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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히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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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히 10:19-25)

사자와 나귀 그리고 여우가 함께 사냥을 했습니다. 사냥을 해서 얻은 것들을 늘어놓고서는, 사자가 나귀에게 사냥한 고기의 분배를 맡겼습니다. 
“나귀야, 네가 좀 공평하게 분배해 보거라”  

나귀는 사자의 말을 듣고서 똑같이 세 등분으로 공평하게 나누었습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똑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보고 있던 사자가 화를 버럭 내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사냥할 때 내가 제일 많이 애를 썼는데 이게 뭐냐?” 화를 내면서 나귀를  그 자리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이제 사자하고 여우만 남았습니다. 또 다시 사자가 여우에게 임무를 주었습니다. “여우야, 이번엔 네가 한번 공평하게 분배해 보아라.” 

여러분, 여우가 어떻게 분배를 했을까요? 여러분이 여우라면 어떻게 분배하셨겠습니까? 역시 여우는 지혜로웠습니다. 
사냥해서 얻은 것 중에, 90%는 사자에게 돌리고, 나머지 10%만 자신이 차지했습니다.  이것을 본 사자는, 아주 만족스러워 하면서 말했습니다. 
“여우야, 너는 어디서 이렇게 지혜로운 생각이 떠올랐니?” 
그 때 여우가 대답을 합니다. “네, 나귀가 죽는 것을 보고 생각해냈지요.”

우리가 보기에는 어처구니없는 불공평한 분배처럼 보이지만, 여우는 사냥감 조금 더 받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은 사냥감을 분배받느냐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생명이 끝나면 우리가 사냥한 모든 것, 우리가 쌓아올렸던 그 모든 것은 결국 아무 의미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 90 : 12절에 보면, 인생의 종국을 앞둔 모세가 이런 기도를 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의 남은 날을 계수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남은 날은 얼마입니까?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의 인생이 남아있는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또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날은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똑딱하는 이 순간에도 그 날은 우리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그 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0장 25절 말씀입니다. 여기서 그 날은 어떤 날일까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이 마쳐지는 종말의 그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우리는 인생의 오메가 포인트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뜻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삶을 살다가 누구나 두 가지 중 한 가지 방식으로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 오시기전에 먼저 죽게 된다면 우리는 죽음을 통해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이고 만약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살아있다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우리는 결국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그 날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다른 날과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이유는 그 날은 다른 날과 달리 또 다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각각 행한 대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시험 보는 학생이 이번에 시험을 잘 못 보았으면 다음에 시험을 잘 보면 되지만 그날에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정말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아보겠노라고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날은 우리에겐 무엇에 비할 수 없이 중요하고 또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날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그 날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그 날을 향하여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함으로 우리를 권면하고 또 위로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 날을 향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22절입니다. 

22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데 무엇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전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갈 때 무엇을 가지고 나아갔습니까? 네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야 했습니다.

저는 가끔 제가 만약 구약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여러분과 제가 만약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제가 구약시대에 태어났다면 저는 지금 이렇게 멋있는 양복을 입고 설교를 하는대신 온몸에 피를 묻힌 채 짐승을 잡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비유도 약한 제가 평생 그렇게 짐승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내고 불을 지펴 제사를 드릴 생각을 하면 제가 구약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말할 것도 없이 감사하셔야죠.. 여러분들은 요즘엔 헌금봉투에 정성껏 믿음으로 예물을 준비해가지고 오면 되지만 그때는 여러분들이 어디에 사시건 짐승을 끌고 왔어야 했습니다. 토요일 날 미리 짐승을 사서 어디다 두셨겠습니까? 아파트 베란다에 두셨겠습니까? 소나 양이 울어대면 옆집에서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면서 난리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나마 집이라도 조금 가까우면 괜챦을 것도 같은데 우리 0집사님처럼 집이 멀면 이건 더 문제였을 것입니다. 소를 어디다 싣고 교회까지 오시렵니까? 승용차 트렁크에 실을 수도 없고 뒷자석에도 못싣고 그렇다고 그걸 끌고 00에서부터 걸어올수도 없고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나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에까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오직 일 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제사장도 때때로 성결하지 못하면 죽어서 시체로 나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옷에는 무엇이 달려있었습니까? 방울이 달려있었죠. 사람들은 밖에서 방울소리가 나나 안 나나 듣고 있었습니다. 방울소리가 나지 않으면 그 대제사장은 죽은 것이기에 긴 막대기를 지성소로 넣어서 그 대제사장을 끌어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단번에 자신의 피를 다 쏟아 온전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공로로 우리는 그와 같은 수고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제 우리는 그저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러분 하나님 앞에 오기 싫을때마다 이 은혜를 생각해보십시오. 아이고 내가 구약시대에 태어났으면 소 한 마리 토요일 날 사다가 준비해두고 주일날 끌고 왔어야 하는데.. 아이고 내가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데 이걸 못하겠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시대에 비하면 얼마나 편하고 좋은 길이 열렸습니까? 
소를 사서 힘들게 끌고 올 필요도 없습니다. 온 몸에 피를 묻히고 짐승의 피를 흘려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음을 믿는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원어를 보면 가까이 다가간다 라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정말로 가까이 하는 사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을 점점 더 멀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하나님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바라기는 사랑하는 안디옥 교회 성도 여러분은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날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할까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우리 생애에서 가장 복된 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말씀 한 번 찾아봅시다. 시편73편 27절-28절 입니다.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할것이며,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이라고 말하고 있죠? 

