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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선재(先在)하신 그리스도 (요 8: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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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先在)하신 그리스도 (요 8:51-59)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이제 일주일 후면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2011년 12월 18일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탄생하신 지 그만큼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2011년 전 저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하심으로 그 때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신 분일까요?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 태어날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65년 전에 이 땅에 태어남으로 그 때부터 있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모태에서 출생한 순간부터 이 땅에 존재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인간은 아무도 어머니의 모태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이 땅에 존재하게 된 사람은 없습니다. 그 점에서는 공자나 석기모니도 다 똑 같습니다. 공자는 지금부터 2562년 전에 노나라의 창평향 추읍에 태어남으로 그 때부터 이 땅에 존재하게 된 사람이고, 석가모니 역시 2555 년 전 인도 카피라 성의 정반왕과 마야 부인의 아들로 태어남으로 그때부터 이 땅에 존재하게 된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태어나기 전에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도 2011년 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심으로 그 때부터 존재하게 된 분이실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베들레헴에 탄생한 그 순간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게 분이 아니시고,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아니 영원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탄을 앞두고 ‘선재(先在)하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하는 중에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현대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으나, 인간이 결코 성공하지 못할 도전의 영역은 시간입니다. 과학은 인간의 수명을 100세 이상으로 연장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의 한계를 결코 초월하지 못할 것입니다. 요즈음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시간을 극복하려는 현대인들의 몸부림이 얼마나 강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시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으로 오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느 날 시간의 한계 속에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이 선언은 ‘에고 에이미(나는....이다. I am)라는 예수님의 용법 즉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 등과 같은 예수님의 중대한 선언적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이 말씀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선언입니다. 이 메시지는 예수님의 영원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불과 33년밖에 살지 않으셨고, 짧은 기간을 이 땅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본문을 통해서 자신의 진정한 기원은 이 땅에 계신 그 순간부터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예수님보다 약 2천 년 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의 사이에는 시간적으로 무려 2천년의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브라함이 나기 이전부터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있었느니라’라고 하지 않고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여전히 아직까지도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 나기 이전부터 계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영원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시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이것은 요한복음이 시작되면서부터 선포된 메시지였습니다. 곧 요 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창세기에 나오는 ‘태초’와 같은 시간적 의미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 1:1에 나오는 ‘태초’는 우주와 만물의 시작, 시간과 인간의 시작 등을 나타내는 시간적인 개념인 반면에, 요 1:1에 나오는 ‘태초’는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기 이전의 초시간적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태초’가 더 영원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곧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을 다른 말로 번역하면 “태초에 예수님이 계시니라. 이 예수님이 곧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의미와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말씀’이란 표현으로 나타내고자 한 뜻은 무엇일까요?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 하기 위해 ‘말씀’ 곧 ‘로고스’라는 용어를 택한 것은, 유대인들에게나 헬라인들에게 결코 생소한 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말씀이란 실제로 어떤 일을 행하는 능력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우리가 엿볼 수 있는 두드러진 내용 가운데 하나는, 강력하고도 능력이 충만하고 창조적인 말씀의 개념입니다. 천지 창조의 과정에서부터 말씀의 위력이 나타나는데, 그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의 창조적인 능력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 곧 로고스’로 표현함으로써 창조적 능력을 갖고 있는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즉 말씀으로 표현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존재의 시작은 태초 이전이었으며,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게 마련이나, 하나님의 경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연대가 영원하시다고 했고, 하나님은 자존자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에게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데, 예수님은 바로 그 성부 하나님과 함께 태초부터 곧 영원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이사야 선지자는 특별한 한 아기 곧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창세 이전의 존재자는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태초 곧 영원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본질상 하나님과 같은 분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가리켜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했습니다. 이외에도 예수께서 신성을 지니신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성경의 일관된 사상입니다. 히 1:3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했고, 계 22:13을 보면 주님은 친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증거 하셨습니다.

특별히 말씀으로 표현된 예수님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곧 창세 이전에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가지셨음을 나타내 줍니다. 말씀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분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셨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요 17:5에서 예수님에 대해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라는 표현으로 다시 기록을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두 인격의 개념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서로 다른 두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의 성품이나 활동의 일부가 아니라, 별개의 인격체였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삼위일체의 한 위로써, 아버지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시고 함께 영광 가운데 계셨던 개별 인격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 안에는 삼위가 계십니다. 이 삼위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고 부르는데, 이 삼위는 본질이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삼위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즉 예수님은 성자의 위를 갖고 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33년 동안 계시다가, 지금은 부활 승천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께서, 태초부터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이란 사실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가 힘든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2. 창조에 참여하신 예수님이시다.

