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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요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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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이유는? (요 3:16)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에 대하여 부정적인 이야기가 세 가지 있습니다.

1. 성탄절을 차라리 없애자고 합니다.
2. 성탄절을 12월에서 9월로 옮기자고 합니다.
3. 성탄 츄리를 없애자고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성탄절을 없애자고 할가요?
예수님 없는 성탄절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년 중에 가장 술많이 마시고 음란하고 죄를 가장 많이 짓는 날이 성탄절이라고 합니다. 술이 가장 많이 팔리는 날이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없습니다.

얼마 전에 팻머스 문화 선교회에서 여론 조사를 하였습니다. 
“당신은 성탄절이면 무엇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까?”
대답 통계를 내보았습니다.
싼타크로스 29.9%, 크리스마스 트리 13.4%, 선물 10.7%, 하얀 눈 10.2%, 크리스마스 씰 5%, 크리스마스 이브 3%, 교회 2.1%, 예수님 7.2%였습니다. 예수님 생일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웃으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썽꾸러기 아이가 있었습니다. 성탄절에 싼타크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고 싶었습니다.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싼타크로스 할아버지에게 선물받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되요?”
엄마가 말했습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해야 된단다.”
아들은 엄마 말을 듣고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착한 일을 해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싼타크로스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싼타크로스 할아버지! 내가 착한 일을 많이 하였거든요.”
그리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다시 썼습니다.
“싼타크로스 할아버지. 사실은 착한 일을 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착한 일을 많이 할테니 선물 주세요.”
그리고 보니 착한 일을 많이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물은 받고 싶었습니다. 아들은 편지쓰기를 그만 두고 성당으로 달려 갔습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 상을 훔쳐왔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다시 썼습니다.
“싼타크로야! 네 엄마를 인질로 잡아 왔다. 선물과 교환하자.”
이것이 성탄절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없이 죄를 많이 짓는 성탄절이기에 성탄절을 없애자는 말들이 많습니다.

왜 성탄절을 9월로 옮기자고 할가요?
실제로 12월 25일은 예수님이 생일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신 담무스 생일입니다. 당시 로마인들이 12월 25일에 모여 축제를 하니까 초대 교인들이 그 날에 우리끼리 모여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자고 하여서 12월 25일 되었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9월입니다. 실제로 9월에 성탄절을 지키는 크리스챤 유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날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십자가가 중요합니다. 

왜 츄리를 없애자고 할가요?
그. 이유를 성경을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렘 10;3-4)

이 말씀을 성탄절 추리로 해석하였습니다. 벤 나무에 은 금으로 꾸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5절을 보면 츄리 이야기가 아니라 우상 이야기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지 추리는 아닙니다. 이사야가 이 말씀을 기록할 때에는 성탄절도 없었고 성탄절 추리도 없었습니다. 나무를 베어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성탄절 추리는 우상이 아닙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는 성탄절을 성탄절답게 보내야 합니다.
지구상에 수많은 책이 있지만 책중에 책은 성경입니다. 성경중에 성경은 예수님 말씀입니다. 예수님 말씀중에 말씀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날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을 가요? 그 이유는 무엇일가요?

어느 왕이 나라를 여기 저기 돌아 보았습니다. 시골에 들어갔을 때 아주 예쁜 처녀를 보았습니다. 왕은 그 처녀를 아내로 맞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신하에게 말했습니다.
“그 처녀를 데리고 오라. 결혼하고 싶다.” 신하가 한 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폐하! 안 됩니다. 왕의 신분으로 천민과 결혼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내가 시골로 내려 가서 거기서 결혼하고 싶다.” 신하가 또 말했습니다.
“폐하! 그것도 안 됩니다. 왕의 신분으로 시골에 내려가서 살면 안 됩니다.”

왕은 너무도 그 여자가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왕이기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천민이 되어 시골로 갔습니다. 그리고 천민이 되어 그 처녀를 사랑하며 그 곳에서 살았습니다. 킬케콜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고 쓴 <왕과 시골 처녀의 사랑>이라는 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데 왜 사람이 되셔서 사람을 이 땅에 오셨을 가요?

1. 하나님을 보여 주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기에 육이 없습니다. 형체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보여 주시려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늘 오셨습니다. 어느 주일학교 선생님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가만히 듣던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어요?”
모세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스스로 밝히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I am who I am)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육신이 없는 하나님이 육신을 가진 하나님이 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땅에서 살 수 없는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하나님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살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살 수 있는 하나님이 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2-3)

그래서 도마는 예수님을 만나고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보여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나요? 실제로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볼 수 있나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보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요 6:47-51)

구체적으로 말하면 떡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신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은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온 세계를 지배할 때였습니다. 장군들이 여기저기 나가 전쟁을 치루며 로마의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곳에 나가 전쟁을 장군들을 지휘하는 황제의 가장 큰 고민이 있습니다. 작전지시 전달방법이었습니다. 전화가 없던 시대입니다. 사람이 전달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노예가 황제의 말씀을 가지고 가야합니다. 가다보면 적들에게 붙들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전략은 백일하에 들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중에 황제가 생각하여 낸 교묘한 말씀 전달 방법이 있었습니다.

