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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범한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 (삼상 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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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바르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바램들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이나 역사적 인물들 중에서 모델을 찾고 그 인물들을 닮아가려고 애를 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다윗, 다니엘, 바울 등을 모델로 삼고 그들의 신앙을 따라가려고 애를 쓴다. 물론 그런 인물들은 우리가 따라가고 본받아야 할 신앙과 삶의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에 우리가 자주 실망하고 또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신앙과 나의 신앙 그리고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할 때에 “나는 아직 덜 되었다, 나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그들처럼 위대한 신앙을 가진 삶을 살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가 잘못된 모델을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물론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 무슨 문제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인물들을 볼 때에 너무 지나치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선택하고 만드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놓치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도저히 그처럼 살고 그처럼 믿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의 인물들의 삶을 보면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사용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는가? 하는 것이 관심과 초점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그들의 삶을 통해서 엄청난 깨달음과 믿음의 유익과 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받았고 큰 믿음을 가졌고 또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던 신앙의 위인이 있다. 바로 다윗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다. 그는 초대 왕 사울 때에 흔들리고 약해진 나라를 통일하고 확장하고 든든히 세웠다. 일개 목동이었던 그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고 한 나라의 왕이 되었고 또한 오실 메시아의 조상이 되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부를 때 항상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그의 일생을 살펴보면 사실 별로 대단한 사람이 못된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법에 대해서는 그에게서 별로 배울 것이 없다. 그는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재능이나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다. 불행한 아버지, 신실하지 못한 남편, 실수가 많은 사람, 잘 넘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언제나 하나님과 가까이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많은 부족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고 그에게 은혜를 주셨고 그를 사용하셨다. 그는 결코 하나님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았다.

왜 그랬을까? 그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것이 부족하고 모든 것이 불완전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그를 사용하셨다. 

시편 18:29에 다윗의 고백이 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이것을 쉽게 풀이하면 이런 뜻이 된다. “참으로 주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도와주시면, 나는 날쌔게 내달려서 적군도 뒤쫓을 수 있으며, 높은 성벽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성벽을 뛰어 넘어 달리는 것이 다윗의 모습이다. 말을 타고 열심히 달리다가 돌 벽이나 담을 만나면 주저 없이 훌쩍 뛰어넘고 다시 길을 가는 그의 모습이다. 그는 무엇을 하든지 어떤 일을 당하든지 계속해서 달려갔다. 그는 결코 어슬렁거리거나 빈둥거리며 살지 않았다. 계속해서 뛰어넘고 또 달리고 또 뛰어넘고 또 달리고 하는 것이 그의 믿음의 삶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했더니 담을 훌쩍 뛰어넘으며 살 수 있었다.

이 다윗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이야기 가운데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나라. 인간 다윗의 모습을 보려 하지 말라. 그는 우리와 똑같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잘 넘어지고 실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그를 부르셔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게 하시고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셨다. 그의 삶을 통해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과 함께 힘 있는 삶을 걸어가라.

다윗의 고향은 작은 동네 베들레헴이었다. 어느 날 선지자 사무엘이 베들레헴 동네를 찾아왔다. 사무엘 선지자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가 술렁거렸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쉽게 별 뜻 없이 이 곳 저 곳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체 베들레헴이 어떤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기에, 무슨 죄가 있기에 누가 선지자에게 알려서 여기까지 왔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곧 마음을 놓았다. 사무엘이 그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하고 제사하러 왔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곧 동네 잔치가 벌어졌다. 어린 암소를 잡고 양을 잡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오랜만에 찾아온 사무엘 선지자와 함께 흥겨운 잔치를 벌이고 함께 즐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무엘이 그곳을 방문한 데는 그 이상의 목적이 있었다. 사무엘은 이새라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마을 농부와 그의 여덟 명의 아들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들을 제사와 잔치 자리에 특별히 초청을 했다.

왜인가? 사무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왔다. 그는 현재 왕인 사울을 대신해서 왕이 될 사람을 찾고 있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이스라엘의 첫 번 왕이 된 사울은 그의 교만과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를 베들레헴으로 보내셨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사울이 이 사실을 알면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하자 하나님은 그러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면서 이새의 아들들을 만나보라고 하셨다. 이제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사무엘이 마을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 이새가 아들들을 하나씩 사무엘 앞으로 데리고 나온다. 제일 먼저 장남 엘리압이 나온다. 그의 우람한 체격과 부리부리한 눈과 자신 있는 모습을 본 사무엘이 “바로 이 사람이로구나”라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다. “그의 겉모습과 체격을 보지 말라. 그는 아니다. 나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습을 보지만 나는 그 사람의 중심을 본다.”

