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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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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눅 12:13-21)

 
내 용 

유대인들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지혜로운 랍비에게 부탁해서 해결하는 자세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재산 분배 문제 때문에 예수님께 찾아와서 해결 요청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지혜 있는 랍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욕심꾸러기 형의 불의를 고발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장자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유대 나라는 장자가 갖는 특권이 대단한 나라입니다. 

부모의 재산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장자의 것입니다. 그 다음 형제들은 장자가 나누어주면 감사하고 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문화입니다. 왜 야곱이 팥죽 한 그릇을 주면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까?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많이는 안 주어도 상식 수준의 분배를 해줍니다. 그런데 오늘 이 형은 동생에게 하나도 나누어주지 않아서 지금 예수님께 와서 형을 고발한 상태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에 ‘의좋은 형제’라고 하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농사가 다 끝난 가을에 형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동생이 이제 결혼을 했는데 필요한 것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 논에 있는 볏단을 동생 몰래 지게로 져다가 동생 논의 볏단에 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동생도 또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이제 결혼해서 두 식구밖에 없는데 형은 식구가 많으니 저것 가지고는 안 되겠다.’ 그래서 밤에 몰래 가서 자기 논의 볏단을 지게로 져서 형의 논의 볏단에 쌓아놨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아무리 가져다주어도 날마다 똑같은 것입니다.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어느 달밤에 ‘그래도 형을 더 갖다 주어야지.’ ‘그래도 동생을 더 갖다 주어야지.’ 그리고 지게에 볏단을 가득히 지고 서로 가다가 중간에서 만났습니다. 그래서 둘이 너무 감격해서 붙들고 엉엉 울었다는 내용의 과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형제들이 다 죽었는가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재산 분배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거절을 하시고 “내가 너희에게 들려줄 선물이 하나 있는데 내 이야기를 잘 들으면 재산 분배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다.”하고 오늘 예화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시기적으로 추수가 다 끝난 만추의 계절입니다. 땀 흘려 수확한 곡식의 분량을 보고 “금년은 풍년이다, 흉년이다, 만족하다, 불만족하다.” 계산하는 시기입니다. 수확의 분량을 보고 행복과 불행의 마음을 결정하는 계절인데 오늘 추수감사주일에 예수님의 이와 같은 설교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먼저 오늘 말씀에서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은 부자가 되지 말라 하신 것인가?’ 절대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사실 여기 나오는 부자를 지금 시대적으로 평가를 하면 모범 시민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식량 생산에 공헌한 모범 농업인입니다. 국가 경제 발전에 넉넉히 자기 나름대로 기여를 해서 표창 받을 만한 수확을 산출한 공로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왜 주님은 “어리석은 자여!”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이 부자는 자신의 소원이 지금 넉넉히 이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 성취가 오히려 고민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우리말로 행복한 고민거리 등장입니다. 유대 나라 속담에 “돈은 바닷물과 같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바닷물은 먹을수록 염분 때문에 더 갈증이 나지 않습니까? 쌓아둘 곳간이 모자랄 만큼 수확이 풍성하여졌는데 쌓아둘 방법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이 부자는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농사법칙이 있습니다. 한번 농사지어서 여러 해를 먹지 못합니다. 그해 농사지어서 그 다음해까지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보관을 철저히 해도 2년 농산물 처리는 부유 국가들의 큰 고민거리입니다. 쌓아두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돈을 줄 테니 농사를 짓지 말라고까지 합니다. 선진국의 큰 고민거리입니다. 남는 식량이 쓸데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먹는 문제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만나로 하셨습니다. 만나는 기적 식량이었습니다. 농사짓지 아니했는데 40년 동안 굶어죽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했습니다. 다 만나를 먹고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만나는 쌓아놓고 먹을 수 없습니다. 그날 먹을 것은 그날 아침에 하나님이 내려주셨습니다. 

어쩌다 욕심스럽게 쌓아두어 봤자 상해서 그 이튿날 먹지 못했습니다. “내가 또 내일 내려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욕심을 부리느냐?” 요즘은 식량 비축 방법이 과학적으로 좀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보관을 잘했어도 맛이 다릅니다. 같은 바다에서 잡은 같은 고기도 생명이 있는 생선을 잡아먹는 것과 냉동시킨 것은 아주 맛이 다릅니다. 지금 한국에는 FTA 때문에 사방에서 과일들이 들어옵니다. 그러나 맛이 다릅니다. 미리 따서 오는 과정에서 익었기 때문에 나무에서 직접 다 익어서 먹는 것과 절대 차이가 납니다. 선교지에 가서 먹어보았는데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계획성 있는 노후 대책을 잘 세우는 일이나 자녀 교육을 위해서 절제 있는 문화인의 생활계획을 무시하는 말씀이 절대 아닙니다. 쌓아두는 그 자체에 행복의 가치관을 예수님이 책망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즘에 아주 좋은 예화 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수백조원의 비자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 한 가족이 사는데 그 많은 돈이 필요합니까? 먹을수록 목이 마른 바닷물을 마시다보니까 계속 갈증이 나서 계속 마신 것입니다. 

