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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주목하라 (엡 3: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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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사람을 주목하라 (엡 3:17-21)

여러분은 하늘 나라 시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20절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하늘 나라 시민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사십니까? 뭔가 다르게 사십니까? 
“미국 사람은 어떻게 사나? 일본 사람은 어떤가? 중국 사람은 어떤가?” 하듯이 여러분의 삶은 일반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삶을 사십니까?

시리아에 사역하시던 선교사님이 요르단으로 피신하였는데, 선교편지에 가구를 사러 갔다가 겪은 일을 쓰셨습니다. 무엇하나 선뜻 사지를 못하겠더랍니다. 무언가 사려고 할 때마다 ‘아, 그거 시리아에 두고 왔는데...’라는 생각이 자꾸 자신을 잡아끄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건을 살 때마다,그래, 어차피 여기는 잠깐 있다 가는 곳인데... 언제라도 떠나게 되면 두고 가도 아깝지 않고 누구 줘도 아깝지 않은 것들인지 생각하며 사게 된답니다. 그러면서 한번 나라를 옮기게 되었더니 저 천국을 준비하는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기분으로 사십니까? 

혹시 교인이지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불빛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육신의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겨 살지는 않습니까? 자녀 입시를 치러보고, 결혼을 시켜보고, 집을 사서 꾸며보고, 사업을 하고 사람들과 교제를 하다 보면 우리가 정말 하늘 나라 시민인지 혼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빌립보 도시 사람들을 생각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멸망인 길로 가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 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보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빌립보는 당시 전략 요충지였고 로마의 시민권이 부여된 직할식민지로 ‘작은 로마’라 불렸으며 '판게우스'라는 금광이 있어 상당히 부유하고 발전된 도시였습니다. 당시 빌립보 사람들은 그들은 돈 맛에 빠져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이런 빌립보 사람들을 주위 사람들은 다 부러워했지 불쌍해서 울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빌립보에 사는 성도들에게 로마 시민권보다 더 귀하고 좋은 시민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 나라 시민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늘나라 시민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잃어버리게 됩니다. 

짐 심발라 목사는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왜 천국에 가려 하는가? / 우리가 지금 이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천국은 우리에게 천국이 아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을 애타게 원치 않는 사람을 왜 하나님께서 천국에 보내시겠는가?”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현대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부자라고 자부심이 대단하였고,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기에 라오디게아 교회와 그 교인들은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었고 벌거벗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정신 차려야 합니다. 건물, 사람의 수, 재정의 규모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큰 교회인지는 하나님 앞에 가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진정 부요하게 되려면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이번에 ‘다시 복음 앞에’ 집회 강사로 오신 선교사님들은 불같은 연단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가난한 선교사님들이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부자라는 말입니다. 연단을 많이 겪어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부자임을 알아야 하늘 나라 시민입니다.

예수님은 롯의 아내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아내는 구원을 받고도 세상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소돔성을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왜 돌아보지 말라는 소돔성을 돌아보았습니까? 롯의 아내는 멸망에서 빠져 나오기에는 세상에 너무 깊이 빠져 살았던 것입니다.