여러분, 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일까요? 
여러분, 날씨가 추울 때 어떻게 춥지 않을 수 있을까요? 따뜻한 난로 옆으로 가까이 가면 됩니다. 어떤 사람이 따뜻하게 피워져 있는 난로 옆으로 가까이 오지도 않고 아니 아예 따뜻한 방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서 덜덜 떨면서 아이 추워.. 아이 추워 이러다 얼어죽겠네라고 말하면 그 사람에게 뭐라고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아니, 여보 덜덜 떨고 있지 말고 들어와요. 여기 따뜻한 난로가 있으니 와서 몸 좀 녹여요.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겨울 차디찬 칼바람이 몰아치는 그 날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신 따뜻한 겨울 칼바람도 따뜻한 봄의 무지개 빛깔로 바꾸어주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행복의 거리이다. 한번 따라해 봅시다. 하나님과의 거리가 행복의 거리이다. 여러분, 행복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거리를 좁히시기 바랍니다. 아니 아예 하나님께 딱 붙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떨어지시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까 우리가 읽었던 시73:27-28절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는 망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복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맞짱 뜨는 사람 쪽박찹니다. 하나님과 팔짱 끼는 사람 대박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맞짱뜨지말고 팔짱끼는 사람되심으로 쪽박차지 않고 대박차는 성도님들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을 아십니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와 가깝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과 자주 만나고 자주 연락하고 자주 대화하고 고민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친구가 연인이 되고 연인이 부부가 되는 과정은 얼마나 더 가까워지느냐 하는 것과 관련 있는데 이것은 시간을 얼마나 함께 보내느냐와 관련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람과 얼마나 가깝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과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함께 하느냐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의 의미도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여러분은 하루 중 하나님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십니까? 하루 중 하나님을 생각하며 지내는 시간은 얼마나 되며 그 분과 대화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며 그 분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얼마나 됩니까? 
이 시간이 많으면 많은 만큼 하나님과의 관계는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첫째, 그 분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자주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루가 다 지나가도록 그녀 생각, 또는 그 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가까이 하는 사람이라고 또 가까이가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고 하여 하루 종일 교회에 붙어서 성경보고 기도만하고 지낼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니 신혼부부가 서로 사랑한다고 하여 같이 집에서 하루 종일 얼굴만 보고 지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서로 좋아도 서로에게 주어진 일들은 해야 합니다. 남편은 직장에 나가야 하고 아내는 주어진 집안 일을 성실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귀하고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 종일 교회에 붙어서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만 할 수 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의 남편과 아내는 집을 떠나만 헤어져야 하지만 우리 주님은 교회를 떠나도 헤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출근하는 순간에도 직장에서 일을 하는 순간에도 집에서 설거지하며 빨래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그 모든 순간 속에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과 대화하며 함께 동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퇴근이후에 하루의 삶을 마감하면서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신 그 분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하고 또 어려움들을 고백하면서 도우시기를 기도함으로 그 분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또 그 분이 무엇이라 말씀하는 지 큐티를 통해 귀 기울여 듣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에 단 한번이라도 조용히 주님과의 묵상의 시간을 통해 말씀을 듣고 그 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온 식구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성경 보며 찬양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기도에 대해서 말하고 성경에 대해서 말하기는 좋아하지만 실제로 기도하고 성경을 읽지는 않는다.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루에 단 한 장이라도 성경을 읽어보려고 결심해 보시기 바랍니다. 안중근 의사는 말했습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말입니다...저는 여러분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하루라도 성경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성경을 좀 읽으시라고 말입니다. 하루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벙어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성도들 되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날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날이 다가올수록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두 번째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일입니다.  

24절 말씀을 함께 봉독합시다. 
우리가 첫 번째로 살펴본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면 또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자녀들인 우리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찾아봅시다. 요1서4:20절 말씀입니다. 그래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형제를 이해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과 사람사이도 어떻습니까? 
결혼이 당사자끼리 좋아서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도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꼭 하는게 있죠? 상견례.. 인사 그런 거 있쟎아요..