계속해서 아비나답과 삼마가 등장했지만 역시 선택을 받지 못했다. 나머지 아들들 역시 합격권에 들지 못했다. 사무엘에 보기에는 일곱 아들들이 각자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택하지 않으셨다.

사무엘은 당황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는데 그들 중에 아무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혹 하나님의 말씀 중에 빠뜨린 것이 있는가? 그래서 다시 물었다. “아들들이 다 온 것인가?” 그러자 이새가 “막내가 있는데 들에서 양을 지킨다”고 했다. 그래서 얼른 그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가 바로 다윗이었다.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 사람이다.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 12절에서 다윗의 외모에 대해 표현한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셨다는 사실이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내용이 있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가 다윗을 “막내”라고 불렀는데 히브리어로 ‘하가톤’인데 그 뜻은 ‘하찮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중요한 일에는 나서지 말고 빠져야 할 그런 사람을 가리킨다. 다윗은 집안에서 그런 취급을 받았다. 그저 집안 꼬마에 불과했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형들을 대신해서 양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아무도 다윗도 다른 형들과 함께 선지자 사무엘을 만나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그리고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것은 사람의 안목에서 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 이새나 다른 형제들 심지어 선지자 사무엘의 안목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안목에 의해서 선택된 것이다.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자격이 없는 사람이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시는 기준이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속 중심을 보신다. 인간적인 조건이나 외적인 조건을 보시지 않고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신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과거나 현재를 보시지 않고 미래를 보신다. 내일의 가능성을 보신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신다.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내맡기는 믿음이 있는가? 하나님만 사랑하고 살기 원하는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위해 살려 하는가를 보시고 택하신다. 그러므로 나도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위해 쓰여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 가시는 손길에 맡기기만 하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놀라운 일군이 될 수 있다.

다윗의 이름은 오늘 본문 맨 마지막에 비로소 나온다. 그 전에는 그냥 막내로만 불렸을 뿐이었다. 아마 집에서도 그의 이름을 잘 불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에 의해서 그의 이름이 불려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구약성경에서 600번 이상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60번 이상 반복되어 나타난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의 표현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알고 인격을 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은 그의 존재와 인격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고 불러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불러주신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이름을 아시고 불러 주신다. 이사야 40:26과 43:1을 보라. 요한복음 10장에서도 선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부른다고 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Nobody)을 무엇이 되는 사람(Somebody)을 삼으신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존재들을 예수 안에서 부르시고 선택하셔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가 되게 하시고 그렇게 사용하신다.

한국에서 여자들이 교회에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재미있는 분석 중의 하나는 여자들이 교회에 오면 이름을 불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교문화에서 그 존재를 별로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들이 많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본다. 하나님은 각 개인을 인정하시고 알아주신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을 부르신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은혜 은총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을 위해 일하게 하신다. 왜인가? 남달리 능력과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의지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높이고 드러내려 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이 인정을 받고 영광을 받으려 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나를 택하시고 세우셨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일군을 삼으셨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 인정받지 못한 어린 막내 다윗처럼 사람들에게는 별로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들이다. 별로 내세울 것도 많지 않은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뛰어나고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족하고 허물 많은 나를 부르신다. 나를 하나님의 일로 부르신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기를 원하신다. 이새의 맏아들 엘리압이나 아비나답이나 삼마처럼 외모나 재능이나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다 젖혀 두고 업신여김을 받는 막내 다윗을 택하셨던 하나님께서, 세상이 뛰어나고 잘난 사람들을 젖혀 두고 부족하고 못난 나를 택하시고 부르셨다. 

이제 이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에 감사하라. 그리고 나를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의 손길에 나를 맡기라. 하나님께서 나를 마음껏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만들어 가시도록 나를 드리라. 내 이름을 불러 주시는 하나님께 생을 온전히 드리라. 그래서 다윗처럼 하나님께 귀중하게 쓰임 받는 영광된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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