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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표식 (빌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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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표식 (빌 1:3-11)


들어가는 말 

오늘부터 12월 말까지 빌립보서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한해가 저무는 이때에 빌립보서를 관심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환경을 초월한 기쁨이 고백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과 관계된 단어가 명사형으로 다섯 번, 동사형으로 아홉 번 나옵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기뻐하고 있다고 간증함으로써 환경을 초월한 신앙의 기쁨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환경 때문에 기쁨을 상실한 우리에게 빌립보서는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수 있고, 또 누려야만 하는 기쁨에 대하여 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4)
바로 이것이 한해가 저무는 이때에 빌립보서를 설교하게 된 이유입니다.

설교 원고를 타이핑해주는 사무실의 간사가 타이핑을 끝내고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기쁘세요?”
그 질문을 받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내 얼굴에 기쁨이 없어 보인다는 말인가? 아니면 자기 자신이 기쁘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그 질문이 무슨 뜻이냐고 물을 수도 없고........
생각해 보니 저의 얼굴에 웃음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저는 참 잘 웃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목사님은 항상 웃으시네요.”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을 많이 잃은 것 같아요.
여러분, 책임지세요.
이건 그냥 해본 소리입니다.
저의 얼굴에 웃음이 없어졌다면 누구의 책임이겠어요?
저 자신의 책임이지요.
이런 점에서 빌립보서 설교 시리즈는 저 자신에게 하는 설교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빌립보서 서론에 해당되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빌립보’라는 도시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빌립 2세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입니다.
이 도시가 B.C. 167년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B.C. 42년 이후 로마제국의 퇴역 군인들의 거주지로 지정되면서부터 빌립보는 크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 요충지이자 로마의 군사 전초기지로서 행정 수도인 데살로니가와 함께 마게도냐의 중심도시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시민들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모든 면에서 로마와 동등한 특권을 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빌립보 시민들은 이러한 특수한 지위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바로 이런 자부심으로 가득 찬 빌립보 시민들에게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고 역설한 것입니다.
빌3:20절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립보도시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세요?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기간(A. D. 49-52년) 중 마게도냐 지방에서 처음으로 세운 교회입니다.(행 16:12-40) 
오늘날로 치자면 유럽 최초의 교회인 셈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통해 처음 복음을 접한 이후 지속적으로 바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빌립보교회는 여러 차례에 걸쳐 기도로, 물질적으로, 인적으로 선교 사역을 후원하는 등 바울에게 큰 기쁨을 안겨다준 교회였습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1차로 투옥된 상태였습니다.(A. D. 61-63년). 

그래서 빌립보서를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이때에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라고 하는 인물을 파송하여 바울을 옥바라지하도록 했습니다.(2:25;4:18)
그런데 그가 바울을 시중드는 도중 중병에 걸려 거의 죽음 직전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2:27) 
바울 사도를 돕기 위해 파송된 자가 중병에 걸렸다고 하는 소식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큰 근심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로 에바브로디도는 회복되었으며,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안심시키기 위하여 에바브로디도를 되돌려 보냅니다.(2:19,28)
이 때 에바브로디도의 손에 들려진 편지가 빌립보서입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빌립보교회가 그간 자신에게 얼마나 큰 호의를 베풀었는지를 생각하며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빌립보서를 읽다보면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사도 바울의 숭고한 신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살펴보면, 

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삶과 죽음을 뛰어넘는 초월적 생사관

빌1:20-21절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② 푯대 향해 달리는 신앙 경주자의 자세

빌3:12-14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세상 것이 아닌,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③ 어떤 환경에서든 자족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

빌4:11-13절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확실히 믿었습니다. 

④ 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상황을 초월하여 누리는 기쁨 

빌4:4-7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런 주옥같은 말씀이 빌립보서에 있습니다.
여러분, 빌립보서 설교가 기대되지 않으세요?

