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네 신발을 벗으라 (수 5:13-14)

첨부 1


네 신발을 벗으라 (수 5:13-14)

“새뚝이”라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기존의 장벽을 뚫고 새로운 장을 여는 사람을 말합니다. 독창적인 생각으로 사회를 밝히고 모든 사람이 함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당신 뿐이야!”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용기를 준건 당신 뿐이야! 용기를 주는 새뚝이가 보이지 않아 걱정입니다. 새 시대를 열어 가는 희망의 새뚝이가 요구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 말을 여호수아가 들은 말입니다. 그 말을 한 것은 하나님의 군대장관은 예수그리스도라는 해석을 보았습니다. 
  
새뚝이는 뚝심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백성이 원치 않아도 설득하여 가야 할 길로 이끄는 자입니다. 요즘 지도자라는 이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하고, 표되는 것만 골라서 합니다. 꿈꿀 수 없는 것을 꿈꾸고 갈 수 없는 길을 가려고 하는 지도자가 안보입니다.   

  
󰊱 칼을 빼들고 서 있는 군대 장관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은 여리고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성을 정복하기 위해 그 땅의 모든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몹시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에는 칼이 등장합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들고 마주쳤는지라, 여호수아가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지금 왔느니라...”(13-14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부싯돌로 칼을 만들 할례를 행하라 하시니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를 마치고 낫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길갈”이라 했습니다(수5:29) 길갈이란 말은 “굴러간다”는 뜻입니다.
  
“네가 만일 탐식자여든 네 목에 칼을 둘지니라”(잠23:2)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면 네 목에 칼을 들이대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눅22:36,38)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땅을 치고 들어가 차지해야 합니다. 어느 때 보다도 강한 리더십과 전략이 요청되는 때입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보낸 하나님의 군대대장은 칼을 뽑아들고 여호수아 앞에서 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대장은 전투태세입니다. 전쟁을 시작할 여호수아 앞에 칼을 뽑아들고 있는 것은 임전태세를 강화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임진년 1월 1일 입니다.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장례를 마치자 임진년을 맞았습니다. 서양의 점술가들은 2012년은 유달리 변수가 많은 걸로 내다봅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혹독했던 임진년은 1592년 임진왜란입니다. 임진왜란이 나던 때 조선의 지도자는 유약했던 선조 임금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강렬한 리더십입니다. 부하가 믿고 따르는 리더,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라고 했던 여호수아와 그 백성 같이 짜여진 조직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자기 정체성을 당당하게 표현합니다. 가수는 “나 가수다”라 하고,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은 “나 꼼수다”라고 합니다. “나”보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더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권력지수를 높여야 합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직언이 있어야 합니다. 친근한 리더보다 엄정한 리더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군대대장을 바라보십시다. 칼을 뽑아 들고 나를 노려보는 시선 앞에서 자신을 훑어보며 믿음의 용사가 되십시다. 

  
󰊲 엎드려 절하는 여호수아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14절)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군대 대장 앞에 엎드려 절한 것은 그를 자기에게 보내신 하나님께 엎드린 것입니다. 어떤 명령이라도 복종하겠다는 태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너는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게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후로는 아브람이라 하지 않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창17:1-5)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실 때 엎드렸고 엎드렸더니 아브라함,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엎드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란 “절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내게 절하면 보이는 천하만국을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수종 들었습니다(마4:8-11) 
  
엎드리는 것은 겸손하게 말씀을 듣는 자세입니다. 기본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 기본이 중요합니다. 주일에 교회 오는 것이고 설교시간에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일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려하시나이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입니다.
  
낙타는 주인을 태울 때 무릎을 꿇고 앉아 주인이 타게 합니다. 주인을 태운 낙타는 주인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갑니다.  
  
군대는 명령이다! 강한 장군 밑에 약한 병졸 없습니다. 대장이 없는 군대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군인은 개인, 군대는 군인집단입니다. 용장아래 용감한 병졸이 있습니다. 
  
군대는 공격할 때는 사냥개처럼 공격하고, 후퇴해야 할 때는 늑대처럼 후퇴하고, 방어해야 할 때는 멧돼지처럼 방어해야 한다고 합니다. 군인은 죽음에 고용된 자입니다. 살기 위해 죽으러 갑니다.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 군인입니다. 명령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되시기 바랍니다.

  
󰊳 신발을 벗은 여호수아

여호수아가 “...내 주여 종에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14-15절)
  
칼을 빼어들고 있는 하나님의 군대대장의 요구는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고대에 있어서 신발은 에고(Ego)의 상징입니다. egoist, 자부심이 강한 사람에게 신발을 벗으라는 것은 자기를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신발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자기가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래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성전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할 예배정신입니다. 
  
새로운 통치자의 세계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새로운 질서로 받을 들여 놓으라!
  
모세는 양 무리를 이끌고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을 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시고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셨습니다(출3:5,10).
  
그가 하나님 앞에서 신발을 벗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게 하신 것입니다. 
  
설인(雪人)이라는 전설을 들어 보셨는지요? 히말라야 깊은 산 속에 산다는, 사람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정체불명의 그 사나이 ‘snow man’입니다. 전설로만이 아니라 히말라야 등반대들이 그 산을 오르면서 설인의 발자국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발을 디디고 다닐 수 없는 빙하의 계곡을 지나 하얀 눈 더미 위에 나타난 생명의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발 달린 짐승이 아니라 두 발로 걸어간 발자국입니다. 설인이 실재하지 않는다 해도 좋습니다. 설인 이야기 자체가 좋습니다. 인간은 생명이 살아남지 못할 그 추위 속에서도 36.5도의 체온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지금은 뜨거운 피가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는 계절입니다. 설인이 히말라야산맥에 발자국을 남긴 것을 등반대원들이 발견한 것처럼, 우리들의 위대한 발자국을 남기십시다.

무당들은 맨발로 시퍼런 작둣날 위에 올라가 춤을 춥니다. 평평한 땅을 놔두고 왜 칼날 위에서 춤을 추는가? 신령들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칼날 다리를 건너야 신령들의 세계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말만 들어도 섬뜩한 칼날, 그 날카로운 칼끝은 세속이 끝나는 자리이며 신령들의 세계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은 칼날처럼 좁고 위태로운 것입니다. 긴장 없이는 감히 발을 내밀지 못합니다. 위험 없이는 도저히 건너갈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 시작됩니다. 헌옷을 벗고 새 옷을 입듯이 옛 생각을 벗어 던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우리는 이 칼날을 통과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 문지방에 서 있습니다. 칼날 같은 문지방을 건너려고 발을 들었습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