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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위대한 시작 (욥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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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시작 (욥 8:7)

“다툼의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어 나오는 것과 같으니, 싸움은 일어나기 전에 그만 두라”(잠17:14)
댐의 작은 틈새가 댐을 무너지게 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틈새로 물이 졸졸 흘러나오기 시작했는데 점점 콸콸 나오면서 나중에는 둑이 무너지게 합니다. 다툼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아주 작은 불일치에서 시작된 다툼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합니다. 어떤 시작은 단속해야 합니다. 잘못된 시작은 파국을 초래합니다. 악이 움트면 잘라버려야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무슨 일이든지 시작을 조심하라. 처음 한 걸음이 장차의 일을 결정한다. 그리고 참아야 할 일은 처음부터 참아라 나중에 참기란 더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시작은 어떤 시작일까? 시작도 좋고 끝도 좋아야 위대한 시작입니다. 


󰊱 끝내고 시작하라

끝맺음보다 시작이 쉽다는 말이 있습니다. 끝맺음이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대한 일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끝내지 못해서입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려면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중단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습니다. “뚝” 끊기가 어려운 겁니다. 호박이 땅에 떨어질 때 “뚝” 떨어졌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일과 단절을 못해 새로운 시작이 안됩니다.

겨울 엿가락처럼 딱 부러져야 하는데, 여름 엿가락처럼 끊어지지가 않는 겁니다. 
우리 어머니가 처음 교회 나가면서 지금까지 사용하던 떡시루를 깨부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직 고사 지내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오래된 작은 떡시루였습니다. 장독대 앞에서 떡시루를 내던지며 “내가 지금까지 헛된 짓을 했다! 빌고 또 빌어봐도 아무 소용없더라!” 하고 돌 위에 떡시루를 내던졌습니다. ‘와장창’ 하고 떡시루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났습니다.

시(始)가 종(終)을 낳는 것이 아니라 종(終)이 시(始)를 낳습니다. 시작이 종말을 낳는 것이 아니라 종말이 시작을 낳는다는 말입니다. 

어머니가 떡시루를 내던진 것은 어리석은 생활을 내던진 것입니다. 시루 깨지는 소리는 새생명이 태어남을 알리는 종소리였습니다. 

떡시루를 버린 손으로 성경책을 붙잡았습니다. 새생명이 찾아오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사람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새 일의 시작입니다. 버리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함이라”(벧전2:2)
버리라! 사모하라! 버리고 은혜를 사모하면 구원에 이릅니다. 결단하지 못해서 문제입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사55:7) 

“긍휼히 여기시리라” 자비를 베푸시고 용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긍휼이란 자기 태에서 나온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정을 말합니다. 솔로몬 왕이 재판을 하는데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때 솔로몬 왕이 신하를 시켜 칼을 가져오게 합니다. 서로 자기 아이라 하니 절반으로 나누어주겠다고 했습니다. 진짜 엄마는 “가슴이 메어지는 듯 하였고,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았습니다(왕상 326). 내가 포기할테니 그 아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그 여인이 진짜 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의 모정이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는 것이 위대한 시작입니다. 왕의 칼 앞에 누어 있는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그 아이를 살려내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면 위대한 시작이 됩니다.


󰊲 끝까지 확신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 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13:14) 더 쉽게 말하면 처음 믿을 때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위대한 일이 시작되었다면 이제 절반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작이 반이니까요. 하지만 시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시작이 어렵지만 시작한 일을 지속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갈수록 태산입니다. 산 너머 또 산이 있습니다. 온도를 올리는 일도 60도까지는 쉽습니다. 70도까지가 더 어렵고, 100를 넘기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학생들의 수능성적도 중간까지는 수월합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한 사람을 추월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까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확신을 갖고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크리스토퍼(christopher)란 고대 신화에 나오는 지도자인데 밤에 폭풍이 일어난 강을 버림받은 아이를 안고 건넜다고 합니다. 무시당하고 소외된 사람을 도와줍니다. 크리스토퍼는 진정한 리더로 화합과 통합을 이루어 내는 지도자입니다. 

험한 파도가 넘실거릴 때 금방 죽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침착하게 앉아 이사야서를 읽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말씀과 기도의 힘으로 항해를 거듭합니다. 시작할 때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붙잡은 것입니다. 

