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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왕으로 오신 예수님 (마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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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오신 예수님(마2:1-8)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왕으로 설명한다.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하셨음을 말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전혀 영접하지 않았다.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 탄생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 (눅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자기 백성들이 영접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은 태어나 구유에 뉘었다. 신앙은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할 것인지를 묻는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가? 

1. 동방 박사들의 도착(1).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여기서 예수님의 탄생을 3가지로 밝히고 있다. 

(1) 예수님은 헤롯왕 때 탄생하셨다. 
헤롯의 아버지는, 이두매 사람(에돔 사람)이었다. 헤롯은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다. 그러나 유대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었다. 이는 그만큼 인간적으로 유능했다. 그래서 헤롯 대왕으로 불렸다. 

헤롯은 유능했지만, 몹시 교활한 인물이다.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그는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하면서도, 동방박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도 가서 경배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또 잔인한 인물이었다.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그는 정권을 유지하려고, 처남, 장모, 아내, 자기 아들들까지 죽였다. 

헤롯왕은 자신이 죽기 얼마 전에, 자기 부하들에게, 예루살렘의 저명한 인사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도록 했다. 자기가 죽을 때, 그들도 함께 처형하라고 했다. 자기가 죽으면,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들을 함께 죽여서, 예루살렘이 슬픔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2) 예수님은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8km, 2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에브랏이다. 베들레헴을 일명 "다윗의 동네"라고 불렸다(눅2:4, 눅2:11).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 탄생함은, 우연이 아니다. 예언된 말씀의 성취이다. (5-6)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예수님은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가셨다. 이것도 예언의 성취다. (14-15)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헤롯왕이 죽고 난 뒤에, 예수님은 나사렛에 와서 사셨다. 이것도 예언의 성취다.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예수님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대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베들레헴의 뜻은 '떡 집'이다. 

예수님은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떡 집'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생명의 떡'이다. 

(3)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을 찾아왔다. 
동방박사들이 어느 나라 사람이며, 무엇을 하고, 그들의 이름은 무엇이고, 몇 명이나 왔는지, 무엇을 타고 왔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 어떤 길로 왔는지, 전혀 말하지 않는다. 

(1下) "…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이것이 그들에 대한, 설명의 전부다. 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들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간단하게 기술하는가? 성탄의 주인공은, 동방 박사들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다니엘서를 보면, 바벨론에는 박사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왕을 자문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지 못한 연고로, 박사들이 다 죽게 되었다. (단2:12-13) "왕이 이로 말미암아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 명령하니라, 

왕의 명령이 내리매, 지혜자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그런데 다니엘이 왕의 그 꿈을 해석하자 (단2:48)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세워 바벨론 온 도를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박사의 어른을 삼았으며" 

박사들의 어른으로 삼았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바사 제국이 들어섰을 때도, 박사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에1:13上) "왕이 사례를 아는 박사들에게 묻되…" 바사 왕 아하수에로는, 왕명을 거역한 왕후, 와스디의 일로 인해서, 박사들의 자문을 구했다. 이처럼 박사들은, 왕의 참모역할을 했다. 

따라서 박사들은 바벨론 시대 때, 그들의 어른이 된 다니엘을 통해, 메시아에 대한 가르침을 접할 수 있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남아 있던 자들도 있었다. 바로 남아있던 유대인들을 통해서, 그 땅의 박사들은 또한, 메시아 사상을 접할 수 있었다. 

이들 가운데, 몇몇 박사들이 와서 말했다.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다윗의 자손'이 메시아의 별명인 것처럼, 이방인들에게는 '유대인의 왕'이 메시아의 별명이었다. 

그래서 헤롯은, 동방 박사들이 말한 '유대인의 왕'을(4), 그리스도, 메시아로 보았다. 동방박사들은 왕이 사는 예루살렘으로 오면, 당연히 그곳의 사람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신지를 다 알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아무도 알지를 못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계속해서 물었다. 

그러면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데, 동방 박사들은 어떻게, 메시아의 탄생을 알았는가?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그들은 동방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의, 별을 보았다고 하였다. 

동방박사들이 보았던 별이 무엇인지, 견해가 다양하다. 헬리 혜성의 출현, 목성과 토성의 대 결합, 또는 그때 특별하게 나타난, 새 별 등등, 다양한 견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별의 정체에 대해서, (눅2:8-9) 성경적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주의 영광이, 환하게 비췄다. 마찬가지다. 

동방 박사들에게도,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기 위한 징조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을 것이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의 영광은 낮에는 구름기둥이 되고, 밤에는 불기둥이 되어서, 그들 앞서 가면서, 발걸음을 인도했다(출13:21-22).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의 빛난 별처럼 밝게 비추면서, 동방박사들 앞에 가면서,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인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징조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면,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징조는 무엇일까? 

(마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징조도 역시, 큰 영광, 곧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면, 다른 사람들은 왜 보지 못했는가? (출14:19-20)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이루어진 구름기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광명이었다. 그러나 똑같은 구름기둥이, 애굽사람들에는 흑암이었다. 마찬가지로 동방 박사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환하게 보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전연 보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옛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함을 받았던 것처럼, 동방 박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인, 별의 인도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의 인도를 받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2. 헤롯왕의 소동(3)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동방 박사들과 헤롯왕이 보여준 태도는 정반대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너무 기뻐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귀한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기 위해,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 그런데 헤롯왕의 반응은 전연 달랐다. 헤롯이 보인 반응은, 소동했다. 혼란에 빠졌다. 그가 소동한 이유는, 자기의 왕위가 위태롭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서 왔다. 

