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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동행 (창 5:21-24, 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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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 (창 5:21-24, 시 23:-) 

오늘 설교는 저희집 부부사진을 보여드림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몇 년전에 찍은 사진인데 저희 부부가 결혼 30년째가 됩니다. 살아온게 30년 참 대단합니다. 앞으로 살아갈 30년을 생각하니 기가막히기도 하고 가슴이 뛰기도 합니다. 설레인다는 말입니다. 처음 결혼하고는 많이 싸웠습니다. 집사람은 박씨고 저는 이씨이기 때문에 생각이 많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경상도와 강원도의 차이가 너무너무 컸습니다. 많이 싸웠는데 지금은 많이 익숙해 졌습니다. 때론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왜 이 여자를 만나서 고생을 많이 하나. 나같이 마음씨 좋은 사람이 이런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돌아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부족함을 깨우쳐주고 채워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부부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부부의 동행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생각이 다르고 갈등이 생기다가 심해지면 헤어지기도 하는데 저희들은 그 어려운 순간들을 잘 이겨내온것, 하나님의 은혜고 축복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역시 어려운 인생길을 혼자 걸어간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누군가 동반자가 있다면 그 길은 훨씬 쉽고 고독하지 않고 즐겁고 기쁘게 그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책을 읽다 보니까 그 책의 제목이 그렇습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가까운 길을 가는 것은 혼자가도 됩니다. 그러나 멀리가고 싶으면 누군가와 함께 동반자가 되어서 손을 잡고 걸어가면 더 큰 격려와 위로를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퀴즈를 냈는데 먼 길을 가장 빨리가는 방법이 뭘까요?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냅니다.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고속버스를 타고, 여러 가지가 나오지만 정답은 무엇입니까. 가장 먼길을 가장 빨리가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먼길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동행한다면 그 길은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를 보다보니까 거기에 아주 귀한 시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제목이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시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가면 갈 길이 아무리 멀어도 갈 수 있습니다. 눈이 오고 바람 불고 날이 어두워도 갈 수 있습니다. 바람 부는 들판도 지날 수 있고 위험한 강도 건널 수 있으며 높은 산도 넘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갈 수 있습니다. 나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라면 손 내밀어 건져주고 몸으로 막아 주고 마음으로 사랑하면 나의 갈 길 끝까지 잘 갈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반드시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 심리학자가 그런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텅빈 교실에 한 젊은이를 집어 넣고 그리고 얼음을 탄 아주 차가운 물을 양동이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 청년이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게 해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를 실험했다고 합니다. 이 젊은이는 얼마 못참고 뛰어나오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젊은이의 아주 친한 친구와 함께 양동이에 발을 담그게 하고 시간을 재었더니 꽤 오랫동안 잘 참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재어봤더니 혼자 있을때보다 두배이상, 그는 잘 참아내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고통도 함께 나누면 수월하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고통은 나눌수록 줄어든다는 그런 귀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인생을 걸어가도 즐겁고 감사한데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신다면 그 삶은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한 인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로 에녹입니다. 저희교회 청년중에 아주 새벽기도를 열심히 거의 하루도 안빠지는 청년이 있는데 이에녹청년입니다. 이름이 이에녹입니다. 할머니가 붙여준 이름인데 이름이 참 좋습니다. 새벽기도에 청년인데 거의 하루도 안빠지고 어찌보면 저보다 더 열심히 새벽기도에 나오는 청년이 있는 것, 저는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바로 성경에 나오는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므두셀라를 낳은후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이 데려 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않았다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을 것입니다. 더더욱 그가 하늘로 부름받은 나이가 365세입니다. 저는 이것을 일년으로 환원하면 365일이 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찌보면 그는 365년을 우리가 마치 365일처럼 매일매일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과 동행한 삶을 살았다고 우린 그렇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그 삶이 복되고 아름다웠을까요. 

성경에서 또 한사람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노아입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니까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표식으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해서 모든 명하심대로 모든 명령을 준행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가 닥칠 것을 예고하고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는데 노아는 그의 자녀들과 함께 성실하게 100년에 걸쳐서 방주를 잘 준비했고 그의 일가족이 구원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찌보면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곧 순종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였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또 한사람 하나님과 동행한 인물을 찾으라면 우리는 쉽게 다윗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기도의 친밀함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아뢰고 응답을 받았던 그런 동행했던 아름다운 인물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무엇이든 혼자결정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앞에 여쭤봅니다. 하나님앞에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하나님 전쟁을 치룰까요 말까요. 전쟁을 해라. 그럼 지금싸울까요 나중에 싸울까요. 지금싸워라. 지금싸우면 이길까요 질까요. 이길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행동했던 사람이였습니다. 

