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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수가 흐를 때 (겔 4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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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가 흐를 때 (겔 47:6-12) 
  
물은 태양광선, 공기와 함께, 생명의 3대 요소 중의 하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물이 모든 만물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물이 고이면, 벌레가 생기고, 땅바닥을 파보거나, 식물의 줄기를 자를 때, 물기가 있음을 보면서, 물을 만물의 근원으로 보게 되었다. 우리 몸의 약 70%는 물이다. 

우리의 몸 속에 물이 약 2%만 부족하면, 갈증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 몸에 수분이 부족하면, 입술이 마르고, 혓바닥이 깔깔해지면서 두통이 생긴다. 몸에 물이 부족하면, 생각에 조리가 없어진다. 피부가 끈적끈적해지고, 창자가 뒤틀린다. 수분이 모자라면 울 수도 없다. 

입에서 음식을 씹어 삼키는데도, 수분이 필요하다. 세포가 성장하려면, 수분이 가득한 혈액이 있어야 한다. 수분이 부족하면 관절이 빽빽해질 수 있기에, 관절을 부드럽게 움직일 수 없다. 이처럼 우리 몸에는, 수분이 필요하다. 물은 생명을 살리고,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에, 물질적 물만으로는 살지 못한다. 참 만족과 행복을 얻지도 못한다. 우리 영혼에 신령한 수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세상 것에 갈망하고, 툭하면 화를 낸다. 근심걱정이 떠나지 않고, 죄와 두려움에 떨게 된다. 영적인 생각도 못하고, 다른 사람이 잘 되면 배가 아프다. 

회개의 눈물도 흘릴 수 없다. 그러면 영혼을 적셔줄 생수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나? 생수의 강은 성전에서 시작되었다. 생수의 근원은 성전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요, 원천이시다. 세상의 모든 물의 근원이 다 말라도, 하나님의 생수는 마르는 법이 없다.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왔다(1).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죽은 땅을 되살아나고, 생물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났다.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한다. 성전에서 나온 물은 성령을 말씀한다. 이 생명수는 점점 더 깊어졌다. 처음에는 발목, 무릎, 허리,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다고 하였다. 

1. 생수가 흐르면 무엇을 주는가? 

(1) 생명을 준다(6-10).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는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물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황폐한 광야지대이다. 아라바는 광야, 황무지라는 뜻이다. 나무를 찾아볼 수 없는데, 그 곳으로 내려가는 강줄기가, 나무를 가득하게 만든다고 하였다. 황폐한 광야에 강이 흐르자, 그 주변에 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이다. 

물은 광야를 복되게 하고, 결국 바다에 이르게 되어, 바다의 물을 되살아난다. 에스겔이 본 바다는 사해다. 사해는 죽은 바다다.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바다다. 왜 물이 죽었는가? 너무 짜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물보다, 증발되는 물이 더 많아, 염분이 높아져, 고기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이 흐르면 식물이 살아나듯, 성령님이 임하시면, 우리 영혼이 살아난다. 물로 표현된 성령님을 받아들여야 살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령님으로 거듭나야 한다. 교회 명부에 교인으로 등록되었다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된다. 

성령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의 생명이 나타난다. 그런데 성령처럼 보이는, 미신적인 행위가 요즘 날뛰고 있다. 예를 들면, 기를 받고, 네 안에 잠자는 거인을 깨워라, 긍정적으로 사는 법, 믿는 대로 된다, 내적 치유, 이런 말들은 반짝 하듯이, 일시적으로 심리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효과를 줄 수 없다. 왜냐하면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알지 못한 채, 다만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하늘에서 오는 성령의 힘만 믿어야 한다. 인간은 자신을 구원하는 일에 무능하기에,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성령의 능력은, 무능한 인간에게 임하는 은혜다. 성령은 죽은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바꾸어 놓는 힘이 있다. 그것도 풍성한 생명으로 바꿔놓았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제자들은 문을 잠그고 두려워 떨고 있었다. 그러나 성령을 받자 달라졌다. 문을 박차고 나가 복음을 전했다. 

역사를 보면,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 생명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유교, 불교, 미신, 이런 것이 지배하던 곳이었다. 영적으로 사해와 같았다. 거기에 성령이 역사하자, 생명의 역사가 나타났다.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나라가 되었다. 

(2) 치료를 해준다. 

성령이 없이는 치유도 없고, 회복도 없다. 상한마음을 치료해 주시는 분은, 성령이다. 우리가 상실한 모든 것을, 성령은 회복시켜 주신다. 이 생명수는 영적 생명만 아니라, 육신의 생명도 살린다. 