케냐 안정규 선교사님, 아프리카 교인들의 예배는 대단히 열정적이고 그 고백은 분명한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살인자들, 강도들이 있답니다. 살다 보면 한번쯤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매 주마다 그러면 큰 일이 아닙니까! 매 주마다 살인하고 와서 예배드리면서 보혈로 덮어 주세요! 하니 기가막혀서 한번은“주님의 보혈, 다 떨어졌습니다.”했답니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서 “그러면 뭐가 있습니까?” 하기에 “십자가에 박을 못은 남아 있습니다.” 했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살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늘 나라의 시민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음에 예수님이 오신 것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서 재림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한 자가 재림해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20-21절 “그 곳으로부터 우리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다시 복음 앞에] 집회에 참석한 교우의 간증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집회 참석을 신청했는데 등록하는 당일부터 기대는 산산이 부셔졌고 두려움을 넘어 집회에 온 것이 후회 되었습니다. 와글(?)거리는 낯선 많은 사람들과 군대와 같은 용어와 생활은 적응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은 최악이었습니다. 일회용 그릇에...말이 국밥이지...서글픈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노숙자도 아니고' 정말 심란해서 눈물이 찔끔 나왔습니다. 다음 날, 그 다음 날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불편한 잠자리는 더 불편해졌고 편히 앉아 있을만한 곳도 없고, 제대로 씻지 못해서 서로에게 땀냄새까지 폴폴 풍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누구 하나 그런 것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저도 어느새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집회 동안 주님께서 많은 은혜를 주셨지만 가장 큰 은혜를 꼽으라면 그들과 함께 드린 예배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너무 감사했고 저를 불러 주신 주님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찬양을 부를 때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천국에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지금은...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먹거리, 깨끗하고 안락한 생활... 좋아야 하는데 좋지가 않습니. 때론 포로 수용소 같고 때론 노숙자 같았던 3박 4일의 생활이 그립습니다.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누리지 못해도 오직 주님 한 분만께만 열광하며 주님 한 분만으로 행복했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그 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지금은 가진 것이 많고 누릴 것이 많아서 주님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무엇이지요? 다시 복음 앞에 집회가 감격스러웠던 것은 하늘 나라 시민으로 참석하였기 때문입니다. 대가 지불이 있었습니다. 구별되었습니다. 주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함께 하셨고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이곳에 계십니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저는 이 약속을 막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약속대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보이지 않으시지만, 예수님이 아니시면 도저히 하실 수 없는 일들을 보면서 주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모인 것, 부르는 찬양과 기도, 주시는 메시지, 다 주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주님은 성령을 바람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예수님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과 되어지는 일을 통하여 주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줍니다. 바로 옆 사람이 주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예배가 주 예수님이 함께 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무나 충만하십니다. 너무나 분명하십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 시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증인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십자가 복음이 분명하였기에 할 수 있었던 말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이시고 주님이시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된 증인,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인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복음 앞에] 집회에서 많은 증인들을 보았습니다. 새벽기도회 중 그 메시지를 정리해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대구 서현교회 정규만 장로님의 아들인 정재현집사님의 간증을 통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초청하여 다시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한의사였던 장로님 간증도 귀하였지만 부인 김영숙권사님의 간증도 너무나 은혜로왔습니다.
늘 거지 대접을 잘하셨는데, 일하는 아주머니가 타박하는 것을 보고 조용히 방에 불러들여 성경말씀을 펴서 읽어주고, 거지가 곧 예수님, 그 후 거지 잘 대접하게 됨, 소문남, 한 부자 장로님이 그 아주머니 소식을 듣고 재혼 , 
장보러 감, 물건 값이 비싼 곳, 바가지 쓰기 쉬움, 물건 값을 깍지 않았다. 매일 손님 대접해야 할 것 사러 가는 것인데, 그들은 거지를 말합니다. 좋은 것 사려면 물건 값 깍아서야, 그리고 물건 값 깍는 사람이 전도하면 전도가 되겠는가? 상인이 많이 전도됨
사이비 신학생, 장학생 사람 가려서 도와주어야 이 돈은 하나남이 맡기신 것인데 내 생각대로 하면 안됨, 지금은 네 생각이 옳더라도 나중에 그가 변화될 지 
형 미국 대학 병원 입원, 국제전화 아들이 확실한 신앙고백하게 하라, 곧 열흘 금식기도, 죽음 , 66세 주일 예배 쉬지지요. 오늘 내 아들이 천국 간 좋은 날인데, 어찌, 전도한 사람, 어떻게 소망을 가르치겠느냐 담대히 주일 예배드림.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늘 나라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 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곳에 살게 하신 것은 사명 때문입니다. 사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주인되신 사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이렇게 하늘 나라 시민 답게 살면 이상하게 핍박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가 다름이 확인되기도 합니다. 