다윗의 많은 시편들은 기도의 탄식으로 기도 응답의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다윗의 시중에 가장 위대한 시가 있습니다. 시편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얼마나 위대한 시인지 모릅니다. 크리스챤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봤다고 합니다. 당신이 마지막 임종하기 직전에 당신에게 성경을 들려준다면 어떤 성경을 원하십니까. 그랬더니 거의 80%이상이 시편 23편을 원했다고 합니다. 내가 가는 마지막 인생길에 하나님의 말씀 시편 23편을 내 친구로 삼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그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선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이전 성경은 거하리로다. 지금성경은 살리로다로 표현해 놨습니다. 우리가 마지막 가는 인생길로 정말 주님의 말씀이 나를 붙든다면 주님이 내 목자가 되신것을 확신하며 간다면 무엇이 두렵겠느냐하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은 자신을 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목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양과같이 자신은 미련하고 부족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목자가 되시니 무엇이 부족하게쓰냐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들은 양처럼 미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양은 어떻습니까. 길을 잘 잃어 버립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도 목자가 99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서 온 산과들을 헤매는 이야기가 소개가 됩니다. 양들은 기억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한번갔던 길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개는 몇시간씩 차를 타고 가서 내려놔도 다시 자기 집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양은 요 앞에 가도 못찾아옵니다. 또 양은 눈이 안좋아서 멀리보지 못합니다. 자기 앞밖에 못봅니다. 그래서 절벽에서 풀을 뜯다가 많은 양들이 절벽에서 떨어져 죽기도 합니다. 절벽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양떼들이 계속 밀고 나오기 때문에 많은 양들이 밀려서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때 집에서 양을 키워봤는데 양들이 미련한 것을 뭘 보면 아느냐면 여름에 더우면 부부도 떨어져 자고 싶습니다. 덥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들은 더 붙어잡니다. 이상합니다. 그리고 겨울에는 미워도 가까이 있고 싶습니다. 춥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들은 겨울이 되면 저만큼 떨어져 잡니다. 참 미련한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찌보면 우리 인생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우리는 양과 같습니다. 우리도 좀 미련합니다. 특히 어떤 성도들은 목사님이 자주 심방을 가면 목사님에게 경고를 보냅니다. 자주 심방오면 교회를 안나갈 겁니다. 그냥 내벼려 두세요. 때가 되면 나가겠죠. 어찌보면 양은 부르면 부를수록 더 멀리 도망갑니다. 찾으면 찾을수록 더 꽁꽁 숨어버립니다. 참이상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다 양과 같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양임에도 불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나는 두려움이 없다고 나는 담대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양이라면 하나님은 목자가 되셨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우리 모든 믿는자들이 양이라면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목자되신 그분은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4절에 보니까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그렇게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니까 내가 온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하려는 것이라. 목자되신 주님은 양들을 풍성히, 생명의 양식을 먹이기 위해서 그리고 양들이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목자는 오늘도 희생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위대한 일일까요. 더더욱 그 자비롭고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그 주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나의 손을 잡고 동행하신다면 그 인생길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인생이 가장 멋진 인생이 아닐까요. 

서두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찍은 잉꼬부부같은 사진을 보여 드렸습니다. 얼굴표정만 봐도 제 아내가 저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느낄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제가 죽어야 될 자리가 있는데 제가 우리 아내한테 여보 나는 담임목사니까 죽으면 교회가 혼란스러우니까 당신이 내 대신 죽어줄 순 없을까. 그러면 제 아내가 저를 위해 당당히 죽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아내가 아무리 남편을 사랑해도 남편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것,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반대로 제가 제 아내를 위해 죽을 수 있느냐 아내가 죽어야 될 자리에 제가 아내대신 죽을 수 있느냐. 저는 절대 못죽습니다. 저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모든 남자분들도 그럴겁니다. 아내를 위해 죽는 남편, 대단한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부부도 서로를 위해 죽어달라고 하면 망설여 지는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그분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그분이 누굽니까.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달려야 될 십자가에 내 대신 달리셨습니다. 내가 죽어야 될 그 자리에 내 대신 죽으셨습니다. 내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그분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고 우리를 너무너무 잘 아십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시는 하나님,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다 안다고 했습니다. 

