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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절]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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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28-33)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말씀은 시므온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을 안고 할 수 있었던 일은 유로게센(eujlovghsen) 즉 찬송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주를 똑바로 직면하고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그를 찬송하는 것 외에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을 두 눈으로 바라보면서 해야만 하는 것,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로지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는 것뿐이지 않겠습니까?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그 팡에 안고 그 분을 보면서 찬송한 첫번째 내용이 바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고 찬송하며 고백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설교제목이 되었고, 또한 요절이기도 합니다. 

내 눈이 보는 것이 내 몸을 이끌고, 내 눈이 보는 것이 내 마음을 이끕니다. 결국은 내 눈이 보는 것이 내 인생을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내 눈이 보는 것이 결국 우리의 인생이되고 운명이 되는 것입니다. 눈이 보배란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는 눈이 좋아야 합니다. 똑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 말로 눈은 '아인'인데 이 말은 "샘, 원천"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간의 삶이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보는가에 따라서 위대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파멸의 길에서 헤어나지 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잘 보면 큰 유익을 얻지만 잘못 보고 가까이 하다가 큰 손해를 많이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는 눈을 훈련해야 하고 보는 눈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갈데아 우르를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간 아브라함과 그 조카 롯을 한번 봅시다. 롯은 소돔땅을 바라보고 홀딱 빠져가지고는 그곳으로 나갔다가 아내도 잃고 그의 사위들은 그를 조롱하는 고난에 처하게 되었으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땅을 보고 나아가서 복을 받았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아람왕이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서 많은 군인들을 보내서 엘리사의 거처를 포위하였을 때 엘리사는 하늘 군대를 봄으로 두려워 하지 않았으나 그를 수종드는 게하시는 육신의 군대만 보므로 두려움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신령한 눈을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우리는 눈으로 봄으로 가치를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성경에서 '눈은 마음의 창' '몸의 등불'과 같다고 했습니다. 눈이 밝으면 온몸이 밝아지고 눈이 어두우면 온몸이 어두워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내가 고상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보면 나의 삶이 그렇게 되지마는 나의 눈이 부정적이고 어둡고 나쁜 것만 보면 나의 삶도 어두워지고 나빠진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보면서 닮고 보면서 오염되고 보면서 욕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 눈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내 눈이 보는 것을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내 눈이 꼭보아야 할 것은 놓쳐버려서 보지못하고, 보지 않아야 하고 보지 않아도 될 것은 열심히 집착하여 보고 있지 않는지를 살펴보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눈이 무엇을 보아야 할지 잘 선별하는 지혜롭고 믿음이 큰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내 눈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고 하나님 나라를 보는 자에게야 이 세상이란 얼마나 초라해 보이고 작아 보이겠습니까? 이제 나의 모든 친구, 친척들, 이 세상에서의 나의 모든 즐거움과 직업, 심지어는 땅에 성전까지라도 작고 초라해 보일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내 삶을 절대로 좌지우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눈이 주의 구원을 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은 복음서에 기록하기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요 1:5). 그가 세상에 계셨으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 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요 1:10-11).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요 1:12). 

눅 10:23~24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

지금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탄절에도 여전히 세상을 보고, 물질을 보고, 사람을 보고, 환경을 보십니까? 내 눈이 세상의 것을 볼 때 절대로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 눈이 하나님을 볼 때 만족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시므온은 그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당시에 신학자들도 많았었고, 제사장도 레위인도 율법주의자들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지 못하였으나 시므온은 그의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내 눈이 보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내 눈이 보고 싶은 그것을 어떻게 해야 보여주시겠습니까?
시므온은 무엇을 보고자 했습니까? 어떻게 했기에 그 눈이 주의 구원을 볼 수 있었습니까? 오늘 말씀 25~27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은 메시야를 보고자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메시야를 보기 위해서는 사람과의 관계속에서는 의롭고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는 경건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성령께서 "너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라"고 지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보고자 하는 것을 보고 삽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에 보기 좋은 것만 보고, 보아서 기분이 좋은 것을 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한 것을 보고자 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보고자 해야 합니다. 신령한 것을 보고자 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 성탄절에 우리의 눈이 주의 구원을 보고자 해야 합니다. 영의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으로 오신 사건이 바로 아기 예수의 탄생입니다.시므온의 찬송처럼 예수님은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 이방을 비추는 빛,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오서셔 죽어주심으로 인해서 인간은 죄와 사망에서부터 자유하게 되었고 죄의 종의 자리로부터 하나님의 아들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성탄절에 우리의 눈이 이 분을 보지 못하고 다른 것만 본다면 얼마나 불행한 그리스도인들이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고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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