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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약할 때 강하다 (고후 11: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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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약할 때 강하다 (고후 11:23-27)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

우리가 환경과 육신의 어려움으로 고난을 당할 때, 바로 우리의 그런 약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약할 때 강한 예수님의 팔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고 좋으면 자기를 의지하고 주님을 찾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예수 믿고 나오는 사람 중에 대다수가 사연이 있습니다. 고난의 사연이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시련이 있습니다. 자기의 약함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고난은 반드시 우리의 원수가 되지는 않습니다. 

1. 바울의 환경적 고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함에 있어 환경에서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교회를 박해하다가 다메섹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심해 복음증거자가 된 바울은 환경적으로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5절로 8절에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라며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자랑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환상을 보았을 때 얼마나 더럽고 추한 죄인인 것을 알게 되고 예수님을 의지해 보혈로 씻음 받고 의롭다함을 선물로 받고 난 다음에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버리고 예수님을 의지한다고 신앙고백을 한 것입니다. 

그는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약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므로 강해지는 것입니다. 빈그릇이 되어야 무엇을 채울 수가 있는 것처럼 약한 것을 알고 고백해야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강하고 힘있다. 내가 할 수 있다. 주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주님이 도울 방법이 없습니다. 빈틈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약할 때 곧 강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고린도후서 13장 4절에도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고 스스로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 빌라도의 뜰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달렸을 때 예수님이 의지한 것은 하나님밖에 없었습니다. 그처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니 하나님께서 죽은 예수님을 3일만에 살려주셔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스스로 약함을 인정하고 의지하자 하나님이 강하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연약함이 반드시 우리에게 손해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만들어 줍니다. 내가 태산 같은 힘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고 연약하다고 생각할 때는 하늘을 지으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환경에서 많은 고난을 겪어 고집이 깨어지고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많은 사도 중에 사도가 되고 이렇게 많은 성경을 기록한 위대한 성경의 저자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로 27절에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기록합니다. 도대체 예수를 그렇게 잘 믿는 바울이 왜 그런 고난을 겪었을까요? 그렇다면 바울보다 신앙이 연약한 우리는 고난을 당해도 꼼짝 못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엄청난 고난을 당하면 꼼짝 못할 것을 알고 우리에게는 감당 못 할 고난을 주지 않으십니다. 

2. 바울의 육신적 고난

그렇다면 바울이 왜 그런 고난을 당했을까요? 그는 초대교회의 중심이 되는 신앙의 지도자이기 때문에 고난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체험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밤이 있어야 낮이 있는줄 알게 되고 추워야 더운 것을 고맙게 여기는 것처럼 바울이 그 많은 고난을 통해서 고난에서 건지시는 예수님을 체험했기 때문에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살리는 역사를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바울은 수없이 얻어맞아도 견뎌내고 파선을 당해도 건짐을 당하고 돌에 맞아죽었다고 쓰레기더미에 갖다 내버렸는데도 다시 살아나 일어나고 그래서 예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담대히 간증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런 체험을 했다”고 하자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론적인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저도 간증할 것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목회를 시작했고 폐병으로 죽다가 살았고 시련을 많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간증을 하면 사람들이 은혜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간증을 통해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정말 체험했구나!”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어느 큰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제가 폐병으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가 주님을 만나고 폐병에서 고침 받아 오늘날까지 건강하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은혜받아 그날 많은 사람들이 병이 나았습니다. 

바울이 환경적인 고난을 당한 것은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먼저 체험을 해야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환경의 고난만 당한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고난도 깊이 당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를 대단히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셋째 하늘까지 올라가서 말로다 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가 간증하기를 “내가 몸으로 올라갔는지 몸에서 빠져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너무나 뚜렷하게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말로다 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바울만큼 하나님의 계시를 많이 받고 진리에 대한 이해를 뚜렷이 한 사람은 역사상 없었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육체적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병을 고쳐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No!”라고 대답하시고 “네가 약해야 내가 네게 머물러 있으며 내게 의지하므로 강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레마를 받기 전에는 병낫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는 낫지 않는 것이 너에게 유익이고 그것을 통해 겸손해진다”고 응답하셨다면 그 이상 기도하지 마십시오. 

