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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요일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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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여기 있으니 (요일 4:7-11)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한일서 4장 7∼11절)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랑’처럼 귀한 것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체험할 때 어긋난 길을 가던 아이들이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오고, 사랑을 통해 갈등과 반목이 있는 곳에 평화가 깃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 것도, 영혼육이 잘 되는 축복을 받아 누리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입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함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난바 되었는지, 그 사랑을 받은 우리들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사랑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은 하나님의 품성이 곧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풍성하신 차원을 넘어 ‘사랑’ 그 자체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지식을 초월합니다. 그러므로 못나고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로 인해 불의하고 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지식을 뛰어넘는 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떠난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품을 떠남으로써 인류의 역사 가운데 죄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죄의 결과로 두려움이 다가왔습니다(창 3:9∼10).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제패했던 대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어두움을 두려워했고, 프랑스의 앙리 3세는 고양이를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는 장미꽃을 무서워했고, 유명한 투우사 세잘 린콘은 1톤도 더 나가는 황소의 뿔은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담대했지만, 신발보다 더 가벼운 쥐 앞에서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예일대학의 존 도널드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일반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성에 대한 두려움, 약점이 공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불신으로 인한 두려움, 생각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두려움, 말실수에 대한 두려움,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일곱 가지 두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시시때때로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요일 4:18).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모든 사람은 각각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모순되어 보이는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을 향한 완벽한 신뢰를 유지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두려운 게 없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두려워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로마서 8장 38∼39절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두려움을 내쫓았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낼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끈으로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전쟁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두려움이 파도처럼 우리를 덮쳐올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고,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위에 굳건히 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질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요일 4:9∼10). 
 
하나님의 두 가지 큰 특징은 사랑과 공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풍성하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죄를 용납지 아니하고 심판하십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므로, 죄를 범한 인간은 마땅히 죗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사랑하셔서 인간을 처벌하지 않고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 예수님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희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요 3:16).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의 본체이신(빌 2:6) 예수 그리스도를 범죄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 가운데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사랑할 의지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화목제물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요일 4:10, 19). 

우리는 하나님을 먼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 아래 비참하게 빠져 있을 때,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전혀 없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를 무조건적이요, 일방적으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원의 문, 살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선택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을 뿐 아니라,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요일 4:13).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3. 사랑을 실천하는 삶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요일 4:11).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특별히 말과 혀로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합니다(요일 3:18). 사랑의 실천은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사랑 실천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 실천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2∼3).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명은 크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축약된다고 말씀하시며(마 22:37∼40), ‘하나님 사랑’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사랑은 대개 예배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타협하지 않았고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여 우상에 절하기를 거부했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던져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여 100세에 얻은 가장 사랑하던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뜻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므로 전 재산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목숨을 바쳐 순교하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로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참다운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의 예배를 받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고(마 5:23∼24),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2:33).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가 된 이웃들을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요일 4:20∼21). 그 형제, 자매 가운데 함께 계신 하나님,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존중해야 합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준철 집사님은 평소 ‘돈벌이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는 2001년, 경남 창원에 외과병원을 개원하면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달 1회 교회 의료봉사단과 함께 봉사활동을 펼쳤고, 매년 자신의 휴가를 반납하고 해외 의료선교를 통해 적극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2007년 하나성심병원 일반외과 과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도 그의 이웃사랑은 멈추지 않았고, 2009년부터는 국제 의료봉사단체인 ‘Mercy Ship(자비호)’에 한 달간 승선해 아프리카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런 박 집사님이 올해 10월,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죽음도 그의 이웃 사랑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외과 의사였던 그는 평소 이식을 받지 못해 고통을 겪는 환자들을 보며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 어머니와 함께 인체조직을 기증하겠다는 서약을 했습니다. 인체조직 기증은 장기 이식에 비해 피부, 뼈, 연골, 혈관 등을 모두 기증하는 것으로 시신 훼손 정도가 매우 커서 2005년 이후 불과 600여 명만이 서약할 정도로 기증자가 희소했습니다. 박 집사님이 천국에 간 후, 그의 인체조직 기증 서약에 따라 150명의 환자에게 조직이 기증되었습니다. 그의 나눔의 사랑을 통해 150여 명의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제공되었습니다. 가난과 질병,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땅에서 환자의 병든 몸을 치료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으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을 내던져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던 박준철 집사님은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사랑은 여전히 남아 세상을 살리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바 된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구원의 은혜가 있습니다. 치료의 은혜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의 은혜와 천국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영혼육의 축복을 받는 통로가 됩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 허락되었으므로 우리는 우리가 받은 풍성한 은혜를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믿음을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실천자로 살아가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더 크게 들어 쓰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기쁨이 우리의 심령 가운데 가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을 맞아 우리 모두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 주님께 영광을 드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 모두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았으니, 이제 여생을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위의 불쌍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문제 있고 어려움 당한 사람들에게 찾아가게 하시고, 사랑을 베풀고 위로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영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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