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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를 살피는 사람들 (고전 11: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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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살피는 사람들 (고전 11:27-29)


1974년도에 ?생존?(Alive)이라는 책이 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던 문제의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모두 실화였습니다.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를 떠나 칠레의 산티아고로 향하던 비행기가 악천후로 인해 안데스 산맥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비행기 속에는 럭비 선수 15명, 응원단 25명, 그리고 승무원 5명, 등 모두 45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눈 덮인 안데스 산맥은 전문 산악인조차 두려워하는 대단한 산맥입니다. 구조대는 사고가 나자마자, 수색에 나섰지만 열흘이 지나도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구조대는 열흘 만에 수색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구조대는 열흘 동안 눈 덮인 추운 산 속에서 생존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67일 만에 사고 현장이 발견되었는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16명이나 생존해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들이 혹한의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2개월 이상이나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를 조사한 결과, 눈 덮인 산 속이었기 때문에 먼저 죽은 시체가 부패하지 않았고, 그들은 죽은 시체를 뜯어 먹으며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죽어 세상을 떠난 ?니코리치?라는 청년은 죽기 전에 아버지에게 이러한 메모를 남겼습니다. ?아버지도 전혀 믿기 어려우실 일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죽은 친구의 살을 먹는 일입니다. 저도 이제 얼마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죽은 뒤엔 제 살이 친구들에게 더 오래도록 생명을 제공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기 살을 남에게 줌으로써 생명을 제공하였고, 또 그들은 남의 살을 먹음으로 살아날 수가 있었습니다. 

생존한 16명 가운데 호세라는 청년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교회에 한 주일도 빠져 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동네 어른들은 모두 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교회는 다녔지만 하나님의 집에는 거하지 않았고, 신자란 이름은 가지고 있었지만, 참된 신앙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눈 덮인 산 속에서 죽음과 싸우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집?에 거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수없이 성만찬 예식에 참석했으나, 그저 기계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셨을 뿐, 그 의미가 내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산 속에서 죽은 친구의 살 조각을 손에 들었을 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것을 알았으면, 생명이 무엇이며, 십자가 구원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혹시 수많은 세월 동안 성찬예식에 참석했으나, 그저 기계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아닙니까?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느낌도 없이, 성찬을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성찬식에 앞서, 오늘 우리가 떡과 포도주를 대하기 전에 주님의 살과 피의 의미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살리기 위해 희생제물이 되는 주님의 살과 피의 가치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일년에 두 차례씩 지키는 성례 주일입니다. 그런데 봄에는 고난 주간 금요일에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금요일 날 온 교우가 다 나와 성례에 동참하고 가을에는 추수 감사절을 전후해서 이 예식을 교회가 시행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세 가지 은혜의 수단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 세 가지 은혜의 수단은 말씀과 기도와 성례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말씀을 전했을 때 예루살렘에 모였던 3천명이 은혜를 받았고 베드로가 말씀을 전했을 때 고넬료 집에 모였던 가이사랴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고 사도 바울이 말씀을 전했을 때 루디아와 빌립보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은혜를 받습니다. 120명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했을 때 은혜를 받았고 고넬료가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았고 루디아가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례를 통해서 은혜를 받습니다. 성례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세례와 성찬입니다. 3천명이 세례를 받았을 때 은혜를 받았고 고넬료와 루디아가 세례를 받았을 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떡을 받아먹었을 때 은혜를 받았고 디베랴 해변에서 일곱 제자가 떡을 받아먹었을 때 은혜를 받았으며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떡을 떼며 성찬을 거행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은혜의 방편인 성례식 가운데 성찬에 대해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 때에는 성찬을 받지 못하게 하는 ‘수찬 정지’를 가장 큰 징벌로 여겼습니다. 교회 중직이 자기 자녀를 불신자와 결혼시키면 일정 기간 수찬 정지에 처했고, 장로가 주일을 3차례 이상 빠지면 일정 기간 수찬 정지에 처했습니다. 요즘에는 성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기분 나쁘다고 성찬에 참여하지 않고, 죄가 생각나면 회개하고 참여하면 되는데 부끄럽다고 참여하지 않습니다. 아마 "수찬 정지!"를 당해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입니다. 반대로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복된 성찬식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소중한 성찬식에 우리는 어떤 자세로 참여해야 할까요? 1. 성찬식은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을 생각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23-26절)여기 23-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만찬 도중에 떡과 포도주를 가지사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분명히 밝히시고 자신의 재림시까지 이를 기념토록 명하신 것은 성만찬 예식의 기원이 됩니다. 

