍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위대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위기라는 말을 흔히 사용합니다. 이 위기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해 보자면 “위험한 기회, 위험한 고비”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웹스터 사전에서는 터닝 포인트(전환점)라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위기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위기라는 말을 잘 생각해 보면 “위험한 고비임과 동시에 새로운 꿈을 향한 기회이다.”라고 정리를 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부정적으로 보면 절망으로 떨어지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지금까지 가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기회로의 전환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위기를 보는 눈입니다.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위기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곧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위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심각한 상황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 결정적으로 가장 무서운 위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 위기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이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지러질 때 이것은 마지막입니다. 이 영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신앙의 마지막까지 승리냐, 믿음의 도중 실패냐를 가름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 절체절명의 위기이자 최후의 위기인 영적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다시 용기를 얻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한 사람 다윗을 만납니다. 

옛날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하면서 이방 땅 블레셋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곳이었지만 자기의 주관대로 도피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 곳 왕의 신임을 얻고자하여 동족인 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블레셋 방백들의 반대로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쫓겨 사흘 길을 되돌아옵니다. 

그런데 시글락으로 되돌아 와보니 시글락 성이 아말렉의 공격을 받아서 불타고 있었습니다. 더 기막힌 일은 그곳에 살고 있던 다윗의 식구들을 비롯해서 모든 부녀자들을 다 끌고 가버린 것입니다. 4절에 보니까 그 때의 심정이 나와 있습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얼마나 기가 막히고 분했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6절에 보니까 자기 백성들에게 배신까지 당합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인 다윗의 입장에서 적들에 의해 성이 불타고 부녀자들이 다 붙들려간 참담한 상황에서 이제는 자기 백성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자기들을 위하여 지금까지 몸을 던져 피 흘려가며 투쟁했던 다윗이었건만 이제 와서 이 모든 책임이 다윗에게 있다고 소리치는 군중들의 모습입니다. 언제는 “다윗이 최고다! 세상에 다윗 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하던 사람들이 상황이 어려워지자 태도가 돌변합니다. 이것이 세상인심입니다. 참으로 인간의 배신은 순간적입니다. 

지금까지 자기를 추종하던 부하들이 일시에 살의(殺意)를 품을 정도로 자신을 적대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다윗으로서는 큰 위기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윗의 위기관리능력이 발휘됩니다. 침착한 모습을 곧바로 유지합니다. 6절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고 했습니다. 과연 신앙인 다윗의 다윗다운 모습입니다. 백성들의 반란을 통하여 곧 바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내는 신앙인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이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 아니라 힘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뿐임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소위 신앙인이라고 하는 우리들이 신앙의 위기 속에서 승리 할 수 있는 비결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분명히 위기의 시대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일촉즉발 전쟁의 위험 등 모든 것에 불안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총체적인 위기가 영적위기로까지 몰아가려고 합니다. 어떻게 할 것입니까? 어떻게 이 불안한 위기를 이길 수 있을 것입니까?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서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큰 위기를 맞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것, 이보다 더 큰 위기가 어디 있습니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말할 것 없이 다 망했습니다. 한 가닥 기다렸던 그들의 종교에 대한 신앙마저도 그렇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빌라도의 힘을 빌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 같은 총체적 위기가 어디 있습니까? 가장 역사적이고, 가장 우주적인 위기입니다. 이렇듯 엄청난 일을 당하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막 14장을 보면 “깨어 있어라”, “기도하라”, “함께 가자”이렇게 세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먼저“깨어 있어라”는 것은 “정신 차리라”는 말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현재에 대해서, 너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는 피곤합니다. 세상은 흔들립니다. 그러나 정신은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해면에 신포도주를 적신 것을 먹이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거부하셨습니다. 독주를 마시고 차라리 정신을 잃으면 고통도, 아픔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다하시며 십자가를 지시는 것은 모르고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당하고, 저 앞에 있는 고통과 어려움과 사건의 의미를 다 알고 정면으로 대하십니다. 생생한 정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깨어라, 정신을 차리라” 고 하셨는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문제가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성도라면 언제든지 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특히나 위기 속에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 영적 위기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다가서서 기도하는 일이 최우선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위기는 때로 우리를 기도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있습니다. 그런고로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이 불만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사람에게 불만이 있든지, 교회에 불만이 있든지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로 되어야 됩니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느낄수록 기도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새벽기도회가 텅텅 빕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아직도 아무런 위기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목사인 제가 하나님께 “하나님! 우리 성도들에게 위기를 주십시오. 기도 좀 하게...”라고 기도를 해야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 년에 한 번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 자체가 영적위기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특히 항존 직분 자들은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오늘 다윗도 이걸 잘한 겁니다. 8절 보세요.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그랬습니다. 기도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말입니다. 제가 볼 때에 우리 교회에도 신앙의 위기가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 안 하는 것을 보면 놀랍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존심이 상해도, 누구에게 불만이 있고, 조직에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해야 할 것은 해야 합니다. 왜 위기를 자초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대적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계속해서 위기 앞에 예수님은 “함께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임박한 고난, 죽임당하는 현실, 다 충분히 미리 아셨습니다. 또 사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아셨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줄로 믿었습니다.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받아들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위기 앞의 모습이자 우리들에게도 요구하시는 신앙의 위기 앞에 보여야 할 자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오늘 아무런 위기가 없습니까? 평안하게 하시는 은혜에 감사할 것이요, 혹시 영적 위기에 몰려 있습니까?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해야 됩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누구를 탓하고 절망하는 어리석은 시험에 빠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다윗처럼 얼른 하나님의 뜻을 여쭙는 지혜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아름다운 신앙의 세계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위기 앞에 섰을 때 다윗의 다시 시작하는 그 복을 우리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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