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수감사절] 범사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 (살전 5:18)

첨부 1


범사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 (살전 5:18)


오늘은 전국 교회가 추수 감사절로 지킵니다. 혹 보면, 추수 감사절을 지키는 것이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추수 감사절의 의미를 문자적으로만 해석한 나머지 그 진정한 의미를 오해한 것입니다. 추수 감사절은 농경시대에 비롯된 절기지만 실은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사실이지,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일 년 삼백 육십오일 매일 같이 드려야 마땅합니다. 그런데도 어느 한 날을 추수 감사절로 정해서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감사생활을 점검하고 감사생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기 위함입니다. 오늘 저는 추수 감사절을 맞이하여 “범사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함으로 성도님들과 더불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 째로, 우리를 사망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받은 은혜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을 들라면, 구원 받은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죄 값으로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인 우리가 죄 사함 받고 영생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구원의 은혜에 비하면 다른 은혜들은 덤으로 주신 것에 불과할 만큼 구원의 은혜가 귀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흉악한 십자가에 못 박혀 살 찢고 피 흘려 죽으신 것은 저와 성도님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일차적인 목적은 영혼의 구원을 받는 데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심판관이셨으나 이제는 우리의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뿐 입니까?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지옥 백성이었는데 이제는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이므로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자부심이 강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하였으며, 베드로전서 2:9에 보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천국 시민권과 지상 나라의 시민권은 비유하자면, 다이아몬드와 유리 조각의 차이 보다 더 큰 것입니다.

지구상에 70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운데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예수 믿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좁은 길이요 좁은 문입니다. 그런데 이 영광스럽고 복된 대열에 동참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라고 감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모든 것보다도 먼저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두 번 째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이제 감사의 영역을 범사로까지 넓혀 나가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달리 말하면, 모든 처지와 형편에서 감사하라, 무슨 일에든지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좋은 일,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감사하라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나쁜 일, 슬픈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리스도인들만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범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개척 교회 목사님의 부인이 병원에서 위암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한창 나이에 암에 걸린 것은 교회를 개척하면서 너무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자기가 암에 걸린 것은 남편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자연히 남편이 원망스럽고 하나님이 야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목사님은 감리교 신학대학의 학장이었던 윤성범 목사님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이 목사님을 보고서 “목사님, 얼굴이 어둡군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하고 물었습니다. 

개척 교회의 목사님은 자기 아내의 딱한 형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윤 목사님이 말하기를 “노트를 한권 사다가 아내에게 주세요. 그리고 그 노트에 감사할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귀가 길에 노트와 볼펜을 사들고 가서 아내에게 주면서 그 학장님의 권면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말하기를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다고 그러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고쳐먹고 한 줄, 두 줄 노트에 감사한 일을 써내려갔습니다. 

아주 평범하고 작은 감사부터 적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이 부인은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면서 감사하다는 말로 인사를 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점점 통증이 사라지고 힘이 생겨났습니다. 얼마 후에, 병원에 가니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암세포가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범사에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려면 감사의 이유를 찾아낼 줄 알아야 합니다. 흔히, 어려운 일이 해결되면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어려움 없이 지낸 일에 대해서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무서운 시련 가운데서 건짐 받은 것도 감사할 일이지만, 그러한 시련을 겪지 않고 지내온 것은 더욱 감사할 일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올 한 해를 무사하게 살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결과라고 여기기에 앞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가장 큰 병폐는 감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갖지 못한 것이 불만입니다. 이처럼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저는 밥을 대할 때마다 그렇게 감사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도 지구상에는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70억 가운데 10억이나 된다고 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북한 주민들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 달 봉급을 받아서 쌀 2되를 사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영양실조로 북한 주민들은 키가 남한 사람들에 비해 10 센티미터 이상 작다고 합니다. 남한도 보릿고개를 해결한 것이 겨우 30-40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볼 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을 막론하고 우리는 밥을 대할 때마다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옷을 입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어렸을 적에 미국 사람들이 보내준 구호물자를 나누어 입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에는 따뜻하게 입으면 그만이었지 패션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요즘 한국인들은 패션모델 아닌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얼마나 멋쟁이들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옷을 입으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 오늘날 우리사회의 인심이 메말라 가는 것일까요? 왜 사람들이 이웃을 잊고 사는 것일까요? 감사를 상실한 결과, 그렇게 된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마음에 원망과 불평과 탐욕이 둥지를 틀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보면, 말세에 사는 사람들의 악덕 19가지가 나오는데, 거기 일곱 번째 악덕이 “감사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감사치 않는 것, 감사할 줄 모르는 것, 이것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하는 주원인입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셨는데,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님을 보고 멀리 서서 소리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문둥병이 나으면 반드시 제사장에게 가서 진단을 받고 병이 나았다는 증서를 받아야만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곧 그들의 병이 나았다고 선언하신 것과 같습니다. 