성령이 역사하면, 수많은 신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질병을 치료해 주는 병원을 세웠다. 제일 먼저 우리나라에서 세워진 현대식병원은, 의료선교사 알렌이 세운 제중원(세브란스병원)이다. 성령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에스겔 선지자는 점점 깊고, 충만해진 강에서 나와, 강 좌우에 심히 많은 나무들을 보았다. 그런데 에스겔이 본 나무들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그 나무들에는 열매가 없었다(7). 나무가 아무리 많아도 열매가 없으면, 쓸모가 없다. 마치 마른 뼈와 다를 바 없다. 에스겔이 살았던 시대의 모습이 그랬다.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떠났기에, 열매가 없었다. 그들은 병들어 있었다. 쓸모 없는 나무가 되었다. 그렇지만 (12절)의 나무는, 아주 대조적이다. 성전에서 흐르는 물, 곧 성령님이 임하시면, 열매를 맺게 된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12). 이처럼 생수가 흐를 때, 풍성하고 유익한 열매를 맺게 된다. 

물은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님은 죽은 사해바다를 치유하시기 위해, 사해에 생수를 보내신다. 사해에 생수가 들어옴으로, 물이 소생하게 된다. 물이 물을 치유하고 있다. 물이 병들었을 때, 물로 치유하는 것을 '동족요법'이라고 한다. 동족 요법은, 같은 것이 같은 것을 치료한다. 

독을 가지고 독을 치료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피가 피를 치유하도록, 예수님의 보혈을 우리에게 주셨다. 법이 법을 치유하는 것을 아시기에, 율법 대신 복음의 법, 생명의 성령의 법을 주셨다. 나쁜 영을 치료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부어주신다. 

우리 몸이 병들었다는 말은, 우리 몸 속에 있는 물이 병들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수의 강가로 나아가, 생수를 마셔야 한다. 마음을 열고, 생수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죽은 바다가 한 일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생수를 받아들인 일이다. 자신을 치유할 수 있도록, 생수를 받아드렸다. 

죽은 바다들 치료하시는 하나님은 못 고칠 병이 없다. 해결하지 못하실 문제가 없다. 우리가 할 일은 값없이 주시는, 생수를 받아 마시면 된다. 하나님은 이 순간에도 마음을 열고, 생수를 갈망하는 자에게, 생수를 부어 주시고, 치료해 주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님을 사모하며 갈망해야 한다. 환영해야 한다. 성령님이 주시는 생수를 충만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성령님이 임할 때, 우리 영혼이, 교회가 살아난다. 새롭게 되고 충만하게 된다. 이를 부흥이라고 한다. 영혼이 살게 되고, 수많은 영혼들을 살린다. 

(3) 희망의 열매를 준다. 

아라바 광야에는, 아골 골짜기가 있다. 아골 골짜기는 아간이 죽임 당한, 절망이 있는 곳이다. 마른 뼈들이 뒹굴던 골짜기와 같다. 물은 이런 절망의 골짜기에 흘러 내려가, 희망의 열매를 맺게 해준다. 

사해는 가장 낮은 곳이다. 수면 400m 이상 되는 곳이다. 골짜기도 바닥 중의 바닥이다. 그렇지만 골짜기에서 경험하는 바닥의 은혜가 있다. 인생의 바닥은 절망의 바닥이다. 그러나 절망의 바닥에서 하나님의 희망은 시작된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저서 중에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명저가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제1부는 '절망하는 것이 죄다'라는 전제 하에, 인간이 절망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 죽음에 이른다고 하였다. 

제2부는 '절망하지 않는 것이 죄다'라는 명제 아래, 인간은 절망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기에 소망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찾으면,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만 구하면 절망의 끝에서, 소망의 노래가 들려온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를 만났을 때, 그녀의 집에 있던 가루통과 기름병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엘리야가 빵 한 조각을 만들어 가지고 오라고 하였을 때, 사르밧 과부는 절망의 골짜기에 선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 가루와 기름으로, 엘리야를 위해 떡을 만들었다. 

바닥이 드러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이적이 일어났다. 그 가루 통에 가루가 넘치기 시작했으며, 기름병에 기름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절망 중에 있다면, 생수가 되신 성령님을 받아들임으로, 희망의 삶을 사시기 바란다. 

