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갈리오의 판결 (행 18:12-22)

첨부 1


갈리오의 판결 (행 18:12-22) 
 
 
2차 전도여행(50-53년 경)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소송 사건을 겪은 이 후 안디옥으로 돌아가므로 마감됩니다. 오늘은 갈리오의 판결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스페인의 꼬르도바에서 태어난 “갈리오”는 본명이 마르쿠스 안네우스 노바투스(Marcus Annaeus Novatus)인데, 스토아 철학자이자 네로의 스승이기도 했던 루키우스 안네우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A.D. 65)의 동생입니다. 갈리오라는 이름은 로마의 웅변가 루키우스 주니우스 갈리오(Lucius Junius Gallio)의 양자가 되면서 붙었습니다. 

델포이(Delphi)에서 발견된 로마 4대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 재위 A.D. 41-54)의 서신에 따르면 주후 51년 7월 1일부터 1년 정도 “아가야 총독”으로 임직했습니다. 갈리오는 대단히 매력적인 인격의 소유자이며 재치가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신임 총독이 부임 초기에는 환심을 사려고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특성을 이용해서 이 때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고소한 듯합니다(12).

고소 내용은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13)였습니다. ‘율법을 어겼다’는 구절은 로마제국이 공인하지 않은 불법 종교를 전파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고,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앞뒤 문맥을 보면, 유대인이 고소할 때는 로마법을 어긴 것처럼 가장했으나, 정작 갈리오는 유대인의 율법 문제로 진단해서 애매함이 있습니다. 분명한 점은 고소했다는 사실 자체와 고소 내용보다는 갈리오의 판결에 좀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관심을 집중시킨다는 점입니다. 당시 널리 알려진 갈리오의 명성과 직위를 고려하면 그의 결정은 앞으로 로마제국 내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중요하게 검토해야 할 판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고소에 대해 바울은 “입을 열고” 변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갈리오는 피고의 말을 들을 필요조차 느끼지 않고 즉석에서 재판을 기각했습니다(14a). 갈리오는 이 문제의 핵심이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으로 인한 민·형사상의 사건에 해당하지 않고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 곧, 유대교 내부의 종교 갈등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14b-15a). 로마제국의 법에 저촉되는 사건이라면 마땅히 총독으로서 재판 해야겠지만 종교적 견해차이로 인한 갈등이므로 “이러한 일에 재판장이 되기를 원치 아니”(15b)한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 후 소송을 기각하고 엉뚱한 문제로 소란케 한 “저희를 재판 자리에서 쫓아”냈습니다(16).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가 전혀 아닙니다. 갈리오가 이를 유대교 내의 견해 차이로 본 것은 오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리오의 판결은 기독교 입장에서 대단히 유익한 일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전도 사역이 로마제국의 법에 위배되는 민·형사 사건이 아님이 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기독교는 로마제국 내에서 합법적 종교로 보장받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입니다. 그동안 바울은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으며 어렵게 사역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바울을 박해한다면 로마제국의 합법적인 종교를 박해하는 일이 되는 셈이지요. 유대인들의 고소가 오히려 바울의 선교활동을 도와준 꼴이 되었습니다. 총독 갈리오도 바울을 옹호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바울을 도와준 형국이 되었습니다.

판결이 끝난 후,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했습니다(17). 이 구절의 “모든 사람”이 헬라인인지 유대인인지는 불명확합니다. 총독의 호의를 얻지 못하고 재판소에서 쫓겨나자 평소에 유대인들을 달갑지 않게 여겼던 헬라인들이 폭행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재판 결과에 분노한 유대인들이 재판 책임자인 회당장에게 분풀이 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저는 갈리오처럼 누가 때렸든지 상관치 않고 싶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10)이라 말씀하셨던 주님의 약속이 가장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식으로 성취되었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성도가 당하는 “믿음의 시련”에 대해 “금보다 더 귀”하다고 가르칩니다(벧전 1:7). 이 말씀은 시련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시련도 너무 강하거나 너무 오래토록 계속되면 성도의 믿음이 떨어뜨립니다. 성도에게 시련이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롬 8:28), 그 분께서 성도에게 유익이 될 수 있도록 시련을 적절히 조절하시기 때문입니다(고전 10:13).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당하는 시련도 적절히 조절해 주셨고 합력해서 선이 되게 하셨습니다. 잠시 머물다 쫓겨 다니기를 반복했던 바울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그 후 에베소에서 3년을 머물며 사역할 수 있었던 상황의 변화 이면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던 것이지요.

