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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4) (사 52:13-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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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4) (사 52:13-53-12)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 4편중에 본문은 메시야 도래를 입체적으로 예언한 부분입니다.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예언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 사건을 통해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문은 그리스도의 고난 뒤에 따라오는 승리의 영광에 대해서 증거하므로 메시야 구속사역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잠시라도 대중적 감상주의에 빠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구원과 승리로 승화(昇華)시키는 계시의존사색이 절대 요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야 고난을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Ⅰ. 그는 수난의 대제사장입니다. 

스가랴 6장 13절에 『 그가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고 영광도 얻고 그 위에 앉아서 다스릴 것이요 또 제사장이 자기 위에 있으리니 이 두 사이에 평화의 의논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고 』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고 했습니다(히 4:14; 5:5; 6:20; 7:26; 8:1). 

종의 수난에 대해 본문 52장 13-15절에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52장 13절에 『 내 종 』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함의(含意)하는 말입니다. 
『 형통한다 』는 말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명을 지혜롭게 행한다는 야스길( )에서 나온 말입니다. 
『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케 된다 』는 말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을 의미합니다. 
본문 52장 14절에 『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극에 달하는 고난을 당하시므로 사람들이 보고 놀란다는 말입니다. 종이 겪는 그 같은 고난은 인생 중에도 찾아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본문 52장 15절에 『 열방을 놀랠 것이며 』라는 말은 얏제( )라는 히브리어로 "피 뿌린다"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의 죄를 씻어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 입을 봉한다 』는 말은 "숭배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같은 상태에 있는 자들이 열방의 왕들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들도 메시야를 만왕의 왕으로 숭배해야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극에 달하는 고난을 나타내는 성경은 또 있습니다. 
이사야 50장 6절에 『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그의 벌거벗은 몸은 피로 물들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수난의 제사장으로 잡힌바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어서 피를 뿌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대신 고백하고 친히 나무에 달려 피를 뿌렸습니다(히 9:22).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제물로서 양이 되시고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히 13:12).

Ⅱ. 그는 수난의 왕입니다. 

1) 그는 진정한 왕이십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왕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24장 17절에 『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사 9:6-7; 시 2:6; 미 5:2; 슥 9:9). 
동방 박사들은 헤롯왕에게 와서 『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시뇨 』라고 했습니다(마 2:2). 
빌라도 법정에서 『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3) 』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 네 말이 옳도다(눅 23:3) 』라고 했습니다. 

2) 그는 멸시를 받았습니다. 
본문 53장 3절에 『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라고 했습니다. 
『 멸시를 받았다 』는 말 속에는 배척을 당했다는 의미 외에 고난의 시작을 알려주는 말입니다. 

3) 우리의 질고를 대신 지셨습니다. 
본문 53장 4절에 『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라고 했습니다. 
『 질고 』라는 말은 "병"이라는 말입니다. 죄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죄로부터 해방을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 질고를 대신 지셨다 』는 말은 곧 대속의 개념입니다. 우리의 허물과 질고를 대신 지신 것입니다(롬 5:17-19).

4)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본문 53장 4절에 『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우리의 슬픔입니다. 

5)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본문 53장 5절에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고 했습니다. 

6) 우리의 징계와 채찍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본문 53장 5절에 『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라고 했습니다. 

7)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본문 53장 6절에 『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인간의 전적 무능력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8) 자원하는 침묵의 수난이었습니다.
본문 53장 7절에 『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① 선지자적 침묵입니다.
선지자 중의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앞날의 승리를 내다보고 침묵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② 왕적 침묵입니다.
그는 유일하신 왕이십니다.
요한복음 18장 37절에 『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라고 했습니다. 

③ 제사장적 침묵입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짐을 지는 자입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고 했습니다. 

9) 무죄하신 수난이었습니다.
본문 53장 8-9절에 『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 『 곤욕과 심문 』은 무죄하신 그리스도께서 당한 부당한 압제와 부당한 재판을 말합니다. 
『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라는 말은 무흠하신 성품과 자원하는 행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한일서 3장 5절에 『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는 행위에 있어서도 말에 있어서도 무죄하신 그리스도입니다. 『 그 무덤이 악인과 같이 되었다 』는 것은 죽음을 당하실 이유가 없는 그가 악인처럼 죽는다는 것이니 이것은 그리스도가 지극히 낮아지신다는 말입니다.
『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다 』는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됨으로 성취되었습니다(마 27:57-60). 이것 역시 그가 낮아지신다는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무덤으로 쓸 만한 땅도 없었습니다(고후 5:21).

Ⅲ. 승리의 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습니다.
본문 53장 10절에 『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속건제물은 속죄제물과 유사한 것인데 부채를 갚거나 부과된 죄 값을 치러서 거기에 매여 있던 죄인을 자유롭게 해주는 목적으로 드린 제물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종의 죽음이 희생제물이 되었다는 말은 그 종이 제사장의 일을 수행했다는 것과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 율법의 제사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유일무이한 제사이며 모든 제사의 본질이 된 것입니다.

2) 씨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53장 10절에 『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씨 』는 그리스도의 영적 후손을 가리킵니다(시 22:30).

3) 장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53장 10절에 『 …그 날은 길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장수는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재림하신 후에 그의 나라를 영원히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호 6:2; 롬 6:9).

4) 그의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53장 11절에 『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 『 의로운 종 』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말입니다(고전 1:30). 이 지식은 믿음을 통한 영적 지식을 말합니다.

5) 자신의 복음으로 세상 정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53장 12절에 『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라는 말을 직역하면 존귀한 자들 중에서 분깃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존귀한 자는 세력 잡은 통치자를 말하는데 이러한 통치자들을 복음으로 정복할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라는 말은 그의 복음으로 강대국을 정복하고 승리의 탈취물을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영적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8절에 『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승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메시야의 고난은 육체적 고난뿐만 아니라 영혼의 아픔까지도 동반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범죄자 중 하나로 태어남을 입었다고 했습니다(고후 5:21; 롬 8: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영적 지식을 얻기 위해서 세상의 지식을 배설물과 같이 생각했습니다(빌 3:8-10).
그리스도의 승리는 고난을 통해서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고난을 통해서 왔습니다.
제사장, 왕, 선지자라고 할 때도 그가 받은 고난을 전제하고 주어진 이름입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영계나 자연계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했고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에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롬 8:17-18).
고난의 도입부는 순종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삼상 15:22).
고난 중에도 성도에게는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고후 1:6-7).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고 했습니다(시 34:19).
베드로전서 4장 13-14절에 『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고 했습니다. 

고난받는 자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했습니다(사 49:13).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들입니다(벧전 5:1).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고 했습니다(시 119:71).
그래서 고난을 부끄러워 아니한다고 했습니다(딤후 1:12).
의를 위해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벧전 3:14).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딤후 1:8).
교회 운동을 위한 수고와 고난은 비켜갈 수 없는 것입니다(골 1:24, 28-29).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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