그럼 어떻습니까? 그 전까지 남남으로 지내던 그 사람들도 이제는 가까이하고 잘 섬겨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갓집에 갈 때 아주 부답됩니다. 지금도 처갓집에 가면 배가 터지도록 먹습니다. 어른들은 많이 드시면 좋아하니까 아무리 배가 부르고 힘이 들어도 다 먹고 또 어른들 기분 좋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처제가 없지만 처제가 있으면 잘 챙겨주고 용돈도 주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이 예뻐서일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들이 내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공동체에 속해 있는 우리 서로를 향하여 사랑과 선행을 행하는 이유는 그들이 얼굴이 예쁘고 똑똑해서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 공동체 안에는 나보다 못나고 나보다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보다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공동체에 있는 서로를 돌아보는 마음을 갖는 이유는 그 사람은 주님이 사랑하셔서 대신 피 흘려 죽으신 귀한 존재이기에 사랑하고 돌아보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또 다른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임과 우리의 공동체는 세상과는 달라야 합니다. 
세상은 어떻습니까? 서로에게 이익이 있을 것 같고 도움이 될 만한 사람만 가까이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관심하고 냉정하게 대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끼리끼리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의 분위기와 흐름이 교회 안에서 자리 잡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차별 없이 모두가 서로를 뜨겁게 사랑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끼리끼리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이고 모두가 귀하고 소중한 지체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지체들이 모여있는 이 지상의 교회 안에서 우리는 때로 누군가가 던진 말로 큰 상처를 입고 또 때로는 나의 작은 말 한 마디 행동하나가 누군가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던져 줄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로 모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다 완벽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는 틀림없는 사람들이라면 우리에게는 주님이 필요없으실 것입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주님이 필요하고 우리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고 이해하고 돌아보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 전도를 하다보면 가장 상처가 없어야 할 교회에서 왜 그리 상처 받은 사람이 많은 지 가장 아픔이 없어야 할 교회에서 아픔과 고통을 받은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기도를 주님 앞에 자주 드립니다. 
하나님 오늘하루도 제가 하는 말로 인해 상처받는 자 없게 하시고 내 행동으로 인해 시험에 드는 자들이 없게 하옵소서..  
그리고 오늘 하루도 무슨 말을 듣든지 어떤 행동을 보게 되든지 상처받거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안 주기 안 받기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받지도 말고 시험을 주지도 맙시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도 안되고 자신이 상처를 받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옆 사람을 손가락질 해보십시오..
다른 사람을 향해서 우리가 손가락을 하나 가르치며 판단할 때 위는 하나님을 향해 그리고 나머지 세 개는 나를 향해 가르치고 있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성도의 허물과 잘못이 보일 때 그것을 향해 손가락질하지 말고 그 허물과 잘못을 위해 두 손을 모아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또 두 손을 활짝 펴서 그 성도를 사랑으로 안아주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성숙한 성도들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만나는 모임을 기대하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25절 말씀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성경은 참으로 진리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정말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님이 오실날은 가까이오고 그 날이 오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주님 만나는 시간을, 모이는 시간을 폐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부흥회를 하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일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빼곡히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목회자가 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어렸을 때 그런 부흥성회를 통해 받은 은혜 때문에 주의 길을 가고 있고 어렸을 때 받은 그 은혜 때문에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로 세움 받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옛날에는 자기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 부흥회를 해도 가서 은혜 받기 위해서 많이들 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다른 교회 부흥회는 말할 필요가 없고 자기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고 아무리 광고를 하고 얘기를 해도 어린아이는 고사하고 어른들도 많이 빠집니다. 그러니 신앙이 절대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믿음이라는 것, 신앙이라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자란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말씀에 보세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신앙이 성숙하는 것 그것은 간단합니다. 
주님을 만나는, 주님을 가까이 하는 그 시간을 사모함으로 참여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글을 어떻게 떼었고, 구구단을 어떻게 떼었습니까?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그나마 초등학교를 다니고 중학교를 다녔기에 그 만큼의 지식을 얻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어쨌든 교회에 한번이라도 더 나아와 말씀을 한 말씀이라도 들으면 그만큼 여러분의 믿음은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될 수록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모이기를 폐하는 마음을 심어줍니다. 야.. 일주일에 한번 만 예배드리면 되지 야 수요예배는 뭐하러 가냐? 수요예배는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만 가는 거야, 금요기도회는 뭐하러가? 금요기도회는 문제거리 있는 문제아들만 가는거야.. 성경공부 넌 많이 알쟎아? 새벽기도 야 그건 잠없는 노인네들이나 가는거야.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까? 수요예배는 시간 많은 사람만 오고 금요예배는 문제 있는 문제아들만 오는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이 시간 금요 기도회에 온 여러분은 시간이 남들보다 많이 남아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그 분을 사랑하기에 이 시간에 나오신 줄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만남 아닙니까?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사모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게 틀림없습니다.