과연, 그들은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홉 사람은 각각 제 갈 길로 가고, 사마리아 사람만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 사마리아인에게 이르시기를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이 말씀 속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사람의 배은망덕에 대한 책망과 함께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인에 대한 칭찬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마리아인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그에게 질병의 치료 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 사마리아인처럼 받은바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는 역경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형통할 때 감사하는 것도 귀하지만,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역경을 만나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이 잘되면 자기가 잘해서 된 줄로 알고 자기 스스로가 영광을 차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일이 잘되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성도들의 감사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형통할 때는 감사하지만 역경을 만나면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감사의 수준이 낮은 사람입니다.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갈라 바다에 길을 내셔서 이스라엘 자손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뒤따라오던 애굽의 마병과 병거를 홍해에 수장시키셨습니다. 그 때, 이 위대한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 자손은 춤추며 찬양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과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광야 길을 행진하면서 마실 물을 구할 수 없자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습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 그들을 구해내신 하나님께서 광야 길에서 목말라 죽게 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철부지 아이라도 알 수 있는 것을 이스라엘 자손은 알지 못하고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원망, 불평으로 일관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믿음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우리 믿음의 정도와 정비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감사가 부족한 사람은 곧 믿음이 적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역경 가운데서 감사할 때 기뻐하십니다. 욥을 보세요. 그는 동방에서 가장 큰 자로서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았습니다. 그의 소생은 아들이 일곱이요 딸이 셋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만큼 다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불시에 재앙이 닥쳐서 그 많던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잃어 버렸습니다. 열 자녀가 한 집에 모여 잔치를 하다가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몰사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욥은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욥을 귀히 보시고 그를 의롭다 하셨을 뿐 아니라,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가서 복음을 전하던 중에,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준 일로 고발을 당해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많은 매를 맞은 후에 발에 차꼬를 차고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운데, 매 맞은 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배도 고팠습니다.  언제 풀려날는지 알 수도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아이고, 내 신세야” 하고 탄식하거나 “귀신 들린 여종을 온전케 해 준 것이 죄냐?”고 항변하지 않고 밤중쯤 되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감방에 있던 죄수들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말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핍박 받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천지의 주재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감방 문이 다 열리고 모든 죄수들을 묶었던 쇠고랑이 다 풀어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를 보고 큰 소리로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하니, 간수가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두 사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였습니다. 두 사도가 말하기를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간수와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니 그 밤에 그들이 다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곤경 가운데서 감사할 때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원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께서는 항상 감사 생활을 힘쓰시기 바랍니다. 형통할 때는 물론이지만, 역경의 때에도 감사하십시오. 감사를 통하여 성도님들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 나타내십시오. 반드시 위대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게 될 것입니다.

세 번 째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말과 행동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4-15)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은 그저 입술로만 감사하지 않고 행동으로 감사를 표현합니다. 솔로몬은 부왕인 다윗을 이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세상 이치로 하자면 그는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실부인의 아들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의 위에 배다른 형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온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솔로몬이 드린 번제를 기쁘게 받으시고 그 밤에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의 소원을 물으시고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를 선물로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공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음식을 잡숫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전한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러자 몇 사람이 이를 보고 분개하여 "왜 향유를 이렇게 낭비하는가? 이것을 팔면 삼백 데나리온도 더 받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을 터인데!" 하고 투덜거리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르시기를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감사로 드리는 헌신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감사가 빠진 헌신은 사람들의 눈에 크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아무런 값어치도 없습니다. 부자들이 많은 돈을 연보 궤에 넣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그 풍부한 가운데서 일부를 드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겨우 동전 두 닢을 연보 궤에 넣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과부는 자기의 모든 것 곧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헌신은 감사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몸과 시간과 물질을 드려서 봉사하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믿음의 형제들을 섬기는 일에 힘쓰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건강이 있을 때,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물질을 드릴 능력이 있을 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더 풍성한 감사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밝은 천국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달란트 비유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감사생활에 힘쓰면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겨나고, 우리가 원망, 불평에 힘쓰면 날마다 원망, 불평할 일이 끊임없이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4절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들도 때로 시련과 역경을 만납니다. 그럴 때 낙심하여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이 다가오는가?’ 원망, 불평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술로 범죄 할 것이 아니라  돌이켜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연단하셔서 정금 같은 믿음을 갖게 하시려고 시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케 하실 줄 믿고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입술로 감사할 때 태양이 떠오르면 어둠이 사라지듯이, 우리 마음속에서 원망, 불평이 사라지고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는 더 받고 누구는 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맛보지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항상 불만과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 일대에 서식하는 벌새라는 작은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몸집이 작고 주둥이가 긴 것이 특징인데,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꽃에서 꿀을 빨아 먹고 삽니다. 그러므로 다른 새들이 먹이를 찾지 못하는 사막에서도 벌새는 선인장의 꽃을 발견하고 거기서 꿀을 빨아먹고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지 못하는 형편에서도 얼마든지 풍성한 감사의 조건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벌새와 비슷합니다.

빈 종이 위에 여러분이 받은 은혜를 하나씩 써 보십시오. 그러면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놀랄 것입니다. 그 하나, 하나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감사할 때 마다 감사의 조건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역경에서, 병들었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을 만났을 때, 시험과 핍박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밝고 긍정적으로, 우리 몸을 건강하게 회복시켜 주시고, 막혔던 환경의 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범사에 감사하심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