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탄절] 성탄, 축복의 시작 (마 1:18-25)

첨부 1


성탄, 축복의 시작 (마 1:18-25)

아주 시골 외딴곳에 탄광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탄광촌에는 거칠은 사내들만 살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우락부락한 사람들, 전과가 있는 사람들, 그리고 거친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 탄광촌에 어느날 한 여성이 흘러들어왔습니다. 이 여성은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출산을 했는데 난산이 되었습니다. 병원도 없고, 의사도 없는 곳에서 아이를 낳다가 이 여인은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제 어머니를 잃은 핏덩이 하나가 남겨져 있습니다. 이 탄광촌의 남자들이 다 모였습니다. 거칠은 사내들이 모여서 이 아이를 키울것이냐 말것이냐를 결정하는 열띤 논쟁을 벌입니다. 이 귀한 생명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지도 모르겠는데 이 아이를 죽게 내버려둘수는 없지않느냐 키우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먼 도시에 가서 이 아이에게 먹일 분유를 사옵니다. 침대를 마련합니다. 아기 옷을 준비합니다. 이불을 준비합니다. 교대로 이 아이를 돌보기 시작합니다. 서로 교대로 아이를 젖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그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늘 하던일이 남자들만 모여 있으니까 술을 먹고 싸우고 도박을 합니다. 그들중에 한 사람이 제안을 합니다. 이 아이를 잘 키우려면 우리가 담배를 끊고 술도 끊어야 한다. 왜? 담배는 아이에게 해로우니까. 또 술먹고 싸우니까 아이 교육상 안좋다. 도박하다 싸우니까 도박도 끊자. 그들은 목욕도 안하고 그냥 지내던 분들인데 이 아이의 위생을 생각해서 우리가 목욕도 하자. 그들은 힘든 탄광일을 하고 올라오면 그 아이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면 모든 피로가 다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 아이가 그 마을에 중심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그 마을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이 아이는 우리처럼 이렇게 되지 말고 착한 아이가 되려면 우리가 예배를 드려야 된다. 그래서 누가 가지고 있던 성경책을 가지고 와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을은 변화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술취하고 싸우고 흥청망청하던 이곳이 이 아이를 중심으로 행복한 마을로 변화되어 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성경에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9장 6절에 보면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아기를 주셨다. 

그런데 그 아기는 누구냐. 그 어깨에는 주권을 메었고, 온 우주의 주권을 메었고 그는 기묘자라 모사라, 탁월한 경륜가요, 그는 힘있는 용사이신 하나님이요, 그리고 영원하신 분이요 그리고 평화의 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그리스도 메시야 그분이 오심으로 이 땅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흑암의 땅에 빛이 비췄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이사야 9장 2절입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흑암과 어둠속에 있던 그들에게 큰 빛, 이 빛이 누구입니까. 동방박사들이 보고왔던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빛이였습니다. 예수님이 빛이 되셔서 어두운 이곳에 오셨을 때 흑암에 거하던 그들은 광명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중단됩니다. 화해가 성립됩니다.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인류역사의 새로운 시작은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부터해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역사를 표현할 때 B.C 와 A.D로 표현합니다. B.C 라는 것은 기원전, Before Christ. 예수님이 오시기전의 역사입니다. B.C 500년 예수님이 오시기 500년전의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A.D라는 표현을 씁니다. A.D 는 기원후, 그리스도 이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Anno Domini 이것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역사를 가르킵니다. 기원후, 서기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2011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연말에 이제 한주간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2011년이 경과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역사는 B.C 와 A.D로 나누어 졌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을 때 우리 인생에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 보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그랬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알기전에는 죄의 사람이였습니다. 죄의 종이였습니다. 마귀에 억눌려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내 마음속에 모시고 그를 영접한 이후에는 내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거듭난 사람이요 구원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축복입니다. 

성탄이라는 것은 거룩한 탄생 그런뜻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에게만 해당되는 말입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까 성탄절 이브를 맞이하는 교회보다는 오히려 명동거리에 종로거리에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세상사람들도 성탄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탄은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곧 축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은 세상을 향한 축복의 시작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거룩한 역사가 한 인간의 인생을 바꿔놓고, 한 민족의 역사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축복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성탄은 축복의 시작일까요. 첫째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죄를 해결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은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이 배경을 잘 아실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한 사이인데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 되었습니다.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의로운 사람인지라 조용히 끊고자 했지만 천사가 와서 요셉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하라.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예수란 말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그런 뜻입니다. 히브리식으로 읽으면 여호수아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헬라식으로 읽으면 예슈아라는 말입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말이 예수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구원자. 오늘 마태복음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니이다. 그가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인류의 비극은 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첫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그들은 눈이 밝아진게 아니라 그들의 죄를 보게 되었고 그들은 무서운 원죄를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죄는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아픔을 주고 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의 길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누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분은 죄가 없는 분이여야만 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5절입니다.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무엇을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죄를 없애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없애려고 죄를 해결하려고 오셨는데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그분이 무죄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다 인간의 피를 통해 유전을 통해 태어나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날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은 세상없어도 부모의 피를 이어 받습니다. 저와 집사람이 둘다 O 형입니다. 우리 애들은 무조건 다 O 형입니다. 부모의 피를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A 형이 나타났다면 두 사람중 한 사람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몸을 타고 오기 때문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동거하기 전에 같이 침실에 들지 않아도 성령이 성령으로 마리아의 몸에 생명을 부어주셨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 그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죄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은 그분이 무죄하시다. 그분은 죄가 없으시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무죄하시기에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실수가 있었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이곳에 어둠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어떻게 어둠을 물리칩니까. 우리가 전기스위치를 올리면 어둠은 떠나갑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오실 때 죄인 어두움은 떠나갈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믿으면 과거의 죄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죄는 인간에게 고통을 줍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의 죄를 해결했기 때문에 우리가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성탄은 축복의 시작입니다. 

