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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를 만드는 사람 (수 2: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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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만드는 사람 (수 2:15-21)

[여호수아 2장 15-21절]
15.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16.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갈지니라
17.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19.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20.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21.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여러분 중의 아는 분이 많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호단체인 World Vision이 한국 전쟁이 낳은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라는 것을 아시나요? 월드비전 세계회의에 가면 창시자인 밥 피어스 목사님이 피골이 상접한 아이를 안은 사진이 있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한국 고아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현재 월드비전이 하는 일이 많은데, 가장 많이 돕는 나라가 미국이고, 캐나다와 호주에 이어 한국이 네 번째로 돈을 많이 내는 나라라고 합니다. 참 놀랍고 감사한 일이 아닌가요?

노무현 정권 시절 지금 유엔사무총장 반기문 씨가 외무부 장관으로 있었습니다. 당시 노 대통령과 부시의 만남에서 배석하던 반기문 씨에게 주한 미 대사였던 버시바우가 이렇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왜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싶은가요?” 
그때 반기문 씨의 대답이 부시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답니다. 
"pay back to debt!" 즉,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감사를 알고 은혜를 갚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님을 가장 감동시키는 일 역시 은혜를 알고 감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생에서 가장 감사할 일을 경험한 한 여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목숨을 건 결단을 요구하는 순간이었고,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더욱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에 앞서 제일 먼저 정탐꾼을 보냅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위기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 여리고 성은 ‘비상상황’입니다. 이들은 익히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듣고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 2장 9-1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이제 여리고 성에서는 몰래 들어온 정탐꾼들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생 라합의 집에 이들이 숨어 들어가게 된 것이지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 정탐꾼과 라합의 대화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 2장 13절입니다.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라합은 여리고 성에 닥친 위기 가운데서 자신의 가정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고, 기회로 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구원의 기회가 모두에게 열렸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 실질적인 예가 바로 라합의 사건입니다.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기까지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오늘 본문에서 라합에 대하여 ‘기생’이라고 소개하는데, 히브리서 11장 31절과 야고보서 2장 25절에서도 라합을 기생이라 소개하며 ‘포르네’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매춘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행하시고,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시고 약속을 이루시는데 매춘부를 사용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깨는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큰 은혜와 큰 감사는 우리의 예측을 벗어나는 곳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납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지요. 기생 라합을 사용하셨다는 것은 오늘 우리 가운데 누구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서 제외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지요. 중요한 것은 누구이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일하심 앞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 고신일 목사님이 쓴 [준비된 2인자]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주 인상적인 예화가 있어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 날 미국 피츠버그의 한 가구점 앞에서 초라한 모습의 할머니 한 분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때 가게 주인이 나와 할머니를 안으로 모셨다. 
할머니는 “가구를 사려는 것이 아니라 차를 기다리는 중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은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물건은 안 사셔도 괜찮으니 편히 앉아서 구경하시며 차를 기다리세요.”라며 차 번호를 적어 몇 번이나 밖에 나가 차가 오는지 확인했다. 그는 차가 올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할머니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며칠 후 가구점 주인은 미국의 대재벌 카네기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비 오는 날 제 어머님께 베푼 당신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회사와 고향 스코틀랜드의 집을 짓는 데 필요한 가구를 모두 당신의 손에 맡기겠습니다.”

외국 속담에 “낡은 코트 자락 밑에 천사의 날개가 감추어져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추해 보이는 사람 옷자락 속에 천사의 날개가 숨어 있다는 뜻이죠.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해 드립니다. 
미국에 유명한 대학 중에 Emory University가 있습니다. 모든 대학이 그렇듯이 돈이 있어야 좋은 대학이 될 수 있죠. 우리나라에 대사로 왔었던 레이니라는 분이 그곳의 총장을 지냈죠. 그분이 학교에 갈 때면 늘 외로운 노인의 친구가 되어주고 말벗이 되어 주었답니다. 
그 노인이 죽을 때 유산으로 코카콜라의 주식의 몇 %를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유명한 코카콜라 회사의 오너였던 것이죠.
어쩌면 지금 여러분에게도 감사할 기회가 날개를 감춘 채 수없이 지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든 기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기회 말입니다.

오늘 라합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탐꾼들이 왜 라합의 집에 들어갔는가?'라는 물음이 아니라 그들이 라합의 집에 들어갔을 때, 라합이 취한 행동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그 여인이 몸을 파는 직업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행한 일들 말입니다.

