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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자기 진술서 (요 18: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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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자기 진술서 (요 18:37-38)

세계 어느 나라든지 법질서와 공권력이 잘 유지되는 나라가 강대국이요 선진국입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경찰을 가장 만만하게 보는 국민들이 사는 나라는 대한민국일 것입니다. 취객이 파출소에 가서 행패를 부리는 나라, 그리고 시위대가 경찰 서장에게 폭력을 행사하고도 ‘왜 그런 자리에 왔냐’고 적반하장으로 책임을 넘기는 나라는 OECD 선진국 중에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동생이 경찰이라 그런지 생각이 좀 다를 수 있으니 견해가 다르더라도 양해바랍니다. 저는 파출소에서 술 취해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은 1주일 정도 유치장에 가두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수백만원의 벌금을 부과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잘못된 민주주의, 잘못된 인권보호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취객이 경찰에게 행패를 부려도 훈방 조치하는 것이 인권인 줄 압니다. 

중범죄를 저지르거나 공공시설물을 파손하고 죄를 지어 재판에 회부되어도 술에 취해 그렇다고 하면 관용을 베푸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는 나라가 우리 나라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술 취하는 것도 본인이 책임져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범죄한 사람은 인권의 보호를 받기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을 더 보호하려 하니 큰일입니다. 

판사 변호사 검사들의 비리 소식이 연일 계속되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에 의해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까 심히 여려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오늘 봉독한 본문을 보세요 우리 주님도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빌라도의 법정에서 이루어진 일은 재판의 형식이나 절치를 볼 때 말도 안되는 황당한 재판이었습니다. 

재판장은 빌라도입니다. 고소자와 검사 역할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합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없는 재판입니다. 


우리 주님이 받으신 재판이 참으로 황당한 이유는 

1)자리가 바뀐 재판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재판합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무죄하신 예수님이 피고로 죄수의 자리에 서있고 사악한 빌라도가 재판장 자리에 있습니다. 
죄 없는 자가 죄인을 재판해야 하는데 죄인이 무죄한 자를 재판하고 있습니다. 


2)진리가 통하지 않는 재판입니다. 

재판은 진리가 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재판장이 진리가 뭐냐고 피고에게 묻고 있습니다. 진리가 뭔지도 모르는 재판장이 진리의 주체이신 예수님을 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3)무죄한 자가 유죄로 바뀐 재판입니다. 

분명 재판장인 빌라도가 죄가 없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재판 결과는 사형입니다. 왜죠? 재판장이 자기의 판단을 포기하고 고소자들과 청중들의 요구대로 사형을 언도했습니다. 분명 재판장은 아무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기에 분명 무죄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사형입니다. 세상에 이런 재판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주님은 재판을 무시하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당하십니다. 얼마든지 저항 할 수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죽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묵묵히 사형을 당하십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가 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였고 그가 그 십자가를 지시고 죽은 것은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사야53:5~6절을 보세요.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킨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그 말도 안되는 재판을 수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오늘 본문에 주님은 재판 중에 당신께서 누구신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질문한 것에 당당히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시고 계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당신을 누구라 하시나요?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1. ‘나는 왕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37절 상반절을 보세요. 다같이 읽습니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빌라도가 “네가 왕이 아니냐?” 하는 질문에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하십니다. 주님이 직접 내가 왕이라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으나 그분은 우리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이 선언은 단순히 주님이 처음 하신 말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 많은 곳에서 예언된 것입니다. 사9:6~7절을 보세요.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 오시기 700년 전에 예언하셨습니다. 

그는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평강의 왕”이라 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4대성인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를 포함해 4대 성자라 절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신데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왕이시기에 온 우주와 인류 역사의 통치자이십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고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신 왕이십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왕이시긴 한데 세상에 군림하고 억압하는 왕이 아니고 섬기러 오신 왕이십니다. 마태20:28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섬기는 왕, 그분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양을 받아 주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 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예수님은 우리 왕이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그분이 여러분의 왕이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분이 우리 왕이란 말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요?   

1)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에 최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왕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어떤 것보다 먼저 생각할 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시작할 때 먼저 생각할 것은 그분의 뜻입니다. 

하루의 내 계획이 뭐냐가 아닙니다. 그분의 계획이 뭐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분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뭔가를 생각하고 그 분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분을 왕으로 모신자라면 먼저 그분께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왜죠? 그분이 우리의 왕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분은 지금도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중심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 삶에 중심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활을 주관하시고 계시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가 마음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그분 중심의 삶을 살아야만 그분이 우리 왕인 것입니다. 

그분이 왕이라는 말은

2) 주님이 내 삶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을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돈도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믿을 것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얼마나 정확하냐면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고 계시는 분이 그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하신 말씀이 믿어져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왕이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고 자녀입니다. 그런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마6:31~33절을 봅시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을 믿으셔야 합니다. 믿어지면 그대로 됩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함을 믿으셔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분을 실제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종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입으로는 왕이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종처럼 대접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의 왕이십니다. 그러기에 왕을 왕으로 섬기는 자세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나는 진리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37절 중반부를 보세요.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이를 위해서 태어났다”. “이를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뭡니까? 
그것은 진리입니다. 주님은 진리 자체이시고 그 진리를 전하러 오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진리”라는 말은 헬라어로 알레데이아(ἀληθεία)라 쓰는데 이것은 영어로는 CANON이라 합니다. 즉 “절대적인 기준”, “척도”라는 뜻입니다. 