예수는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고 가신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 몸에 머물게 하고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머물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또한 “그의 생활에 능욕당하고 궁핍당하고 박해와 곤고를 당하는 것을 기뻐한 것은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몸에 임하게 하려 함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우리의 육체의 가시는 무엇입니까? 지금 그 가시로 인해 우리는 아프고 짜증나며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기도할 때, 우리는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 나중에는 가시가 오히려 고마운 존재가 될 때가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3. 고난의 이유

이처럼 우리는 고난이 다가오는 이유를 바울의 체험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만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원수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도 교만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사탄의 꾀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인간타락의 근본적인 죄는 탐욕과 교만인 것입니다. 교만하면 인간은 버림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쉽게 교만하여 자기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저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허락해서 지게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탄의 사자 곧, 육체의 가시가 생기면 ‘혹시 내가 교만하지 않았나’ 살피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렇게 자기의 연약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의지하고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8절에서 10절에 기록하기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기록합니다.

바울은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응답을 하시는데 분명한 레마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왜 병을 고쳐주지 않는지 대답하지 않으시고 “나는 네가 고통을 상쇄할 만한 족한 은혜를 주었다. 병을 견뎌낼 수 있고 극복할 수 있는 은혜를 주었으니까 은혜를 가지겠느냐 치료를 받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주님 차라리 아프더라도 은혜를 갖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내가 약해야 은혜가 온전해진다”고 말했습니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처럼 약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이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유명한 복음 전도자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강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도 평생을 파킨슨병으로 고생했습니다. 그 병으로 굉장히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면서도 요사이에는 휠체어에 앉아서 스스로 걷지 못하면서도 평생동안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는 곧 약할 때 강한 것입니다. 사람은 육체를 가진 인간인지라 평안하면 잘먹고 잘입고 편히 쉬기를 원하고 오래 잠자고 있기를 원하지 기도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아프고 고통스러우면 잠 안자고 기도하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도움을 간구하게 되고 그러므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더 다른 사람보다 넘치게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고난을 오히려 기뻐한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장 4절로 7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록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고통스럽고 괴롭고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다가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약하면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해지고 주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바울이 말한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5장 9절로 10절에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늘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이루었다면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비워야 되고 약한 그릇이 되어야 은혜로 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고통을 당해서 빈그릇이 되어야 역사하는 은혜가 채워지는 것입니다. 고난은 괴로워하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해주는 것입니다. 고난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1절로 13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오면 어떤 것이든 다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슬픔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극복하고 고난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합니다. 병이 안 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배고픔이 없는 것이 아니라 와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났습니다. 광야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광야를 극복할 수 있도록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와서 시원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배가 고플 때 만나와 메추라기가 하늘에서 임해 그것을 극복하게 해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와서 도와준 것입니다. 자기들 힘으로 농사짓고 사냥해서 해결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광야가 없는 것이 아니라 광야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광야는 우리를 약하게 만듭니다. 우리 힘으로는 광야를 지나고 시험과 환난을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을 찾으면 은혜가 와서 해결하여 주십니다. 은혜가 가난을 이기게 해주시고 은혜가 분노를 삭이게 해주시고 은혜가 병을 이기게 해주시고 은혜가 시련을 극복하게 해주시고 은혜가 만사형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나 곤고나 적진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냐 죽음이냐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위기가 있어도 이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길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와서 이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35절로 39절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기록합니다.

그렇게 끈끈한 사랑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으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 이 은혜를 주셔서 은혜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소유를 삼아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기록합니다. 바람이 심히 불면 배가 전복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바람 따라 더 빨리 달려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가 있어 완전히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하나님께 의지해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받아 큰 일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당한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이 도우심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려면 육의 장막을 약화시키고 벗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이 약해져야 하나님이 강해지고 육의 장막집을 벗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입혀지는 것입니다. 깊은 은혜의 삶에는 많은 고난이 함께 따릅니다. 그러나 고난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를 품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위로로 우리는 고난을 능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기도-

사랑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들처럼 우리의 강함과 높음을 자랑 말고 온전히 주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백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약함은 곧 주의 강함임을 또한 함께 고백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한량없는 은혜와 축복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실 것을 믿고 의지합니다. 주님! 나를 버리고 나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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