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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 (막 12: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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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 (막 12:18-27)
 
유한한 시간 속의 인생에 갇히지 않고 
속 좁은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사랑이 넘치고
얕은 지식과 경험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자신의 생각에 갇히게 되는데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에 갇히는 이유는 본인이 원하는 이익과 위치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갇히게 되면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신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틀 안에 갇히게 됩니다.

‘상자 밖으로 나오라(Out of the box)’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상자 속에 갇힌 인생을 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라는 상자 속에서 벗어나려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나야만 유한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인생에 갇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야만 속 좁은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얕은 지식 속에 갇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기도, 성령님을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진리, 사랑, 지혜’는 반드시 승리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유대사회의 지도층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나눈 대화를 보면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예수님을 향한 시기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 지식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일 본문에서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질문을 했습니다. 그들은 세금 내는 문제를 통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과의 논쟁을 통해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은 논쟁의 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을 공격하려는 지도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도 예수님은 한 번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군중을 동원하지 않고 논쟁에서 모두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진 무기는 오직 진리와 사랑 그리고 지혜였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한 어려움과 환난이 찾아오지만 믿음 안에 바로서 있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진리와 사랑, 하나님의 지혜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사두개인들이 던진 질문

오늘 본문에는 사두개인들이 등장합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했지만 실패하자 사두개인들까지 등장한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꺼낸 이슈는 부활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주제로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모세가 우리를 위해 쓰기를 ‘만약 형이 자식 없이 아내만 남겨 놓고 죽으면 동생이 그 형수와 결혼해서 형의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들이 있었습니다. 첫째가 결혼을 했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둘째가 그 형수와 결혼을 했는데 그도 역시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셋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일곱 형제 모두가 자식 없이 죽었고 결국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일곱 형제들이 다 이 여자와 결혼을 했으니 부활할 때에 이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19~23절)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대를 잇게 하는 법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있을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왜 이러한 법이 있었을까요. 당시는 여성을 비하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여성은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 만약 남편이 아내보다 먼저 죽으면 아내는 살길이 없어지기 때문에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입니다. 가장 가까운 남편의 형제와 결혼해서 그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이상한 법으로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전통이고 아름다운 문화로 여겨졌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게 된 근거가 바로 이 법입니다. 보아스가 나오미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었기 때문에 룻과 결혼해서 대를 이었습니다. 그 뿌리에서 다윗이 태어나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이 법을 부활에 적용해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당시 유대문화에서는 아내가 남편 일곱을 거느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반대로 한 남자가 일곱 아내를 거느리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인간의 생각에 갇힌 율법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던진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율법이 무너지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부활은 없다’ 혹은 ‘부활은 있어서도 안 된다’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던 이유는 모세오경에 집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세오경에 기록된 것만 지키고 믿었기 때문에 그 외의 역사서나 선지서, 시편 등의 책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세오경만이 진정한 성경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모세오경에는 직접적으로 부활에 대해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부활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몸이 죽으면 영도 함께 죽는다고 믿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신학자들 가운데 이런 사두개인들과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몸이 죽으면 영도 죽는다’는 것은 사두개인들의 신학입니다. 그들은 천사도 악마도 존재하지 않고 영적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부활은 모세오경에 나오지도 않는 하나님의 법을 후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생각이라고 믿었습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을 역사를 통해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은 그 율법을 해석할 수 있는 역사를 주셨는데 율법을 받은 인간들은 자신의 생각에 갇혀 본인들이 주장하는 율법만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모세오경 이후의 역사는 성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그들의 기준입니다.

부활 이후의 세상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기준이 되면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생각으로 제한하고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도 자신의 기준에 따라 제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사두개인들의 질문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모릅니다.

사두개인들은 천국과 이 세상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믿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을 이 세상보다 업그레이드 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의 경험을 천국에서도 그대로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후의 세상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날 때에는 시집도 가지 않고 장가도 가는 일이 없다. 그들은 마치 하늘에 있는 천사들같이 될 것이다.”(25절)

천국은 마치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온전한 몸과 얼굴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서 온전한 몸을 입으면 그때 온전한 얼굴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죄를 안고 태어나기 때문에 연약함을 갖고 있지만 이 세상에서도 천국과 같은 모습을 회복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활짝 웃는 것입니다. 웃는 것은 금전을 들이지 않고 하는 성형수술입니다. 웃는 얼굴에는 미운 얼굴이 없습니다.