이 진리는 곧 하나님 말씀이고 이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전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진리로 오셨고 진리를 전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스스로 우리에게 소개한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요 14:6절을 다 아시지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주님만이 길입니다. 그분만이 진리이십니다. 그분만이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습니다. 

주님이 없다고 하셨으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있다고 합니다. 

여기도 길이 있고 저기도 길이 있다고 합니다. 이 종교도 길이 있고 저 종교에도 길이 있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사단의 속임수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힌두교에 심취해 있던 어떤 인도의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매의 전도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교수님이 인도 뉴델리에서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에는 교수까지 모두 네 사람이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고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교롭게도 네 사람 모두 종교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종교가 달라도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지요. 그러니 마찬가지로 어떤 종교를 믿던지 목적지는 같은 것이랍니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 듣고 있던 그 교수님이 버럭 고함을 쳤습니다. 
“아니오. 당신들은 같은 배를 탔는지 모르지만 나는 다르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배를 탔소”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배를 탔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성도 여러분! 
종교다원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아주 경계해야 합니다. 

종교다원주의가 뭐냐면 이 종교도 저 종교도 다 구원의 길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종교다원주의입니다. 그들의 말처럼 여기도 저기도 길이 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없다고 하셨으면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만이 그 길이요 주님만이 그 진리요. 주님만이 그 생명입니다.   

WCC라는 것을 들어 보셨나요? 세계교회협의회라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 때문에 한국교회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총회가 후년에 부산에서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이 단체는 종교다원주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종교 저 종교 다 구원이 있으니 포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교회가 속한 합신교단은 이것을 반대합니다. 다른 곳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로만 됩니다. 주님만이 구주이시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세상은 우리 기독교를 행해 “배타적이다” “독선적이다” 합니다. 
그래도 그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그래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십니다. 이 말씀은 진리인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설교하는 목사가 좀 부족하고 말씀 전하는 사람은 온전하지 못해도 진리는 온전하고 진리는 완벽하기에 그 진리 앞에 우리는 낮아져야 합니다.   

요한복음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36절에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들이 곧 진리고 진리가 곧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 스스로 진리를 전하러 오신 분이라 선언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사명은 뭡니까? 
그것 또한 진리를 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진리라는 특효약이 이미 있습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나 혼자 갖고 있다면 특효약을 갖고 있으면서도 남들이야 죽든 말든 나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 약은 우리의 아픔을 치유합니다. 이약은 멸망하는 자들을 구원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하는 약입니다. 이 약을 먹는 자는 누구든지 살아나게 됩니다. 또 이 약은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지고 행복해 지는 약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 진리라는 약을 나 혼자 갖고 나 혼자 누릴 수 있단 말입니까? 
  

3. “나는 구원자다”라고 선언하십니다.

37절 하반절을 보세요.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무슨 뜻입니까? 진리는 곧 예수님이시라 했지요? 그런데 본문에서는 “진리에 속한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그런데 예수님은 대답도 안하십니다. 왜죠? 말해 봐도 이해도 안 되고 믿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진리에 속한 자”는 무슨 말일까요? 
일반적으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진리에 속한 자란 1)진리를 믿는 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2)진리를 깨닫는 자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택함 받은 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런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나는 진리를 통해 택한 백성을 구원하러 온 자” 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나 예수 믿지 못합니다. 들을 수 있는 자가 믿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듣고 믿는다는 것은 구원 얻은 징표이고 그것이 믿어진다는 것은 구원받은 진리에 속한 자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여러분 귀에 복음이 들려지고 그것이 믿어집니까? 그러면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한 자입니까? 
진리입니까? 非진리입니까? 또 하나님 나라입니까? 세상나라입니까?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요한복음 10장에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구절은 양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목자를 따라간다 했습니다. “목자의 음성이 들리면” 주님의 양입니다. 그런데 듣지 못하면 양이 아닙니다. 

내가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이 귀에 들리고 믿어진다면 진리에 속한 자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반대로 들리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는다면 심각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주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들을 귀를 주셔야 합니다. 들을 귀는 성령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문제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주님의 백성들”이 이땅에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세우신 종들을 통해 진리를 전하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열심을 내고 계십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복음전도를 멈추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주님의 음성을 전하라 하셨고 전하면 듣는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이 말씀을 믿고 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리 전해도 안 믿는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믿음으로 전하면 구원받을 백성,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듣게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코메디언 구봉서 장로가 연예인교회를 섬길 때 하용조 목사님이 성경공부를 인도하셨는데 어떤 연예인이 동정녀 탄생에 의심을 하고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고 했답니다. 그때 구봉서 장로가 벌떡 일어나 외쳤답니다. “아니,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믿었는데 네가 뭔데 믿지 못 하겠다는거야? 당사자인 남편도 믿었는데 제 삼자가 왜 그리 말이 많냐”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빌라도 앞에서 당당하게 지기를 진술하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분의 말대로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왕이십니다. 
그러기에 왕을 왕으로 모셔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분은 진리이십니다. 그리고 그 진리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전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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