목자는 양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 전능하신 사랑의 주님과 목자되신 주님과 동행하는 인생이라면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어떤 고등학생이 친구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와서 한 3개월 되었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왔습니다. 교회에서 성경퀴즈대회를 한다고 해서 시편 23편을 열심히 외웠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앞에 나가서 성경을 외울려고 하니 갑자기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였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외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그 다음이 생각이 안났습니다. 너무 억울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래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나는 새신자니까 좀 봐달라고 했더니 한번 다시외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했는데 그 다음이 또 생각이 안났습니다. 그래서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이러면서 그는 머릿속에 번뜻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는 도대체 누구신가.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인생길에 목자가 되신다면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번뜩 깨달아졌습니다. 그 학생은 마지막 한번 외우겠다고 하고 이렇게 그는 외웠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상 끝 그랬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이신데 더 이상 외워서 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얼마나 놀라운 감동의 은혜를 주는지 모릅니다. 제가 언젠가 소개해 드린적이 있습니다.

시편 23편 1절을 각 지역 사투리로 표현한것이 있는데 너무나 재미있어서 한번 소개해 드렸는데 오늘 한번 소개해 드리려합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읽으니까 하나님이 내 목자라카니 내사마 답답한게 눈꼽만치도 없는기라. 전라도 사투리로 읽었더니 아따! 여호와가 시방 나의 목자신디 나가 부족함이 있겄냐? 평안도 사투리로 읽어봅니다. 여호와가 내 목잔데 뭐이가 부족하간. 

인터넷에 보니 경상도 말로 시편 23편을 완역해 놓은게 있어서 소개해드립니다. 여호와가 내 목자 내사 마 답답할 끼 없데이 시-퍼런 풀구딩에 내디비지고 쪼매 쉿다 또랑까로 델꼬가신다 내 정신챙기시사 올케 살라카심은 다 저양반 체면 때문이라카네 내 죽을 뻔한 골짜구 디기 껌껌한데서도 간띠가 부어 잘 댕기는 것은 그 빽이 여간 아이라! 주의 몽디-와 짝대기가 낼로 지키시고 내 죽일 놈 문-디 앞에서 내기 세워 주신다 아이가 사는기 아무리 복잡타 캐싸도 저 양반이 맨날 지키주신다카이께네 내사 우짜든지 그 옆에 딱 붙어가 죽어도 안떠날란다. 죽어도 주님곁에 붙어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말씀은 생각할수록 귀한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가 내 목자가 되시면 왜 부족함이 없습니까. 첫째는 공급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분이십니다. 2절에 보니까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양들은 푸른초장을 찾아갈 능력이 없습니다. 목자가 푸른 초장을 찾아서 양떼들을 인도해서 그들이 포만감을 갖도록 먹게하는 것입니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신다는 얘기는 양들이 배불리 먹고 포만감에 누워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도 먹고싶은 음식 맛있게 먹고나면 배가 부르면 비스듬이 누워서 가만히 배두드리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전에 내가 굶고 살았는데 이런고기 어디서 먹었나. 내가 이렇게 살만하니까 하나님은혜가운데 내가 배 두드리며 사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것입니다. 오늘 목자는 양들에게 풍성한 꼴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목마를때 쉴만한 물가로 그들을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의 양식, 육신의 양식을 공급하시는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너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네 모든 것을 더할것이다. 너의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것, 의식주를 내가 공급하고 책임질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우린 그래서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부족함이 없는 이유는 우리를 옳은길로 의의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주님, 3절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죽었던 내 영혼을 다시 소생시키시고 살려내시고 회복시키시고 그리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옳은 길로, 자기 이름에 명예를 걸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로운 길로, 옳은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세상의 진리는 우리를 잘못된길로 인도할때도 많이 있습니다. 신천지와 같은 이단은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인도합니다. 가족을 분열시킵니다. 이혼을 조장합니다. 재산을 갖다 바치게 만듭니다. 자식들을 떼어 버리게 만듭니다. 이게 이단의 특징입니다. 

