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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초대 받은 목자들 (눅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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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받은 목자들 (눅 2:8-20)

현재 지구촌 인구가 70억 명입니다. 그중의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1억8,000만 명이 기독교도로 집계됐다고 여론 조사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가 19일 발표했습니다. 기독교도 가운데 절반이 가톨릭 신자이며 이어 36.7%가 개신교도로 분류됩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인구가 계속 불어납니다. 요즈음은 매년 8500만 명씩 인구가 늘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지만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사건보다 더 위대한 탄생 스토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오신 사건은 전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아주 독특한 사건입니다. 그
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으면 온 땅이 함께 기뻐하고 각국에서 경축사절을 보내며 유대 땅이 온통 잔치 분위기에 휩쓸려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의 탄생을 소망하던 유대인들이 성전에 모여 메시아 탄생 특별 예배를 드렸다는 말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왕의 나심조차 알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으로 들은 사람이 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입니다. 영화나 TV 드라마를 제작할 때 이름이 잘 알려진 스타급 연기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확실한 흥행을 보장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얼굴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하는 구속 드라마 중 ‘탄생스토리’ 편에서도 하나님은 너무도 평범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너무 절묘한지라 배역을 맡은 사람들이 그 역할을 아주 충실하게 감당함으로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난 역사의 현장에 초청받은 목자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 살펴보면서 성탄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성탄절을 맞이하기 원합니다. 

당시 로마황제였던 아구스도가 칙령을 내려 온 세상 사람들은 다 호적하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유다 지파 사람이라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와서 호적을 해야만 했습니다. 세금 징수와 징집을 위한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하라는 황제의 명령에 따라 할 수 없이 베들레헴으로 간 것 같지만 그 뒤에는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됩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미 700년 전에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루어집니다. 

요즘처럼 교통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던 때에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예루살렘 성읍에서 남쪽으로 약 8km 쯤 떨어진 베들레헴까지 가자면 보통 사람도 삼일은 걸리는데 더구나 만삭이 된 마리아를 이끌고 베들레헴까지 가려면 아마 며칠은 더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요셉 부부가 베들레헴에 도착하기는 하였지만 있을 곳을 미리 정하고 온 것이 아닙니다. 호적하기 위하여 각처에서 몰려든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빈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가 점점 힘들어 하는데 머물 곳을 찾지 못하니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결국 지푸라기가 흩어져 있는 냄새나고 불결한 헛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밤에 마리아는 아기를 낳았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보통 사람들도 있기 꺼려하는 누추한 곳에서 나셨습니다. 죄악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특권과 영광을 버리시고 구유에 누실 정도로 자신을 낮추시며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 목자들은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정확히 알았어야 할 한국 정부가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특종 뉴스를 제일 먼저 알았어야 할 사람들이 알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황제도 유대인의 왕으로 자처하는 헤롯도 몰랐습니다. 성전의 총책임을 맡고 있던 대제사장도 몰랐습니다. 역사를 바꾸어 놓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은 자들은 뜻밖에도 목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그들에게 성탄의 소식을 알려주시고 찾아가 경배하도록 초청해주셨습니다. 

목자들은 종교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그들은 부정한 자들입니다. 성전에서 절기를 지킬 때도 그들은 함께 참석하지 못하고 양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소외된 자들입니다. 양들에게 먹일 꼴과 물을 찾아 계속 옮겨 다녀야 했기에 일반 사람들과 관계를 갖기 어려웠고 마을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일수였습니다. 그들이 때로는 도적으로 몰리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신뢰할 수 없다하여 재판정에 증인으로 설 수도 없었습니다. 양떼를 이끌고 나가면 몇 날이고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낮에는 풀을 찾아 양떼를 끌고 다니고 밤에는 우리에서 양들과 함께 자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늘 외롭고 힘들고 지루하고 위험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는 그 시간에도 목자들은 적막한 들에서 양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만일 목자들이 양들을 내버려두고 따뜻하고 편안한 곳을 찾아 마을로 들어갔다면 주의 사자를 만나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하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비천하고 소외되었던 목자들에게 탄생의 소식이 전파되고 그들이 주님 앞에 찾아와 예수를 뵈옵고 경배할 수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불러주십니다. 부름에 순종함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복음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얼마나 신비하고 영광스러웠는가 보다 만민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한밤중에 천사가 그들 곁에 섰고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비추자 목자들은 무서워 떱니다. 이때 천사가 말합니다.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10절) 