아무도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재판정에 끌려갈 때, 하나님의 약속은 무산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성취되었습니다. 18a절에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했다고 했는데, 문자 그대로는 ‘충분한’(히카나스, iJkana;") 날을 머물렀다, 즉 만족할 만큼 실컷 머문 후에 떠났다는 뜻입니다. 급히 달아나야 했던 이전에 비해 참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때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산되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약속과 정반대의 형편이 되어가는 것 같은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음 중에 잠잠히 기다리면 하나님의 기막힌 반전의 손길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8-22절은 2차 전도여행과 3차 전도여행의 막간 사건들을 기록했습니다. 먼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떠나는 길에 동행했다는 사실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18). 바울의 서원은 9-10절의 환상과 연결시켜 해석되기도 하고, 고린도 사역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본문은 서원의 동기나 내용은 밝히지 않고 단지 바울이 서원했다는 사실 자체만 말합니다. 이는 이방인의 사도지만 혈통적으로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복음에 위배되지 않는 한 유대교 전통을 따라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기독교 신자가 구약에 등장하는 각종 절기 전통이나 안식일 풍습을 지킨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바울이 서원했다는 사실은, 사도 역시 서원할만한 상황을 겪었음을 말해줍니다. 때로 우리는 사도에 대해 마치 일반 성도와는 다른 성정을 가진 존재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꼬집어 물으면 부인할지라도 막연히 일반 성도보다 초월적인 신령한 존재처럼 느끼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는 특별하니까 하나님의 능력도 체험하고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체험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나는 다른 존재인 것처럼 구분해버리기 쉽지요. 하지만 성경은 사도 역시 핍박 속에서는 두려워하고 때로는 서원도 하는 우리 같은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구약의 선지자 역시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약 5:17). 그들이 탁월해 보이는 것은 그들 자체의 위대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쓰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사도는 “에베소”에 도착하자 동행자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변론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유대인들의 반응이 괜찮아서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했습니다(20a). 하지만 이번에는 바울이 허락지 않습니다. 어떤 사본에는 거절 이유가 기록되어 있는데, 흠정역(KJV)에도 “내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명절을 지키리라”는 말씀이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는 구절 앞에 첨가되어 있습니다. 22절에, 사도가 가이사랴에 상륙한 다음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었다고 했는데, 예루살렘은 시온산에 있어서 관습적으로 올라간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즉, 예루살렘에 갔다가 “안디옥”으로 “내려”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는 반응을 통해서 많은 배척을 경험해온 사도는 적잖은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위로가 되고 사람들이 영접해 주는 곳이라고 해서 그곳에 오래 거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이는 대답 속에서 사도의 행동 원칙이 자신의 유익과 자신의 원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두렵고 떨려도 머물며 말씀을 전했고,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좋은 환경도 떠났습니다. 바울은 아쉬웠겠지만, 하나님께서는 3차 전도여행 중에 그를 에베소로 인도하셔서 3년가량 머물며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아마 에베소 성도들도 사도를 보내 주시도록 기도했겠지요. 하나님의 타임 스케줄에 따라 살았던 사도의 모습 속에서 우리 삶을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때로 우리 삶의 모습은 우리가 모든 계획과 타임 스케줄을 짠 후에,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 계획을 이루어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취하게 됩니다. 그런 삶의 태도는 내 삶의 주인은 여전히 나이고 하나님은 내 삶의 수단이 되는 형태입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삶의 태도 자체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성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첫 걸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것인데(마 16:24), 오히려 자기가 강화되었고 자기 십자가를 주님께 지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 같지만 곰곰이 점검해보면 그러한 모습일 수 있음을 두렵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에 신실하십니다. 당신님의 종을 보호하시되 이방인 총독의 총명한 판단과 그의 오해까지도 사용하시는 분이며, 핍박하는 자들의 악함을 역이용하셔서 당신님의 종에게 유익하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성도는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사 40:31). 실제적으로 보호하시며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해갈수록 성도는 좀 더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게 될 것이고 좀 더 신실하게 그분 뜻에 따라 살아가려 하게 될 것입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