왜 성탄은 축복의 시작인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해결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8절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마귀는 고소자 참소자입니다. 마귀의 특성은 사람들을 분열시킵니다. 비방하게 만들고 헐뜯게 만들고, 비판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비참하게 일생동안 끌고 다니다가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심어줬다가 결국 지옥으로 끌고가는 것이 마귀의 행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마귀의 악한 행위를 멸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다. 이제 마귀는 더 이상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패한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마귀는 패배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귀는 존재하지만 마귀는 이제 우리의 상대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대장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나갈 때 마귀는 쫓겨갈 줄 믿습니다. 마귀는 힘을 쓰지 못하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름만 가지고 있습니다. 무서워 할 것 없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셔서 마귀를 결박하시고 무저갱속에 던질 때 진정한 하나님나라가 임할 줄 믿습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 바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일제에게 36년동안 통치받았습니다. 우리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일본말을 쓰고, 우리 성을 쓰지 못하고 창씨개명을 당했습니다. 우리에겐 아무런 주권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남자들은 전쟁에 총알받이로 끌려갔고 탄광 광부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여성들은 위안부로 끌려가서 정말 고통스런 삶을 살다가 죽어갔습니다. 우리에게 주권이 없으니까 일본이 우리를 지배했으니까.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8.15 해방이 되면서 연합군이 이 땅에 주둔합니다. 저 위에는 소련이 이쪽에는 미군이 그리고 일본사람들은 모든 주권을 잃어버리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일본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미군의 과도정치를 지나서 대한민국 독립된 정부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국군들이 우리나라를 지키니까 일본사람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한 때 우리를 지배했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종이였습니다. 마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니까 마귀는 도망갔습니다. 우린 예수안에서 승리한 백성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우리를 누구도 지배할 수 없습니다. 

6.25때 그런일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밤이 되면 빨갱이들, 공산당들이 와서 한동네를 점령하고 지배합니다. 저항하면 죽으니까 달라는대로 해줍니다. 그런데 그들은 새벽이 되면 다 도망가 버립니다. 왜. 국군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국군이 들어와 질서를 잡으면 빨갱이들은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와같은 영적인 원리입니다. 

우리가 한때는 마귀의 종이였지만 이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승리하고 그리고 우리에게 함께하신 주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에 우린이제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게 된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이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어느 마을에 국군이 주둔했다면 계속 주둔함으로써 누가 감히 틈탈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그것을 성경은 어떻게 표현합니까.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할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이제는 주님이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더 이상 마귀는 두려운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 그분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왕으로 통치하십니다. 그러기에 더 이상 두려움이 없습니다. 마귀가 더 이상 횡포부릴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주간 두가지 큰 소식을 들었습니다. 월요일에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세상을 떠난 소식을 들었습니다. 북녘땅을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지배했습니다. 그것은 흑암의 땅이였습니다. 어둠의 땅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에 성탄의 기쁜소식이 전해진다면 그리고 복음의 소식이 전해진다면 거기에 참 해방과 광명이 올 줄 믿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것이 성탄의 선물이라면 김정일 위원장의 죽음을 통해서 그곳에 성탄의 복음이 증거될수만 있다면 저는 북녘땅에 자유와 해방이 멀지않아 올 줄 믿습니다. 