노예의 머리를 모두 깍았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황제의 말씀을 바늘로 찔러서 쓰고 먹물을 뿌립니다. 그리고 조금 기다립니다. 머리가 어느 정도 자라게 됩니다. 그러면 장군에게 보냅니다. 가다가 적에게 붙잡혀도 비밀이 탄로날 염려가 없었습니다.

황제가 보낸 노예가 장군에게 오게 되면 장군은 노예의 머리를 다시 깍았습니다. 그리고 황제가 자기에게 주는 작전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준행하였습니다.
노예가 장군에게 오면 사람들은 ‘노예가 왔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멀리서 노예가 올 때 군사들은 ‘이제 황제의 말씀이 온다’라고 말하며 노예를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되신 분이십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말씀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말씀을 받으면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치유의 말씀을 받으면 치유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받으면 지혜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받으면 축복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받으면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명의 말씀을 받으면 사명의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말씀으로 보여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2. 참 사람을 보여 주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첫 사람은 죄가 없고 깨끗하고 성결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마귀의 유혹을 받아 마귀의 영을 받아 악하여졌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6-7)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래서 예수님은 죄가 하나도 없으신 창세 이래 참 인간이요 참 하나님이십니다. 타락하기 전에 인간의 참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참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3.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본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 본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래서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부르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하나님은 너무나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하는 말씀은 세상 땅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말씀은 사람을 사랑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사람들이 한 명도 멸망치 않고 하나님 나라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하나님 나라에서 사셨고 하나님 나라를 아시는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그래서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마태는 말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천사가 분명히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입니다.

어느 가정에서 아이를 16명 낳았습니다.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6명에 아들 하나가 언제나 속을 썩이고 있었습니다. 항상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어느 날 그 아들이 도로 포장 공사하는 골탄통속에 들어가 짓굿게 놀다가 까마귀처럼 되었습니다. 목욕을 하여도 잘 씻기지 않을 정도로 시커멓게 되었습니다. 사람같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아이가 16명이 되니 저런 놈은 하나 버리고 하나 다시 만드는 것이 낫겠다.”

얼마나 말썽을 부리는지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기에 끝까지 사랑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정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얼룩진 인간을 하나님은 모두 멸망시키고 다시 창조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한 때는 홍수로 온 세상을 쓸어 버리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없이 한 시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없이는 한 시간도 살 수 없으셨습니다. 내 아들은 나없이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돈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도 아들없이는 못 살겠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날입니다. 왜 오셨을 가요?

세 가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1. 하나님을 보여 주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2. 참 사람을 보여 주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3.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몇 년전 미국 보스턴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소머벌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시청에서 성탄절을 기념하여 시청 앞 광장에 예수님 탄생 장면을 재현하여 놓았습니다.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을 중심으로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절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시민들의 눈길을 끌렸습니다. 시청앞을 거니는 사람들마다 눈여겨 보았습니다. 

그런데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아기 예수를 훔쳐 갔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성탄 장면이 되었습니다. 시청에서 라디오와 TV를 통하여 계속 방송하였습니다.
“아기 예수가 없습니다. 가지고 간 사람은 도로 제자리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탄절의 주인은 에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보여주려고 오셨습니다. 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늘 나라를 보여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참 사람이 하나님과 더불어 하늘 나라에서 사는 것이 예수님의 목표입니다.
창세기 1장, 성경의 시작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죄 짓지 않은 사람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죄없이, 죽음없이, 병없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유혹으로 하나님이 떠나셨습니다.
참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하늘나라같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것을 회복하려고 이 땅에 오늘 오셨습니다. 
강패의 핵심단어는 <폭력>입니다. 은행의 핵심단어는 <돈>입니다. 불교의 핵심단어는 <자비>입니다. 기독교의 핵심 단어를 말하라면 <회복>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습니까? 에덴동산에 주셨던 선물을 회복하려고 오셨음을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도 30 년간을 조용히 지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살고 있는 데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아들이 서울 와서 30 년을 살고 있는 데도 아무도 몰랐다는 말입니다. 우주인이 옆 집에 와서 30 년을 살았는 데도 눈치도 못 챘다는 말입니다. 간첩이 앞 집에 와서 30년을 살아도 눈치도 못 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30세 메시야 취임식의 취임사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곧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시려고 서시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은 모두 회복의 사역이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부요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려는 것은 모두 회복의 역사입니다

여우가 포도원에 들어가서 포도를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는 굴이 좁았습니다. 여우는 여우처럼 꾀를 내어 며칠 굶었습니다. 홀쭉하여 진 몸으로 들어가 포도를 몇 일 동안싫컷 먹고 보니 몸이 뚱뚱하여졌습니다. 도망가려니 할 수 없이 또 며칠 굶었더니 다시 홀쭉하여졌습니다. 구멍을 빠져 나오면서 여우가 중얼거렸습니다. 
“포도를 먹기 전이나 후나 배가 고픈 것은 마찬가지다.“ 

오늘 성탄절에 회복하러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자에게 부요를,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려는 것은 모두 회복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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