지난여름 경기연회 평신도들을 위한 집회를 갔을 때입니다.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술 먹고 주정하는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종업원이 저에게 속삭입니다. 위에 콘도에서 무슨 행사가 있는데, 도망 나와서 술을 먹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 여종업원도 그 사람들이 예배하러 온 사람들이었던 것을 알았던 것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전체 평신도들이 모인 집회에서 소위 중직자라는 사람들이 예배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술을 먹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술이 구원의 표징은 아니지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문을 잠그고 술을 먹는 것이 구원받은 자들의 모습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이 하는 것을 숨기고 드러낼 수 없다면 구원받은 자의 모습은 아니지 않습니까?

참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구원받은 자로서 붉은 줄을 내리고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겉모양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자의 반응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이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창피한 이야기입니다. 꽤 오래됐는데,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모인 장소에서 하룻밤을 여관에서 묵게 된 한 전도사가 밤에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하는 아가씨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싸움이 났고, 사건이 접수되었습니다. 목사안수를 받는 날 경찰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경찰서를 드나드는 기자가 그 사건을 보고는 신문에 낸 것이지요.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정말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행동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가 감사를 낳을 수도, 심판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 말입니다.

전적인 신뢰가 불편하지만, 감사를 낳습니다. 
라합은 몸을 파는 여자였지만, 하나님에 대하여 듣고 있었고 믿음이 있었습니다. 라합이 하나님에 대하여 들었을 때,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인생과 가족의 삶을 하나님께 의탁합니다. 이것은 ‘모험’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전적인 의탁과 신뢰”였습니다.

감사의 일들은 전적인 의탁과 신뢰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이제 그녀의 삶에 중요한 표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구원의 역사에는 위험이 따르기도 합니다. 
여호수아 2장 18절을 보세요. 정탐꾼들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구원의 역사를 확산시킵니다. 바로 라합에게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비천한 여인이었지만, 한 사람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 가족이 영향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 라합이 즉각적으로 행동에 옮겼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1절을 보세요.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구원받은 자의 특징입니다. 지금 정탐꾼들이 돌아갔으니, 적어도 며칠이 지나야 올 것입니다. 하지만 라합이 작정을 하고 난 후에 곧 바로 붉은 줄을 창에 내렸습니다. 결단하고 나면 즉각적인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이제 상상을 해보세요. 붉은 줄을 내리고 난 후에 라합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매일 붉은 줄이 잘 매달려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을까요?” 왜냐하면, 언제 올지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이 혹시라도 못 보면 어떻게 합니까?
전적인 신뢰로 행동에 옮기고 나면 삶이 실천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니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싫어한다든지, 교패를 붙이는 것을 꺼린다든지, 성경이나 성구를 놓는 것을 주저하는 것을 봅니다. 믿음에 대한 자신과 결단이 없는 것이지요.
참으로 신기한 것은 붉은 줄을 내리면서부터, 붉은 줄을 확인하는 삶을 살게 되고, 확인하는 삶이 구원받은 자의 감격을 기대하며 살게 한다는 것이지요. 
기대가 없는 사람에게는 감격도 없다는 것을 아시나요?