여러분, 옛날 연애할 때 생각해보세요.. 밤이고 낮이고 보고 싶었던 적이 한 번씩은 있었지 않습니까? 그런 시간이 없이 결혼하신 분 있으십니까? 
사랑한다면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보고 싶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졸린 눈을 비비고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면서 찬 새벽공기를 가르면서 새벽에 나아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아닙니까? 

세상 속에 쪄들고 꼼짝 달싹 없이 바쁘고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수요일, 금요일 시간을 지켜 예배에 참석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다음주 특별 새벽기도회를 진행합니다. 여러분, 특별 새벽기도회는 왜 특별 새벽기도회일까요? 네 일반 새벽 기도회에 나오지 않는 분들도 꼭 나오셔야 되기 때문에 특별 새벽기도회입니다. 이번 특별 새벽기도회는 다른 때와 다르게 여러 프로그램들을 준비해서 진행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은혜의 시간이 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실 큰 교회에서 진행하는 특새에 참여하기 위해 성도들이 얼마나 이른 새벽부터 애쓰는지 아십니까? 새벽 3시부터 일어나서 본당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 본당은 3시부터 일어나서 올 정도는 아닙니다. 이것도 은혜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세가 되어갈수록 악한 마귀는 우리의 모임을 폐하게 함으로 하나님 만나는 시간을 없애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은혜를 사모한다면 우리는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모이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또한 말씀을 듣는 우리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 가족들도 모이는 일에 힘써서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커 갈수 있도록 바르게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새벽기도회는 미성년자 참석 불가입니까? 금요기도회는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하는 약장수 공연입니까? 아닙니다. 어린아이든 청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모임을 사모하며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아오면 은혜를 받고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어렸던 그 시절부터 하나님이 우리 부모님을 통해 저를 신앙으로 철저히 훈련하셨던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저희 아버님 즉 지금의 목사님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게 되는 그 순간부터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그 시절부터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번씩 가정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목사님도 아니었지만 그 때 저희 아버님은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번씩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어린마음에 때로는 뭘 하루에 두 번씩이나 예배를 드려야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큰 거부감 없이 예배를 참여하였습니다. 
그 당시 들었던 말씀이 지금 기억나겠습니까? 무슨 말씀을 전하셨는지 어떤 찬송을 불렀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예배를 통해 저의 믿음은 자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제대로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중학교 2학년때 성령세례를 통해서 지만 적어도 어렸을때 드렸던 그 예배가 저의 지금 신앙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뒤 중2때 성령세례를 받고 제 기억에 저는 지금까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모든 예배에 다 참석하였던 것 같습니다. 하기야 고3때도 모든 예배에 다 참석하였으니까 정말 제 기억엔 예배에 빠졌던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자녀 문제 때문에 고민되는 성도님들 계십니까? 성적 때문에 고민이 되십니까? 자녀가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자녀 때문에 울지 않고 웃을 수 있습니다. 자녀가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공부해라 공부해라 소리 안하고 그만하고 자라고 말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주일학교에 나와 20-30분 말씀 들어서 어떻게 온전한 신앙으로 자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이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조금은 손해를 보고 심지어 우리의 생명을 걸고라도 지켜야만 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모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마지막 때 마귀의 핵심전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로마 시대에는 사람들이 모일 장소가 없어 카타콤이란 지하 밀실에서 목숨을 담보로 몰래 예배해야 했고 오늘날 중국과 북한의 지하교회에서 역시 목숨을 걸고서 하나님 앞에 모이고 예배하는 믿음의 파수꾼들이 있습니다.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자유롭고 편하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여건 속에 있는 것입니까? 이런 편안하고 자유로운 속에서도 하나님 섬기는 일에 있어 모이는 일에 게으르고 나태하다면 우리는 그 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 결코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인생의 종지부를 찍는 오메가 포인트로서의 그날이 다가옴에 따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나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무엇보다 복되고 귀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었습니까? 
첫 번째는 그 분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입니다. 그 분과 만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시간도 정하고 성경도 빠지지 않고 보고 순간마다 그 분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분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며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 분을 사랑하기에 그 분이 사랑하는 공동체를 사랑하고 돌아보고 섬겨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 분과의 만남, 모임을 사모하고 열심히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밤 그 날이 다가올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공동체에 속해 있는 우리 가족, 성도들을 서로 돌아보고 사랑하며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모일 수 있도록 권면하고 모이기를 힘쓰는 복된 성도들이 되심으로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생애를 후회없이 가장 아름답고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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