그는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라, 이두매 사람이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로마도, 헤롯왕의 통치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바랐다. 그래서 열심당에 속하는 사람들은, 틈만 있으면 무력을 써서라도, 나라의 독립을 되찾으려고 했다. 

이러한 때에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새 왕이 탄생했다고, 소문내고 다니니까 자기의 왕위가, 큰 위협을 받게되었다고 느꼈다. 그런데 동방 박사들의 출현으로, 헤롯왕만 소동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 온 예루살렘도 더불어 소동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렸다. 

(눅3: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그리스도는 유대인들만 아니라, 또한 사마리아인들도 기다렸다. (요4: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이는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는 동네에 살던 여인이, 예수님에게 했던 말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처럼 모두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그들이 마땅히 보여주어야 할 반응은 무엇인가? 

그들도 동방 박사들처럼, 기쁨이 충만하여, 사모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찾아가, 경배를 드려야 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헤롯왕과 더불어 함께 소동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 동안 헤롯왕이 자기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어떤 짓을 해왔는지 익히 보아왔다. 

헤롯왕은 왕위에 위협을 느끼면, 그 누구라도 가차없이 죽여버릴 만큼, 잔인한 인물이었다. 지금 예루살렘 사람들은, 헤롯왕이 소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따라서 헤롯왕에 의해서,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일어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도 덩달아 두려움에 떨면서, 소동할 수밖에 없었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었다. 그래서 헤롯왕을 두려워하며, 눈치만 살폈다. (요19:14-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외친다. 이 세상 왕의 환심을 사기에 급급했던,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결국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다. 

따라서 무슨 일에든지, 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믿고, 힘있게 의지하기 바란다. 그 때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소동하거나 요동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 안에서의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헤롯왕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 종교지도자들을 불러모았다. 성경 전문가들을 소집한 목적은,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는지 물어보기 위해서다. (요7:40-42) "이 말씀을 들은 무리 중에서,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하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이 살던 마을,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이처럼 그리스도는,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게 된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그렇지만 헤롯왕은, 성경 전문가들인 종교지도자들에게, 공식적인 답변을 듣기를 원했을 것이다. 헤롯왕은 자기가 소집한,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에게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물었다. 헤롯왕은 동방 박사들이 말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그리스도를 말함을 알고있었다. 

동방박사들과 헤롯왕은 똑같이, 그리스도가 나신 곳을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은 전연 달랐다. 동방 박사들은 그리스도께 경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나신 곳을 알고자 했다. 헤롯왕은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서, 난 곳을 알고자 했다. 

헤롯이 소집한 종교지도자들은, 전문가답게 주저함이 없이, 헤롯이 원하는 바를 알려주었다.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 탄생함을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저들은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천사의 지시를 받아,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께 경배했다는, 놀라운 소문도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동방 박사들이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고 있다면, 마땅히 그들은 관심을 가지고,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무관심했던 그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일에, 앞장선 장본인들이 된다.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3. 헤롯왕의 연극(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헤롯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도록 되어 있던 곳이, 유대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리스도가 태어난 때다. 그리스도가 태어난 장소와 때, 이 2가지만 알면 헤롯은 자기가 뜻하는 바, 곧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방 박사들을 불렀다. 그런데 박사들을 부르되 '가만히'(몰래, 비밀히)불렀다. 무엇인가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헤롯에게는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동방의 박사들이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그들도 역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방 박사들은, 헤롯의 교활한 연기에 속아서,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 알려주었을 것이다. 

헤롯은 박사들이, 자기 뜻대로, 속아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그래서 동방 박사들을 철석같이 믿고, 그대로 베들레헴으로 보냈다. 헤롯은 그들에게 아무도 딸려보내지를 않았다. 동방 박사들을 속이려 했던 헤롯은, 결국 헤롯은 자기 꾀에 넘어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오히려, 그 자신이 속고 말았다. 헤롯은 자기가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결코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헤롯은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그들에게 두 가지 임무를 맡겼다. 첫째는 아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아기의 이름은 무엇이며, 그 아기의 부모는 누구이고, 그 아기는 생후 몇 개월이 되었으며, 지금 그 아기가 어느 집에 있는지, 등등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했다. 

둘째는 그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게로 다시 되돌아와서, 자기에게 그 내용을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헤롯은 박사들을 안심시키려는 듯이, 그들에게 허울좋은 구실을 댔다. 자기도 그리스도로 탄생한 아기에게 가서, 경배하겠다는 것이었다. 

헤롯의 경배는 경건을 가장한 그의 위선적 연기에서 나오는, 거짓 경배에 불과했다. 거짓경배는 로마 군병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보여준 태도와, 동일한 것이었다(마27:27-31). 본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하여, 세 종류의 다른 반응을 볼 수 있다. 

(1) 헤롯처럼 예수님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처럼, 예수님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다. 
(3) 동방 박사들처럼, 예수님을 경배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그 이후의 역사 속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경우에, 어디에 해당하는가? 물론 우리 가운데는, 헤롯처럼 예수님에게, 적대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줄 안다. 그러나 본문의 종교인들처럼,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지는 않는가? 

그들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도 동방 박사들처럼 예수님을 왕으로 경배하기를 진정으로 원하는가? 우리도 동방 박사들처럼, 왕이신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서, 우리의 보배합을 활짝 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예수님은 나의 왕이신가? 스스로 물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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