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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채색옷을 입은 요셉 (창 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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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옷을 입은 요셉 (창 37:1-4)

"베스트 드레서(Best Dresser)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옷을 잘 차려입는 사람을 드레서라고 하는데 그 해에 가장 옷을 잘입는 사람을 뽑아 상을 주는 것입니다. 그간 베스트 드레서 상을 받은 사람들 중에 가수 HOT도 보이고, 야구선수 이승엽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수 조용필, 영화배우 신성일, 방송인 서세원 등도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고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도 과거에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되었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언제 어디서나 분위기에 맞는 옷을 잘 선택해서 입는다는 점입니다. 값비싼 외제 브랜드 옷을 입었다고 드레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행을 따른다고 드레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스타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의식해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여 옷을 입는 것이 드레서의 특성입니다. 

이제는 옷이 실용으로 입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옷 입기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가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에 옷은 신분과 직업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내면서 그의 복장 스타일이 여러 번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요셉이 누구입니까? 성경에는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러 명 나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도 요셉이요 자기를 위해 판 묘지에 예수님을 장사한 사람도 요셉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요셉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그는 꿈을 꾸었는데 형들이 그에게 절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이 이 꿈을 형들에게 들려주었다가 형들의 미움을 받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요셉을 '꿈쟁이'요셉이라고 부릅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은 본 부인이 둘이었고 첩이 둘이었습니다. 야곱은 이 네 명의 아내에게서 모두 12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야곱의 네 아내 중에서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였던 라헬의 소생은 요셉과 막내아들 베냐민 이었습니다. 

서열상으로나 법적으로나 레아가 첫째 부인이었고 레아의 첫째 소생인 르우벤이 장남이자 아버지의 상속자였으나 야곱은 마음속으로는 사랑하는 라헬이 낳은 요셉을 장남이요 상속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은 이 요셉을 다른 아들보다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여 요셉에게 "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채색옷은 그 부족(部族) 가운데서 두 사람만이 입을 수가 있습니다. 족장과 그의 후계자만이 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 가운데서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에게 이 채색옷을 입혔습니다. 요셉을 후계자로 생각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형들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이 때문에 형들은 요셉을 미워했고 그에게 언사가 좋지 않았습니다. 쟁쟁한 형들을 제쳐놓고 되지 못한 요셉을 후계자로 삼다니 형들의 마음은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요셉은 양을 칠 때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던 못된 녀석이 아닙니까? 

채색옷을 입은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들이었고, 아버지가 후계자로 생각하던 아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했습니다. 그 꿈은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또한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들이 양떼를 치는 곳으로 요셉이 아버지 심부름을 갔다가 형들에게 잡혀 구덩이에 던져지고 맙니다. 요셉이 구덩이에 던져질 때 요셉은 형들에 의해 채색옷이 벗기워집니다.(37:23) 채색옷을 벗기운 요셉은 더 이상 아버지의 특출한 사랑을 받는 후계자의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스스로 채색옷을 벗은 것이 아니라 그를 시기하는 형들에 의해 벗기운 것이었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졌던 요셉은 형들에 의해 지나가던 이스마엘 대상(隊商)들에게 은 이십 개에 팔립니다.(37:28) 요셉은 순식간에 팔려 가는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이 때 요셉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요셉은 이제 자유를 잃은 노예였습니다. 그는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운명은 오로지 그를 부리는 주인의 손에 달려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뛰쳐나가려고만 발버둥 쳤다면 그는 한없는 억압과 답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반면 그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고 그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때를 기다리며 상황에 순응했다면 그는 기대와 간구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요셉을 보며 우리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연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고, 배척을 받으시고 십가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재판이 끝난 후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고는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고 조롱했습니다.(마27:27-29)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님이 진실로 유대인의 왕이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뿐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십니다(딤전6:15, 계17:14). 군인들이 예수님께 홍포를 입히신 것은 실로 옳은 일이었습니다. 홍포는 왕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겉으로만 예수님께 경배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경배했다면 그들은 구원을 받았을 것입니다. 군인들은 구원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구원받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옷이 벗겨지셨습니다. 옷이 벗겨졌다는 것은 모든 지위와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죄인중의 죄인이 되셨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도 아버지와 형들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옷을 벗기우고 상인들에게 팔린 것입니다.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이스마엘 사람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되팔았습니다. 요셉은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요셉은 이 때 어떤 옷을 입었을까요? 

노예가 입는 옷을 입었을 것입니다. 노예는 사람이면서 사람으로서 취급되지 않았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고 팔 수 있었습니다. 주인이 노예를 폭행했다고 폭행죄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노예를 죽였다고 살인죄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전쟁포로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의 자녀는 자연히 노예가 되었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그것을 배상 할 수 없을 때도 노예가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가난하여 자신을 노예로 파는 수가 있습니다. 아무튼 노예가 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자신을 노예라고 부르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끄러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당당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전파하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롬1:1) 야고보도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야1:1) 베드로도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벧후1:1)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것입니다.(골4:12, 고전7:22) 

사도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이 종 됨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리스도 예수의 종 됨을 밝힐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포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요셉은 비록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으나 그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창39:2) 그는 육신적으로는 보디발의 종이었으나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요셉은 정직하고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듯 육체의 주인을 섬겼습니다. 눈가림만 하지 않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요셉은 육신은 노예였으나 영적으로는 자유자였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종이었을 뿐입니다. 요셉이 어떤 처지에서도 자신을 비관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노예였으나 하나님께 하듯 주인에게 행하여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주인은 모든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했습니다.(창39:4) 요셉은 권세의 2인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노예로서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 되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옥에 갇히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했는데 요셉을 보고 반한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주인의 처는 요셉의 옷을 잡고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간청했습니다. 요셉은 자기 옷을 주인의 처의 손에 버리고 도망했습니다. 이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요셉은 노예의 옷을 벗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주인의 처의 고소에 의해 그녀를 겁간하고자 했다는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창39:20) 요셉은 범죄자가 되었고 죄수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노예로서 죄수가 되었으니 이보다 더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창39:21, 23)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는 여러가지로 환란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을 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고전4:8-9)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옥에서 애굽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의 꿈을 해석해주던 요셉이 결국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되었고 드디어 요셉은 그 지혜로 인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창41:43) 요셉은 바로의 부름을 받고 옥에서 나올 때 옷을 갈아입었습니다.(창41:14) 그 옷은 죄수의 옷이 아니었습니다. 

왕을 배알(拜謁 = 지위가 높거나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가 뵘)하러 가는 자의 옷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요셉은 세마포 옷을 입었습니다.(창41:42) 세마포 옷은 애굽에서의 영화(창45:13)를 나타내는 옷이었습니다. 

세마포옷은 하늘에 있는 군대들과 천사들이 입는 옷입니다.(계19:14, 15:6) 또한 예수님의 신부(新婦)로 어린양의 혼인날에 성도들이 입을 옷입니다.(계19:7-9) 요셉의 옷을 통해 우리는 요셉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채색옷에서 시작하여 노예의 옷, 죄수의 옷, 왕을 알현(謁見 = 지체가 높고 귀한 사람을 찾아가 뵘)하는 자의 옷, 그리고 세마포 옷까지 여러 번 복장 스타일이 바뀌었습니다. 옷은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였습니다. 그만큼 요셉은 굴곡 많은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일생에 일관된, 변함없는 사실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느냐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휠씬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분과 직업은 바뀔 수 있어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가운데 그리스도께 하듯 성실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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