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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포기할 줄 알아야 (눅 18: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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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줄 알아야 (눅 18:18-30)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왔다. 본문의 이야기가 나오는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의 말씀을 종합하면 그는 부자이면서 청년이고 관리였다. 그는 예수님에게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그가 가진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또한 자신을 따를 것을 말씀하신다. 즉 영생을 얻으려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에 그는 고민하고 돌아간다. 본문은 그가 고민하게 된 것은 그에게 재산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자 관리에게 예수님이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하신 것은 아닌지?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는지? 모든 재산이 아닌 그가 가진 재산의 2분의 1 혹은 3분의 1 등 재산의 일부라도 팔아서라고 말씀하셨더라면 그는 부자였으므로 비록 모든 재산을 내어 놓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에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왜! 굳이 모든 재산이어야 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과연 예수님의 요구는 과도한 것인가? 우리는 다시 한 번 부자가 예수님에게 질문한 것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그는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부자와 예수님 사이의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부자는 율법을 통해 얻는 영생을 묻고 있다면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을 통해 얻는 영생에 대하여 답하고 계신 것이다.

애초에 부자가 예수님을 찾아 왔을 때 그가 듣고 싶었던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한 답은 "너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이다. 왜냐 하면 그는 자신을 거룩한 유대인으로 여기고 있었고 또한 십계명에 대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그는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완벽하게 지킨 자신에게는 영생을 얻는 조건이 충분하다고 본인 스스로의 평가를 예수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으로 칭한다. 선한 선생인 예수님이 율법을 충실하게 지켜왔던 자신을 인정해 주신다면 자신 또한 예수님과 같이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가 선한 사람이라면 그에게 주어지는 "너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라는 답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부자에게 율법을 통해 얻는 영생이 아닌 예수님 자신을 통해 얻는 영생을 말씀하고 계신다. 아무리 부자가 율법을 충실히 지켰을지라도 예수님을 통해 얻는 영생에 있어서는 부족한 것이 있다. 

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님은 부자에게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22절의 말씀과 28절의 말씀에서 베드로가 했던 말을 비교해 보면 모든 재산을 팔아 구제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전제 조건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자에게 요구하신 사항 중에서 핵심적인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재산 포기가 전제 조건이고 핵심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면 앞에서 의문시했던 모든 재산 포기는 너무 과도한 것이 아닌가? 부자라고 예수님을 따를 수 없는가? 꼭 가난해져야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가? 재산 포기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우리는 여기서 먼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며 예수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말한다. 스승이 자신의 제자를 선발할 때는 스승이 원하는 선발 기준 있으며, 어떤 한 공동체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공동체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 공동체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포기이다. 본문의 28절에서 베드로는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복음서(마태, 마가)에서 베드로는 자신의 아비와 배, 그물을 버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다른 제자들도 저마다의 것들을 포기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 그리고 예수 공동체의 일원들은 모두 자신의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며 또한 자신의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아비나 배, 그리고 그물은 무엇인가? 이것은 베드로의 현재 모습을 규정짓는 것이다. 그물과 배가 있기에 베드로는 어부일 수 있었다(어부였다). 그러나 어부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렸을 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되었다. 즉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자되기 위한 조건인 포기는 배와 그물의 버림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재산상의 손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습의 변화, 이미지의 변화를 말한다. 

부자 관리에게 있어 재산은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의 그를 만들어낸 원천적인 것이다. 그는 부자이며 관리이며 청년이다. 또한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신실한 유대인이다. 그가 가진 재산은 그를 부자가 되게 했고, 관리가 되게 했고,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존경 받을 만한 청년이 되게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부자 관리 청년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가 가진 재산들이 만들어낸 모습은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만들어진 제자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또는 일부만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부자 관리에게 모든 재산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모든 재산의 포기는 부자 관리가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 그리고 예수 공동체의 일원으로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부자 관리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예수님의 모든 재산이란 말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예수님 말씀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돌아갔다. 재미있는 것은 본문 말씀과는 다르게 누가는 자신의 복음서에 부자 관리의 이야기에 이어 19장에서 삭개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삭개오도 부자이며 관리(세리장)였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구경하러 왔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또한 부자 관리가 하지 못한 일을 삭개오는 행하고 있다. 부자 삭개오, 세리장 삭개오에서 예수님의 제자 삭개오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포기했다.

예수님은 부자 관리가 고민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27절에서 낙타 비유와 함께 이런 말씀을 하신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부자 관리는 예수님에게 오면서 자신을 보이기 위해 왔다. 하지만 삭개오는 예수님에게 오면서 예수님을 보기 위해 왔다. 하나님은 자신을 보이려고 하는 사람보다 예수님을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27절의 말씀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라는 말씀을 행하신다. 진정한 변화을 이끌어내며 예수님의 제자, 예수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 중심적이 될 때 가능한 것이다. 삭개오처럼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려고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여러분은 무엇이 여러분의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지난날의 성공인가? 여러분이 가진 재산인가? 아니면 학벌이며 집안인가? 지식인가? 가난이나 좌절과 실패인가? 만일 여러분이 예수님의 제자이며 예수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이런 것들이 여러분을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여러분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여러분의 모습이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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