기쁨을 잃은 민족, 소망을 잃은 민족, 영적으로 갈급한 유대민족에게 들려주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입니다. 지금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 구세주요 메시야요 주님이 나셨는데 그가 바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진 아기예수라고 합니다. 그 당시 아구스도는 온 세상에 기쁨과 평화를 준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신격화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구세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 세상에 큰 기쁨과 진정한 평화를 주시는 진정한 주님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그 거룩한 밤을 그냥 보내지 않으십니다. 셀 수 없는 하늘의 천군천사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축하하며 찬양을 드립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14절) 

이 평화는 아무나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보혈로 씻김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당시 로마황제들은 Pax Romana (로마의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평화는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힘으로 빼앗는 로마 입장에서 본 평화였습니다. 침략을 당하고 빼앗기는 나라 입장에서 볼 때는 고통과 슬픔과 좌절을 느껴야만 하는 허울뿐인 평화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참된 기쁨과 평화를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소식을 들은 목자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싶어 했습니다. (They wanted to know)

천사들이 찬송을 부르고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은 빨리 베들레헴으로 가서 일어난 그 일을 보자고 하면거 지체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천사의 말을 듣고 의심하거나 진짜인가 확인하기 위하여 간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 믿었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고 싶었습니다. 아기 예수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천사는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이나 태어난 곳이 어딘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게 될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표적이 될 것이라고만 말해주었습니다. 만약에 왕궁이나 성전에서 태어났다면 목자들은 아기 예수를 찾아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구유에 계셨기에 목자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야말로 자신들처럼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을 위해 오신 분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고 그분이 하신 일을 알고 싶어 해야 합니다. 호 6:3,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바울은 신앙의 경주를 잘 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빌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기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알기 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어떻게 동참해야 할지 알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을 기뻐하십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렘 29:12-13,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믿는지 오래될수록 타성에 빠지기 쉽습니다. 어려서부터 주일 빠져본 적이 없어. 왕년에 교회일은 도맡아 했어. 예배부, 선교부, 교육부 안 해본 것이 없어. 나도 할 만큼 했어. 하면서 지금은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사역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심 내는 사람에게 몇 마디 툭툭 던지면서 낙심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세를 가진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예수님을 더 알고 싶어 하고, 예수님을 더 닮고 싶어 하는 것이 예수님을 제대로 따르는 자들의 자세입니다. 성탄절에 크리스마스 선물과 파티보다 주님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성탄절에 주님을 더욱 알려고 해야 합니다. 나이에 상관없습니다. 신앙의 연륜에 상관없습니다.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2) 받은 은혜를 나누고 싶어 했습니다. (They wanted to share)

우리는 서로가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특히 삶에 위기를 맞이할 때 더욱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어도 나를 사랑하고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사람,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하고 서로 격려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을 때  신앙생활은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욱 풍성하여집니다. 고난을 헤쳐 가는 비결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과 성도의 교제를 통한 격려와 위로입니다. 목장이 바로 그런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목장이 삶을 함께 나누며 고민하는 성숙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고 주님이 약속하셨습니다. 

목자들은 원래 외로운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전해준 말을 듣고 그들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천군천사의 찬양을 들으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의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가 나신 역사의 현장에 함께 가서 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본 것을 전하였습니다. 목자들은 듣고 본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었습니다. 막 태어난 아기가 구세주요, 메시아요 주님으로 오셨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듣는 자들 중에는 목자들의 전하는 말을 듣고 이상하게 여기며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연히 믿는 사람들과 주로 교제하게 됩니다. 불신자들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교인들끼리 교제를 나누는 것을 편안해 합니다. 누가 가장 효과적인 전도자입니까?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그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믿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분이 나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전에는 죄인이었으나 이제는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전에는 내 마음대로 행하였으나 이제는 주님 뜻대로 행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저희 모두에게 듣기 원하시는 말이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기 원하시는 말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나누기 위하여 모든 것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만 이야기해도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찾아오셔서 나를 바꾸신 경험이 바로 ‘나의 이야기’(my story)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나의 이야기’를 전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주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연관되어 실제 일어난 이야기에 끌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한 '나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신 ‘우리 이야기' (our story) 많이 갖기 원합니다. 그것으로 나누기 원합니다. 


