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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빚진 자라 (롬 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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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빚진 자라 (롬 1:11-14)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도를 두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는 베드로이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는 바울입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증거할 때 세 번에 걸쳐 선교 여행을 했습니다. 세 번째 여행을 할 때 고린도라는 도시에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고린도에 머물렀을 때 로마에 교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로마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길이 막혀 가지 못하고 편지를 쓴 것이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3차 선교 여행 중 기록된 책이고, A.D. 56~57년경에 기록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을 보기 원했지만 로마서 1장 13절에 “길이 막혔도다”라고 말합니다. 길이 막힌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막으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가 굶어 죽게 되었으니 바울이 이방인 교회로부터 헌금을 걷어 예루살렘 교회로 가기를 원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로마로 가는 길을 막으신 것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행 16:6). 

바울은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가운데 계속해서 아시아에 있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게도냐(유럽) 사람들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달라는 환상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이 마게도냐로 먼저 가는 것임을 알게 되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쪽은 막으시고 한쪽은 열어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사단이 막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살전 2:18) 
 
그렇다면 바울은 왜 그렇게 로마에 가고자 간절히 소원했습니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전도의 열매, 회심(conversion)의 열매를 보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롬 1:13). 바울이 복음을 설교하면 사람들이 듣고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은 복음을 믿고, 그렇지 아니한 사람은 들어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반드시 믿을 것이고 회심의 열매가 맺혀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둘째, 교회를 견고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edification).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롬 1:11). 

여기서 신령한 은사라는 것은 고린도전서 12~14장에 나오는 방언, 예언, 통변과 같은 은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성령의 신령한 은사들은 전부 복수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로마서 1장에 기록된 신령한 은사는 단수입니다. 이것은 복음 자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 자체를 가르쳐서 영적으로 어린 상태에 있는 로마의 성도들을 성장시키기 원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엡 4:12). 복음을 가르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나간다는 것입니다. 
 
셋째, 피차 안위를 얻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mutual encouragement).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롬 1:12). 상호 간에 격려, 위로, 자랑이 되는 것을 원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하고 교회를 세워주면 그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되고, 우리에게는 자랑이 됩니다. 

여러 해 전에 우리가 필리핀에 갔을 때 한 교회가 우리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교회는 성도가 200명이 넘는데 아주 허름한 곳에 세를 들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세 들어 사는 기간이 끝나 나가게 되었는데 예배당을 짓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헌금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으니까 10년 동안 헌금해서 모은 것이 우리 돈으로 십만 원이었습니다. 백 평의 땅을 사놓았는데 그 옆길은 질퍽질퍽한 진흙길이어서 개구리 떼가 오만 마리 정도 있는 것 같이 시끄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예배당을 짓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다 예배당을 지으면 주차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보니깐 아무 계획이 없다고 해서 앞에 있는 백 평의 땅을 더 사면 어떻겠냐고 물어보니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같이 간 권사님들 중 한 분이 돈을 내셔서 땅을 사게 되었고 우리 교회에서 건축비 몇 천만 원을 지원하여 사택도 짓고, 예배당도 지었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이 지어지고 도시의 중심이 되니까 시에서 그 앞의 도로를 포장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그곳이 도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선교하면서 무엇을 얻어먹겠습니까? 하지만 교회를 세워 교회가 커지고 성도들이 모이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받는 사람도 복되지만 주는 사람도 복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3-4절을 봐도 바울, 실라, 디모데가 데살로니가라는 도시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가 부흥되고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인내하며 잘 견딘다는 소식을 듣자 바울이 돌아다니면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하고자 하는 목적은 결국 세 가지입니다. 첫째,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강화되어지는 것을 보고자 하는 것이고 셋째, 우리와 피선교지 상호 간에 격려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교만하고 우월적인 자세로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선교 원리는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롬 1:14). 빚 진자가 빚을 갚는 심정으로 선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Ⅰ. 빚이란 무엇인가? 

첫째, 노력해서 번 것이 아닌 것은 빚입니다. 자기가 일하고 노력해서 돈이 들어왔다면 그것은 빚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카드 하나 들고 기계에 넣어서 카드 대출을 눌러서 돈이 들어왔다면 그것은 빚인 것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돈이 들어왔다면 그것은 뇌물 아니면 빚입니다. 나중에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놀라운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과 축복은 노력하고 일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빚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6-8).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세 가지 복을 주십니다. 첫째, 죄가 아무리 많아도 용서해주시는 복을 받습니다. 둘째, 의롭다하심을 주십니다. 천국 갈 수 있는 옷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가 있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모두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였지만 이제는 하나님과 화친한 관계가 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사죄, 칭의, 화친. 세 가지 복은 우리가 노력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우리가 구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사람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것을 나눠줄 의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암을 한 번에 고칠 수 있는 약을 발견했는데 이 사람이 그것을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전화해서 가르쳐주고 큰돈을 요구해서 그것으로 돈을 잔뜩 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암환자들이 돌멩이를 들고 가서 돌로 찍히기 전에 약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을 갖고 있으면 그것이 빚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멸망, 지옥을 향해 가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영생의 복음, 구원의 복음, 천국의 복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눠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지옥에 갈 때 하나님께서 그 피 값을 우리 손에서 찾으시는 것입니다. 

“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겔 3:16-20) 그러므로 사람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빚인 것입니다. 
 
셋째, 선물로 받은 것도 빚입니다. 선물로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빚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친구를 찾아갔는데, 점심시간이라 반갑다면서 짜장면 곱빼기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에 그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짜장면 곱빼기는 아니더라도 보통은 사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빚이 되는 것입니다. 


