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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외치는 자의 소리 (막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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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 자의 소리 (막 1:1-8)


오늘 우리는 말과 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종 신문 방송, 그리고 인터넷 같은 언론 매체를 통해서 엄청나게 많은 말과 글이 쏟아지고 있지 않습니까? 거의 공해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엊그제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이라는 것들도 말의 또 다른 공해가 아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겉과 속이 다른 말도 양산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말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가치가 있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지 않습니까? 기독교 언론 매체가 얼마나 많습니까? 셀 수 없이 많은 신문들이 있습니다. 또 텔레비전을 켜면 거의 하루 종일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이야 어떻든지 간에... 교회를 맡아 사역하는 목회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 주일 내내 설교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주일낮예배 설교, 찬양예배 설교, 삼일기도회 설교, 심야기도회 설교, 새벽기도회 설교, 그리고 각종 심방 설교 등은 듣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설교하는 사람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들을 만한 설교가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 기자가 전하는 말씀에 다시금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그렇습니다!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절망하고 있는 우리에게 구원의 소망을 안겨 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해야 우리가 들을 수 있습니까? 그 기쁜 소식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가 필요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는 복음을 들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세팅이 잘못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도시 한복판에서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준비가 충분한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을 듣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황량한 들판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옛날 세례 요한이 어디에서 외쳤습니까? 그렇습니다!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그렇다면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사람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머무는 것도 어려운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세례 요한은 바로 그런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막 1:4~5)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또한 말씀의 능력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바른 말씀을 듣고 싶어 하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찾아가게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왜 광야에서 말씀을 외쳤습니까? 간단히 말해서 광야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셨습니까? 그렇습니다! 광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 까닭은 아무 것도 의지할 수 없는 곳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3)

아울러 광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사랑을 나눴던 곳이기도 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타락하여 우상을 섬기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호 2:14~16) 그렇습니다! 광야는 첫사랑을 회복하게 만드는 특별한 장소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해야 한다는 표현을 우리가 자주 쓰는데 하나님 경험이란 다른 말로 궁극적인 존재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호렙 산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5) 단조롭고 황량한 광야의 유익한 점은 바로 이와 같은 궁극적인 존재 경험이 광야에서 훨씬 풍성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훨씬 더 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우리는 훨씬 더 본질적인 것을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 옛날 광야에서의 삶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존재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께만 그들의 마음을 두게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는 더 이상 광야가 아니라 도시의 저자거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영적으로 광야가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보다 더 많은 볼거리, 일거리 등을 생산하고 있지 않습니까? 광야는 별로 낭만적인 곳이 아닙니다. 동창회를 열거나 계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는 더욱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즐겁게 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것이 광야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영적인 광야를 피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만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해야 하는 광야를 찾기 싫어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광야에서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를 외면하고 회피하면 우리의 모든 것이 화려하고 열정적인 것으로 변할 줄로 알았는데 오히려 영적으로 더 심한 공허함이 우리를 지배하는 까닭은 과연 무엇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도시의 온갖 시끄러운 소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공허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배고프게 될 수밖에 없고 우리의 영혼이 목마르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광야로 나갔으면 또한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막 1:3) 주의 길을 준비하라는 이 말은 세례 요한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사명을 깨우쳐 주는 말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할 책임이 있는 오늘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일깨워 주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또한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곧 길이요...”(요 14:6) 그렇다면 길이신 주님의 길을 준비한다는 것은 과연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주님의 길은 준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분명히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삶을 살면서 어떻게 주님의 길을 준비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오늘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그 옛날 세례 요한처럼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또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때문에 우리가 먼저 거친 광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서 담대하게 회개를 촉구해야 합니다.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그 길에서 돌이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그 주님을 믿도록 크게 외쳐야 합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삶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영접할 수 있도록 증언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먼저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함께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으면 누구든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길을 준비하는 충성스러운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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