3) 하나님께 높이고 싶어 했습니다. (They wanted to praise)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연결되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찬양이 여러 번 나옵니다. 사가랴가 찬송을 부릅니다. 엘리사벳이 찬송을 부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자기에게 된 일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천사가 전하여준 말들이 다 이루어진 것을 깨닫고 목자들은 하나님을 높입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들의 삶의 현장인 양을 치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목자들은 그 밤에 양을 돌보면서도 피곤하지도 않고 신세타령도 않고 기쁨으로 감당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드리는 가장 귀한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 노래를 잘 해서가 아니라 받은 은혜가 확실하게 느껴질 때 가능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쁨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야 합니다.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목자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초대를 받은 우리가 성탄절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까요?

1)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말세는 예수님이 처음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의 기간입니다. 지금 우리가 말세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세의 징조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마 24:7). 

주님이 언제 다시 올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언제 오실 지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주님을 맞이할지를 알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잘 준비한 사람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천국잔치에 참여할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버림을 당하고 영원한 멸망에 빠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의 삶이 천국 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재림의 준비는 어느 정해진 기간 동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해야 합니다. 그 날에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려면 지금 땀을 흘려야 합니다. 심는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모든 성도들은 영적인 준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하여 주님 앞에 설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는 이미 오신 주님을 인하여 감사할 뿐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제대로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현재의 신앙생활을 점검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2) 나를 선물로 드려야 합니다.

만민의 구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는 것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이 복음은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모든 민족 어느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생명의 복음입니다. 크리스마스의 화려한 행사나 어떤 선물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 진심으로 예수님을 모셔드리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받으며 기뻐하는 동안 자칫하면 주인공이 빠진 생일잔치가 되기 쉽습니다. 자기만족을 누리는 이기적인 절기가 되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통한 구원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드려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우리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우리 자신을 드리는 날이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 물질, 달란트를 주님께 아낌없이 드리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3) 주님을 전해야 합니다.

첫 크리스마스는 우리 주님이 하늘을 떠나 땅으로 오신 날입니다. 죄인들과 함께 있기 위하여 죄인들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날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만들어진 벽을 깨뜨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바로 구유에 나신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표현됩니다. 

성탄절의 초점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장 놀랍고 특별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는 우리의 위대한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과 생명을 위해 싸움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오셨으며 대적들을 이기셨다는 것입니다. 삶은 고난과 문제로 가득합니다. 우리의 즐거움은 우리의 원수들이 달아나는 것을 보는 즐거움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승리의 소망이 가져다주는 기쁨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부활의 산소망입니다. 성탄절에 우리는 우리의 왕, 승리의 왕이 오셨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에 할 수 있는 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올 수 있는 기회로 삼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주님을 소개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Engedi Ensemble에 속한 학생들 중에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학생들이 참석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바라기는 오늘 예배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이번 성탄절을 계기로 믿음 생활을 시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년에는 선교회 별로 혹은 연합으로 아름다운 섬김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원합니다. 크리스마스는 온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 자신의 구주로 믿고 영접해드릴 뿐 아니라 기쁨과 영광의 찬송을 하나님께 돌리고 성탄의 신실한 증인으로 살기를 다짐하는 날입니다. 

크리스마스가 기독교인들에게 그저 휴일이 아닙니다. 삶을 변화시키는 event가 되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들어오셔서 인간이 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를 놓으신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며 자신들이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본질입니다. 

목자들은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구도자들이었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도자들이었고,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자들이었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들도 하나님을 알기 원하고 그 경험을 나누기 원하고 그 하나님을 높이기 원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가질 때 저와 여러분은 성탄절을 축하할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 중에 바라보며 축하할 수 있습니다. 

목자들이 경배했던 그 아기는 누굽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목자들이 만났던 그 예수님이 오늘도 우리의 삶을 인도하려주었으나 이제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전도해야 합니다. 주시고 우리의 삶을 통하여 영광 받으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나실 때는 천사들이 그 소식을  증인이 되는 이 사명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한때 번영했던 로마제국의 영화는 오늘날 유적으로만 남아 있지만 구유에서 나심으로 시작한 예수님의 역사는 이천년이 지난 오늘도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사건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들에게는 가장 크고 좋은 소식이요 기쁨이 됩니다. 주의 나심을 기념하는 이 계절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누리는 그 위로와 평화를 누리고 나누며 하나님께 구원의 찬송을 부르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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