Ⅱ. 우리는 누구에게 빚을 지고 있는가? 

첫째, 삼위일체 하나님께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존재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면 한 사람이지 세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존재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한 분이시면서 세분이십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위대한 교리를 가리켜서 삼위일체 교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사람은 무조건 이단입니다. 삼위일체를 너무 깊이 연구하는 사람은 정신 이상자가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믿어야 합니다.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 전에 택하시고 은혜를 주셨습니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시고, 구원과 천국을 주시기로 예정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저 하늘에 태양이 뜨기도 전, 밤에 별이 반짝이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자 예수님에게도 큰 빚을 졌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마구간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30세까지 목수의 조수 노릇을 하며 자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영원한 영광을 가지신 분이신데 종의 형체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저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존경할 만한 사람이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의 형체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내가 당해야 할 멸시를 대신 받으셨고 내가 맞아야 될 매를 대신 맞으셨으며 내가 받아야 될 형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죽어야 될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나를 위해서 삼 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과 영생의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께 우리가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령님께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죽었던 내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고, 듣지 못했던 내 영의 귀를 열어 듣게 하시고, 볼 수 없었던 영안을 열어 보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를 충만하게 지배해주시고 성령의 은사도 주시고 능력도 주시며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님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의롭게 살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들어오시기 전에 제 속에는 악령이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들어오시지 아니하셨다면 악령에 이끌려서 매일 술 먹고 다니고 바람피우고 다니다가 벌써 병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스물여덟 살 때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면서 악령들이 다 쫓겨나가고, 성경을 깨닫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께 얼마나 빚을 졌습니까? 평생 갚아도 다 못 갚을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를 조금 했다고 거들먹거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도 빚을 졌지만 과거 신앙의 선배들에게도 큰 빚을 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조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세 번이나 올라가 사십일씩 금식하며 기도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모세에게 친히 손가락으로 두 돌비에 기록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은 거룩한 법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지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을 어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 가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 우리는 법을 알았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를 통해 우리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매 맞고 핍박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목숨 걸고 기도한 덕분에 요한계시록을 얻게 되었고, 앞으로 인류 역사가 미래에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가를 우리는 알게 된 것입니다. 

400년 히포의 목사였던 어거스틴, 1517년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 1536년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한 존 칼빈, 영국에서 복음주의 각성을 일으키고 미국에서 제1차 대각성 운동을 일으킨 조지 휫필드, 침례교회의 위대한 스승인 찰스 스펄젼과 같은 분들이 목숨 걸고 진리를 밝혀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진리와 비진리를 구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노력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세대에 복음을 증거한 수많은 선교사들에게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1885년 아펜젤러,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1889년에 침례교회 선교사 말콤 펜윅이 들어왔습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음식과 문화도 맞지 않고, 일본 사람들에게 공연히 매를 맞았습니다. 모진 고난을 당하고 우리에게 미움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옛날 선교사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할 때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들은 우리와 같이 살며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우리는 그 수고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병원도 지어주고, 학교도 지어주고, 보육원도 지어주었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 없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입을 것이 없을 때 입을 것을 주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받고도 주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1960년도부터 2011년까지 세계역사에 유례가 없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초대교회를 제외하고 어느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은혜를 부어주신 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에 특별히 부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복을 받고 미래의 세대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 우리나라의 어린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어린이에게도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무지 속에서 복음을 듣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빚쟁이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당을 지으려고 합니다. 저는 아마 예배당이 지어질 때가 되면 은퇴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고생스럽게 예배당을 짓느냐? 제가 예배당을 짓지 않으면 제 후임이 와서 또 십 년 이상 고생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의 세대에 맞게 예배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줘야 그들이 예배드리고 복음을 증거하며 말씀을 배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의 세대를 위해 빚을 갚는 것입니다. 


Ⅲ. 빚은 어떻게 해야 하나? 

빚진 사람은 갚아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 사람들에게 빚을 갚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미래 세대를 향해서 빚을 갚아야 합니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빚진 자이므로 민족이나 나라, 문화나 교육의 우월을 따지지 말고 빚을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빚을 갚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롬 1:15). 복음을 전하되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빚을 갚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자원을 사용해서 복음의 빚을 갚으시기를 바랍니다. 소명이 있는 사람은 선교사로 나가야 합니다. 시간이 있는 사람은 선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물이 있는 사람은 선교를 위해 헌금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전 예산의 10% 이상을 선교를 위해 씁니다. 우리는 선교를 해야 산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선교를 하는 한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지키실 것입니다. 우리는 선교를 위해 헌금해야 합니다. 빚을 졌기 때문에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이슬람교가 필사적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도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와서 매수합니다. 우리가 선교를 해야 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진리가 전파되지 않으면 그 빈 공간에 다른 종교가 차지하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영혼은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 것은 영혼을 구원하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함인 것입니다. 
 
올해 선교주간의 표어는 “Jump up to operation 2000”입니다. 2,000명이 선교헌금에 동참하기까지 뛰어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작년까지 1,800여명이 선교헌금에 동참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개척교회 128개, 선교사 103명을 도왔습니다. 연말이 되면 개척교회와 선교사들에게서 도와 달라는 편지가 많이 옵니다. 우리는 모두 도와주지 못하기 때문에 제일 어려운 곳을 골라서 도와줍니다. 
 
우리 수입 중 일부를 떼어 선교헌금을 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빚을 갚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교 헌금에 대해서만큼은 풍성한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 4:19). 우리가 선교 헌금을 위해서 소득의 일부를 떼서 드리면 하나님께서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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