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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이젠 더이상 우리 예수님 구유에 없다 (눅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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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더이상 우리 예수님 구유에 없다 (눅 2:1-7)


석 주나 교회를 비웠었습니다. 여러분들 보고 싶었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풍세 계란창고 예배당 시대를 끝내고 오늘 부터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여 주신 천안시 동남구 청당동 예배처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새 예배 처소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정말 아름다운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를 함께 세워 나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마 이곳에서 최소한 일 년 반에서 이 년 가까이 예배를 드리게 될 터인데 새로 학교를 건축하여 학교 안에 있는 예배 처소로 이전 할 때까지 이곳에서 정말 행복한 교회 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급격히 쇠퇴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마치 사태가 난 것 같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몇 주 전 높은 뜻 하늘교회 이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목사님으로부터 아주 쇼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얼마 전 서울의 어느 기독교대학교에 채플 설교를 맡아 다녀오셨는데 올해 그 학교 신입생들의 기독교 비율이 3%대라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중고등학교로 내려가면 3%도 되지 않는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급속한 속도로 부흥할 80년 대 초 우리 한국의 교회 성장 속도는 가히 세계적이었습니다. 그때 영국의 어느 목사님이 ‘우리 영국 교회도 50년 전의 지금 한국 교회 같았다.’라는 뼈있는 말을 했었습니다. 그 말은 우리 한국 교회도 50년 후 어떻게 될는지 모른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우리 한국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배가 아프셔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지 30년 만에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세계 평가기관들이 내리는 평가 식으로 말을 한다면 투자 부적격을 투기 수준의 평가를 받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새로 개척하는 교회가 살아남는 확률이 1-2% 정도 될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한국 교회는 투자 부적격 판정을 받는 교회가 아니라 투기수준의 판정을 받는 교회가 이미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절망스러운 일은 제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입니다만 우리 한국 교회가 여기서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한국 교회가 이렇게 된 데 직접적인 책임도 있고, 또 그 책임을 깨닫기만 하면 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도 있는 소위 대형교회와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이에 대해 전혀 감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도 자신들의 교회에는 교인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대형화를 통하여 생겨나게 된 세속적인 권력과 부를 즐기느라 교회의 부패와 타락과 몰락을 더욱 더 부채질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노회와 총회, 그리고 한기총과 같은 집단의 수장이 되기 위하여 하는 짓들은 우리가 가장 속되다고 여기고 비판하는 한국의 정치판을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기업은 점점 투명하여지는데 우리 한국의 큰 교회들은 아직도 불투명하고 부패하여 최근에는 어느 큰 교회의 담임목사가 교회 재정을 사적으로 잘못 쓴 죄로 재판 현장에서 투옥되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제 보기에 우리 한국 교회는 희망 없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고 조심스러운 말씀이지만 무너져야만 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정신 차리지 못하고 부패하였는데 무너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위험합니다. 그러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회개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급속히 무너질 것입니다. 지금은 작은 교회들이 고통을 당하고 큰 교회들이 아직 그 고통을 모르지만 앞으로는 작은 교회의 고통보다 큰 대형교회의 고통이 더 심하고 크게 될 것입니다. 겁 없이 지은 대형 교회 건물이 부담이 될 정도로 교인들이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남지 않았습니다. 대형교회들이 지금 예배당 지을 돈으로 세상을 섬기지 아니하고 욕심 사납게 건물에만 집착하였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한국 교회의 절망적인 상황을 보면서 이사야 6장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 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6:8-13)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상황으로 보면 우리 한국 교회는 11절과 12절에서 말씀하신 상황까지 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읍 즉 교회들은 황폐하여 주민 즉 교인들이 없으며 가옥 즉 크게 지은 예배당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벌써 옮기시고 있는 중)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 무너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절망적인 말씀 속에도 희망의 예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 6장 13절의 말씀입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부패하고 타락한 큰 나무들을 다 베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나무들은 다시 소생하게 될 시점을 이미 놓친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나무들을 베이실 때 그루터기를 남겨 놓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씨를 남겨 놓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하나님의 백성들과 나라를 회복시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하여 이사야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 동물들이 살고 있는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들은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이야기 할 때마다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생각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예수님이 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은 예수님이 겸손 하셔서라기 보다는 우리 인간들이 인정머리가 없어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누가복음 2장 7절에 보면 예수님이 구유에서 태어나시게 된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이 말씀은 여관이나 다른 곳에 우리들이 예수님 낳으실 곳을 준비해 드렸다면 그곳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이 마련해 드린 여관이나 깨끗한 숙소에서 태어나셨다고 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깍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물론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속에서도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찾아 볼 수는 있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들이 예수님에게 깨끗한 숙소를 준비해 드리지 못했던 인정머리 없음과 인색함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구유에서 동방박사들의 예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들로부터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와 같은 대접을 받으시고 그와 같은 예물을 받으셨다고 예수님을 교만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대접을 받으셔도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리를 버리시고 인간이 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꼭 구유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겸손하신 분이시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이 우리들의 인정머리 없음과 인색함과 무례함을 합리화하거나 은폐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볼 때마다 우리는 죄스러워해야하고 부끄러워해야만 합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낌이 없으면서도 예수님께 대해서는 인색하고 무례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방박사처럼 가장 귀하고 좋은 것으로 예수님을 섬기며 살 것을 다짐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우리 한국 교회는 예수님을 구유에서 태어나시게 하는 교회 같아 보입니다. 자신들의 집과 교회는 초호화판으로 짓고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리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관심에는 관심이 없어서 예수님은 오늘도 구유에서 태어나실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한국 교회 위기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 절망적인 우리 한국 교회에도 하나님이 이사야 6장에서 말씀하신 거룩한 씨와 그루터기 같은 사람들이 남아 있어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그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저희 교회가 세운 열매나눔 인터내셔널에서는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재단의 사무국장과 젊은 인터사원 둘이 현재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저들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그리고 잘 했는지 모릅니다. 아프리카 말라위 현장에서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절망적인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절망을 잠재우게 하리만큼 우리 직원들이 정말 일을 열심히 뿐만 너무, 너무 잘 해 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또 두 명의 인턴 직원을 뽑았습니다. 인턴 직원들이 받는 보수는 보수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것입니다. 그래서 인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수도 거의 없고 전기도 수도도 없는 아프리카 말라위 그물리라 마을에서 일을 하겠다고 지원한 청년들이 너무, 너무 많았습니다. 정말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저들의 이력서를 보면 우리 나라 어느 재벌 그룹의 사원으로 지원을 해도 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수준입니다. 정말 신앙과 실력을 모두 겸비한 젊은이들을 골라서 뽑을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말라위 그물리라는 우리의 눈으로 보면 구유입니다. 저들이 살고 있는 삶의 환경은 우리 눈으로 보면 사람이 사는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5-60년 전 그렇게 살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저들의 형편은 북한보다도 어렵습니다. 북한의 평균 수명은 68세 정도 되는 것으로 조사됩니다. 말라위는 37세 정도입니다. 영아 사망률이 북한도 높습니다. 그러나 말라위는 북한보다도 몇 배나 더 높습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와 같은 곳에 가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는 현지 직원들도 그물리라 마을에서 살지 않습니다. 사무실도 그곳에 차리지 않았습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 월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많다고 몇 개월에 한 번 씩 전 가족을 휴양지로 보내 쉬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 청년들은 그런 배려나 혜택도 없이 보수도 없이 들어가려고 줄을 섰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말라위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기에 말구유 같은 상황인 말라위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 청년들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겨우 말구유를 배정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라위에 있는 대양누가 병원의 간호대학장으로 가셔서 헌신하고 계시는 김수지 박사님으로부터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줄 수 있는 태권도 사범을 찾아 달라고 메일이 왔습니다. 그 내용을 제 페이스 북에 올렸습니다. 올리자마자 정말 좋은 태권도 사범이 지원을 하였습니다. 태권도 4단, 합기도 3단, 우슈 1단의 자격증을 가진 25살의 여자 사범이 지원을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 교회 장로님 딸이었습니다. 