우리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것,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의로운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현대인의 비극은 목적의 상실입니다. 내가 살아도 무엇을 위해 사는지 잘 모른다는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보고 늘 안타까웠습니다. 맨날 먹고 빈둥빈둥 놉니다. 대학졸업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공부좀해라 공부좀. 내 소원이다. 아빠 공부해서 뭐할라고요. 공부를 해야지 시험을 쳐서 취직을 하지. 취직하면 뭐하게요. 취직해야 돈도벌고 일도하지. 일해서 뭐해요. 돈벌어서 행복하게 살고 집도 사야지. 집사서 뭐해요. 집을 사야지 네가 은퇴하고 여생을 즐겁게 보내고 즐겁고 재미있게 놀면서 살수있지. 아빠 나 그런거 필요없어요. 지금도 잘 놀고 있는데요. 뭘. 그랬습니다. 이 젊은이는 어쩌면 인생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사기 위해서 사는 것입니까.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바로 의의 길로, 옳은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에 목적이 되십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우리를 바른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네비게이토에 국제 선교를 맡은 리로이 아임스 목사님은 한번은 시카고 오헤어공항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집회를 가기위해서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딴생각하다보니까 시간이 된것 같습니다. 시계를 보니까 5분밖에 안남았는데 자기가 탑승할 게이트를 찾으니까 어딘지 모르겠습니다. 보니까 게이트가 저쪽 끝에 있는데 그날따라 명절이 되어서 사람들이 많아서 어떻게 할지 안절부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말끔한 승무원복장을 한 신사분이 다가오더니 선생님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5분안에 비행기를 타야되는데 게이트가 어딘지 못찾겠다고. 그랬더니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 팔을 꼭 붙드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께요. 그러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물었더니 제가요 토론토까지 비행기를 조종할 조종사입니다. 제가 없는데 비행기가 떠날이유는 없겠죠. 그때서야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하나님이 도와주셔도 하필이면 조종사의 안내를 받게 하시다니 그는 그 순간 사도행전 2장 25절말씀이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주를 뵈었음이여. 나를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가 나를 내 우편에서 내 인생길을 인도하신다면 무엇이 염려가 되겠습니까. 더더욱 우리가 부족함이 없는 것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죽음의 골짜기입니다. 때론 우리 인생에도 질병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불황의 골짜기, 가난의 골짜기, 인간 갈등의 골짜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우린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보호하실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윗은 나는 두려움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낮고 천한 몸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날이 바로 성탄절인것입니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무엇이 두려울까요. 

마지막으로 주님은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여러분 원수 때문에 굶주리셨습니까. 원수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보좌앞에 서는 날 원수의 눈앞에서 내게 진수성찬의 상을 차려 놓으시고 나로 하여금 마음껏 먹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게 상을 차려 놓으신다. 그리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셔서 나를 새롭게 구별하시고 내 모든 상처를 다 씻어 내리시고 내 잔이 넘칠정도로 상급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게 하신다는 특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린 천국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과 특권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갈 곳이 있습니까? 동네아이들이 모여서 땅따먹기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어두운 석양을 몰려올 때 엄마가 와서 철수야 밥먹어야지 집에게서 손 씻고 밥먹자. 영희아빠가 와서 영희야 씻고 밥먹고 자야지 내일 학교 가야지. 한 아이는 갈데가 없습니다. 그 아이는 고아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는 갈 곳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 인생이 이 여정을 다 마치고 종착역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가야할 곳이 없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성경에 보니까 다윗은 염려가 없습니다. 주님이 내 목자가 되셔서 푸른 풀밭으로 쉴만한 물가로 사망의 음침한 골짝에서 보호하시고 그리고 나를 여호와의 영원한 집에 인도하시니 나는 두려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여러분과 여러분의 손을 잡고 이 거친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길 원하십니다. 영원한 천국까지 여러분을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떤분이 길을 지나가다보니까 한 노숙자가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자기가 들어가려던 식당 레스토랑이 있어서 그래서 그 식당에 노숙자를 데리고 같이 들어갔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성탄절이니 따뜻한 밥한끼 사주겠다고 노숙자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레스토랑주인이 노숙자를 보더니 당신은 안됩니다. 여기 뭐하러 왔어요 나가세요. 그때 이 신사가 주인을 바라보면서 여보시오. 그분은 나와함께 오신분이요. 그랬더니 아 그러면 들어가세요. 신사와 같이 왔다는 말에 그러면 빨리 들어가세요. 그래서 그 노숙자는 신사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우리가 천국문에 도달했을 때 문지기가 물을 것입니다. 당신은 여기 어떻게 왔느냐고 말입니다. 당신은 여기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그때 주님이 뭐라고 하실까요. 나의 목자이신 주님께서 그분은 나와 함께 오신 분입니다. 내가 그분을 데리고 왔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천국은 통과될 줄 믿습니다. 주님 손잡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천국길이라면 뭐가 두렵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오늘 주님 손 꼭 붙드시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동행의 인생, 행복한 동행이 여러분과 저의 삶에 있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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