우리에게는 각각 어떤 표식이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에게는 그들의 소속 팀을 나타내는 마크가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학교 배지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표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표식은 무엇일까요? 
‘기쁨’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귀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기쁨이 없다면, 이를 테면 사랑을 한다 하더라도 기쁨이 없다면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기쁜 마음으로 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빼앗긴 것이지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받는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받지 못하고 열등의식이라든가, 굴욕 같은 것을 느꼈다면 그 또한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주는 사람, 받는 사람이 다 기뻐야 사랑입니다. 
기쁨이 없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간단히 사랑만을 예로 들었지만, 모든 일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기쁨 없이 하는 일은 아무리 귀한 일이라도 무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식은 ‘기쁨’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 감사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우들을 생각할 때마다 첫 번째 떠오르는 단어는 ‘감사’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울은 빌립보교우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 감사하다.’
누군가 우리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영어 어원을 살펴보면 ‘생각하다(think')와 감사하다(thank)'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을 해서 깨달을 때에 감사가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면 감사가 없습니다. 
철나기 전에는 부모님의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합니다. 
‘철났다.’라는 것은 생각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생각을 할 때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신앙 없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생각을 할 때마다 원망을 합니다. 
분하고 억울하고 한이 맺혀서 생각을 할 때마다 원망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이런 일 저런 일을 원망하다보니 잠도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 하는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줍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남편이 매일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와 술주정을 합니다. 
하루는 그 부인이 술에 곯아떨어져 자는 남편 옆에 앉아서 신세타령을 하다가 문득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하나님, 아무리 따져 봐도 감사할 일은 없지만 좌우지간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성령이 뜨겁게 역사하면서 구체적으로 감사할 내용들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감사내용을 들어보십시오. 

“그래도 과부보다야 낫지 않은가. 술 취해서 비틀거려도 제집 제대로 찾아오는 것 보면 용하지. 그뿐인가. 주일날 교회 가라고 집 봐주고, 미안하니까 헌금도 주고, 이만하면 고맙지 않은가.”
이렇게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남편이 목이 말라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울고 있어야 할 부인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지 뭡니까? 
남편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부인은 감사한 내용을 설명해줬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알았어. 다음 주부터 교회 나갈게.”하더랍니다.

2. 복음사역에 동참

그러면 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라는 단어를 떠올렸을까요?
그것은 빌립보 교우들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복음을 위한 일’이란 것은 ‘전도’와 ‘선교’에 참여한 것을 말합니다.
전도란 동일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교란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선교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불은 불꽃이 타오름으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함으로 존재한다.”(Emil Brunner)
교회가 선교하기를 그만두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면 빌립보 교인들은 어떻게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습니까?

① 물질로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습니다.

빌4:18절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지난주에는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감리교 세계선교협의회’주관으로 정책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세신교회’의 선교 상황을 발표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한 가정에서 한 교회 개척하기’ 운동을 전개하여 전 세계에 83교회를 개척 설립했습니다. 
그래서 물어보았습니다. 
‘얼마면 한 교회를 개척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대답하시길 “최소한 2천만 원은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가정이 2천만 원 이상씩을 내서 교회를 개척했다는 것이지요.
또 현재 9개국에 18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그 선교사를 위한 선교비는 교회 경상비에서 지출하는 것이 아니라 교우들의 기업이 맡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구멍가게일망정 한 선교사의 생활비를 책임지도록 권면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기업이 다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매달 1,000불이 들어가는 일에 많은 기업인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동참하는 기업은 불황일지라도 망하지 않더랍니다.”

우리교회도 이번 추수감사절 헌금을 ‘하늘단비교회’의 대지구입비로 드렸습니다. 
거의 8천만 원 정도 됐습니다. 
여러분의 헌신에 감사를 드립니다.
어떤 분은 애지중지하던 금목걸이, 금반지를 빼서 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정성스런 헌금을 드린 교우들에게 축복의 싸인을 보내리라고 확신합니다.

② 기도로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습니다.

선교에서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도 경험 있는 목회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었습니다.
“선교는 기도로 하는 것이다.”
우리교회는 하늘단비 교회 성전건축을 위하여 제2차 1만 시간 기도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늘 말씀드리잖아요?
우리가 사는 집은 돈과 설계도가 있으면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은, 구원의 방주는 아무리 게 딱지 같은 작은 집이라 하더라도 눈물과 기도로 지어집니다. 

③ 사람을 보냄으로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습니다..

빌2:25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빌립보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하여 바울의 선교를 도왔습니다.
신반포교회의 홍문수 목사께서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그 교회가 선교지향적인 교회를 선포한 후 80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답니다.
그런데 두, 세 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그 교회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부러웠습니다.
우리 교우들 가운데서 많은 선교사들이 배출되길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선교지에서도 하루 세끼 먹을 수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알짜를 주님께 드려보십시오.

나가는 말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우들을 생각할 때마다 첫 번째 떠오르는 단어는 ‘감사’였습니다.
그것은 빌립보 교우들이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해’ ‘고마워’라고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복음사역에 참여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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