우리가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붉은 줄을 내리는 순간 라합은 무척 불편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함께 살던 여리고 사람들이 갑자기 내려진 그 줄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아무 특징이 없던 집에 붉은 줄이 내려지면서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었을 것이고, 
심판의 날이 이르기까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불편함으로 끝나는 일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매일매일 기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지 모르지만, 라합에게는 구원의 날이 다가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를 찾아온 터키 선교사를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터키 사람들은 태어나면 주민등록증에 종교를 기록하게 되어 있답니다. 7천5백만의 인구 중에 크리스천은 4천 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당연히 이슬람이고, 교회를 다니게 되면 서류를 갖춰서 기독교인이라고 기록을 해야 합니다. 
그 순간부터 그들에게는 고난이 찾아옵니다. 취직하기도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거나, 이제 자신들이 당하는 불편함과 손해를 교회가 보상하라고 돈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붉은 줄을 내린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 믿는 것 때문에, 교회에서는 봉사하는 것 때문에 야단도 맞고, 사람들에게 핀잔도 받고, 입에 오르내리는 경우를 봅니다. 아마도 가장 욕을 먹는 사람들이 주차 안내를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아마도 안내를 하지 않았다면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왜 듣고, 때로 얼굴을 붉히는 것인가요? 그런데 누군가의 특별한 헌신을 통해, 누군가의 인내를 통해, 누군가의 섬김을 통해 감사의 일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 감사예배에서 진정한 감사가 무엇일까요? 모든 일이 잘 풀려서, 내가 누리는 것 때문에 감사하는 것에 얼마나 감격이 있을까요? 사실은 붉은 줄을 내리고 사는 우리의 삶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격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사랑과 미래에 대한 축복 때문에 기대가 있는 감사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사랑에 대하여 많은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4-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라로 맺고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입니다. 
편리함이 아닌, 불편함이 만들어내는 감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죠. 불편한 것이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편리하게 살고, 내가 누리는 것이 행복과 축복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기치 않은 만남, 그 만남의 축복
여호수아 2장은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 정복을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1절을 보세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처음에 언급한 대로 라합은 몸을 파는 사람이었고, 어쩌면 정탐꾼들이 들어가기에 가장 용이한 장소였기에 그곳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은 특별히 누구의 집을 염두에 두고 정탐꾼이 들어간 것이 아니었기에 “예기치 못한 만남”이었고, 그것이 기대하지 못했던 축복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 만남이 축복이 되었지만,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축복은 거저 오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여리고 성이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오는 것을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 2장 2-3절을 보세요.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여리고 왕에게 고한 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몇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말한 점, 그리고 그들이 라합의 집으로 들어간 것을 알았던 것으로 보아 쉽게 정황을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상황에서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을 보호한다는 것은 굉장한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그의 전 생을 건 모험일 수도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일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하나님, 오늘 이 자리가 복된 자리가 되게 하시고, 오늘 만나는 사람이 우리 인생에서 복된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사실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길 가운데 일어나고 있음을 믿을 진데, 우리의 삶이 좀 진지해지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반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누가 주의 낯을 피하리오?” 
이 세상을 먼저 살았던 우리 신앙인들의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지난여름 대전에서 한동대와 만청 트레스디아스를 인도하러 갔을 때입니다.
무척 피곤한 상태에서 몸 곳곳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려움증이었습니다. 그런데 엉덩이까지 가려움증이 번졌습니다. 가까운 피부과를 찾아갔는데, 조금은 보이기 창피한 곳이라 저를 모르는 대전에 있는 피부과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의사 선생님께서 “목사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을 피해 왔는데 보자마자 아는 척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예배를 방송을 통해 보고 있다며 반갑게 맞아주는 것입니다. 
그때 저에게 생각난 말이 “누가 주의 낯을 피하리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아는 사람이 없으면 피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의 범죄함을 보세요. 그가 동생을 죽이고 두려워 숨었으나 하나님이 찾으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만남이 “예기치 못함”이라고 표현해도,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일어나는 일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난여름 영산 순복음 교회 여름 수련회에서 저녁 집회를 인도할 때였습니다. 성가대가 찬양을 하는데, 곡 중 솔로가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소리였기에 누가 부르는지 보려고 하는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었죠.

그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이 있습니다. “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부인해도,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축복과 심판의 갈림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라합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모두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죠.

제가 7월 20일 Facebook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대학교 4학년 졸업고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누군가 저를 찾았습니다. 가평의 경찰서에 가 확인할 것이 있다고. 그곳에는 젖은 책가방이 덩그러니…. 가장 친한 친구가 열차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오랜 기간 시신을 찾는 과정에서 제 마음을 아프게 한 건 그 친구의 고민과 아픔을 친한 친구인 제가 몰랐다는 것이죠. 
그 후에 저에게는 중요한 인생의 좌우명이 생겼습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그리고 후회함을 남기지 말자고. 오늘 만나는 누군가에게 최선의 사람, 그리고 최고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댓글을 달았습니다. 
조○○ 목사님 글을 읽고 정신이 번쩍 나네요. 저도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 최고의 사람은 좀 힘들겠지만, 최선의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박○○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네요, 지금 같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최고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근데 이거 무지 어려운 거죠? ㅋ
○○○ 저도 세미나에서 들은 얘기가 있어서 yesterday is history, today is present(선물), tomorrow? 감동받았습니다! 현재에 집중하라는 강사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백○○ 네 목사님 ^^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가셔서 감사하네요..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실 때 최선을 다 하시지요.. 사마리아 여인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지요... 기꺼이 자신의 시간은 낮은 우리를 위해 낭비하셨지요... 아빠 하나님이 보고 싶은 날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만남, 예기치 않았던 만남이 축복이 되도록 하는 것,
감사와 축복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붉은 줄을 내리는 결단이 감사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수없이 많은 만남 가운데 스쳐 가는 만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기념비를 세우는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배운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감사는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 또한, 붉은 줄을 내리며 매일매일 기억하고 실천하는 삶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
지금까지 지나온 날들이 "history" 즉, 하나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하고, 여러분에게 주어진 ‘오늘’이 'present' 선물임을 알아야 합니다. 선물은 감사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누군가 주는 이가 있어서 받는 것입니다.
(김병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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