너무,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청년들에게 감사하고 우리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좋은 거룩한 씨와 그루터기를 우리 한국 교회에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페이스 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말라위는 말구유다.

우리 청년들은 예수님을 말라위로 보내지 않고 자신들이 가기로 결정하였다.
우리 청년들은 예수님을 말구유로 보내지 않고 자신들이 그 말구유에 가기로 결정하였다. 
우리 청년들은 정말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겨우 말구유를 배정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 예수님은 말구유에 없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교회의 이름은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이사야 6장에서 말씀하신 그 거룩한 씨였으면 좋겠습니다. 무너질 한국 교회의 그루터기로 남을 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댓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말구유에서 태어나시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먼저 그 말구유를 차지해야만 합니다. 춥고 냄새나는 고생을 할 줄 아는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 우리 청년들과 같이 자신의 삶을 헌신할 줄 아는 그런 교인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에서 인간적으로 편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꿈꾸지 마십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을 십자가를 지고 좇아가는 그런 혹독한 훈련을 받고 이겨내어 이 시대와 교회를 살리는 거룩한 씨와 같은 교회가 되십시다. 그루터기와 같은 교회가 되십시다.

그러기 위하여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우리 예수님께 내어 드리고 우리는 냄새나고 추운 말구유로 내려가 그 자리를 차지 하십시다. 그리하여 올 성탄절 부터는 우리 예수님을 말구유에서 찾아 볼 수 없게 하십시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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