성령님은 역사를 살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려낸다. 누구든지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주님이라고 시인할 수 없다. 우리가 성령님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자녀란 권세를 얻을 수 없고,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가 없다. 희망이 없다. 

미국의 부시 전대통령은,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알코올과 마약중독자였다. 그런데 부시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을 통해, 부시의 생활에 변화가 나타났다. 그래서 "나에게 씨앗이 뿌려졌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 하셨다. 그리고 나는 변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술과 마약에 중독되어 있던 부시가, 성령 충만을 받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의 부시가 되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라. 우리의 자녀들도 성령 충만을 받으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사람 될 수 있고,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사람에게 높임 받는 사람이 되어, 존귀한 인생이 될 수 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이루어지기 바란다. 


2. 생수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곳(11). 

"그 진펄(  )과 개펄(  )은 되살아지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라고 하였다. 생명수가 흘러가는 곳마다 모든 생물이 되살아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났지만, 진펄과 개펄만은 예외였다. 

'진펄'은 '늪, 수렁'을 뜻하며, '개펄'은 '수조, 물웅덩이'를 뜻한다. 사해 주변의 언덕에 위치한, 진흙 웅덩이를 말한다. 이 진펄과 개펄은 우기가 되면, 사해의 물이 넘쳐 고였다가, 우기가 지나면 고인 물이 곧 증발하고, 소금기만 남아, 생물이 살 수 없게 변해 버렸다. 죽음의 땅이 되고 만다. 

은혜를 받아도 고인 물이 되면, 진펄과 개펄이 되고 만다고 경고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 진펄과 개펄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계속 은혜가 흘러야 한다. 신기하게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씀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고, 어떤 사람은 시험에 든다. 소돔과 고모라가 대표적 본보기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 주변에 있던 도시들이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보내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계획을 알려주셨다. 그 천사들을 영접한 롯은 살았다. 그러나 천사들을 해치려했다. 따라서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은, 비같이 내리는 유황과 불에 멸망당했다. 

(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라고 했는데, 그러나 사위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다. 구원받을 수 있는 권면을 무시한 사위들은, 유황불에 죽고 말았다. 따라서 반면교사로 삼자. 

(1) 성전의 물이 계속 흐르게 하라.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만들면, 다음해에 바로 씨를 뿌려,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다. 흙에 배어있는 소금기가, 다 빠지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5-7년 이상을 기다려야, 씨를 뿌릴 수 있는 옥토가 된다. 

(왕하5장)을 보면, 나병에 걸린 나아만 장관은, 요단강 물에 7번 목욕하고 병을 고쳤다. (요9장)을 보면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실로암 연못에 찾아가 그 물로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왔다. 은혜의 시간을 기다려라. 기다리지 못하고 떠나면, 은혜를 누릴 수 없다.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아라. 

성령의 지배를 받다가 떠나지 말라. 성령님께 계속 붙들리면, 아름다워진다. 하나님은 시간을 들여 아름답게 만드신다. 아름다움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장미는 한 순간에 피지 않는다. 기다림을 통해 아름다워진다. 

(2) 세상에 열려 있는 문을 닫아라. 

개펄은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고, 썰물 때 드러난다. 개펄은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한 고운 흙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처럼 세상의 바닷물에 잠겨 있다가, 잠깐 물이 빠지면, 변화될 수 없다. 

바닷물이 들어 올 때는 물에 잠겨 있다가, 썰물 때 드러나는 땅은 그대로 있었다. 주님 곁에도 늘 역사를 체험하고,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한다. 성령 충만은 힘든 길이다. 십자가의 길은 결코 편한 길이 아니다. 세상에 물들어 있으면, 변하지 않는다. 돌아서야만 한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축복과 능력을 강조하는, 들으면 기분 좋은 설교만으로는, 사람이 변화될 수 없다. 은혜에 대한 결단성 없이, 미지근하거나 믿음에 대해 지속성 없이 변덕스러운 자는, 변화되지 않는다. 성령님의 역사가 있을 때,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자신을 맡겨 드려야 한다. 

성령님의 감동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인기 있는 종교운동은, 화려하고 매력적인 광채를 발한다. 그러나 이는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 거짓이다. 회개하지 않고, 성령에 충만할 수 없다. 


결론이다. 성령님은 생명을 살리고 번성케 하는 생수다. 그분을 통하여 주시는 생수, 즉 성령님을 받을 때 생명이 살고, 치료되는 역사, 희망을 갖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따라서 우리 가슴에, 가정에, 사업에, 성령님을 모셔라. 성령으로 충만하여,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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