선재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사역에 참여하셨다는 보도를 성경에서 우리는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고전 8:6절에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고, 골 1:16절에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했으며, 요 1:3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만물이란 6일 간의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통하여 만들어진 일체의 것들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우주 만물 창조 사역에 있어서 성자이신 예수님이 관여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만물 창조 사역의 주역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모든 만물의 창조가 성자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일개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 인생들과는 달리, 전적으로 구별되는 창조주이심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비록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양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지라도, 그분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지구촌의 한 구석에서 가난한 일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짧은 인생을 살다 가신 예수께서, 2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것은, 그분의 사상이 위대하기 때문도, 그분의 생활이 특별했기 때문만도 아닙니다.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이고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이 세계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위대성은 그분이 지으신 세계를 통해서 충분히 입증되고도 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능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업신여기면서 그분을 소크라테스나 공자 석가모니 등과 같은 동일한 반열에 두려는 이들은, 이 세계의 근원에 대해 무지한 자들이어서, 인생이나 세계를 논할 자격조차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계보다 위대하시고, 사단이나 천사들보다 훨씬 더 위대하십니다. 그분은 온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3. 구약 시대에 활동하신 여호와의 사자이시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천사는 여호와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또한 그로부터 구별되는 삼위 하나님중 제 2위이신 예수님의 출현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A. H. Strong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란 이름은, 성육신하시기 전 곧 이 땅에 오시기전 활동하신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때로는 천사의 모습으로, 때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출현하신 것은, 장차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예시하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로서의 성자 예수님은 사라의 여종 하갈에게 나타나서, 여주인에게 돌아가 복종할 것을 지시하며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모리아 산상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칼을 들어 이삭을 잡으려는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호렙산 가시덤불 속에 나타나서, 모세에게 가까이 접근하지 말 것과, 그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그들 앞에 앞서 행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의 타작마당에 나타나, 이스라엘을 구출하러 갈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여 범죄 할 때에, 온역 재앙을 내리시고 징치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로뎀나무 아래 와서 떡과 물을 공급해주시며 위로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침략하여 포위하였을 때에, 하루 밤에 십팔만 오천 명의 앗수르 군대를 진멸하셨습니다. 스가랴 1:11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서 여러 사자들의 보고를 받으신 것을 볼 수 있고, 스가랴 3:1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선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여호와의 사자는 삼손이 잉태되기 전 그의 아버지 마노아와 그의 어머니에게 나타나서, 아들을 낳을 것과 그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게 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룰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숭하리이다.”고 말하자 “어찌하여 이를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후일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기묘자라.”고 했습니다. 한 아기 곧 성탄절에 탄생하신 특별한 아기 예수님의 별명 중 하나는 ‘기묘자’입니다.

왜 예수님이 기묘자이십니까? 그의 동정녀 탄생이 기묘하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며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그의 능력이 기묘하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 기묘하고, 구름을 타고 승천하신 것이 모두 기묘하기 때문입니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제물을 바쳤을 때, 불꽃이 단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가는 것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노아의 아내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삼손의 아비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를 가리켜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라고 한 말입니다. 

이 모든 말씀들을 통하여 우리는 여호와의 사자란 여호와와 구별되는 하나님, 곧 성육신하시기 전 구약 시대에 활동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로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계신 예수님, 영원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신 예수님,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신 예수님, 구약 시대에 여호와의 사자로 활동하신 예수님, 그분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탄은 곧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분은 죄악과 죽음의 문제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시고, 그들에게 참된 자유와 진정한 해답을 주시기 위해서 찾아오신 메시야이십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그분이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치유자가 되시며 영원한 구원자가 되셨습니까? 복음은 좋은 소식 정도가 아닙니다. 복음은 실로 엄청난 소식입니다. 복음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어마어마하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분이 나의 구원자가 되시며, 나의 치유자가 되시며,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내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답이 되시며, 기쁨과 생명과 새로운 능력을 더하시는 나의 주님, 나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도 정말 그런 분이십니까? 그렇다면 이 예수님께 돌려 드리는 여러분의 감사는 무엇입니까? “오, 예수님, 저의 감사와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진심으로 성탄을 감사하고, 성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참된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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