만약 그 많은 돈을 쌓아두지 말고 그렇게 못사는 국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면 국민들은 고마워서 제발 대통령 좀 오래하라고 데모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긴 예화 설교를 하신 것이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 설교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쌓아두었다고 했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것을 왜 쌓아두느냐? 빨리 써야지!” 책망 받았습니다. 이 부자는 쓸 줄 모르는 어리석음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으면 뭐합니까? 쓸 줄 모르면 그것이 나에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오히려 쌓아둔 재물이 나에게 고민거리 등장입니다. 어떤 대통령은 5천억을 몰래 쌓아두었다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온갖 고난을 당한 것을 우리가 보지 않았습니까? 저는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도 헌금 들어오면 빨리 가장 거룩하고 선한 제목을 만들어서 써야 합니다. 저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교회 헌금 쌓아두면 절대 시험거리, 교인들의 분쟁,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생깁니다. 마귀가 틈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 헌금이 100억이나 있대.” 그래 보십시오. 헌금들을 안 합니다. 

그리고 그 헌금을 어디다 쓰나 공연한 필요 없는 말이 생기고 시험거리가 되어 문제가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교회도 헌금 많이 쌓아두면 죄입니다. 하나님 사업에 빨리 쓰라는 것이 쌓아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평생을 목회하면서 우리교회는 항상 마이너스 통장이니까 그런 줄 아시기 바랍니다. 

이 부자는 너무 많은 곡식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결국 쌓아둘 곳간을 건축하는 것으로 결론을 지었습니다. ‘많이 쌓아둬야 돼.’ 사실 이 사회는 많이 가진 자가 이런 생각하면 그 사회가 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에게 오히려 보존 보관의 영향 때문에 건강이나 자기 불안을 초래하는 어려움을 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최대한의 안전성을 그렇게 결론 내렸습니다. 카다피는 쌓아두는 곳간이 모자랐지 않습니까? 자기 나라에 다 못 쌓아둡니다. 

그래서 더 큰 곳간을 찾아서 프랑스와 영국, 미국 같은 큰 곳간에다 잔뜩 쌓아두었습니다. 여기 나오는 이 부자의 한 가지 의로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영혼의 평안이 행복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복론 철학에 있어서는 훌륭한 믿음의 방향 제시가 있는데 방법론에 있어서는 아주 잘못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재물을 가지고 영혼의 행복을 협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어리석은 자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해’라는 이 표현은 장기간을 말할 때 쓰이는 용어가 됩니다. 이제 이 사람은 모든 것이 잘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제부터는 미래 행복만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보편적 진리 하나를 그에게 제시했습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네가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미래 불안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언제 죽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자기 해답을 확실히 갖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탈무드라는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어린 아기가 태어날 때 주먹을 쥐고 세상에 나오는 뜻은 움켜잡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나는 태어나서 많이 움켜잡겠다.” 떠날 때는 다 손을 편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쥐고 가지 못한다.” 그런 뜻으로 탈무드 교육적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은 지혜가 있습니다. 말도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이 있고, 갈 때 수의가 주머니가 없는 것은 바로 아무 것도 못가진다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서 한 번도 볼 수 없는 장례 문화인데 옛날에는 상조가 있었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동네 사람들이 처리했습니다. 상여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두꾼들이 꽃가마를 만들어서 시체를 어깨에 메고 묘지로 갑니다. 앞에서 선소리꾼이 있어서 종을 흔들면서 장송곡을 구슬프게 부릅니다. 그런데 이 상두꾼들이 가다가 다리를 건너게 된다든지 길이 좁아서 험악한 곳을 지나가게 된다든지 하면 안갑니다.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몸을 흔들흔들 옆으로 흔듭니다. 돈 달라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선소리 하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노래를 부릅니다.

“내가 가는 길에 노잣돈이 필요하다!”하고 “쩌렁쩌렁!” 울리면 다른 사람들은 맞다고 화답송을 부르잖아요? “어~어~어 야!” 그러면 사위라든가 그런 사람들이 미리 돈 봉투를 준비했다가 그 선소리꾼들에게 갖다 줍니다. 그것은 상여 멘 사람들이 나중에 술파티를 한다든지 자기들이 씁니다. 부자가 죽었을 때는 가는 길이 험악합니다. 영 가지를 않습니다. 돈 계속 나오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부르는 상두꾼들의 노래 소리에서 가사가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유소수학 정진하여 이십 전에 진사되고” 죽은 사람이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벌써 급제를 해서 출세를 했다는 말입니다. 