그리고 바울도 이 사실을 증언하며 23절에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라고 엄숙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여기 '기념하라'(아남네시스)는 '기억' 또는 '기념물'을 뜻합니다. 이것을 행하면서 예수님의 전체적인 삶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빵을 떼는 데서 상징적으로 묘사된 바처럼 예수님의 삶과 희생을 생생하게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우리를 대속하신 그 은혜를 감사하고 그 성만찬에 임재하시는 예수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찬식의 기원과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25절에 보면, 떡을 가지고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6절에 보면, 잔을 드시고 '이 잔은 내 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른 이 말씀을 들으면 이해가 안됩니다. 어떻게 떼어놓은 떡이 예수님의 몸이고, 잔에 담은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가 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를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신약시대의 유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은 한 줄로 된 기다란 채찍이 아니라 여러 가닥으로 이루어진 채찍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채찍의 각각의 가닥 끝에는 날카로운 쇠붙이나 짐승의 뼈를 깎아 만든 뾰족한 물체들이 달려 있어서 그 채찍에 맞을 때는 몸에 채찍이 감기고 살점이 찢어지게끔 만들었다고 합니다. 떡이 떼어진 것처럼 예수님의 살점이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심으로 온 몸의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초기에 죄수를 십자가에 매어 달 때, 손바닥 중앙에 못을 박았지만, 막상 죄인이 나무에 매달릴 때는 자꾸 손바닥이 찢어지면서 시체가 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손바닥에 못을 박지 아니하고 손목 가까운 곳에다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손목을 지나는 동맥을 건드리게 마련이고 그 결과 죄인의 몸에서 많은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님이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땡볕 아래서 십자가에 매달릴 때 못 박혀 찢어진 손과 발에서 서서히 피가 빠져나갔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말미암아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보혈을 의지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찬의 떡을 먹을 때마다, 성찬의 잔을 마실 때마다, 그냥 의미 없이 먹고 마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죄 용서와 구원을 위한 놀라운 의미를 이해하고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1. 자신을 살피고 난 후에 대하라.우리는 어느 집에 초대를 받아 갈 때도 옷매무새를 고쳐 가급적이면 정갈한 모습으로 가려고 노력합니다. 이것은 초대해 준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시는 성찬예식은 거룩하고 장엄한 예식입니다. 이러한 주의 거룩한 성찬을 대할 때, 우리들 자신을 살피는 것은 당연합니다. 28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한마디로 자신을 살피기 전에는 성찬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찬을 대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고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모두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과 흘리신 피를 먹고 마시기 전에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있으면 모두 다 주님께 고백함으로 다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신을 살피지 아니하고 거룩한 성찬을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훼손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지만, 예수님이 성찬을 베푸시던 마가의 다락방엔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21을 보면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고 했고, 23절을 보면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했고, 24절을 보면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가룟 유다 였습니다. 주님은 유다에게 여러 차례 뉘우치고 돌아설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외면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베드로도 있고, 요한도 있고, 유다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면전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철면피한 죄를 범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팔아넘길 흉계를 품은 채 시침을 떼고 만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죄질로 따지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했고,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통곡했고, 유다는 슬금슬금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살았고, 유다는 죽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종으로 쓰셨고, 유다는 버렸습니다. 누구라도 베드로나 유다처럼 잘못을 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라도 베드로처럼 용서받을 수도 있고, 유다처럼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되렵니까? 유다가 되렵니까? 

그러므로 바울은 27절에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살피지 아니하고 이 성찬을 대하면 심판의 성찬이 되지만, 자기를 잘 살피고 대하면 무궁무진한 축복의 성찬이 됩니다. 따라서 저는 여러분들이 먼저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고 살핌으로 인하여 성찬의 무궁무진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준비된 마음과 정결된 마음으로 성찬에 참여하여,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한 축복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그리고 이 성찬식의 목적은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전도에 있습니다. 26절에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마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합니까?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안에 들어 있는 준엄한 명령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생명은 보통 값진 생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생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대신 죽으신 예수를 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떡을 떼면서 나를 위하여 죽어 주신 주님을 바라보고, 잔을 바라보면서 나를 위하여 한 방울의 피도 물도 남김없이 다 쏟아 주신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짧은 생애에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어 주신 그 주님을 자랑할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도 남김 없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어주셨듯이 이제 우리 역시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나요. 나눔이야말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존재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나누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주님의 분부를 따라 세례식을 거행하고 성찬을 받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먹을 때 여러분 모두에게 죄 사함의 은혜와 주님 모심의 은혜와 천국잔치 참예의 은혜를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성찬을 받은 사람답게 주님을 위한 삶, 이웃을 위한 삶, 자기를 부수고 죽이는 제물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찬의 은혜를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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