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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표적을 구하는 세대 - 요나의 표적 (마 12: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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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을 구하는 세대 - 요나의 표적 (마 12:38-45)

우리 주위에서 다른 사람들과 논쟁이 일어났을 때에 종료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 방법은 그 논쟁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면 종료가 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학교 다닐 때에 두발 자율화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버스나 극장을 들어가려고 하면 일반표 값을 내라고 하였기 때문에 논쟁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 논쟁을 종료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였습니다. 학생증을 보여주면 그 논쟁은 간단하게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주시고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하나님의 사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표적을 베풀게 하여 하나님의 사자임을 증명하셨습니다. 그 후에 엘리야와 엘리사를 보내주실 때에도 표적을 보여 주므로 하나님의 사자임을 증명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의 생각할 때에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라면 마땅히 그의 합당한 표적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 전에는 '귀신들려 눈이 멀고 입이 벙어리 된 사람을 고치는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 표적을 보고나서 예수님을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서 고쳤다고 비난했다가 "독사의 자식들아"이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들 중에 몇 사람이 노를 발하면서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예수님께 요구하였습니다. 이 제안은 예수님께서 표적을 보여주시면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으려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비난하고 정죄할 근거를 마련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전 1:22)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 중에 참으로 놀라운 표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셨을 때에도 그 곳에 있었던 군중들은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말하면서 놀랐습니다(요6:14). 그런데도 바리새인들은 더욱 분명하고 결정적인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 예수님께서 표적을 요구하는 바리새인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8-39)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의 마음의 동기가 악하며,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영적으로 음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소유했던 바리새인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던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표합니다. 이는 인류가 먼저 가져야 할 절대적인 표적을 말합니다. 물론 눈 먼 자에게는 눈을 뜨는 이적이 필요하고, 앉은뱅이에게는 걷게 되는 이적이 필요하지만,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이적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입니다. 요나의 표적을 통해 믿음을 가진 자가 또 다른 표적도 구할 수 있습니다. 어떤 표적도 요나의 표적을 앞설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40절에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고 요나의 표적 의미를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표적은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표적을 믿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회개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기를 간곡히 원하셨기 때문에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24:24에서 마지막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대로 표적과 기사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바라고 그것을 따르는 신앙을 신비주의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이 신앙에 깊이 빠지면 신앙의 정상궤도를 이탈하여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책망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과 유혹받아서 표적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지 마시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만을 바라보면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 예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과 남방 여왕의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이 그들보다 얼마나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가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40-42)

예수님께서 먼저 요나의 예를 드셨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과 대적이었던 니느웨 사람들에게 가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멸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심판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요나는 그들에게 아무 표적을 보여 주지 아니했을 뿐만 아니라 니느웨 사람들도 요나에게 아무런 표적을 구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니느웨 사람들이 가축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베옷을 입고 금식을 하며 재를 뒤집어 씌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욘3:10). 

예수께서는 요나와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긍휼과 사랑을 가지고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과 그 백성들의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근거를 삼기 위해서 표적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런 바리새인들에게 요나보다 크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이 세대는 마지막 때에 니느웨 사람들에게 정죄를 받는다고 예언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남방 여왕을 예를 드셨습니다. 이 여왕은 단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그 멀리 남방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솔로몬 왕보다 더 큰 존재이시며 그 지혜 자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으로부터 지혜로운 말씀을 들으면서도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한다면 바리새인들의 교만하고 악한 태도를 책망하시면서 심판 날에 남방 여왕이 증인이 정죄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책망하셨던 이 말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동일하신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여전히 이 시대에 유일한 표적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전1장 22-23절에서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힘써 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다른 표적을 구하지 마시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만이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쫓겨난 귀신의 예를 드셨습니다.(:43-45) 

어느 더러운 귀신 하나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쉴 곳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귀신은 자기가 전에 거하던 집이 그리워져서 그 집을 찾아가서 그 마음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깨끗이 소제되고 수리까지 되었는데 아무도 살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더러운 죄의 오물들이 다 청소되었고, 상처도 치료가 되었는데 안방에는 주인이 되신 예수님을 모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비어 있더라는 말씀입니다. 그 귀신은 손뼉을 치면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그 집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공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의 형편이 처음보다 나중 형편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 예화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귀환하여 학사 에스라가 성문 앞에서 모세의 율법을 낭독할 때에 모든 백성들이 개인적인 죄악들과 나라 전체에 있었던 우상숭배의 죄악들을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 후에 바리새인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외식적인 율법주의로 전략하였습니다. 그들은 전에 있었던 악한 귀신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한 귀신이 다시 들어와 살기에 적합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 더러운 귀신은 그 비어있는 집을 완전히 자기의 세력 하에 두기 위해서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귀신 일곱이 들어가자 그 사람의 형편은 처음보다 더욱더 악화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최후의 모습이 처음보다 나중이 더욱더 악화 된 사람과 같이 될 것이라고 책망하시면서 본 내용을 결론을 맺으셨습니다.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죄악된 생활을 하다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마음이 솜털처럼 가벼워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이때 힘써 그 빈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 영인 성령님으로 충만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갔던 악한 귀신이 더 큰 귀신이 다시 들어와서 지배하면 처음보다 나중이 더욱더 악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몸이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무슨 일에든지 육제의 소욕대로 행하기보다 성령님을 좇아 행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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