Opening 영상, 15분에 한 명 순교, 어떤 자료는 2분 마다 한명이 순교한다고도 합니다, 기독교인과 교회의 자기 정체성은 이 세상에서는 고난당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증인입니다.

송신호목사님, 어려운 개척교회를 하셨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교회도 부흥, 선교도 시작, 그런데 장로님 반대,  멱살을 잡으며“네가 안 나가면 이 교회 불질러 버리겠다.” 기도하러 기도원, 너 왜 왔냐? 힘드니 도피하러 왔지, 그들과 부딪혀서 죽어가는 자를 살려라, 목사가 이겨도 안되고 장로가 이겨도 안돼, 주님이 이겨야 돼, 일체 싸우지 못하게 하시더랍니다. “너 멱살잡은 장로 사랑하냐?” “사랑은 몰라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사랑하느냐고 물었지 미워하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네가 그 장로를 축복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 나 한테만 이러지 마시고 장로에게도 가서 말씀하세요.” “그 장로는 나한테 맡기고 너나 대답해.”“내 멱살잡은 장로님도 천국에서 같이 만날 것인데 결국 하나님 앞에 같이 만날 건데, 우리가 천국에서 기쁘게 만나게 해  주세요.” 그 다음부터 배신을 당해도 천국에서 같이 살 소망을 가지고 축복할 수 있었다. 결국 개척을 하게 되었는데, 떠나온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근히 좋더랍니다. 기도 중에 얼마나 내가 못된 놈인지 깨닫고, 교인들에게 고백하였답니다, “우리가 그 교회 부흥을 위하여 축복하자, 그 교회 부흥이 우리 교회 부흥이다.” 
문제가 있다면 결국 나 자신입니다. 

예수님으로 살면 우리 모두는 다 하늘 나라 시민된 증인입니다..

‘다시 복음 앞에’ 집회 강사님들에게서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정말 감동적인 것은 섬기는 이들이었습니다. 다 증인이었습니다. 3천 명이 나흘간 아침부터 밤까지 잠을 자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니 집회가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도 예수님의 역사보다 육신의 역사를 더 크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에게서 육신의 모습이 드러나면 그만 낙심하게 됩니다. ‘난 변화되지 않았나 봐, 난 안 죽었나 봐.’ 그러나 실제로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교회 나온 것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주님이 하셨습니다!  

금광석은 돌 속에 아주 작은 양의 금이 있는 돌입니다. 작아도 금은 금입니다. 금광석 일톤에 순금 2.0g이 나오면 채산성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도 정말 발견해야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언제나 주목하고 살아야 할 것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는데, 베드로의 대답이 너무나 애매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베드로는 솔직히 대답하기 심히 고민스러웠습니다.
나는 분명히 예수님을 부인한 자, 내 꼬라지이고 나는 절망인데, 그래서 다시 어부나 해야 되겠다 하고 돌아셨으나, 돌아가는 길에, 고기잡는 동안 내내 내 마음에 또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내 마음에 주님을 사랑하는 것 하나, 주님 없이는 결코 살 기쁨도 만족도 없는 나 자신을 깨달은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니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주님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도 자신도 없지만, 그러나 나는 주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자가 되어 버렸으니,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합니까? 내 마음은 주님만이 아십니다.
성령의 근심 조차 너무나 감사할 조건입니다.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조그만 육신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 조차 용납되지 않아서 괴로운 것이 역시 변화된 증거입니다, 그것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구나!"
그러면 우리는 특별한 집회가 아닌 일상 생활에서 예수님을 체험하며,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큰 교회에 나가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교회의 중한 책임을 맡은 것을 자랑하기보다, 예수님을 귀중히 여겨야만 합니다. 오래 교회에 다녔다는 것을 자랑하기보다, 예수님의 사람이 된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명을 맡았을 때, 더욱 중요한 것이 주님과의 관계를 항상 유지하는 것입니다.

요 15:4-6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우리 자신은 돌덩이 같은 존재이지만 그래도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겠습니다.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된 증인으로 살겠습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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