“삼십 전에 등과하여 사십 전에 당상이 되니” 국가 벼슬을 따서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아주 잘 살만한데 “부귀영화 진상 당상 죽어지니 허사로다.”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니까 “빈손으로 가는 인생 노잣돈이나 보태다오!” 그러면 돈이 나온단 말입니다. 돈이 나오면 선소리꾼의 노래 가사가 달라집니다. “잘 살아라 잘 살아라 재난 없고 우환 없이 잘 살아라 잘 살아라!” 그러고 갑니다. 그 노래 속에 우리 성경과 일맥상통하는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준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카다피가 준비해 놓은 그 많은 재물은 결국 뉘 것이 될 것입니까? 분명한 것은 카다피가 쌓아두었지만 카다피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네 형이 욕심을 부려서 마땅한 유업도 분배하지 않는다고 너무 고통스럽게 생각하지 마라. 차라리 손해를 보고 살아라. 나를 찾아온 보람을 내가 너한테 줄 것이니 너는 영혼 구원과 영생에 관심을 두라. 

만약 그렇다면 나를 찾아온 보람이 재물보다 더 좋은 영혼의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설교를 하신 것입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주님은 “온 천하를 얻고도 이것을 얻지 못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에서 마지막 기도가 무엇입니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바울은 뭐라고 했습니까?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소원이 다만 세상뿐이라면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하다.” 맞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 “믿음의 결국이 뭐냐?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우리는 밭에 감추인 보화 설교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밭을 갈다가 그 밭에 갖진 보화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샀다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인생의 영생 진리를 발견한 다음에는 그 사람은 그 삶의 가치 하나를 위해서 자기 주변의 어떤 것이라도 다 희생하고 그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진리입니다. 보물 쌓아두는 문제에 대해서 주님은 확실한 교훈을 실제적으로 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제도와 장치는 불완전의 요소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근래 우리나라에서 이자가 좀 많이 나온다고 저축은행에 저축했던 사람들 영업 정지되어서 다 손해 봐서 울면서 난리치고 가서 다 때려 부수고 난리치지 않았습니까? 제 가까운 집사님 한분은 100억이나 투자했다가 하나도 못 건지셨습니다. 1불도 못 건지셨습니다. 

그렇게 세계에 신용도가 높은 뱅크어브 아메리카도 지금 흔들흔들 합니다. “야! 뱅크어브 아메리카가 부도날지 모른데.” 그래서 사람들이 전부 저금했던 돈을 빼내니까 더 빈약해집니다. 그래서 더빗이라고 하는 재벌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나는 뱅크어브 아메리카에 투자하겠다.” 그래서 막대한 자신의 돈을 거기에 투자해서 “뱅크어브 아메리카를 우리가 살려야 한다. 돈도 빼지 말라. 가서 저금을 더하자.” 그러면서 흔들림을 막고 있는 중입니다. 지진 쓰나미로 세계 제2의 경제 대국 일본이 하루아침에 미래 불안 국가가 되었습니다. 

동남아의 허브라고 자랑하던 태국이 물에 잠기니까 모든 것이 다 물과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태국 선교지에 착한 사마리아 헌금 다 보냈습니다. 지금 한반도는 백두산의 뱀들이 다 기어나온다고 화산 폭발 징조가 아닌가 미래 불안이 생겨서 신문에도 자꾸 시뮬레이션이 나옵니다. 여러분! 백두산은 화산이 터져서 웅덩이가 생기고 물이 고인 것입니다. 그런데 화산은 터진 데서 반드시 다시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계가 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20억 톤짜리 천지의 물이 쏟아지면 남한까지 피해지역이 됩니다. “창고하나 새로 짓고 곡식 좀 쌓아두었다고 영혼 좀 달래는 이 어리석은 자여! 너의 그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그 준비가 오늘 밤 허사가 될 지 네가 아느냐?” “42년 대통령 자리에 있으면서 그렇게 철저하게 준비한 그것에 뉘 것이 되겠느냐? 마지막에 하수도 속에서 비참하게 인생 마감을 했으니 그 카다피가 준비한 그 많은 것은 너한테 무슨 유익이냐? 이렇게 미련한 자들아!” 

저의 물질 철학은 평생 똑같이 삽니다. 철저하게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헌금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친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어떤 강도가 와도 못 가져갑니다. 어떤 사기꾼이 덤벼들어도 안전합니다. 어떤 은행이 쓰러져도 상관없습니다. 쓰나미 100번 덮쳐도 하늘나라에 쌓아둔 것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 가다가 좋은 것이 있으면 빨리 먹습니다. 예수님이 보증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고 땅에 쌓아두지 말라. 좀과 동록이 해하며” 이 말씀을 믿는다면 한번 “아멘” 하십시오. 