상처받은 기억 씻어 주는 천국

여러분, 이 세상과 부활 후의 세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천국에 간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의 역사와 기억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억이 사라지면 어떻게 가족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겠습니까.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가면 사라지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상처받은 기억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는지 모릅니다. 기억의 상자 속에 나쁜 것이 가득하면 나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억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천국은 나쁜 상처들은 모두 씻기고 좋은 기억만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가족으로부터도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그 가족과 함께 있으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통의 원인들이 모두 제거된 상태이기 때문에 상처를 준 가족을 만나도 이전보다 더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천국에서는 이 세상에서보다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이전보다 더 깊이 서로를 용납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의 결혼제도는 없어지지만 주님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결혼은 이 세상에서의 결혼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경과 능력’ 둘 다 모르는 사두개인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한 질문은 이 세상과 천국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천국과 이 세상이 어떤 것이 연결되고 끊어지는지를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질문은 의심에서 나오는 가상의 질문이었습니다.

의심에는 건강한 의심과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의심이 있습니다. 건강한 의심이 생기는 이유는 진지함 때문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의심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 의심은 믿으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생깁니다. 이 의심은 하나님이 주시는 의심입니다. 이 의심에 대한 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불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의심은 삶을 망가뜨립니다. 여러분, 잘못 생각한다는 것은 정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정말 부활이 궁금해서 온 것이 아니지 않느냐?”, “부활을 믿지 않는 너희들의 생각을 합리화하려고 이 질문을 한 것이 아니냐?”라고 오히려 그들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들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몰라서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24절)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른다고 평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성경은 아는데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이 있고, 성경은 모르는데 하나님의 능력만 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아는데 하나님의 능력은 모르는 사람들은 체험이 없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지식적 신앙으로 기울어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모르는데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신비주의 신앙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체험은 있는데 분별력이 없습니다. 자신의 체험을 성경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신앙은 성경도 알고 하나님의 능력도 아는 것입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언제나 새로운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행하시는 모든 일을 성경에 기록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도 알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로 그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모두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은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몰랐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죽은 신앙이었고, 자기 생각에 갇힌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여러분,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모두 잘 아는 신앙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이 사두개인들에게 왜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을까요. 그들이 모세오경만을 믿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모세오경도 제대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모세오경의 시작은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한 구절이라도 그들이 제대로 믿었다면 어떻게 부활을 믿지 못했겠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아니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어렵습니까. 창조가 더 어렵습니다. 그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받아들였다면 부활의 하나님을 왜 못 믿겠습니까.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모세오경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

예수님은 부활을 지지하는 말씀을 모세오경에서 찾아냈습니다. 
“죽은 사람의 부활에 대해서는 모세의 책에 가시떨기나무가 나오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너희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26~27절)

예수님은 출애굽기 3장 6절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신 이 말씀이 어떻게 부활을 지지하는 말씀일까요.

모세의 시점으로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과거의 인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다’ 라는 현재형 표현을 통해 지금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살아 있는 인물로 간주하셨습니다. 역사 속에서는 죽은 사람인데 하나님이 그들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시제는 현재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하나님과 현재의 하나님 그리고 미래의 하나님은 각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신 분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이며 부활할 존재입니다. 그들은 지금 천국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으리라.”(요 11: 25~26절)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현재의 시제만 있습니다. 과거에 묶여 사는 인생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의 약속을 확실하게 믿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은 모든 세대의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분명 한 혈통이지만 다른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들은 경험도 다르고 하나님을 만난 체험도 다릅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하나님은 그들 모두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가 바뀌면 새로운 신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되고,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고,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성경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이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대의 하나님입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열등한 하나님이고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이 우수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말시온’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이 왜 진화합니까. 진화하는 것은 신이 아닙니다. 진정한 신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고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개개인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도 인생에 많은 허점이 있었지만 그들을 불러 주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세대의 영혼마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군중소리를 듣지만 하나님은 한 영혼의 호흡과 심장박동 소리를 귀 기울여 듣습니다. 작은 신음소리에도 귀 기울이시는 분입니다. 예수님도 한 영혼의 애원에 귀 기울이셨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하나님이 되시는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죽은 자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있다가 주님 다시 오실 때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태복음 8장에서 “우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식사하게 될 것이다”(11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 사람뿐이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을 만나 성경 이야기를 나누면서 식사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살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만이 살아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갇히지 않고 부활의 소망으로 이 땅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재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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