끈기 없이 고지를 점령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했던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물고 늘어져서 결국은 의인 10사람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지속적인 기도의 끈기가 이룩한 업적입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는 누가 봐도 토끼가 이긴다고 단언합니다. 하지만 토끼는 지나친 자신감으로 낮잠을 잤습니다. 거북이는 느리지만 쉬지 않고 한 발짝씩 옮겨 먼저 결승점을 찍었습니다. “느려도 꾸준한 것이 이긴다!” 이것이 거북이의 포효입니다. 

“잘 가노라 닫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말라 부디 궂지 말고 촌음을 아껴 쓰라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간만 못 하니라”(김천택)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습니다. 견고하던 여리고 성도 7일동안 성을 돌고 7일째 되는 날은 일곱 바퀴를 돌고 모든 백성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칠 때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어떤 때는 열쇠꾸러미의 마지막 열쇠가 자물쇠를 엽니다. 
패전한 장수가 개미가 보리 한 알을 자기 집에 운반하려다가 예순 아홉 번을 떨어뜨리더니 일흔 번째에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개미의 끈기를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포기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는 심기일전하여 적과 싸워 이겼습니다.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배우라”(잠6:6)고 하십니다.
위대한 시작은 끝까지 확신하는 것입니다. 


󰊳 결말은 창대하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은 작고 끝은 창대합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이 말은 욥의 친구 빌닷이 잿더미에 앉은 욥을 위해 말해준 희망의 언어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아들 일곱 달 셋, 양이 7천 마리, 낙타가 3천 등 동방의 으뜸가는 부자로 모든 사람이 부러워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종이 헐레벌떡 달려와 하는 말이 스바 사람들이 주인의 가축과 종들을 죽였습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달려와 보고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양떼와 소 떼가 불타 죽었습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습격하여 종들을 죽였습니다. 연속되는 충격에 충격입니다. 

또 다른 종이 달려와 큰 아들집에 자녀들이 모여 생일 잔치를 하고 있었는데 강풍이 불어 집이 무너져 모두 죽었다고 전합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사탄이 욥을 쳤습니다.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종기가 난 것입니다. 여러 달째 고통을 당합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언제나 새벽이 올까를 기다리며 몸을 뒤척였습니다. 이렇게 처참한 욥에게 빌닷이 찾아와 위로합니다.

곁에서 힘이 되어 주어야할 아내는 악담을 합니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욥2:9) 모든 것을 잃고 아내마저 배반하는 현실에서 친구 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친구를 망치는 친구도 있고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도 있습니다. 실패한 벗에게 벗다운 사람은 친구 중에서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5-7)

욥은 멋지게 재기했습니다. 친구들이 동정하고 위로하며 욥을 도왔습니다. 돈을 주기도 하고 금반지를 끼워주기도 했습니다. 욥은 작은 것으로 시작하여 다시 일어났습니다. 

일본의 내촌감삼은 하나님을 친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친구다. 그에게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귀가 있다.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손이 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하나님은 제왕이 아니라 친구다. 아브라함을 친구라 부르셨다. 우리도 하나님의 친구가 되면 그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욥의 역전을 멋지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4만 4천 마리와 낙타 6천, 소 1천 암나귀 1천을 주셨습니다.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두었습니다. 그 후 욥이 4백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4대를 보고 욥이 늙어 나이 차서 죽었다고 합니다(욥42:12-17).
좋은 결과가 좋은 시작을 말해줍니다. 마지막에 웃는 것이 진짜 웃음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더라도 바르게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이 나쁜게 아니라 나쁜 일을 해서 나쁜 사람입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어야 하며 무슨 일이든지 누군가가 시작해야 합니다. 

위대한 일을 시작하여 위대한 사람입니다. 진리를 행하므로 보통 사람을 위인으로 만듭니다. 
끝내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만 두어야 할 그 일을 끝내는 사람이 위대합니다. 고기잡이를 끝내고, 배와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던 어부 시몬이 사도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끝내고 끝에서 시작하십시다.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야 합니다. 가다가 중단하면 안됩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확신을 갖고 계속 밀고 나가야 합니다.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오르고 또 올라가야 합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현재는 언제나 고달픈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일은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시작은 미약했어도 나중은 창대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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