그리고 실천해 보십시오. 오늘이 추수감사절인데 평양 봉수교회 추수감사절 예배실황 테이프가 저한테 왔었습니다. 그렇게 핍박 국가인데도 추수감사절 설교는 목사가 제대로 합니다. “이것은 박해를 피해서 신앙 자유를 찾은 사람들이 미국에서 인디언들의 도움을 얻어서 첫해 농사지은 것을 하나님께 바친 것이고 그 믿음을 보시고 그 후손들에게 하나님이 축복의 임재가 나타난 것이 오늘의 미국입니다.” 놀랐습니다. ‘저런 설교를 봉수교회에서 해도 괜찮은가?’ 그런데 진짜로 했습니다. 참석한 사람이 테이프를 가지고 온 것입니다. 온 세상 교회가 오늘 다 똑같이 그런 설교합니다. 

그렇게 기독교를 핍박하는 북한에서조차 역사의 유래는 거짓말을 못하고 사실대로 설교를 합니다. 1623년 그들은 배를 타고 황무지 벌판 미국으로 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200년 만에 1800년대에 와서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를 이룩하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청교도 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 임재가 나타납니다. 누구도 부인 못하고 온 세계가 다 똑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100퍼센트 자신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 같이 되는 길은 교회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 전역에 남한과 같이 교회를 세우라. 그러면 1년 내에 달라진다.” “너희는 살기 위하여 여호와를 찾으라.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바치라는 이야기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까? 십일조에서부터 농사지은 첫 곡식, 우양의 첫 새끼, 각종 예물, 마치 사람 사는 것이 하나님께 갖다 바치기 위해서 존재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 결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셔서 뭐하십니까? 짐승의 새끼라면 양 새끼인데 하나님이 그 양 새끼를 어디다 쓰십니까? 십일조 헌금을 드렸지만 하나님도 돈이 필요하십니까? 다 인간들이 도로 씁니다. 목적은 하나뿐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라.” 이것입니다. “만약 네가 내 말을 청종하고 내가 시키는 대로 행하고 산다면 나는 내가 약속한 그대로 네가 내 말을 청종했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너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주겠다.” 

결국 인간의 행복을 열어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바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발전을 위해서 온갖 노력과 어떤 투자도 합니다. 교육 경쟁에서부터 건강 챙기기, 아낌없는 투자를 합니다. 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안 합니다. 그의 신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 사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만 뚜렷하게 심어주면 그 다음은 괜찮습니다.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내가 죽었는데 내 아들, 내 딸을 누가 책임질 겁니까?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제리 콘너라는 미국인이 사업에 성공해서 자기 인생에 마지막을 빛내보겠다고 매우 많은 전력 투자를 해서 기념 건물을 하나 완성 시켰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지은 자기 건물 맨 앞 화단에 자기와 부인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청사진을 다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때 그 사람이 얼마나 위대해 보이고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저 사람은 어떻게 돈을 벌어서 저렇게 큰 건물을 짓고 부인 동상까지 만들어서 세웠을까?’ “내 사무실 구경하겠습니까?” “네, 구경 좀 합시다.” 사무실을 들어가 보니까 제일 좋은 공간에 아래가 다 내려다보이고 응접실에서부터 가구까지 반짝반짝한데 ‘와! 저 사람 얼마나 쓴 거야? 부럽다.’ “이제 준공 검사 다 마쳤고 사용만 하면 된다.” 이처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빌딩인데 그만 뭐가 잘못 되어서 부도가 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건물을 저희 교회가 샀습니다. 그분이 투자한 금액의 3분의 1가격에 구입했습니다. 그 사무실을 하루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육관으로 학생들이 잘 쓰고 있고 사무실은 그분은 하루도 쓰지 못하고 갈보리교회 오기 전까지 제가 사용했습니다. “네가 준비했다고 네 것이 되는 줄 아느냐?” 역사는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내 창고에 쌓여있다고 내 것이 되는 줄 아십니까? 하나님이 계획하셔야 되는 것이 됩니다. 오늘 성경말씀에 결론은 어떻게 됩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누구를 말합니까? 어리석은 부자를 말합니다. 여러분! 영적 지혜자가 되셔서 추수감사절에 하나님께 몸과 마음과 물질을 항상 하나님께 부요하게 하고 행복하고 풍성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금년에도 대한민국은 쌓아둘 곳이 없도록 곡식을 많이 주셔서 정부가 보관이 고민이라고 합니다.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에 남는 분량만큼 북한은 모자란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영적으로 모두가 깨달아 알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번 겨울에 춥다고 합니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사오니 주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그들도 따뜻한 식사가 마련되는 다가오는 겨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에게 지혜를 주사 영적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서 부요한,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의 임재가 내 삶에 나타나는 신앙인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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