또하나 슬픈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화요일날 대구에 사는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두명의 친구의 괴롭힘을 감당하지 못해서 유서를 써놓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동년배가 너무 잔인하게 그를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잠자는 시간까지 문자메시지를 보내서 마치 그를 로봇처럼 조종했습니다. 자냐 자면안돼 내 숙제해야지 숙제안해오면 50대 맞을줄 알아. 아빠한테 용돈받아와 안받아오면 30대 맞을줄 알아. 수백건의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그 아이를 괴롭혔습니다. 때로는 말안듣는다고 철사로 목을 묶어 개처럼 끌고다니기도 하고 칼로 찌르기도하고 갖은 방법으로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 아이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자기 삶을 마무리하고 말았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자기 아빠에게 엄마에게 선생님에게 아니면 경찰서라도 가서 그런 사실을 이야기 했더라면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더라면, 너 죽는다는 말에 이 아니는 감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꼭 마귀같습니다. 그 아이를 괴롭히던 그 친구들이 말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그럽니다. 귀신을 섬기면 평생 섬겨야지 네가 예수믿으면 집 망해. 너 벌받을 줄 알아. 협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꼼짝 못합니다. 교회나왔다가 집안 망할까봐 귀신이나 섬겨야지. 마귀의 짓입니다. 그 아이는 꼼짝달싹 못하고 결국은 스스로 비참한 구덩이로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몇일전 그 기사를 보고 났을 때 4층 휴게실에 동네아이들이 종종 놀러옵니다. 그리고 핸드폰켜놓고 게임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지나가다 집사람이 물었습니다. 집사람이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고민이 있을 때 누구한테 이야기하냐. 아빠한테 이야기하니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니 친구한테 이야기하니 그랬더니 한 녀석이 그럽니다.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해요. 마음속에 품고 그러다가 극단의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것 보면 우리는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왜. 우리의 고민과 아픔을 우리의 주님 예수그리스도에게 하나님에게 우리는 기도로 고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더구나 그분은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십니다. 

제가 어릴 때 어느곳에 이사를 갔더니 제가 너무 잘나서 그런지 저를 괴롭히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상급학생들입니다. 비슷하면 싸우겠는데 저보다 몇학년 위의 애들입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는 든든한 형들이 네분이나 계십니다. 형들을 모시고 가면 다 도망가 버립니다. 왜 형들이 나와함께 있으니까.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세상의 어떤 대상도, 마귀의 세력도 두렵지 않은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축복의 시작입니다. 

마지막으로 왜 성탄이 축복의 시작입니까. 예수님은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왜 기쁨이 없습니까. 사람들은 대우받으려고 하고 인정받으려고 하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대우받지 못하면 기분이 나쁜겁니다. 그러면 흔히 기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쁨은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섬김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내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높여줄 때 내게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섬김의 종의 모습으로 오신줄로 믿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8절까지 말씀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분은 하나님과 같은 본체, 본질이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 기득권을 포기하시고 낮고 천한 이곳에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오셨습니다. 

다시말해 그는 말 먹이통에 말구유에 낮은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섬김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오신 목적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서 아니 우리의 종이 되기 위해서 그분은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대신 우리가 달려야 될 십자가에 우리대신 죽으심으로써 영원한 구원을 이루신 줄 믿습니다. 그분이 오신 목적, 죽기위해 오신 것입니다. 내 대신 죽기위해 그분이 오셨습니다. 나를 섬기기 위해서 그분이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섬기는 종의 마음입니다. 희생하는 마음입니다. 낮아지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한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고 거기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섬김의 모습으로 이 땅에 우리에게 오신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입니다. 거기서 우리의 행복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성탄은 우리에게 희망의 소식입니다. 유럽에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인구의 절반이 흑사병에 걸릴 정도로 흑사병은 무서운 전염병이였습니다. 섬나라인 영국에까지 흑사병이 찾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문을 닫아 걸고 외부출입을 금했습니다. 사람들은 만나기를 꺼려했습니다. 전염병이 옮을까봐 너무나 무서운 병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대한 약도 없고 처방도 없었습니다. 걸리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해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1346년 성탄절이였습니다. 성탄의 밤은 깊어지는데 모두가 다 문을 쥐죽은듯이 걸고 있었습니다. 그때 용기있는 몇 명의 젊은이들이 런던거리에 나와 찬양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쁘다 구주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온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다 찬양하여라. 온교회여 다 일어나. 이 찬양을 힘차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 찬양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용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런던 시민들이 문을 박차고 런던 시내로 뛰어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큰 군중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기쁘다 구주오셨네 만백성아 맞으라 소리쳤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감격의 순간이였습니다. 그 찬양 기쁜 구주 성탄의 찬양을 듣는 사람들마다 심령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폐허된 마을을 다시 복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절망속에서 희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예수이름을 통해서 용기를 얻게 되었고 슬픔이 기쁨으로 근심이 찬송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탄 소식이 주는 힘을 가지고 흑사병을 이기고 극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탄의 소식은 희망의 소식입니다. 우리에게 용기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우리에게 성탄은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흑암의 땅에 절망과 어둠의 땅에 이 죄악의 땅에 또한번의 성탄의 들려옵니다. 아기 예수 탄생의 이 기쁜 소식을 여러분 마음에 담고 세상에 나가서 기쁘다 구주오셨네 만백성아 그를 맞으라. 온교회여 일어나라 찬양하며 성탄의 기쁜소식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